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검사하는 사람이 아닌 공감해주는 사람
독자를 믿지 못하면 글을 잘 쓰기가 어렵다. 자기도 모르게 검열하게 된다. 그런 사람에게는 내 글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잊지 말자. 내 아이의 글쓰기 자신감은 첫 번째 독자인 부모의 영향이 가장 크다는 사실을.
글ㆍ사진 오은경(초등학교 교사)
202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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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학년 아이들에게 친구들의 관심과 공감은 글쓰기의 중요한 동기가 된다. 아이들이 쓴 글을 반 친구들에게 소개하면 글 쓴 아이는 조금 부끄러워하긴 해도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다. 읽어준 글이 재미있거나 아이들이 집중해서 이야기를 들으면 이번에는 너도 나도 자기 글을 읽어달라고 성화다. 이때가 글쓰기에 대한 교사의 잔소리는 사라지고 아이들도 글쓰기에 대해 더 이상 부담을 갖지 않는 시기다.

그동안은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쓰라고 해서 썼다면, 이제는 자기가 쓴 글을 누군가가 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식하며 글을 ‘잘’ 쓰려고 애쓴다. 잘 쓴다는 것은 착한 내용의 글을 쓴다는 게 아니다. 진심을 다해 자기의 마음이 잘 드러나게, 또는 자기가 겪은 일을 자세하게 써서 다른 사람들이 읽었을 때 ‘아하,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 마음이었구나’를 느낄 수 있게 쓰는 것이다.

남을 의식해서 글을 쓴다는 말이 자칫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자기 글을 읽는 사람을 의식하고 쓴다는 것은 다른 사람 때문에 내 글을 검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평가하고 판단하는 검열은 내가 쓰는 글의 기준을 남에게 맞추는 것이지만, 의식하고 쓰는 태도는 내가 쓰는 내용을 남에게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전달될까를 고민하는 자세다.

친구들에게 글을 읽어줌으로써 ‘이 친구들이 내 글의 독자구나’를 알게 된 아이들은 더 이상 자기 글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속상한 일, 나누고 싶은 일, 친구들과 겪은 재미있는 일들을 더 자세히 써서 더 많은 이들이 자기 글을 읽어주기를 기대한다. 실제로 쓸거리를 찾은 아이는 오늘 꼭 자기 글을 읽어달라면서 아침부터 글쓰기 시간을 기다리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저학년이 쓴 글에서는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 때문에’ 일어난 일인지 글만 봐서는 전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자기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말을 할 때도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고 물어보면서 하나하나 확인하지 않으면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를 때가 많다(글을 쓸 때는 오죽할까).

나 혼자만 읽는 일기라면 모든 사정을 자세히 적을 필요가 없다. 일기는 읽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알게 써도 상관없다. 일기 쓰기를 굳이 지도할 필요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쓰기를 지도하는 까닭은 아이가 쓴 글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 내용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내 마음을 전혀 모르는 누군가에게 내 경험과 생각을 글로 잘 전하려면 어떤 표현을 써야 할까? 얼마나 자세히 써야 할까?’ 하고 말이다. 어쩌면 독자가 있기 때문에 글을 더 잘 쓰려고 하는 건지도 모른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쓰는 대부분의 글은 길든 짧든 누군가가 읽기를 바라고 쓰는 것이다. 그 대상이 교사일 수도 있고 부모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다. 카톡의 짧은 문장도 상대가 읽어주기를 바라고 쓰며, SNS의 상태 메시지도 비록 짧은 한마디지만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하다가 한참을 고르고 골라서 올려놓는다. 이렇게 짧은 글도 읽는 사람을 신경 쓰게 마련이다.

물론 아이가 원하지 않는다면 독자를 제한할 수도 있다. 오직 선생님만 혹은 내 짝만 읽었으면 하고 바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마땅히 지켜줘야 한다. 단 한 명이라도 독자는 독자다. 그 한 명에게 내 비밀스런 마음을 털어놓기 위해서라도 아이는 훨씬 더 자세히 쓰려고 노력한다. 오히려 확실한 독자를 마음에 두고 쓰기 때문이다(편지가 대표적이다).

독자를 제한하지 않는다면 아이들 글의 첫 독자는 사실상 교사이거나 부모다. 첫 독자인 교사와 부모는 아이의 글을 어떤 자세로 읽어야 할까? 그 글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든 어떤 수준이든 상관없이 소중하게 읽고 정성을 담아 글에 대한 감상을 전해야 한다. 아이가 마음을 담아 쓴 글을 마치 점수를 매기듯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런 자세라면 아이들은 다음부터 글을 보여주는 걸 망설이게 될 것이다.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보다는 ‘또 어떤 지적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누구나 카톡 메시지를 보내고 나면 상대가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궁금해서 몇 차례나 확인한다. 읽었다는 게 확인되면 ‘곧 답이 오겠지’ 하고 기다린다. 글쓰기도 이런 마음과 다르지 않다. 누군가에게 내가 겪은 일을 전하고, 내 생각에 대해 공감받기를 바라고,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상대방은 이를 어떻게 여길까 궁금해 하는 마음을 누구나 갖고 있다.

내 오랜 경험에 비추어보면 아이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 글을 읽어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1, 2학년 아이가 애써 쓴 글을 남에게 보여주기를 꺼린다면 여기에는 분명 어떤 사정이 있다는 뜻이다. ‘내가 쓴 글씨가 과연 맞는 걸까?’, ‘이런 내용을 써도 되는 걸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와 같은 걱정이 앞서서다.

부모가 아이가 쓴 글에 대해서 검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감해주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지적을 하며 읽는 것이 아니라 “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몰랐네. 동생 때문에 화가 났구나” 하고 알아준다면 어떨까? 부모에게 따끔한 일침을 던지는 글을 쓴 아이에게 “엄마가 네가 한 말을 잊지 않을게” 하고 다정하게 말해주면서 그 글을 현관 앞에 붙여놓거나 동생에게, 형이나 누나에게도 읽어주며 그 마음에 공감해주면 아이는 글이라는 게 괜찮은 표현 방법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독자를 믿지 못하면 글을 잘 쓰기가 어렵다. 자기도 모르게 검열하게 된다. 그런 사람에게는 내 글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잊지 말자. 내 아이의 글쓰기 자신감은 첫 번째 독자인 부모의 영향이 가장 크다는 사실을.



여덟 살 글쓰기
여덟 살 글쓰기
오은경 저
이규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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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경(초등학교 교사)

경북 울진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25년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이 글쓰기 공책에 쓴 이야기를 혼자만 보기 아까워 문집을 만들고 책으로 묶어주는데, 그럼 부모님들이 글을 쓴 아이들보다 책을 만들어준 나를 더 고맙게 생각해주어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