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이 시작됐습니다. 소설보다, 드라마보다, 영화보다 재밌는 역사책이 눈에 띕니다. 진짜 소설보다, 드라마보다, 영화보다 재밌냐고요? 네, 정말 재밌습니다. 재밌는 데다 유익하기까지 합니다. 유럽 중심 문명사에서 소외된 세계 문명을 조망한 『문명은 왜 사라지는가』, 현존 역사학 대가 이언 커쇼의 유럽 시리즈, 대한민국 국민의 소울푸드 라면의 역사인 『라면의 재발견』, 민족주의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한중일 역사 서술 『한중일 비교 통사』를 소개합니다.
『문명은 왜 사라지는가』 (하랄트 하르만 저 | 돌베개)
교과서에서 배워왔던 모든 인류사의 시작을 4대 문명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은 문명이 세계 각지에 산재해 있었다고 합니다. 유럽이 아메리카를 정복하기 전에 산재했던 문명들은 어떻게 사라졌을까요? 인류의 가장 오래된 대도시는 곤충 때문에 멸망했습니다. 이렇듯 이 책은 유럽 문명사 중심의 역사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25개 세계 문명의 최후를 소개합니다.
이 책에서 추적해갈 문명 중 몇몇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수수께끼를 던진다. 가령 이스터섬의 거대한 현무암 석상은 어떻게 채석장에서 해안으로 옮겨졌을까? 중국의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발견된 4000년 된 금발의 미라들이 유럽인의 유전적 특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수많은 신전 유적(앙코르와트, 앙코르톰, 바욘)을 남긴 크메르 왕국의 기념비적인 수도는 외세의 침략으로 정복되지도 않았는데 어느 때인가 그냥 조용히 버려졌다. 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문명은 왜 사라지는가』, 10~11쪽)
『유럽 1914-1949 유럽 1950-2017 세트』 (이언 커쇼 저 | 이데아)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이언 커쇼의 유럽 현대사가 한국에 발간됐습니다. 대공황, 전쟁, 냉전, 소련의 해체, 유럽 연합의 탄생 등 파란만장한 유럽 현대사를 두 권으로 정리했습니다. ‘두꺼운’ 책 두 권으로요. 희귀 사진과 도판 및 지도를 수록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 한편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유럽의 20세기는 전쟁의 세기였다. 두 번의 세계대전과 뒤이은 (그 자체가 제2차 세계대전의 직접적 산물인) 40년 이상의 ‘냉전’이 20세기를 규정했다. 20세기는 예사롭지 않게 인상적이고 비극적이고 한없이 매혹적인 세기였으며, 20세기사는 격변과 굉장한 변혁의 역사였다. 20세기 동안 유럽은 죽었다가 살아났다. 1815년 이후 한 세기 동안 문명의 절정이라고 자부해온 유럽 대륙이 1914년과 1945년 사이에 야만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그러나 파국적인 자기파괴 시대 뒤에는 (비록 화해 불가능한 정치적 분단이라는 막대한 대가를 치렀을지라도) 예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안정과 번영이 따랐다. 그 뒤로 재통합된 유럽은 거세지는 세계화와 심각한 외부 도전에서 비롯한 엄청난 내부 압력에 직면해서, 심지어는 2008년의 금융 붕괴가 그 대륙을 아직도 해서되지 않은 새 위기 속에 빠뜨리기 전에도 차츰차츰 심해지는 내재적 긴장을 겪었다. (『유럽 1914-1949』, 22쪽)
『라면의 재발견』 (김정현, 한종수 저 | 따비)
2019년 기준 대한민국의 1인당 라면 소비량은 75.6개였습니다. 압도적으로 세계 1위라고 하네요. 라면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요? 일본에서 발명된 인스턴트 라면이 한국인이 즐기는 대표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기까지 60년 역사를 추적했습니다. 라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망합니다.
라면의 포장 단위는 1인분이다. 밥을 여러 반찬과 함께 먹는 한국의 식문화는 균형 잡힌 영양 섭취를 가능하게 했지만, 식사 준비의 번거로움이 뒤따랐다. 산업화?도시화에 진입하며 바빠진 일상을 꾸리는 핵가족 주부에게 라면은 구원이나 다름없었다. 엄마와 눈만 마주치면 배가 고프다고 외치는 성장기 아이에게, 밤늦게 야간자습을 마치고 돌아온 수험생 자녀에게 차려줄 수 있는 가장 간편한 간식이자 야식이 라면이었다. (『라면의 재발견』, 90쪽)
『한중일 비교 통사』 (미야지마 히로시 저 | 너머북스)
동아시아 소농사회론을 소개하며 조선시대 이해를 넓힌 미야지마 히로시의 근작. 이번 책에서는 한중일과 베트남, 류큐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전역으로 시야를 넓힙니다. 일국사 관점에서 벗어나 한중일 삼국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혀냈습니다. 종전까지 중국과 한국 또는 한국과 일본 간의 관계를 논한 책은 있었지만, 한중일 삼국을 교차 비교한 책은 드물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책입니다.
동아시아 소농사회론을 제기하게 된 또 다른 요인은 다름 아닌 한국사 자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비교사 연구는 대부분 양자 비교, 곧 한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 일본과 중국처럼 두 나라 간의 비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동아시아 삼국 중에서 연구의 축적이 가장 방대한 일본과 중국 두 나라를 비교하면 그 차이가 컸는데 이것이 비교사적인 연구의 진전을 방해해 왔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 사이에 한국을 두고 보면, 중일 간의 비교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을 깨닫는 일이 종종 있다. 이는 한국이 중국과의 유사성을 가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과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일 비교 통사』,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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