『그림책의 책』은 그림책을 중심으로 동화, 청소년책, 성인 단행본까지 아우른, 그림책과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북큐레이션 도서다. 15년간 수많은 그림책을 편견 없이 꼼꼼하게 읽어 온 북큐레이터 제님이 그동안 기록해 온 1만여 권의 목록에서 1300여 권의 그림책을 엄선하여 100개의 주제로 엮었다. 천편일률적인 그림책 목록과는 다른 저자 만의 폭과 깊이가 담겨있다. 깊이 있는 서가 구성을 꿈꾸는 동네책방, 작은도서관, 공공도서관은 물론 색다른 그림책을 찾는 그림책 활동가와 아이에게 폭넓은 그림책을 읽히고 싶은 부모님에게 유익한 안내서가 되어 줄 것이다.
3년 만에 묵직한 책을 들고 오셨습니다. 우선 그림책 북큐레이션 북이라고 말씀하신 그림책의 책 은 어떤 책이며, 어떤 계기로 쓰게 되었는지 알려 주세요.
상품은 물론 정보와 콘텐츠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그야말로 과잉의 시대인 현대 사회에서 큐레이션은 필수입니다. 자고 나면 수많은 책이 나와 있는 출판 분야도 예외는 아닙니다. 몇 년 전 북큐레이션이라는 개념을 접하고 가슴이 뛰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해오던 작업과 맥락이 닿아 있고, 무엇보다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깊이 있게 공부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가슴 뛰는 북큐레이션 공부가 시작되었고, 그림책 목록을 북큐레이션에 맞게 정리하는 작업을 병행했습니다.
처음에는 순전히 저를 위한 작업이었으나 공부하는 과정에서 그림책과 관련된 분들이나 책이 있는 공간이라면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꼭 필요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작은도서관 활동가로 있으면서 작은도서관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생각했죠. 폭발적으로 늘어난 그림책 활동가 선생님들에게요. 그렇게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라는 사명감(?)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림책 길을 하염없이 걸어온 지 15년, 그동안 봐온 그림책들을 100가지 주제별로 정리했습니다. 그림책에 곁들여 동화와 청소년, 어른을 위한 단행본까지 같은 주제 아래 묶었습니다.
1만여 권에서 고른 1,300권이라니 정말 방대한 분량이에요. 작업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고생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얼마 전 돋보기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혹시 이 책 작업하느라 그렇게 된 건가요? 어떤 과정을 통해 책이 나왔는지 궁금합니다.
한 가지 주제를 구성하는 데만도 50여 권의 책을 검색하고 그 중에 20여 권을 선택하여 대략 훝어 10여권을 골라 또 꼼꼼히 읽어요. 그러고는 그중에서 최종 선택을 합니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리하고 쓰고, 연결하고 보충하고…. 다 정리했다 싶으면 꼭 소개하고 싶은 그림책이 또또 나오곤 했죠.
수많은 책을 보다 보니 이 작업이 끝나면 평생 책을 멀리해야겠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책 한 권을 끝내고 나면 몸이 축나곤 했는데, 이번 작업은 특히나 눈이 급속도로 나빠져 초등학교 때 로망이던 안경 쓰기를 달성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볼륨이 워낙 크다 보니 우선 비용적으로 부담스러워하더라고요. 다행히 출판진흥원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편집하고 디자인하는 것도 꽤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저도 이런저런 도움이 되고자 협력했고요.
독자들 반응이 궁금합니다. 그림책을 조금 깊이 있게 읽고 싶은 분들에게 백과사전처럼 도움이 많이 될 듯해요.
원고를 다 쓰고 나서 100가지 주제의 목차를 한눈에 들여다보는데 저절로 수업 기획안이 막 떠오르는 거예요. ‘아, 나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라면 그림책 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께도 분명 도움이 되겠네.’라는 확신이 어렴풋하게 들었지요. 그런데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독자님들 반응이 뜨거웠어요. ‘꼭 필요한 책이었다, 그림책 백과사전처럼 곁에 두고 수시로 펼쳐볼 것 같다, 이런 책 내 줘서 감사하다, 그냥 펼쳐보기만 해도 행복하다, 집필하느라 너무 애쓰셨다’ 등등의 말씀을 해주셨어요. 너무나 감사한 일이죠. 아마 그림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느낄 거예요. 아무 페이지나 펼쳐놓고 그림책 표지만 쭉 봐도 행복이 스며드는 기분을 말이죠.
인상 깊었던 서평 중, “본 책, 읽고 있는 책, 처음 보는 책을 만나서 기뻤다”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그림책을 좋아하시는 분들로부터 ‘몰랐던 책’이 많다는 얘기를 듣는다는데, 그림책을 편견 없이 읽는다는 건 어떤 것일까요?
우선 출판사나 작가로부터 한 권의 그림책도 제공받지 않았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5년 동안 거의 매일 쏟아지는 그림책을 기록하고 직접 읽어보면서 저만의 목록을 만들어왔습니다. 초기에는 그림책에 대해서 잘 몰랐기 때문에 유명한 작가나 유명한 상을 받은 작품 위주로 공부를 했지요. 그러면서 점차 그림책을 보는 안목이 생겼어요. 그러면서도 항상 경계를 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유명 작가나 유명한 수상경력은 물론이고 저만의 취향이 크게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죠. 안목과 취향과는 다른 개념이니까요. 그럼에도 저의 취향이 전혀 배제되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럴 수도 없고요. 그렇지만 자신만의 안목을 기르는 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어요. 안목도 안목이지만 다정한 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요. 정말 많은 그림책이 나오고 있어요. 모든 그림책을 다 볼 수는 없어요. 대신 내 앞으로 다가온 그림책은 따뜻하고 다정하게 보려고 해요. 선입견을 품지 않고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지 귀를 기울이죠.
에필로그에 요안나 콘세이요의 『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를 특별히 언급하셨는데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2019년 가을 즈음 우연히 원서를 먼저 접하고 내가 번역한다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원서로 읽는 맛을 오롯이 느끼면서 깊이 빠져들었지요. 지금까지 봐온 콘세이요 작품 중에 가장 좋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 느낌을 나누고 싶어 남편에게 읽어줬더니, 첫 마디가 그랬어요. “아, 좋다. 무척 시적이네.” 그리고 1년여 만에 백수린 소설가의 번역본으로 만났지요. 소설가의 문장으로 천천히 읽으며 혼자 통곡을 하고 말았습니다. 원서로 읽을 때는 그냥, 좋다! 였는데 말이죠. 번역본이 나오기까지 그사이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번역본의 『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를 읽을 때는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은데 볼 수 없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시간이었거든요. 그때는 『그림책의 책』의 편집이 다 마무리 상태였는데 급하게 원고를 써서 보냈어요. 꼭 넣어야 한다고.
특별히 애착이 가는 책이 있나요?
너무 많아요. 저마다의 사연으로 제각각 저에게는 소중하니까요. 그런데 제가 인생 그림책이라며 강연 때마다 자주 소개하곤 하는 그림책이 빠져 있다는 걸 지금 인터뷰 중에 알게 되었어요. 마흔에 저를 불편하게 하면서도 깊은 위로와 함께 성장의 길로 이끌어 준 그림책 『나, 화가가 되고 싶어』 입니다.
『그림책의 책』까지 4권의 책을 내셨는데요. 아직 제님 작가님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본인 소개를 잠시 해주세요.
2003년에 엄마가 되어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에게 좋은 그림책을 읽어주기 위해 엄마들끼리 그림책 모임을 하고, 아이가 행복한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으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지 않고 그림책 육아를 했습니다. 그 행복했던 시간과 추억을 오롯이 담아낸 첫 책이 『그림책이 좋아서』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그림책 육아서 『포근하게 그림책처럼』이 나왔고 세 번째 책은 어른을 위한 그림책 에세이 『그림책 탱고』였습니다. 지금에서야 뒤돌아서 보니 세 권의 책은 그림책의 오솔길에 들어선 제가 성실하게 그림책을 읽으며 성장해온 한 사람의 성장보고서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저의 책을 모두 읽으신 분들은 믿음으로 네 번째 책 『그림책의 책』을 기꺼이 구입해주셨어요. 의외로 세 권 모두 소장하고 계신 분들이 많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 또한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강의를 많이 다니고, <그림책 파티>라는 모임도 연다고 들었습니다. <그림책 파티> 는 어떤 모임인가요? 그리고 다음엔 어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해요.
요즘 그림책 읽는 어른들 모임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데요. 저는 좀 특별한 그림책 모임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림책 모임이 하나의 아름다운 문화로 자리 잡을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였죠. 하루 정도 시간을 내어 자연 속에서 그림책으로 편안하게 이야기꽃을 피우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물론 따듯한 집밥도 함께 먹으면서요. 마침 그런 공간을 만날 수 있었어요. 숲이 바라다보이는 마당이 있는 소박한 집. 무엇보다 좋은 건 10여 년 동안 어린이책을 함께 읽어 온 책벗이 그 집의 주인이라는 사실이에요. 그때그때 주제에 맞는 그림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고 따듯한 집밥을 먹고 감나무 아래서 깊어가는 밤 모닥불에 빙 둘러앉아 또 못다 한 이야기꽃을 피우는 자리입니다.
『그림책의 책』을 쓰는 중에 쓰고 싶은 이야기가 떠올랐는데요. 그 바쁜 중에도 너무 쓰고 싶어 몇 꼭지는 써두기도 했습니다. 일상에서 길어 올린 따듯한 이야기입니다. 제님을 아는 독자라면 제님의 향기가 폴폴 나는 이야기랄까요? 그리고 가장 이루고 싶은 건 오래 품어온 그림책을 내는 일입니다.
*제님 그림책 에세이스트이자, 다정한 그림책 북큐레이터. 우연히 들어선 그림책 오솔길을 하염없이 걷고 있다. 그림책만으로 아이를 키우고자 시작한 그림책 육아가 그림책 세계에 첫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와 함께 그림책으로 사랑을 나누다가 그냥 그림책이 좋아서 그 속에 풍덩 빠졌다. 아이는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엄마는 꾸준히 그림책을 읽었다. 15년 동안 국내에서 출간되는 그림책을 꼼꼼히 읽으며 그림책 안내자로 활동해 왔다. 그림책 강연을 하고 그림책 모임을 열고 그림책을 보며 글을 쓰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고 이화여대에서 불어교육과 영어교육을 공부했다. 『그림책이 좋아서』, 『포근하게 그림책처럼』, 어른을 위한 그림책 안내서 『그림책 탱고』 등을 썼다. 고요한 일상에 비일상의 재미를 위해 [그림책 파티]를 기획하여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림책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따뜻한 집밥을 먹는 자리다. [그림책 파티]가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책 문화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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