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에 대한 가장 트렌디한 글을 쓰는 크리에이터, 유물을 독특하게 풀어낸 책 『유물즈』로 독립출판계의 스타로 떠오른 작가. 모두 김서울을 수식하는 말들이지만, 그를 빛내는 건 현재의 ‘나’를 중심에 두는 용기다. 김서울이 생각하는 자신은 ‘싫어하는 걸 못 버티는 사람’이다. 백자 항아리를 보고 여인의 뒷모습 같다거나 역사적인 사실만 나열하는, 늘 똑같은 설명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나’의 언어로,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옛사람들의 문화를 즐길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에세이 형식으로 생각을 풀어냈다.
그래서인지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은 젊고 발랄한 표현으로 가득하다. ‘마약 방석을 깔고 앉은 해치’, ‘댄스 댄스 레볼루션 나무’ 같은 김서울식 감상법에 독자들은 ‘궁며들었다’며 응답했고, 첫 책부터 꾸준히 그를 좋아하는 팬도 생겼다. 그러나 정작 그는 『유물즈』의 인기에 한발 물러섰다. “서울 사람들의 문화에 참여해보고 싶어서 보름만에 글을 써서 ‘언리미티드 에디션’ 독립출판 부스에 내놓은 게 시작이었어요. 근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놀랐던 거죠. 제 의도는 자유롭게 사적인 감상을 나누자는 것이었거든요. 제 표현 그대로 사람들 사이에서 굳어질까 봐 태도만 전하자는 생각으로 절판을 결정했습니다.”
유물부터 궁궐까지 이쯤 되면 문화재에 대한 오랜 사랑을 고백할 법한데, 그는 오히려 처음에는 ‘싫었다’고 말했다. “저는 역사를 싫어하는 학생이었어요. 전통 미술을 공부했지만, 처음부터 제 전공을 좋아한 것도 아니었고요. 그렇지만 박물관이라는 공간만은 좋았어요. 답답한 기숙학교 생활 동안, 유일하게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었거든요. 오늘은 불화관, 다음날은 조각관 그렇게 매일 한 칸씩 옮겨가며 매력에 빠졌죠.”
그는 궁궐 답사도 ‘내가 좋아하는 방식’을 찾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처음에는 궁궐도 좋아하지 않았는데요. 점점 좋은 요소들이 보이더라고요. 원래 돌을 좋아하는데, 어떤 날은 좋은 기술자가 다듬은 돌이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더 들여다 보니 훌륭한 나무도 참 많고요. 마치 팬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열심히 알리는 것처럼 좋아하는 요소를 영업하는 마음으로 썼어요.”
인터뷰 도중, 김서울은 창덕궁을 보며 설명을 이어갔다. “조선시대에 대한 선입견이 있잖아요. 방한도 안되는 방에 소박하게 살았을 것 같고.(웃음) 근데 사실 그 시대 사람들도 열심히 생활을 꾸려가며 살았거든요. 손가락을 넣으면 뚫리는 창호지만 사용한 게 아니라, 두꺼운 천을 걸어서 방한을 하기도 하고요. 왕실 문화는 더 화려했고요. 궁궐도 지금 보이는 것처럼 공간이 비어 있었던 게 아니고, 이동할 수 있는 낮은 담도 있고, 해시계나 괴석으로 장식해두기도 했어요. 지금 생활하는 사람이 없으니 생활감이 사라진 거죠. 마치 모델하우스랑 실제 사는 집이 다른 것처럼요. 그런 이야기도 전하고 싶었어요.”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궁궐에서 사용된 유물들이다. 김서울이 큐레이션한 유물들은 마치 편집숍의 인테리어 소품들처럼 감각적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색을 참 잘 썼던 것 같아요. 핑크도 다 같은 핑크가 아니라, 베이비 핑크가 유행했다가 또 핫핑크가 유행하기도 하는 것처럼 당시에도 유행이 있었죠. 우리가 생각하는 오방색과 조선시대의 오방색은 톤이나 조합이 많이 다를 거예요. 지금 봐도 어떻게 정제된 색을 저렇게 조화롭게 사용했을까 싶은 것들이 많아요.”
나의 언어로 좋아함을 표현하는 것. 김서울은 이 태도가 ‘전통’을 이어가는 동력이 된다고 했다. “보존과학 일을 하면서, 전통이란 과거의 것을 현재에서 미래로 잘 보내주는 것이라고 느꼈어요. 우리가 할 일은 새로운 태도와 언어로 그 물줄기를 이어나가는 거고요. 그동안 문화재 애호 문화도 구시대적인 방식에 머물러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즐기지 못했잖아요. 특히, 젊은 여성들이 향유하기 어려웠죠. 제가 개인적인 감상을 풀어냈듯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했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김서울과 함께 궁궐을 걸었다. 그전에는 스쳐 지나갔던 디테일에 시선이 자주 머물렀다. 바닥에 깔린 체스판 같은 박석, 기둥 아래를 받치는 돌, 다리 위의 깜찍한 돌짐승들. 그는 빛을 받아 새파랗게 반짝이는 기와를 가리키며, 햇빛과 날씨, 계절에 따라 다 다른 푸른빛이 보인다고 했다. 똑같은 파랑이 아니라, 매번 달라지는 파랑을 섬세하게 감각하는 사람. 정직하게 좋아하기 때문에, 수많은 파랑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려 깊은 안내자 김서울과 함께한 여름날의 궁궐은 유별나게 반짝였다.
*김서울 박물관을 좋아하는 유물 애호가. 대학에서 전통회화를 전공하고 문화재 지류 보존처리 일을 하다 현재는 대학원에서 박물관과 유물에 관해 공부하고 있다. 역사 성적은 엉망이었지만 유물을 향한 애정은(박물관과 유적 답사 횟수를 기준으로 하면) 남들의 세 배쯤 앞서 있다고 자신하는 문화재 덕후. 박물관에서 유물 앞 설명 카드를 읽는 대신 그저 물건을 감상하듯 재미있게 봐주기를 바라며 쓴 『유물즈』(2016)를 시작으로 『뮤지엄 서울』(2020) 등 박물관과 유물·유적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중이다. 서울의 대표 유적인 고궁 역시 ‘조선왕조 500년’은 잠시 잊고 뒤뜰을 산책하듯 가볍게 거닐어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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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