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스트의 하루] 허수경 시를 읽는 하루 – 생강
시인 허수경의 이 세상 마지막 길 배웅을, 먼 진주도 아니고 더 먼 독일의 뮌스터도 아니고, 서울 북한산에서 할 수 있다니 가야만 했다.
글ㆍ사진 생강(나도, 에세이스트)
2021.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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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가 진행하는 글쓰기 공모전 ‘나도, 에세이스트’ 대상 수상자들이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에세이스트의 일상에서 발견한 빛나는 문장을 따라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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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3일, 오늘은 허수경 시인의 3주기입니다’라는 김민정 시인의 트위터 글을 보았다. 허수경 시인의 49재에 다녀왔던 3년 전 하루가 떠올랐다. 벌써 3년이 되었구나. 그때도 트위터 글을 보고 북한산 중흥사에서 열리는 49재에 다녀오기로 마음먹은 터였다. 생전에 한 번도 만나지 못했는데 웬 49재?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해 10월에 동네 뒷산에서 넘어져 팔을 깁스한 상태였기 때문에 산행을 하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다. 팔 다치고 첫 산행인데 모르는 사람들에게 폐 끼치게 되지 않을까. 가보지 않은 산길인데 험하면 온전치 않은 오른팔로 몸의 균형을 잘 맞출 수 있을까. 여러모로 주저했지만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시인 허수경의 이 세상 마지막 길 배웅을, 먼 진주도 아니고 더 먼 독일의 뮌스터도 아니고, 서울 북한산에서 할 수 있다니 가야만 했다. 그의 시구에 기대어, 한 세상 빚지며 살아왔다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기억하겠다고. 시인 하늘로 떠나는 날, 날씨는 어찌 그리 화창한지, 11월 중순의 메마른 산길에서 바라본 하늘은 시인 자리를 벌써 잘 준비해 놓았다는 듯 시리도록 맑고 푸르렀다. ‘떠나기 좋은 날씨다’『혼자 가는 먼 집』을 예비한 시인을 맞이하는 하늘이라 생각했다. 2년 전 봄, 오랜만에 친구들과 경남 지방 여행 중에도 굳이 진주에 들렀다. 허수경 시인의 고향이라 가보고 싶었다. 진주 남강을 지나기도 하고, 촉석루에도 앉아보고, 진주비빔밥도 먹으며 ‘진주 저물녘’에 시인이 그리워했을 공간이라 생각했다. 

 그의 첫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를 다시 꺼내 본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므로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하고 시인의 ‘책 뒤에’ 말이 적혀있다. 1988년 11월 30일 펴냄. 시인이 새롭게 편집해 펴낸 산문집,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의 표지를 들추니 “2018년 허수경입니다”라고 쓰여있다. 첫 시집 이후, 동년배 여성 시인인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 그의 시가 좋았고 나중에는 독일에서 내가 배우고 싶던 고고학 공부를 하는 것도 좋았다. 그 30여 년 동안 시인이 먼 이국에서 시와 고고학으로 그의 언어를 찾는 동안, 나는 직장생활과 아이 키우며 살림하며 때로는 한 해에 책 한 권 읽지 못하는 바쁜 일상을 이어왔다. 그래도 어느 날, 그의 시집이 새로 나왔다는 걸 알게 되면 읽지 못해도 샀다. 시 한 편 읽을 여유가 없어도 내가 좋아하던 시인이 그 먼 곳에서 모국어를 벼려 또 한 권의 시집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생각이 들면 뭉클했다. 좋아하는 시인이 있는 게 좋았다.

그의 시 「탈상」을 다시 읽어본다. 어린 모를 흔드는 잔잔한 바람이 불고, 떠난 사람 자리는 썩어나고 슬픔을 거름 삼아 고추는 익어가고, 우리는 처연하게 삶을 이어간다. 33년 전 어떤 마음 상태에서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라는 시구에 매혹되었는지는 잊었다. 다만 시집의 한 시의 제목도 아닌 한 구절이 시집 제목으로 쓰일 정도였으면 당시에도 많은 사람에게 가닿는 구절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

벅찬 일상을 이어가며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사는 게 그렇게 고통스럽진 않았다. 고통을 대면하지도 극복하지도 못했다. 다만 사는 게 좀 슬펐다. 어쩌니저쩌니해도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득달같이 달려드는 일상을 이어가는 일이 매번 고달프고 슬펐다. 그저 슬픔이 차곡차곡 쌓이면 시를 읽고 노래를 듣고 그림을 보고 책을 읽으며 들과 산을 걸으며 살아냈다. 그러면 슬픔이 좀 가시고 딱 한 주일분의 살아갈 힘이 생겼다. 그렇게 슬픔을 거름 삼아, 그 시구에 기대어 힘을 내고 세상을 건너왔다.

시인이 그 마음을 적확하게 알아준 것 같아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그의 첫 시집에 오래 빚졌다. 이제 그의 시를 오래 읽으며 그를 기억할 일만 남았다. 누군가 이 세상을 떠나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남아있는 한 그는 죽은 게 아니다. 허수경 시인의 3주기, 그의 시를 읽으며 하루를 보낸다. 




*생강

지구에 쓰레기를 덜 남기기를 고민하며 매일 배운다.



혼자 가는 먼 집
혼자 가는 먼 집
허수경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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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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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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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나도, 에세이스트)

지구에 쓰레기를 덜 남기기를 고민하며 매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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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자라고 대학 역시 그곳에서 다녔다. 오래된 도시, 그 진주가 도시에 대한 원체험이었다. 낮은 한옥들, 골목들, 그 사이사이에 있던 오래된 식당들과 주점들. 그 인간의 도시에서 새어나오던 불빛들이 내 정서의 근간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밥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고 그 무렵에 시인이 되었다. 처음에는 봉천동에서 살다가 방송국 스크립터 생활을 하면서 이태원, 원당, 광화문 근처에서 셋방을 얻어 살기도 했다. 1992년 늦가을 독일로 왔다. 나에게는 집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셋방 아니면 기숙사 방이 내 삶의 거처였다. 작은 방 하나만을 지상에 얻어놓고 유랑을 하는 것처럼 독일에서 살면서 공부했고, 여름방학이면 그 방마저 독일에 두고 오리엔트로 발굴을 하러 가기도 했다. 발굴장의 숙소는 텐트이거나 여러 명이 함께 지내는 임시로 지어진 방이었다. 발굴을 하면서, 폐허가 된 옛 도시를 경험하면서, 인간의 도시들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았다. 도시뿐 아니라 우리 모두 이 지상에서 영원히 거처하지 못할 거라는 것도 사무치게 알았다. 서울에서 살 때 두 권의 시집『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혼자 가는 먼 집』을 발표했다. 두번째 시집인『혼자 가는 먼 집』의 제목을 정할 때 그것이 어쩌면 나라는 자아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독일에서 살면서 세번째 시집『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를 내었을 때 이미 나는 참 많은 폐허 도시를 보고 난 뒤였다. 나는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했다. 물질이든 생명이든 유한한 주기를 살다가 사라져갈 때 그들의 영혼은 어디인가에 남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뮌스터 대학에서 고고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학교라는 제도 속에서 공부하기를 멈추고 글쓰기로 돌아왔다. 그뒤로 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산문집 『모래도시를 찾아서』 『너 없이 걸었다』, 장편소설 『박하』 『아틀란티스야, 잘 가』 『모래도시』, 동화책『가로미와 늘메 이야기』 『마루호리의 비밀』, 번역서 『슬픈 란돌린』 『끝없는 이야기』 『사랑하기 위한 일곱 번의 시도』 『그림 형제 동화집』 등을 펴냈다. 동서문학상, 전숙희문학상, 이육사문학상을 수상했다. 2018년 10월 3일, 독일에서 투병 중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