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인생은 너무 고통스러운 것이에요 (G. 유진목 시인)
지금 제 옆에 “나에게 시는 언제나 단 한 장면이다”라고 말하는, 산문집 『거짓의 조금』을 출간하신 유진목 시인님 나오셨습니다.
글ㆍ사진 신연선
20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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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고 싶지 않아? 나가고 싶지 않아. 집 밖이 무서워? 집 밖이 무서워. 어째서 무서운지 나는 새 옷을 입고 새 구두를 신고 현관에 서서 생각한다. 삶을 사랑하게 될까 봐 무서워. 나는 대답한다. 밖으로 나가면 삶을 사랑하게 되니까. 너무 사랑해서 내가 사는 세상을 떠나지 못할까 봐 무서워. 다시 떠나고 싶어? 나는 대답한다. 떠나고 싶지 않아. 여기에 있고 싶어. 나중에 떠나야 할 때, 그때 떠나고 싶어.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유진목 시인님의 산문집 『거짓의 조금』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내내 삶의 바깥을 바라보며 살아왔다고 고백하는 유진목 시인님은 여전히 삶을 사랑하게 될까 무섭다고도 말합니다. 동시에 조금씩 내 주변을 좋아하게 되는 지금을 솔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데요. 그래서인지 유진목 시인님의 글들은 최선을 다한 사람의 것으로 읽히곤 합니다.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거짓의 조금』을 출간한 유진목 시인님을 모시고, 삶이라는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눠볼게요. 청취자 여러분의 다정한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인터뷰 – 유진목 편>

오은 : 『거짓의 조금』이 출간된 지 석 달쯤 된 것 같아요.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았던 반응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유진목 : 일단은 ‘슬퍼 뒤짐’이죠.(웃음)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요. ‘슬퍼 뒤짐’이라는 그 반응이 SNS에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슬프다는 얘기인데도 즐겁더라고요. 또 하나 정말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었는데요. 『거짓의 조금』을 출간하고 얼마 안 돼 ‘작업책방 씀’이라는 망원동의 책방에서 ‘작가의 책상’이라는 전시를 했어요. 거기에 제가 사용하던 작은 수첩을 방명록처럼 쓰실 수 있다고 두고 왔거든요. 한 달 동안의 전시가 끝나고 택배로 보내주신 박스를 부산에서 열었는데요. 그 수첩을 읽다가 울었어요. 지금도 약간 울컥하는데요. 대부분의 내용이 ‘우리 같이 살아보자’는 이야기였어요. 그분들도 제 책을 읽고 용기를 얻으신 것 같고요. 저도 방명록을 보고 용기를 얻어서요. 제게는 아주 소중한 수첩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은 : 지난 8월 25일에 운영하시는 책방 ‘손목서가’가 3주년을 맞이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서점을 운영하면서 여러 부침도 있었을 것이고요. 책방 인근이 워낙 관광 명소가 되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되었는데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닌 상황도 겪었을 것 같아요. 3주년을 맞으며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궁금했어요. 

유진목 : 저희가 서점 1주년 행사를 크게 했었어요. 생일 파티 겸 해서요. 책방을 열면서 너무 고생을 했기 때문에 자축하는 의미로 하루 종일 공연도 하고, 다과도 먹고, 낭독회도 하는 행사를 했는데요. 그때 너무 고생을 했어요.(웃음) 이게 자축인지, 사서 고생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생각한 게 2주년이나 3주년 때는 꼭 문을 닫고 직원들과 하와이를 가겠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하와이는 물거품이 되었고요. 직원들과 지리산 산골짜기에 놀러 가서 있었습니다. 

오은 : 왠지 그 직원분들이 하와이 갈 때까지는 일을 계속 하실 것 같은 느낌도 드네요.(웃음) 

유진목 : 저희 서점 냉장고에 붙여놨어요. ‘코로나 종식. 하와이 기원’ 이렇게요.(웃음)

오은 : 이제 작가님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평소와 다르게 말하고 싶어서 시를 쓴다고 말하는 시인. 이층집에 살았던 몇 년을 제외하고 대체로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LP를 들으며, 혜원세계문학시리즈를 여러 번 반복해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문제집은 대개 누군가 풀었던 것들이라 칸에 적힌 답들을 지우는 것으로 풀이를 시작하곤 했다. 열여덟 살에 집을 나와 15년 넘게 혼자 살았다. 집을 떠나온 그 날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교양을 갖추고 싶어 영화를 열심히 보며 따라하고, 술을 먹지 않고는 잠들지 못하던 시절들. 그때 즐겨 만들어 마시곤 하던 녹차소주를 지금은 즐기지 않는다. 

시는 고등학교 때부터 썼다. 영화 시나리오도 종종 “시나리오가 시적”이라는 평을 듣곤 했다. 그런 말을 듣고 돌아온 날이면 시나리오를 시로 만들기도 했다. 2009년 1인 영화 제작사 ‘목년사’를 차리고 단편 영화, 뮤직비디오 등을 연출했다. <도희야>, <4등> 등의 영화에도 참여했다. 2015년에는 ‘문학과죄송사’를 통해 시집 『강릉 하슬라 블라디보스토크』를 독립출판했고, 다음 해에 시집 『연애의 책』을 펴내며 시인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미래를 계획하는 사람은 아니고,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늘 생각하는 편. 요즘 빠져 있는 것은 닌텐도와 캠핑이다. 수제비와 돌멩이, 자목련,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 시끄러운 것, 모르는 것, 거짓말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화를 내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다. 어떤 사람들이 간절한 순간에 신을 찾는 것처럼 유진목은 그럴 때 언니를 부른다. 지금 유진목이 되고 싶은 사람은 좋은 일이 없어도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평소와 다르게 말하고 싶어서 시를 쓴다고 말하시는데요. 처음 시를 쓸 때도 그런 느낌이었을까요? 

유진목 : 네, 그래서 예전에는 문자 메시지를 잘 주고받지 못했어요. 어릴 때에는 시적 자의식이 되게 강해서 ‘몇 시에 볼까?’ 이런 걸 문자로 주고받는 자체를 못하겠는 거예요. 그것도 문장이기 때문에요. 그래서 저는 항상 전화를 하고 그랬습니다. 

오은 : 『거짓의 조금』이라는 책에 대해 시인님께서 직접 소개해 주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어떤 책이죠? 

유진목 : 『거짓의 조금』은 저의 일기장입니다. 오랫동안 써온 일기들 중 흐름을 만들어 가면서 발췌한 책이에요. 

오은 : 일기를 이렇게 잘 써요? 일기를 이렇게 쓰는 사람이면 일기를 쓰고 나면 진이 다 빠질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유진목 : 그렇긴 한데 일기 쓰는 게 재미있어요. 왜냐하면 쓸 당시에는 이걸 누구한테 보여줄 것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쓰는 즐거움이 있는 것 같아요. 

오은 : 아까 출간 후의 반응 중 ‘이 책 슬퍼 뒤짐’이라는 후기가 인상적이었다는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정작 시인님께서는 이 원고를 송고한 다음에 ‘내 이야기를 너무 많이 써버려서 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거든요. 

유진목 : 제일 처음에 편집자 님께 송고를 하고 말씀을 드렸어요. “이렇게 그대로 원고가 나가도 될까요?”라고요. 그랬더니 편집자 님이 “물론이죠.”라고 하시는 거예요. 사실 여기에 조금 썼더라도 쓴 이야기의 배경이 저에게는 다 있고요. 저의 큰 트라우마들이 담겨 있는 책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이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잘하는 일일까, 발등을 찍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좀 생기더라고요. 근데 편집자 님께서 괜찮다고 하시는 거죠. 저는 또 전적으로 믿는 분이어서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하고 그 뒤로 신경을 안 썼어요.(웃음) 

오은 : 거짓의 ‘조금’이기 때문에 조금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많은 부분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런 것까지 드러낼 수 있지’ 하고 생각하게 하는 부분도 있을 거예요. 어떻게 보면 솔직함일 수도 있고요. 또 어떻게 보면 이것을 말하지 않고는 지금을 건너갈 수 없는 어떤 절박함일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무르고 싶어 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들려주세요. 

유진목 : 이 책이 나오기 전에 『작가의 탄생』이라는 시집이 나왔는데요. 거기에 가족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 있어요. 그러면서 제 인생에서 완전히 치워버렸던 제 가족에 대한 일들을 다시 마주하게 된 거죠. 마음이 많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을 일기로 쓰기 시작한 거예요.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하니까 글로 써 두면 안심도 되고, 고민이 해소되는 부분이 있어서요. 이번 책에서도 그러면 정면으로 한번 부딪쳐보자고 생각하고 가족 이야기들을 많이 넣었습니다. 수위 조절을 하는 데 굉장히 많은 공을 들였어요.

오은 : 혹시 가족 중에 누군가가 이 책을 읽었을까요?

유진목 : 얼마 전에 아버지한테 문자 한 통이 왔어요. ‘내가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서 연락한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라고요. 그게 『작가의 탄생』에 있는 구절이거든요. 제가 지어낸 말인데 아버지 문자를 보고 책을 읽으셨구나, 알게 되었죠. 그러면서 생각했어요. 시라는 게 이렇게 힘이 세구나, 하고요. 아빠의 마음을 변화시키다니 좀 놀라웠어요. 그래서 고맙다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오은 :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을 드릴게요.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유진목 : 어떤 책을 소개할지 끝까지 고민을 하다가 고른 책이에요. 어빙 고프먼의 『수용소』입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에요. 르포고요. 정신병동에 수용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요. 하루 종일 누워 있다거나 부엌에 가지 않는다거나 굶거나 할 수 있는 그 자유라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지는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가라는 생각을 정말 충격적으로 하게 되었던 책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저는 어디서든 꼭 권해요, 손목서가에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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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조금
거짓의 조금
유진목 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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