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로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이 관련된 책을 읽고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책의 내용과 현실이 동떨어져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많은 책들이 서양에 뿌리를 둔 심리학 이론을 한국인에게 그대로 적용했기 때문이다. 수평적 관계와 개인을 강조하는 서양 문화와는 달리, 동양 문화권인 한국은 여전히 수직적 관계와 집단을 중요시한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한국인에게 맞는 관계의 법칙’이 필요하다. 한국적 상담의 대가라고 불리는 장성숙 교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상담 사례를 경험하면서 한국에서 필요한 관계의 법칙들을 몸소 체득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들을 『불행한 관계 걷어차기』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독자들은 이를 통해 그 어떤 책에서도 배울 수 없는, 한국인의 관계에서 꼭 필요한 상식이나 기준들을 하나하나 배워갈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한 관계 걷어차기』라는 제목이 분명하면서도 마음에 와닿는 것 같아요. 하지만 사람은 인간관계 속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밖에 없기에, 불행하다고 해서 무작정 끊어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 제목에 담긴 의미를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을 가장 어려워합니다. 거부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머뭇거리다 더 상처를 만들어내고 마침내는 관계가 단절되고 말지요. 이러한 파국에 다다르기 전에, 아닌 건 아니라고 걷어차는 식의 용기 있는 태도를 취하면 오히려 건강한 관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즉, 건설적 파괴(constructive-destruction)를 이루자는 취지에서 과감성을 담은 제목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대부분 불행한 관계는 아주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그런 불만들이 쌓여서 관계의 단절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아차’ 하는 순간 불행한 관계의 단초를 끊어내지 못하고 지나쳐버리는 것 같아요. 이를 막기 위해선 일상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갖는 게 좋을까요.
갈등이나 문제가 아주 사소한 것들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이는 표면에 나타난 일부에 불과합니다. 빙산의 일각처럼 그 밑에는 수많은 사건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일거수일투족에 묻어나오는 소소한 것들을 눈여겨보고 미리 예방하고자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무엇이든 쌓이고 쌓이면 삐져나오기 마련이거든요.
한국에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점잖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 태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쌓여가는 분노가 도리어 인간관계를 망쳐놓는 여러 사례를 책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그럼에도 불만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굳어진 습성을 쉽게 바꾸기 어려워합니다. 이런 분들은 무엇부터 변화시켜야 인간관계의 스트레스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자기표현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에 대해 눈을 뜨고, 이를 연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가뿐하게 그때그때 자신의 목소리를 내다보면 감정의 찌꺼기들이 해소되고, 상호작용 능력이 길러지고,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자기표현을 통해 ‘나’라는 주체성을 회복해 나가는 것이지요. 이렇게 ‘나’라는 중심을 잡아가게 되면, 관계에서 오는 수많은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사실 우리나라 정서상 가족관계라던가 직장관계에서는 불편한 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이럴 때 갈등을 줄이면서도 나의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맞습니다. 수평적인 문화가 아닌 수직적인 한국 문화에서는 윗사람이라고 생각되는 대상에게 솔직하게 말하기 어렵지요. 이럴 때는 상대를 비난하거나 판단하는 식의 표현이 아닌, ‘나 전달법(I-message)’을 사용해보세요.
나 전달법이란, ‘나’를 주어로 해서 상대에게 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상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상태를 알리는 것이기 때문에 갈등을 상당히 줄일 수 있습니다.
서양의 상담 연구를 기반으로 한 상담론이 한국 문화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현실역동상담’을 발전시키셨다고 하는데, 이 상담론이 기존 상담 기법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기존의 상담이론들은 모두 백인 중산층의 남성(WASP : White Anglo-Saxon Protestant)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속에 있는 가치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것들이 아닌, 수평적인 관계와 개인을 중시하는 서양 문화만의 특수성이 반영된 것들이 많습니다. 이와 달리, ‘현실역동상담’에는 한국의 문화적 특성인 집단주의적인 가치, 즉 서열의식이나 책임감 또는 역할 등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상담에 받는 사람들이 사회생활에서 불이익을 겪지 않으면서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한국의 실정에 맞는 현실적인 방법들을 알려주지요. 이것이 기존 상담 기법과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현장에서 일하시면서 많은 분들의 고민을 들어보셨을 것 같아요. 내담자들은 주로 인간관계의 어떤 부분을 가장 어려워하나요? 보편적인 고민과 그에 대한 해답을 알려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사람을 가장 괴롭히는 건 가까운 사람과의 갈등입니다. 기대한 만큼 상대가 따라주지 않아 상처를 받는 거지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상대가 아닌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애초에 갈등이 생기는 원인이, 자신의 욕구 때문에 상대를 잘못 본 데에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해결이 훨씬 간단해지지요. 상대의 허물보다 자신의 허물로 시선을 돌려 좀 더 넉넉한 마음을 갖고자 하면 관계의 고통 속에서 견디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내가 원하는 관계만 취하는 것이 어렵기에 인간관계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내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주위에 남겨둘 수도 없거니와, 그것이 과연 건강한 관계일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관계에서 갈등은 필연적인데, 이 갈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갖는 게 좋을까요?
좋은 것도 지나가고 나쁜 것도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오로지 기억만이 남을 따름이지요. 그러므로 좋고 싫음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받을 만해서 받는 것이려니 하고 가급적 순한 마음을 유지하는 게 좋습니다. 어떤 것이든 덧없이 지나가는 것들에 불과하니, 자신이 처해있는 ‘지금 여기’를 가장 소중히 여기며 보듬어 가다 보면 어느덧 주위가 환해질 겁니다.
*장성숙 현재 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상담 전공 교수이며, 극동상담심리연구원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학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던 그녀는 2학년 때 메리놀회 미국인 신부가 개최하는 집단 상담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심리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활동하면서 서양 문화에 기초한 상담접근들이 동양권인 우리 문화나 토양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 한국인의 정서에 부합하는 상담접근법으로 ‘현실역동상담’을 발전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30년 이상 상담활동을 하는 동안 ‘장칼’이라는 별명을 들을 만큼 학회 사례 모임에서 깊이 있는 지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현재 냉철하기로 유명한 철쭉님과 함께 집단 상담을 진행해 사람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저서로는 『그래도 사람이 좋다』, 『무엇이 사람보다 소중하리』, 『한국인의 심리상담 이야기』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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