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 지난 4월 12일, 감동의 물결이었죠. <오은의 옹기종기> 첫 방송이 나간 날인데 <책읽아웃> 팬 분들께서 3주년 축하 릴레이를 해주셨어요.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이 연달아 올라왔는데요. 이미지도 너무 귀엽지 않았나요?
불현듯(오은): 정확한 날짜는 몰랐는데 그날 오전부터 알람이 계속 오더라고요. 보니까 모자이크처럼 같은 이미지가 한 페이지 가득 있는 거예요. 나도 몰랐던 나의 기념일을 누군가가 챙겨주는 것 같았고요. 잘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 날은 뭉클해서 밤에 잠이 잘 안 왔어요.
오늘 주제는 프랑소와 엄님이 제안해주신 ‘우리에게 용기와 싸랑을 주는 책’입니다.
불현듯(오은)이 추천하는 책
유성원 저 | 난다
세계에는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사회는 일반적으로 정상, 비정상을 가르고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죠. 뉴스에도 그런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거기 해당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요. 때문에 우리의 뇌는 점점 굳어가는 걸지도 모르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저는 ‘사랑’에서 ‘싸랑’으로 넘어갈 때는 내가 몰랐던 세계에 발 들이게 해주는 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그런 생각에서 이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유성원 작가님의 글 중 한 대목을 읽고 싶은데요. 작가님이 어쩌면 이제 이 글을 세상에 내보여도 되겠다, 결심하신 부분 같아서 가지고 왔어요.
어떤 사람들은 보여줄 수 있는 것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보여줄 수 없는 것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어떡하나요. 사라지면 된다. 없는 사람처럼. 글을 사람들이 읽는다고 생각하니까 문제적인 표현들, 하지만 이 표현을 썼기에 가능한 이야기들을 없애야 하나 고민된다. 이것은 사람을 죽였는데 남들이 모르기만 하면 그만인가와 사람을 죽였다고 해서 굳이 남들이 알아야 하나의 다툼이다. 사람들이 읽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데 읽기 시작하면 문제가 된다. 나는 읽는 행위 자체가 사건이 되기를 바라고 그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
여러분이 이 사건에 연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이 사회에는 안온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가까운 사람들만 챙겨도 된다는 생각이 있지만, 숨죽여 울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릴 필요가 분명히 있으니까요. 유성원 작가님이 또 이런 문장을 쓰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취급 당할 때, 그의 얼굴을 표정을 상상할 수 없을 때, 그 삶의 토대와 조건은 취약해지기 쉽다.” 저는 사랑의 완성이 취약해지기 쉬운 사람들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독자 분들이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던 용기를 헤아려 주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이 책을 읽을 때도 용기가 필요해요. 처음부터 수위가 높은 표현이 등장하거든요. 그럴 때에는 책 뒤에 수록된 유성원 작가님이 외부에 발표한 글과 나영정 활동가 님께서 쓰신 해제를 먼저 읽으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프랑소와 엄이 추천하는 책
정은숙 저 | 문학동네
‘문학동네포에지’ 시리즈 중 한 권이에요. 이 시리즈는 예전에 나왔던 시집을 복간하는 작업인데요. ‘포에지(poésie)’가 프랑스어로 ‘시’라는 뜻이죠. 원래 1996년, 문학동네에서 이미 포에지 시리즈를 낸 적이 있었고, 작년에 다시금 시작을 한 거예요. 정은숙 시인님은 여러분들이 너무 잘 아시는 출판사 ‘마음산책’의 대표님이에요. 대표님과는 조금 인연이 있는데요. 예전에 웹진 <채널예스>와 <월간 채널예스>에 대표님이 ‘정은숙의 나홀로 극장’이라는 제목으로 영화 리뷰를 쓰셨는데 그 칼럼의 담당이 저였어요. 격주마다 읽는 대표님의 글이 너무 좋았고요. 영화광이 아닌데도 대표님의 영화 리뷰를 읽으면 그 영화가 너무 보고 싶어졌어요. 어떻게 언어와 문장이 이렇게 젊을 수 있을까, 하고 항상 감탄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사실 요즘 감흥이 조금 없었는데요. 이 시들을 읽은 순간 제 안에 있던 감성적인 마음들이 확 살아나면서 이 시집을 진심으로 소개할 수 있겠다는 용기와 사랑을 느꼈어요. 그래서 가지고 왔습니다. 책에는 시인의 말이 두 편이 실려 있어요. 처음 시집이 나왔던 1994년 10월에 쓴 시인의 말이 첫 페이지에 있고요. 2020년 봄에 쓴 개정판 시인의 말이 있는데요. 개정판 시인의 말을 읽어볼게요.
"서른 살 무렵의 시들을 다시 만나 소실되어가는 나를 붙잡고 말을 걸어보았다. 오래된 시들로 내가 어떻게 이 세상을 통과했는지 몸을 떨며 느낀다. 세상과 잘 섞이지 않았던 때의 시들은 구체적이고 딱딱한 질감의 세속적인 말을 갖고 있다. 이제 나는 세상과 잘 어울리는가.
답은 없고, 삼각잎아카시아 나뭇잎처럼 어깨가 위로 솟구친다. 뭔가 무수한 그늘과 함께 사는 것이 나이고 이 시집이라는 걸 자신에게 고백했다. 두번째 시집 『나만의 것』에서 열 편의 시도 데려왔다. 처음과 끝이 없는 게 시라지만 열 편의 시를 데려온 마음은 처음이고 끝이다."
시집을 1년에 서너 권 읽는 편이지만 정말 좋았던 시집이고요. 이 봄에, 봄이 다 지나가기 전에 사랑과 용기를 갖고 싶은 분들이 함께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캘리가 추천하는 책
제시카 배컬 저 / 고정아 역 | 북하우스
성공한 여성들의 실수담을 담은 책이에요. 여성들은 완벽하게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어렸을 때부터 너무 크죠. 여성의 실수는 더 크게 부각되고, 비판도 더 많이 받잖아요. 문제는 여성은 완벽해야 된다는 압박을 받는데, 심지어 자연스럽게 완벽해야 된다는 압박까지 받는 거예요. 여성이 욕심을 내거나 어떤 자리를 욕망하는 모습을 너무 티 내면 사람들은 그것도 싫어하잖아요. 이런 맥락에서 책에서는 ‘유리천장’ 개념을 다시 질문하는데요. 여성의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적으로 있기 때문에 ‘유리천장’이 아니라 ‘유리절벽’이라는 말을 책은 하더라고요. 되게 공감했어요.
책에는 의사, 판사, 인권 운동가, 교사 등 자기만의 길을 간 다양한 여성들이 등장해서 자신이 일하면서 저지른 실수를 솔직하게 들려줘요. 가령 의사인 ‘대니엘 오프리’라는 사람은 레지던트 1년 차 때 저지른 큰 실수를 말해요. 응급실에 기절 상태의 당뇨병 환자가 왔는데 본인의 실수로 환자 생명이 위독해진 거예요. 긴급한 상황인데 자신도 패닉이 돼서 쩔쩔매고 있었고요. 이때 의국장이 모든 사람이 같이 있는 곳에서 호통을 친 거죠.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는 수치심이 너무 크고 오래 갔대요. 그러면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실수를 하면 행동과 자기를 분리해서 보자. 그 행동은 실수지만 우리 자신이 실수는 아니다.’
책은 각각의 이야기가 쭉 나온 다음 마지막 부분에 박스로 그 사람의 조언이 정리가 되어 있어서 그 부분을 골라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여기 등장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실수를 회복하는 과정이나 그 실수했다는 경험 자체에서 나만의 데이터가 쌓이고, 그것이 나의 자산이 된다는 걸 알게 돼요. 저자는 “우리는 성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충분히 괜찮은, 때로는 이를 망쳐도 생존해내는 리더의 역할을 떠받고자 해야 한다. 여성의 리더십에 대한 사회적 담론도 불안정함을 포용해 나가야 한다”고 말하거든요. 이다혜 작가님의 『내일을 위한 내 일』과 예전에 <어떤,책임>에서 프엄님이 소개한 『페미니스트 비긴스』와 같이 읽어도 정말 좋을 책이에요. 용기와 싸랑을 담아 여성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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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