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언 칼럼] 잊을 수 없는 공포의 분위기
몬터규 로즈 제임스는 지극히 산문적이고 평범한 전개 속에 미묘하게 배치된 공포의 운동만으로 그렇게 잊을 수 없는 분위기와 효과를 창출했다.
글ㆍ사진 김용언(<미스테리아> 편집장)
202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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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스 부인은 웨스트필드의 사람들이 온갖 소문을 입에 올리지만 입 밖에 내지 않는 소문이 가장 끔찍하다고 덧붙였다.(「장미 정원」 중) 

대개 공포소설의 주인공은 심신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의 인물로 설정된다. 몬터규 로즈 제임스가 태어나기 13년 전 숨을 거둔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들이 특히 그러한데, ‘신뢰할 수 없는 화자’를 통해 감정의 격변과 공포의 강도를 자유롭게 조절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니까 화자가 열병을 앓고 있다거나 혹은 열병에서 회복된 지 얼마 안 되거나, 아니면 술이나 약물에 취해 있다는 식의 조건을 설정한 다음, 그가 경험하는 극단의 공포와 환상의 파노라마가 약해진 신경 탓에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벌어진 일인지 아니면 정말 실재하는 무엇인지를 독자가 쉽게 판단할 수 없게 만든다. 물론 공포소설의 핵심은, 독자를 바로 그 판단 불능의 상태에 위치시킴으로써 계속 망설이게 하고 회의하게 하고 불안하게 만들며 공포 상태를 지속시킨다는 데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설정은 매우 효과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몬터규 로즈 제임스(M.R. 제임스로 더 잘 알려져 있다)의 공포 단편들은 상당히 독특한 태도를 취한다. 그 자신이 평생 케임브리지의 높은 담벼락 안에서 학문에만 몰두하고 의도적으로 현실과 유리된 채 살아가는 쪽을 선택했다(예를 들어 올더스 헉슬리라든가 제임스 조이스 등 모든 ‘현대적인’ 사상과 기류에 대해 제임스는 대단히 적대적인 비판을 가했다).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취미 생활의 일환으로 가볍게 써 내려간 이 단편들 속에는 그런 작가 자신의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되며 색다른 레이어를 덧붙인다.

에드거 앨런 포가 아름다움과 섹슈얼함 사이를 넘나들며 강렬한 공포의 이미지를 발견했다면, 몬터규 로즈 제임스는 거의 산문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에서 환상이나 유령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건전하고 보수적인 주인공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어떤 고대의 존재를 건드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주인공은 실제로 악행을 저지르거나 공포의 한복판으로 자진해서 뛰어들 만큼 격렬한 인물이 아니다. 즉 공포와 전율을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쪽이라기보다는 관찰자에 가까운 인물, 혹은 직접 경험하더라도 초자연적 존재 자체를 믿지 않기 때문에 이 경험을 즉각적으로 이해하지 못해 의도치 않게 관찰자 시점을 취하는 인물이다.

물론 관찰자 시점으로 걸러 듣는다는 게, 공포가 어슴푸레하게 묘사된다거나 대충 얼버무려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제임스의 단편들에서 공포는 상당히 명료하다. 충격적일 정도로 직접적인 신체 훼손(특히 「잃어버린 심장」에서는 12살 생일을 맞이하는 아이의 심장을 잡아 뜯어내는 잔혹한 설정이 등장한다)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둔감한’ 주인공들조차 특정한 암시를 깨달을 수밖에 없게끔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불길한 신호로 제시되기도 한다.

공포를 감각하는 방식은 그렇게 분명하게 서술되지만, 공포의 형체에 대해서만큼은 사려 깊게 암시와 생략을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빈 공간을 만들어둔다, 제임스의 ‘고대의 유령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인 「호각을 불면 내가 찾아가겠네, 그대여」에서 이 같은 특징이 가장 효과적으로 관철된다. 꼬장꼬장한 파킨스 교수는 휴가철 외딴 해변의 어느 오래된 호텔에 묵으며 골프와 연구에 집중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교수는 그 지역 성당기사단 건물의 옛터에서 낡은 호각을 줍는다. 호각의 앞뒷면에는 각각 다른 라틴어 문구가 씌어 있다. 앞의 문장은 라틴어의 배열에 따라 ‘도둑이여, 그대는 얻어맞을 것이며, 그대는 흐느낄 것이다’ 혹은 ‘그대는 얻어맞을 것이고, 그대는 흐느낄 것이며, 그대는 미쳐버릴 것이다’로 해석된다. 뒷면에는 ‘그는 누구이며 오는 자는 누구인가’라고 적혀 있다.

그다음부터 파킨스 주변에는 계속 어떤 상황이 발생한다. 이를테면 마을 소년은 파킨스의 방 유리창가에서 이상한 것을 보았다고 맹세한다.

“소년은 막 돌아가려다 우연히 여관 정면 창문을 올려다보았는데, 그때 ‘그것이’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꼭두각시 인형 같은 형태였는데, 아이에게 보이는 모습은 전부 하얀색이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아이에게 손을 흔들었는데,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을 듯했다)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막 잠들려던 파킨스는 자신이 묵는 방의 더블베드 중 빈 침대가 사실은 비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침대에서 무언가가 뒹굴고 있었고, 파킨스가 자신의 존재를 깨달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그 무언가는 몸을 일으켜 파킨스를 저지하고자 한다. 그것에는 형체가 없기 때문에, 그것이 뒤집어쓴 리넨 이불이 그것의 움직임을 구체화시킨다. “지독하게 끔찍한, 구겨진 리넨 천으로 만들어진 얼굴”. 자신을 깊은 잠에서 깨워낸 파킨스를 위협하는 것 외에는 어떤 구체적인 목표도 없는 기이한 의지를, 표정 없는 이불을 통해 표출하는 것이다.(이 강렬한 순간은 몬터규 로즈 제임스의 벗이었던 일러스트레이터 제임스 맥브라이드가 그린 불멸의 이미지로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이 외에도 몬터규 로즈 제임스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단편으로 「포인터 씨의 일기장」과 「학교 괴담」, 「동판화」 등을 꼽고 싶다. 특히 「포인터 씨의 일기장」에 등장하는 구절, 안락의자에서 졸다가 깨어난 주인공이 자신을 따라온 갈색 스패니얼 강아지라고 생각하며 손을 뻗어 의자 옆의 존재를 토닥거리다가 이상한 느낌을 받는 장면은 두고두고 오싹함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손을 뻗어서 그곳에 있는 둥그런 무언가를 쓰다듬고 토닥여 주었다. 그러나 그 감촉, 그리고 예의 존재가 자신의 손길에 반응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꼼짝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팔이 있는 쪽을 넘겨다보았다. 그러자 그가 만지고 있던 무언가가 눈을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바닥에 엎드린 존재는, 적어도 그가 기억하기로는 인간의 형상처럼 보였다. 그러나 덴턴의 얼굴에서 겨우 몇 센티미터 떨어진 곳에서 머리를 들고 있는 그 존재의 얼굴에서는 머리카락 외에는 다른 어떤 형상도 알아볼 수 없었다. 얼굴 윤곽이 보이지 않는데도 그 주변에 감도는 악의가 너무 끔찍[했다].”

어떤 종류의 광적인 믿음이 지배하지 않는(하지만 그런 믿음과 관련된 무언가가 오래전에 그곳에 존재했다는 암시가 주어지는), 그저 관습과 상식에 기대어 긴 시간을 버텨온 공간. 그런 곳에서 낡은 호각을 줍든, 누군가의 일기장에 붙여져 있던 천 조각의 독특한 문양을 본따 커튼을 만들든, 교회 내부를 공사하던 중 발견한 정체 모를 석관을 해체하려고 시도하든, 어떤 종류의 사소한 자극이 가해지는 순간 오랫동안 숨죽여 기다리던 존재가 깨어난다. 그 존재에게는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다든가 그의 죽음을 초래한 이에 대한 사무치는 원한을 해결한다든가 하는 개인적인 욕망이 보이지 않는다. 더 분명히 말하자면, 그 존재는 ‘개인’이 아닌 것 같다. 움직임 그 자체라고 하는 편이 옳다. 추상적인 원념이 불러일으키는 운동.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목적론적 행위가 아니라, 그야말로 ‘네가 나를 불렀으니 나는 너에게 가겠다’라거나 (「학교 괴담」에 나오는 문구처럼) ‘네가 내게 오지 않으면 내가 네게 가겠다’라는 가장 단순한 인과론에 의거한 운동 말이다. 움직임의 기이한 활력이 바탕하고 있는 악의는, 죽음과 망각의 오랜 시간을 단숨에 뛰어넘는 유일한 에너지이기도 하다.

몬터규 로즈 제임스는 선배 작가 에드거 앨런 포처럼 화려하지 않고 후대 작가 H.P. 러브크래프트만큼 장중하지 않지만, 지극히 산문적이고 평범한 전개 속에 미묘하게 배치된 공포의 운동만으로 그렇게 잊을 수 없는 분위기와 효과를 창출했다. 현대적 공포의 운동 법칙을 새롭게 만들어낸 작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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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언(<미스테리아> 편집장)

미스터리 전문지 『미스테리아』 편집장. 『범죄소설』, 『문학소녀』 등을 썼고, 『코난 도일을 읽는 밤』, 『죽이는 책』 등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