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호 선생님의 이력은 독특하다. 현직 초등학교 교사이자, 교사들의 마음 치유와 성장을 돕는 심리전문가. 그러고 보니, 우리는 아이의 마음에만 관심이 있었지 교사의 마음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부모만큼이나 아이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존재가 교사인데도.
서준호 선생님이 ‘교사의 자존감’이란 교사 개인만 신경 써야 할 문제가 아니라고, “교사의 자존감은 아이의 자존감이자 미래의 자존감”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주제 ‘교사의 자존감.’ 이를 가지고 공들여 새 책을 내놓은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교사이면서 심리전문가로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이렇게, ‘심리 치유’ 공부를 하시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열정만 가득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엔 놀이와 교육연극 분야 활동을 하고 있었고, 반 아이들과 재미있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겠단 자신감이 있었지요. 하지만 제 생각과 달리, 아이들이 저를 밀어내고 공격적으로 대하는 일이 생겼고 굉장히 속상했습니다. 그땐 아이들 탓을 했는데, 시간을 지나 돌아보니 그 아이들과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는 것, 제가 그 아이들에게 말로 상처를 줬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반 아이들과 재미있게 노는 것보다 아이들을 다독이고 위로해 주는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상담과 심리치료 분야를 접하게 됐는데, 배우는 도중 제 과거의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이 여러 번 있었지요. 제가 점점 더 친절해지고 따뜻해지고 학교 안의 스트레스 상황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을 보면서, 더 깊게 심리치료 분야에 끌렸고 더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자존감에 관한 일반적인 이야기는 이미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교사의 자존감’만을 다루신 걸까요?
교사 대상 워크숍에서 그들의 상처를 심리극으로 치유하며, 교사의 자존감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일을 접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교사의 자존감은 교사가 학교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 학생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 교실 속 안정감과 학생, 학부모, 동료 교사 등 관계를 유지하는 데 모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게 됐지요. 하지만 우리 사회는 교사에게 자존감을 높이라고만 하지 교사의 자존감을 높여주거나 깎이지 않도록 보호하는 데는 소홀한 경향이 있습니다. 교사는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니 높은 자존감을 지녔으면 하지만, 사회는 다른 집단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모든 일을 교사 개인의 탓으로 돌리곤 하니까요.
많은 교사가 자기 자존감은 높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고, 학교 안팎의 여러 일로 자존감이 깎였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학생이 자존감 높은 교사를 만나, 그에게 삶과 미래를 바라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받도록 모두가 도와야 합니다. 그런 이유로 학교 밖의 사람에겐 교사의 자존감이 왜 중요한지 알리고 싶었고, 교사들에겐 자존감은 회복할 수 있는 것이고, 자존감이 깎이게 된 것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교사들은 언제 자존감이 올라가고, 언제 떨어지는지 궁금합니다.
과거의 성장 과정, 학창 시절, 교사가 된 이후의 여러 일이 영향을 미쳐 ‘현재의 자존감’ 정도가 만들어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것이 현재 겪는 여러 일에 반응하면서 자존감을 더 깎거나 더 단단하게 만드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렇다 보니, 교사마다 자존감이 올라가고 떨어지는 정도에 차이가 있어 일반화할 수는 없는데요. 몇 가지만 간단히 소개해 보겠습니다.
설문조서 결과, 교사의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은 학생들이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고 사랑해 줬을 때, 졸업하고서도 아이들이 지속해서 연락하거나 찾아올 때, 문제를 일으켜 무너졌던 학생이 교사의 노력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을 때, 아이들의 마음이 담긴 편지를 읽었을 때 등이었습니다. 또, 학부모로부터 응원과 지지, 격려와 감사를 받았을 때, 동료 교사가 나를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거나 내게 위로받고 힘을 내서 생활할 때란 답변도 있었습니다. 대부분, 교사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귀한 존재가 됐을 때 자존감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자존감이 깎였을 때 역시 학생, 학부모, 동료가 큰 영향을 줬습니다. 교사는 학생이 다른 선생님과 나를 비교하거나 만만하게 바라보고 욕설을 내뱉을 때, 아이들이 통제되지 않거나 정성껏 준비했던 수업을 망쳤을 때 자존감이 깎였다고 느꼈습니다. 학부모가 교원 평가에 장문의 비난 글을 썼을 때, 학교에 찾아와 심한 욕설을 하고 물건을 부수었을 때, 교육청에 나를 신고했을 때, 자녀의 폭력 성향 책임을 교사에게 돌렸을 때 등의 답변도 있었지요. 동료들이 내 편을 들어주지 않고 관리자가 날 함부로 하고 학생들 앞에서 꾸짖었을 때라는 답도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떠세요? 언제 자존감이 올라가고, 언제 떨어진다고 느끼세요?
저는 이제 크게 자존감이 오르락내리락 하지 않는 편입니다. 여러 선생님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관계 속 흐름과 사람들의 역동을 이해하게 되면서, 사건이 생길 때면 조금 더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문제의 원인과 흐름을 보게 됐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래선지 주변 사람들을 볼 때면 저 사람도 나처럼 애쓰며 사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많이 이해하게 되는 편이라 자존감이 크게 떨어지진 않습니다. 아, 영어 공부를 몇 년째 하고 있는데 가끔 좌절하면서 자존감이 깎일 때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잘 다독이면서 곧 회복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자존감이 올라갔던 일은 좀 더 많은 듯해요. 몇 년간 식단 관리와 운동을 병행하며 바디프로필 사진을 찍은 일, 조금씩 썼던 글이 나중에 책으로 나오는 일, 제 제자들이 저와 함께했던 시간이 행복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 등이 제 자존감을 떨어지지 않도록 잘 잡아주고 흔들림 없이 조각해 주는 듯합니다.
코로나19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 시절인데요. 최근 교육 환경이 비대면으로 급변했는데, 교사들은 어떤지 궁금해요. 오히려 사람들을 덜 만나니 스트레스가 줄어든 것 아닌가요?
이 또한 교사마다 다릅니다. 자존감 높은 교사는 덜 흔들리겠죠? 갑작스러운 기술과 기법을 배우는 데도 두려움이 없고, 온라인 수업에도 여유롭습니다. 이 급박한 상황에도 학급을 운영하거나 온라인 수업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금세 적응합니다. 학부모에게 상처받은 경험 때문에 자존감이 깎였던 교사는 교사의 수업이 온라인에 올려가면서 캡처당하고 함부로 유출되어 도마 위에 오를까 봐, 학부모가 같은 학년 선생님들의 수업을 서로 비교할까 봐, 온라인 수업 관련해 민원을 받을까 봐 극도로 두려워했습니다. 두려움과 불안감이 심하게 올라와 공황 상태까지 갔던 교사도 있었고, 갑작스럽게 배워야 하는 기술과 기법에 숨이 막혀 퇴직을 생각한 교사도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말씀처럼 사람들을 덜 만나서 스트레스가 줄어들었다는 교사도 있었고, 특히 학교 폭력 관련 일이 줄어 덜 상처받게 됐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자존감이 단기간에 급상승하긴 힘들 것 같아요. 평소 자존감을 잘 관리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한 가지만 소개 부탁드립니다.
‘관리’에 초점을 맞춰 하나를 꼽으라면, 잘 쉬어야 한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사들은 주말이나 방학 때도 쉬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곤 합니다. 사회적인 시선을 그만큼 의식하기 때문인데요, 잘 쉬지 못하면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 내 사건에 평온한 마음으로 대처할 수 없고, 학생들의 작은 실수에도 민감해지니까요. 당연히 결과가 안 좋을 수밖에 없지요. 그러면 교사들은 또 자기 탓을 하면서 자존감을 깎아버립니다. 내가 만날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나를 위해 휴일에는 몸을 이완시키고 마음이 편해지도록 잘 쉬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평온한 마음으로 학생 관련 업무들을 잘 처리하면 자연스럽게 뿌듯함이 자리하고 자존감이 올라가겠지요?
꾸준히 책을 출간하고 계신대요. 교사의 자존감 이후, 또 관심 갖고 계신 주제가 있을까요?
교사 심리치료 워크숍에서 자주 나오는 주제들을 조금씩 책으로 정리해 보고 싶습니다. 가장 먼저, ‘교사의 사랑’을 중요한 주제로 보았습니다. 워크숍 때마다 연애 문제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는 교사가 많았습니다. 이별 뒤 좌절한 상태가 교실에 영향을 준다는 분, 상대방을 온전히 사랑하기보다 부모가 원하는 대상을 찾게 된다는 분, 성장 과정에서의 부모와의 관계가 현재의 사랑법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이 많아 자주 다루고 있습니다. 이게 가장 시급하더라고요.
그리고 ‘교사의 완벽주의’ 주제도 자주 등장합니다. 작은 결점에도 스트레스받고, 학생이 변하지 않거나 교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좌절하고 상처받는 교사가 많았습니다. 사실, 연애 문제도 이 완벽주의와 많이 연결되곤 합니다. 마지막으로 ‘교사의 비언어’를 장기적으로 정리하고자 해요. 교사의 자존감이 교사의 말과 몸에 묻어나는 것처럼, 교사의 삶은 오랫동안 교사의 몸을 조각하지요. 반복적으로 만난 감정은 그와 관련된 근육을 사용하게 하고, 특정 몸 자세를 만듭니다. 최근, 교사의 몸 자세를 교정했던 일이 그들의 자존감과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던 일이 많아 더 관심을 두고 심리극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서준호 현직 초등학교 교사이자 놀이전문가, 심리극 및 가족 세우기 치료사, LCSI 종합성격검사 전문가. 교사를 위한 공부 모임이자 심리 치료 모임인 ‘성장 교실’을 운영 중이며, 사람과교육연구소 치유성장 소장을 맡고 있다. 교사들의 마음 치유와 성장을 돕는 과정에서, 교사 특유의 자존감이 존재하고 또 그것이 교사 자신과 학생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교사들이 건강한 자존감을 유지하도록 길잡이가 되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성장 교실의 전 과정을 마친 교사들 다수의 자존감 수치가 높아졌음을 확인하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 EBS 다큐멘터리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에 출연했으며, 아이스크림i-scream 원격연수원에 ‘서준호 선생님의 놀이 끝판왕 100’과 ‘도도한 교사 생활’ 강좌가, 티처빌teacherville 원격연수원에 ‘서준호 선생님의 고학년 학급운영’ 강좌가 개설되어 있다. 지은 책으로 『서준호 선생님의 교실놀이 백과 239』, 『서준호 선생님의 학교 흔들기』(2015년 세종도서 선정), 『6학년 담임 해도 괜찮아』 외 다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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