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격언처럼 들려오던 시대를 지나 이제 우리는 이 말이 조롱과 농담거리로 소모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아픔을 긍정하라는 메시지가 아픔을 강요한다는 사실을 영리한 청춘들이 눈치챘기 때문이다. 저 말이 유행한 지 이제 고작 10년이 지났는데, 사회는 그동안 격변을 거쳐 분위기가 적잖이 달라졌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크고 작은 아픔을 겪고야 마는 인간이므로, 아픔을 짊어진 채 어쩔 줄 모르는 과정에 놓여 있다. 청춘이지만 아프긴 싫은, 혹은 아프지만 청춘은 아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황중환 작가는 말한다. 아픔을 돌보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이건, 자신이건 간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사람에서 비롯된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아픔의 특효약으로 흔히들 사랑을 꼽는다. 사랑이 누구에게나 통하는 ‘만병통치약’임을 잘 알고 있는 저자 또한 사랑에 관한 단상으로 도입부를 채웠다. 필연적으로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게, 그런 아픔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전하는 사랑의 메시지는 마음에 닿기에 알맞은 온도다. 너무 열렬하지도, 너무 냉정하지도 않게.
작가님의 그림을 보고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실 독자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에 반해 작가님의 이름만 들었을 때는 조금 생소할 수 있을 텐데, 독자분들께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동아일보>에 14년 동안 <386c>라는 생활만화를 3,015회 연재했습니다. 연재했던 만화 중 25편이 여러 교과서에 수록되었고 <과학동아>, <좋은생각> 등 백여 개의 매체에 만화를 연재했습니다. 청와대, 문체부 등의 공공기관이나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와 같은 기업과 작업한 경우가 많아서 제 그림을 어디선가 본 듯한 기억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KT와 SK텔레콤에서 신문 전면광고를 한 적도 있고요. 광주 비엔날레 전시장에 9미터짜리 그림을 그리거나 유니세프와 함께 놀이터를 만들기도 했어요. 지금은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가르치며 전시나 조형 설치작업, 브랜드 컨설팅, 강연 활동 등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굉장한 이력을 보유하고 계시는군요. (웃음) 오랜 시간 만화를 그리시며 보고 느끼신 게 상당히 많을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 그러니까 작업 내내 “살아있는 것 같다!” 생각되었던 일이 있다면 어떤 게 있었을까요?
역시 매일 신문에 만화를 연재하던 때의 기억이 강렬한 것 같습니다. 제 만화는 시사적인 문제를 직접 다루기보다는 일상의 고민이나 가족, 관계에 대한 주제를 다루는 생활만화였거든요. 그래서인지 매일 수행하듯 마음을 돌아보아야 했습니다. 남녀노소, 불특정다수가 보는 신문이다 보니 가벼운 이야기를 주로 다루긴 했지만, 사회를 향해 선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늘 고심했습니다.
한번은 서로를 조금 더 배려하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담는 만화를 그렸는데, 아이디어를 구상한 후 스케치를 하고 펜 선을 긋고 색을 칠하는 동안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적도 있습니다. 마치 진공 상태처럼요. 다 그리고 나니 선배와 동료들이 뒤에서 저를 바라보고 있더군요. 새들에게 집을 만들어주는 남자의 이야기였는데 그 그림은 베스트셀러가 된 책의 표지로도 쓰였고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됐습니다. 작가가 작업할 때의 에너지가 지켜보는 분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업을 할 때는 늘 마음을 잘 다스리며 작업하려고 노력합니다. 가끔 내 마음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아서 힘들 때도 있지만요.
이번에 내신 책이 8년 만에 낸 신작이시라고요. 어떤 마음으로 새 책을 쓰게 되셨는지, 작가님께서 전달하고 싶었던 단 하나의 메시지를 꼽자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어떤 분이 “요즘 너무 감사해요. 이렇게 살아도 살아지는구나 싶습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분은 제가 아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요령을 피우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지나치다 싶게 성실합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다 잘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사회에는 개인들이 버텨내기에 어려운 상황이 많습니다. 여기에 비교와 경쟁, 압박이 더해져 우린 너무 숨 막히게 살고 있지 않은가요. 그 속에서 자신의 진짜 가치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마음을 다치기도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야 타인에게도 너그러워질 수 있거든요. 행복에 대한 인식이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지금 큰 성공을 거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같은 상황을 편안하게 인식하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본다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괜찮다’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존감과 여유를 잃지 말고 자신을 다독이면 좋겠습니다.
『아픔을 돌보지 않는 너에게』 는 참 직설적인 제목 같아요. 책 표지를 보고 뜨끔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제목에서 지칭하는 ‘너’를 특정하신 건가요?
제목에서 말하는 ‘너’는 곧 ‘나’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시선보다 자신을 더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이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아는 것. 그 마음이 확장되어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사랑의 씨앗이 자라기를 바랐습니다. 너에겐, 아니 모든 사람에게는 행복이 가장 어울린다고 에둘러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등장하는 단순한 그림들이 눈에 띕니다. 짧은 글이 마음속에 울림을 주면서도 때로는 그림이 더 많은 말을 전해주는 것 같아요. (독자분들이 글과 그림 중 어느 것에 더 집중하면 좋을까요?)
글과 그림 따로 감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원래 그림을 더 좋아하는 만화가라서 글보다는 그림을 더 감상해 주시길 바라고요. 예전에 제가 너무 존경하는 시인과 함께 책을 낸 적이 있습니다. 시인의 시는 이미 완벽한데 제 그림은 시를 읽고 그리다 보니 내용이 중복되어 시의 맛을 떨어뜨린 것 같아 너무 미안한 적이 있습니다(함민복 시인님 미안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립니다). 이번 제 책에 들어간 그림은 글과 꼭 맞아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신 단순하지만 즐거운 에너지를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독자분들이 그것을 느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자신이 힘든지, 힘들지 않은지 잘 모를 것 같아요. 일상을 사느라 바쁜 독자들을 위해, 책 속에서 딱 한 문장만 꼽아주신다면?
우리 이 정도면 괜찮다고 등을 토닥여주자.
“애썼다. 참 잘했다.”
이 세상을 살아내야 할 ‘아픔을 돌보지 않는 너’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세요.
아무리 세찬 비와 태풍도 결국 지나갑니다. 언제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세요. 이따금 무리를 벗어나 한가로이 숲속을 거니는 사자처럼 자유로워지세요. 다수에 속하는 것이 당신에게 안도감을 줄 수는 있지만, 행복과 자유를 선물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길을 가세요. 사소한 일에 매달려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마세요. 무엇보다 가장 큰 선물은 바로 당신입니다.
*황중환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금강기획에서 그래픽디자이너와 멀티미디어 PD로 일하다 동아일보에 『386C』를 그리며 만화가 입문, 동아일보 기자로 13년간 재직하기도 했다. 수많은 매체에 만평을 그렸고,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20편의 카툰이 수록된 국민 카투니스트다. 『I’m 386C』, 『FAMILY』, 『사람이 가장 아름답다』, 『만화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달라이 라마의 행복』 등 많은 책을 펴냈고, 파울로 코엘류와 함께 『마법의 순간』도 만들었다. 현재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가르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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