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에세이스트] 2월 우수상 - 2021년을 ‘산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나, 그리고 우리
그저 존재하는 것, 어떨 땐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나도, 당신도.
글ㆍ사진 전지금(나도, 에세이스트)
2021.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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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치료실의 의자에는 특별한 기능이 있다. 누구라도 그 의자에 몸을 누이고 얼굴에 초록색 천을 덮고 있노라면 저절로 뼈저린(이도 뼈라면) 후회와 반성, 자책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연말이 다가오고 한 해를 돌아볼라치면 나는 늘 그 ‘반성의 의자’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적어둔 올해의 목표를 하나도 해낸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 나는 얼른 새해의 다이어리를 마련해 해야 할 일과 다짐들, 약속을 꾹꾹 눌러 적곤 했다. 3년 전까지는.  

3년 전, 후덥지근한 여름 바람에 선선함이 깃들기 시작한 어느 날이었다. 약속장소에 너무 일찍 도착해 생각난 김에 근처 병원에서 미뤄두었던 건강검진을 받았다. 며칠이 지나 병원에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정밀검진을 해보자고 연락이 왔다. 전부터 선종이 가끔 생겼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다시 검진을 받았다. 그렇게 검진을 받은 것도 잊고 지내던 중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검사결과가 ‘악성’이니 빨리 병원을 방문하라는 간호사의 말에 나는 악성이 무슨 뜻일지 물으려다 그저 “알았다”는 간단한 대답만 한 채 얼른 옷을 챙겨서 병원으로 향했다. ‘설마’와 ‘왜 내가?’라는 물음만은 품은 채. 

다시 만난 의사는 다정하지만 단호하게 ‘악성’의 의미와 앞으로의 내가 받아야 할 치료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유명한 병원의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려면 지금 예약해도 한 달은 기다려야 하니 서두르라는 말을 덧붙여 주셨다. ‘설마’와 ‘왜 내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들은 것 같았다. 이것은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나에게도 일어난 것이다. 병원을 나와 멍하니 서 있는 내 옆으로 할머니 두 분이 함께 웃으며 지나가셨다. 그제야 눈물이 쏟아졌다. 욕심냈던 일들, 되고 싶었던 무엇, 가지고 싶었고 누리고 싶었던 삶, 하나도 이루지 못 해도 좋으니 그저 저 할머니가 되고 싶었다. 저렇게 살아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이를 먹고, 늦은 여름의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웃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제야 치과 의자가 아닌 크고 넓은 삶의 의자에 앉아 나를 돌아보았다. 남의 말은 잘도 들어주었으면서 왜 내 몸과 마음이 하는 말은 모른 척했을까. 왜 나에게만 그렇게 친절하지 못했을까. 별일도 아닌데 왜 그리 자책하며 스스로를 괴롭혔을까, ‘죽고 싶다’는 말은 또 어째서 그렇게 자주 내뱉었을까. 

한 달을 기다려 진료를 받고 수술대 위에 오르기 전 기도했다. 다시 살게 된다면, 수술을 잘 마치고 다시 눈을 뜨게 된다면 살아서 느끼는 모든 것들, 그것이 어떤 고통과 아픔일지라도 살아있으므로 겪게 되는 것으로 여기고 감사히 받으며 살겠다고. 그러니 그저 ‘살게만’ 해달라고. 그렇게 몇 시간의 수술이 끝나고 온몸이 얼어붙은 것 같은 한기 속에서 눈을 떴을 때, ‘숨을 크게 계속 쉬라’는 간호사의 말이 들렸다. 처음 숨을 쉬는 것처럼 한 호흡, 한 호흡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며 생각했다. ‘살았다. 계속 살고 싶다.’

물론 수술은 끝이 아니고 시작에 불과했지만, 하루하루를 산다는 마음으로 버티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이어진 치료들을 마치고 6개월마다 돌아오는 정기검진을 받으며 3년이 지났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간절한 다짐들을 지키며 살고 있을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지라 어느새 나는 또 일희일비하는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나 이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죽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여전히 일을 해야 하고, 사람을 만나야 하지만 그 모든 일과 관계에 앞서 ‘내가 괜찮은지’ 먼저 묻는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귀한지 알기에 작게 존재함으로써 함께 존재하려고 애쓴다. 계절도, 삶도 끝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봄이 되면 꽃을 오래 보고, 가을이 되면 낙엽을 오래 보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더 오래 보려 한다. 

힘든 시간을 지내며 자주 들렀던 나 같은 환우들이 있는 인터넷 카페가 있다. 새로 들어온 누군가의 가입인사에 차마 환영의 인사를 건넬 수 없는 곳, 그러나 그 누구보다 서로의 아픔과 슬픔을 알기에 진심이 담긴 위로와 축하가 있는 곳이다. 누가 6개월 정기검진을 잘 마쳤다는 글을 올리면 모두가 축하의 댓글을 달아주며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준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5년 완치판정이나 10년, 20년의 생존소식이 그곳에 있는 이들의 희망이 된다. 나와 같은 아픔을 겪은 이가 그저 잘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희망이 되는 삶이 거기에 있다.      

그저 존재하는 것, 어떨 땐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나도, 당신도.


전지금 읽을 수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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