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뜨거운 여름이 돌아왔다. 코로나 시대에 어디 먼 곳으로 휴가를 떠날 수도 없으니, 그저 에어컨 빵빵한 실내를 찾아가는 게 제격.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 카페는 조금 부담스럽고, 조용하고 시원한 데다 무료이기까지 한 도서관을 찾아간다. 북캉스라는 게 바로 이런 걸까? 숨이 턱턱 막히는 살인적인 더위를 피해 들어간 도서관에서 대충 마음이 가는 책 한 권을 고른다. 제목은 『열대』. 책을 펴고 본격적인 독서를 시작하려는데, 어라? 그런데 이 책, 어딘가 독특하다. 읽으면 읽을수록 블랙홀 같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열대』는 일본 대표 천재 이야기꾼 모리미 도미히코가 7년간 심혈을 기울여 쓴 소설로, 출간 즉시 2019년 일본 서점 대상 4위에 올랐고, 나오키상 후보작 중 고교생이 뽑은 최고 작품에 수여되는 고교생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그야말로 ‘모리미 판타지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천일야화』를 모티프로 한 이 신비로운 소설은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의 본질을 다룬다. 한 사람의 인생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로 채워져 있을까? 누군가의 삶은 다음 사람을 위한 이야기가 되고, 사람들은 이야기를 통해 사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일생에 걸쳐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수수께끼의 책 『열대』에서 시작된 이 모험기는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 대한 소설이자, ‘인생에 대한 소설’이다.
안녕하세요. 작가님의 책을 좋아하는 한국 독자들에게 인사해 주세요. 그동안의 근황도 궁금합니다.
한국 독자분들, 안녕하세요. 모리미 도미히코입니다. 저는 여전히 아내와 함께 나라의 교외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교토에 있는 일터로 기분 전환을 하러 갑니다. 『열대』를 쓸 때부터 계속 조용한 삶을 살다가 코로나바이러스 문제로 더 조용히 지내고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일이 진척되는 것도 아니어서 참 괴롭네요.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의 15년 만의 번외 편인 『다다미 넉장반 타임머신·블루스』를 작년에 간행했고, 현재는 차기작 『셜록·홈스의 개선』을 쓰고 있습니다.
웹 사이트 연재물을 시작으로 소설 『열대』가 책으로 나오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알고 있습니다. 소설의 시작이 된 ‘슬럼프에 빠진 소설가’, 당시 그 상황이셨나요? 『열대』라는 소설을 쓰게 된 계기와 그 과정을 조금 자세히 들려주세요.
처음에는 ‘소설에 대한 소설을 써 보자’라고 하는 단순한 착상으로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소설가라면 누구나 한 번 정도는 그런 소설을 꿈꾸는 법이니까요. 소설 전체의 구상 없이 즉흥적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1년, 일이 너무 많아서 번아웃이 오고 말았습니다. 연재도 일시 중단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 이후로 저는 완전히 슬럼프에 빠져서, ‘원래 소설이란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쓰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꼭 자전거 타는 법을 잊은 사람이 필사적으로 타는 방법을 떠올리려고 하는 듯한 느낌이었죠. 그렇게 몇 년이 지나 다시 『열대』를 쓰기 시작했고 그 내용이 ‘소설에 대한 소설’이다 보니, 슬럼프 시기에 생각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작품 속으로 흘러 들어간 것 같아요. 당연한 결과지만, 『열대』는 연재 당시의 형태에서 점점 다른 것으로 변신해갔고, 이런 괴상(?)한 작품이 되었죠.
『열대』에서 작가님의 매력을 가감 없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기가 막힌 괴작이다”라고 책에 대해 표현하셨는데, 이번 소설 중에서 가장 즐겁게 쓰신 부분을 꼽는다면 어떤 장면일까요?
『열대』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의 중심에 있는 ‘큰 수수께끼에 빨려 들어가게 되는 감각’입니다. 탐정 소설 같은 느낌도 재미있고 괴담 같은 섬뜩함도 있어요. 특히, 하나의 장면이라기보다는 작품 전체에 감돌고 있는 수수께끼 같은 인상이 제 마음에 듭니다.
스포일러가 되므로 자세히 말할 수 없습니다만, 마지막 장인 <뒷이야기>에서는 작품 세계와 현실 세계가 녹아 뒤섞인 듯한 느낌이 들어요. 실제로 제가 소설을 쓰면서 느끼고 있던 것이기도 해요. 정말 이런 소설은 처음 써 봐요.
예전 인터뷰에서, 현실적인 것은 잘 못 쓴다고 하셨는데 『열대』 속 침묵 독서회 멤버들은 상상 속의 인물인가요? 혹은 작가님 주변 사람을 모델로 했을까요? 주변에 있다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작품 속 대부분의 등장인물은 제 상상 속 인물입니다. 『열대』도 마찬가지예요, 한 명만 빼고요. <제1장>에서 소설 속의 제가 침묵 독서회에 갈 때, 함께 가는 옛 동료는 실제로 제가 국회 도서관에서 일하던 시절의 동료를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펼쳐진 책 위로 드러난 남양의 섬, 남자와 반쯤 찢겨 나간 책. 원서의 표지가 인상적이에요. 한국어판 표지도 고민이 많았는데요. 표지를 보고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어판 표지는 다른 나라와는 다른 독특한 인상이 있어서 항상 주목해요. 이번 『열대』 표지는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열대』라는 작품의 요염함과 어딘가 묘한 미스터리함을 알기 쉽게 현실로 잘 표현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어판과는 또 다른 느낌이 빛나는 표지였어요. 또 하나의 『열대』가 탄생한 것 같아요.
“진짜 재미있다.” “혼란스럽다.” “믿고 보는 작가” 등 작가님 책의 독자들의 다양한 코멘트가 있는데요.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때가 가장 기분이 좋으신가요?
소설을 읽고 독자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작가는 어쩔 수 없지만, “잘 모르겠지만, 재미있다” 같은 감상이 작가로서는 편하고 기쁩니다. 소설은 논문이 아니니까 작가도, 독자도 “잘 모르겠지만, 재미있다”라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열대』는 특히 더 그런 반응을 기대합니다. “잘 모르겠다”라는 감상을 그대로 즐기지 않으면 아마 손해일 거예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뿐입니다.” 이 문장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2003년 데뷔 이후 18년이 흘렀습니다. 작가님 인생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나요? 특히, 작가님에게 있어서 이야기를 계속해서 쓸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데뷔하고 십 년이나 이십 년만 지나면 소설가로서 실력도 늘어서 자신만만하게 소설을 쓸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막상 그렇게 시간이 지났지만, 놀랄 정도로 여전히 불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글을 쓰고 있을 때는 아마추어 때처럼 불안해서 사흘에 한 번은 “이젠 쓸 수 없다”라고 침울해지곤 해요. 18년이 지나도 저 자신이 ‘프로페셔널하다’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네요. 그래서 소설은 지금도 저에게 수수께끼라, 소설가로서 저는 항상 불안합니다. 그러나 이 ‘불안’이야말로 계속 소설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리미 도미히코 ‘교토의 천재’ ‘21세기 일본의 새로운 재능’ 등의 찬사로 수식되는 작가. 1979년 일본 나라 현 출생으로, 나라여자대학 부속 중고교를 졸업했다. 교토대학 농학부 생물기능과학과에서 응용생명과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농학연구과 석사과정을 마쳤다. 2003년 『태양의 탑』으로 제15회 일본판타지노벨대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데뷔했다. 2006년에는 천진난만한 후배 아가씨와 그녀의 뒤를 쫓는 어수룩한 선배의 청춘판타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로 제20회 야마모토슈고로상을 수상했으며, 이 작품은 나오키상 후보작에 오르는가 하면 2007 《다빈치》 올해의 책 1위, 서점대상 2위, 기노쿠니야서점 베스트텐 2위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모리미는 '매직 리얼리즘'의 기법으로 현실과 가상을 교묘하게 배열하는 독특한 세계관과 문체로 유명한데, 그의 소설들은 『펭귄 하이웨이』를 제외하고 모두 교토를 무대로 하고 있어 『사슴남자』(가제)의 작가 마키메 마나부와 함께 '교토 작가'로 불리기도 한다. 초기 작품들은 대부분 교토의 대학생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나 2007년 발표한 『유정천 가족』에서는 너구리 가족이 등장하는 등 동물이나 초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도 쓰고 있다. 현재 교토의 한 도서관에서 근무하면서 집필을 계속하고 있는 모리미는 마키메 마나부와 함께 이사카 코타로를 있는 일본 문단의 새 기대주로 젊은 독자들의 절대적 사랑을 받고 있다. 저서로는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 『스위트 블루 에이지』, 『여우 이야기』, 『신역 달려라 메로스』, 『유정천 가족』, 『연문의 기술』, 『요이야마 만화경』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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