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백민석 “세상의 몰이해 따위엔 눈길도 주지 마시길”
말 그대로예요. ‘아름다움’의 범위를 예술 작품들로 한정하긴 했죠. 그림이나 영화나 소설을 보면서 어떤 경우엔 정말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곤 하는데, 대부분은 왜 제가 아름답다고 느끼는지 알지 못하고 지나가는 때가 많아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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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백민석이 현대 사회에 던지는 철학적 질문들을 담은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출간됐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작금의 세계 곳곳의 사회 · 문화적 현상에 주목해, 이와 연관된 철학 이론, 미술 작품, 도서, 영화 등을 자유롭게 연결 지어 예술에서 언어로, 언어에서 내면으로, 자유롭게 인문학적 사유의 폭을 확장해나간다.

1995년 등단 이후 가장 낯설고 또렷한 시선과 문체로 1990년대 한국문학계의 독보적인 흐름 그 자체였던 백민석 작가는 10년의 침묵을 깨트리고 다시 돌아와 다양한 장르의 풍성한 저작을 펴내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여전히 날 선 시선으로 혼란한 현대 사회의 면면들을 짚고, 문학, 영화, 철학, 미술을 넘나들며 작가적 시선으로 난해한 현대인들의 내면을 진단한다.



첫 미학 에세이 『리플릿』 이후 두 번째 미학 에세이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우선 처음 원고 작업을 시작하셨을 때, 작가님의 집필 의도가 궁금합니다.

저는 그림이나 영화나 소설을 보면서 아, 저건 좋긴 한데 왜 좋은지는 모르겠다, 아름답긴 한데 왜 아름다운 거지, 하고 궁금했던 순간들이 많아요. 시간이 지나 철이 들고 머리가 깨면 이해할 수 있을 거야, 하던 생각은 틀렸고요, 이해 못 하는 목록의 수는 늘어만 가네요. 그래서 언젠가, 내가 이해 못 하는 저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써보자는 구상을 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이해해 보자, 하지만 그래도 이해 못 할 것이면 그대로 남겨두고, 이런 구상이요. 그러다 연재 제의가 들어왔고… 책으로 묶이고… 제가 참 운이 좋은 작가인 거죠.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 이란 제목에 대해 작가님의 설명 부탁드립니다.

말 그대로예요. ‘아름다움’의 범위를 예술 작품들로 한정하긴 했죠. 그림이나 영화나 소설을 보면서 어떤 경우엔 정말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곤 하는데, 대부분은 왜 제가 아름답다고 느끼는지 알지 못하고 지나가는 때가 많아요. 이건 단지 고전적인 아름다움, 그러니까 균형 잡힌 조형미라든가 플롯이 잘 짜인 서사라든가 색감이 좋은 영상, 기가 막힌 화음 같은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고전적인 아름다움에는 이미 답이 어느 정도 나와 있죠. 하지만 고전의 영역이 아니면서도 지극히 아름다운 작품들이 여전히 생산되고 있습니다. 이 순간에도 실시간으로요. 지금 우리와 동시대인 현장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말해보고 싶었습니다. 

책 속에는 문학, 음악, 영화, 회화 등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예술 작품들이 등장합니다. 작가님께서 특히 좋아하시고 지지하는 창작자가 궁금합니다.

많아요. 너무 많아서 말하기가 어려워요. 저는 아름다운 걸 보면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한 사다가 집에 두거든요. 어렸을 때부터의 습관이에요. 집에서 책과 음반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 아마 제가 생활하는 데 필수적인 공간 정도는 될 거예요(작은 집이에요). 그런 습관 덕에 옛날에 용돈으로 샀던 엘피들이 골동품처럼 꽤 가격이 올라서 흐뭇한 표정을 지을 때도 있고요. 그림은 워낙 비싸고 걸어둘 넓은 벽이 있어야 하므로 리플릿으로 모으는데, 그 습관이 『리플릿』이란 책이 되어 나왔습니다. 영화 디비디도 모아요. 제가 살면서 좋았던 영화들을 거의 다 디비디로 구했는데, 백 장쯤 될까요.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보시기에 그간 예술계는 어떤 변화의 흐름을 겪었을까요?

책은 태생이 언택트이므로, 팬데믹의 영향을 별로 안 받았을 것 같죠? 하지만 큰 오프라인 서점들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이제는 책을 내도 가져다 팔 데가 없다는 기사가 나온 걸 보면 출판계도 팬데믹 영향이 적지 않을 것 같아요. 얼마 전에 무슨 소설 심사를 했는데, 심사도 시상식도 집에서 줌으로 하더라고요. 그래서 팬데믹이 지나가면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까요, 하고 주최 측에 물었더니 아뇨, 계속 이대로 갈 것 같아요, 하더라고요. 문학도 음악 콘서트도 미술품 전시도 영화의 개봉도 집에서 온라인으로 즐겨도 충분하다는 데 창작자나 소비자 모두가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인터뷰도 서면 인터뷰잖아요?

책 중간중간 예술가들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많이 읽혔어요. 분야는 다르지만 지금 이 순간도 창작에 매진해 있을 예술가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실까요?

제가 다른 분들께 무슨 말을 하겠어요. 그냥 저한테 늘 말합니다. 하고 싶은 걸 해라, 라고요. 쓰고 싶은 걸 쓰라고요. 제가 소설가가 되고 책을 내기 시작했을 때 한 평론가분이 진지하게 걱정하는 표정으로 “망해가는 (소설) 장르에 이제 뛰어들어서 어떻게 살아갈 거냐?” 하고 묻더군요. 하하. 옛날 일인데 저 아직 안 굶어 죽었고, 소설도 안 망했고,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있잖아요. 글을 쓰면서 제가 쓰고 싶지 않은 걸 억지로 써본 적이 없어요. 그거 하나 내세울 만하네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도 웬만해선 안 굶어 죽어요. 그리고 세상의 몰이해 따위엔 눈길도 주지 마시길. 때로는 랜디의 거친 마음가짐으로.

‘작가의 말’에서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는 동안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이제 세상 사람들은 더는 아름다운 것만을 좇지 않는다. 아름답고 추한 것의 기준도 빠르게 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답고 추한 것의 구분을 더는 하려 들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특히 어떤 작품들을 보고 그렇게 느끼셨나요?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실은 안창홍 선생의 그림을 보면 어떤 기준으로도 잘 그린, 아름다운 그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거든요. 그 그림이 초상화라면 어떻게 이렇게 사람하고 하나도 안 닮은 초상화가 다 있지, 하는 생각이 들 것이고 사회 고발의 상징이라고 한다면 그림 자체가 너무 모호해요. 색감도 칙칙하고 색들이 뭔가 잔뜩 억눌려 있는 것 같죠. 하지만 실제로 미술관에 가서 보면 뭔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느낌이 좋아요. 우리의 이해가 언어로 이뤄진다는 전제에서 언어의 잣대를,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작품이에요.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운 그림일 수도 있죠.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란 그렇다면 고전적인 미학의 기준이 무너졌다는 의미인가 하고 되물을 수도 있는데, 물론 그런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조금 넓은 의미에서 쓴 말이기도 합니다. 아름답고 추한 것의 구분이 없이 작품에 가격이 붙고, 즐기는 사람들이 생기고, 가치를 인정받아요. 안창홍 선생의 그림 같은 음악들이 영화들이 소설들이 많이 눈에 띄고 또 인기도 있어요.

책 말미에 “예술이 촉발하는 사유의 고통은, 그 예술의 이해되지 않는 아름다움처럼 때때로 충분히 즐길 만한 고통이기 때문이다. 무해한 고통이기 때문이다.”고 하셨는데, 독자들이 이 무해한 고통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사람들이 고통을 느끼는 지점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뭐라고 선을 그어 말하기가 어려운데요. 저 같은 경우엔 생각 자체가 고통이에요. 네, 저는 생각하는 게 싫고 괴로워요. 하지만 생각하지 않고는 어떤 것도 충분히 이해될 수 없어요. 물론 아무리 곰곰 생각해도 저런 그림이 왜 미술관에 걸려 있어야 하는지, 저런 음악이 왜 차트에 오르는지, 저런 영화가 왜 만들어지고 저런 소설이 왜 팔리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겠지요. 충분히 즐기는 방법이란, 예술과 연애를 하는 것입니다. 예술과 연애를 하면 예술에 대해 자연히 많이 알고 싶고 깊이 이해하고 싶어지겠죠? 아니, 뭐 저런 따분한 예술충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하시는 분도 있을 텐데 그래서 연애를 하시라는 겁니다. 연애처럼 생활로, 삶의 일부로 만들어보시는 건 어떤가요?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
백민석 저
알에이치코리아(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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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