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셋,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될 수도 있다는 건 예상 가능한 일이었지만 육아는 진정 신세계였다. 아이는 소위 ‘등에 스위치가 달린 아기’였기에, 업고 밥을 먹고 업고 집안일을 하며 밤에는 두어 시간마다 깨는 나날이 이어졌다. ‘아니 도대체, 왜 이런 걸 아무도 안 가르쳐 준 거지? 남녀불문 교양필수로 육아과목이 있었어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우울과 분노와 체념 사이를 무시로 넘나들었다. 어린 아기를 데리고 외출을 할 에너지도, 마땅히 갈 곳도 없었기에 나는 점점 집 안에 고립되었다.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아기가 없는 친구들이 가끔 집으로 찾아오곤 했다.
어느 날 퇴근길에 들른 친구가 “선물, 너 소설 책 좋아하지.”라며 책을 한 권 내밀었다. 당시 신간이었던 신경숙 작가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였다. 생각지 못한 선물이었다. 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아기용품이나 먹을거리를 사 들고 왔다. 물론 필요한 것들이고 고마운 선물이지만 나만을 위한 물건들은 아니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힘든 건 나인데, 심지어 나조차도 그걸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친구가 내민 책을 받는 순간 마음이 사르르 떨려왔다. “고마워, 책 선물은 네가 처음이야.”라고 말했던 것 같다.
다음 날은 책을 쳐다보기만 해도 왠지 기운이 났다. 몰입해 읽을 시간이 부족해 이야기가 자꾸 끊어졌지만 밥 먹이며 재우며 짬짬이 읽었다. 육아에 매달린 건 1년 정도인데, 내가 읽고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그보다 몇 곱절 오래 잊은 것 같았다. 책을 읽는 짧은 순간은 어릴 적 다락방에서 책을 읽을 때처럼 잠시나마 혼자가 될 수 있었고, 그 순간들이 하루를 지탱해주었다. 그날 친구가 내게 건넨 것은 단지 책 한 권이 아니라 잠시 내려놓았던 자존감이었다. 이후에도 아이에게 읽어 줄 그림책 한편에 내가 읽을 책을 늘 함께 두었다. ‘일을 놓지 말았어야 했나? 계속 이렇게 지내다 다시 뭘 할 수 있을까?’ 걱정하다가도, ‘이렇게 잠깐씩이라도 계속 읽어야지. 나를 놓지 말아야지.’ 다짐하곤 했다. 그래서 그 책은 이전에 읽었던 어떤 베스트셀러보다도, 어떤 고전명작보다도 내게 소중한 책이 되었다.
아이가 커 갈수록 육아는 매번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조금씩이라도 나를 위한 독서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 덕인지 아이도 책을 좋아하는 어린이로 자랐고, 글을 읽게 된 이후에는 내 책장에 꽂힌 책들의 제목을 읊으며 ‘나는 이런 책을 언제 읽을 수 있어?’라고 묻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책을 읽는다. 나를 위해서도 읽고 아이를 위해서도 읽는다. 아이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도록, 가치 있는 삶을 전해줄 수 있도록, 눈을 크게 뜨고 깨어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계속 읽어야 할 것이다. 아이가 자라서 자기만의 우주를 찾게 되면, 그때는 내 인생을 더 잘 꾸려가야 한다. 그러려면 역시 계속 읽어야 할 것이다. 친구가 선물한 책 한 권이 지친 나를 흔들어 깨웠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책으로 손 내미는 사람이 되면 더욱 좋겠다.
친구는 그날 어떤 마음으로 나에게 책을 선물했을까? 물어본 적은 없지만 어쩌면 특별한 의미없이 그냥 나를 여전히 전과 다름없는 ‘나’로 생각했을 것 같다. 달라져버린 건 나였으니까. 그 날 내게 책을 선물한 것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것도 물어본 적은 없다. 사실 삶의 반경이 다르다보니 자주 만나지도 못했는데 팬데믹 이후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생일에, 명절에, 연말연시에 잊지 않고 안부를 전하는 친구에게, 그때 정말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그 책은 아직 내 책장에 꽂혀있고 앞으로도 아마 처분하지 못할 것이다. 올해 친구의 생일에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를 선물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각자의 자리에서 ‘기세 좋은’ 여자들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유연 책과 함께, 다정하고 단단한 할머니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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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나도, 에세이스트)
책과 함께, 다정하고 단단한 할머니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