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년 후를 상상하며 수천 년 수학의 역사를 들려주는 수학자가 있다. 바로 위상수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한국인 최초로 국제수학올림피아드 회장 후보에 오른 송용진 교수다. 20여 년간 수학영재 교육에 헌신하며 수학의 발전에 앞장서 온 그가 이번에 『수학은 우주로 흐른다』를 출간했다.
『수학은 우주로 흐른다』는 수천 년간 유일하게 지속 발전해 온 수학과, 이를 바탕으로 꽃핀 과학이 어떻게 인류 문명을 이끌어 왔는지 살펴보는 수학 교양서이다. 수학책이지만 복잡한 수학 공식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이야기는 수학에서 시작해 과학, 종교, 문화, 사회로 종횡무진 뻗어나간다. 0의 탄생 배경, ‘수학’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은 물론 수학과 과학이 분리되는 과정, 문명의 발전에 끼친 영향 등을 이야기한다. 수천 년 동안 지식을 쌓아올린 수학과, 발전한 지 200여 년밖에 안 된 응용과학이 앞으로 만들어 나갈 미래를 이야기하는 송용진 교수를 만나봤다.
위상수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학기술훈장 혁신장과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하셨고, 국제수학올림피아드 한국대표단을 20여 년째 이끌며 1등 메달을 두 번이나 거머쥐게 한 교육자이시기도 한데요, 어떻게 수학자의 길을 선택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저는 대학에 입학할 때 이공계라는 계열로 입학을 했는데, 그때는 수학이라는 전공 분야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1학년 때 미적분학을 들으면서 고등수학의 세계는 고등학교 때 배우는 수학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1학년 때 화학, 물리학의 실험 과목을 이수하면서 실험은 제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왕 공부하는 김에 좀 어렵겠지만 뭔가 중요해 보이는 학문을 공부하자는 마음으로 수학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2학년 때부터 배우는 수학 전공과목이 과연 아주 어려워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게다가 당시에는 군사독재정권에 대항하는 시위가 종종 벌어지고 그때마다 학교가 한 달 이상씩 휴교를 하던 상황이라 공부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학교 시절의 학업은 힘들었는데, 대학원 입학 후부터는 아주 재미있게 별다른 심적 부담 없이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수학은 인류의 지성의 정수입니다. 수학은 어렵기는 하지만 일생을 걸고 공부할 가치가 있는 학문입니다.
수학자라고 하면 보통 어떤 연구를 하나요?
수학자들의 연구는 기본적으로 ‘수학문제’를 푸는 것입니다. 사람 이름이 붙은 ‘○○의 추측’이라는 문제를 푸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문제들은 이미 많은 수학자가 시도했지만 못 푼 어려운 문제들이고, 대개는 수학자 자신이 만들거나 다른 누군가가 제안한 문제들입니다. 문제를 푸는 데에는 수학적 사고력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수학적인 지식이 필요합니다. 수학적 개념(또는 정의), 정리, 이론 등을 잘 이해한 후에야 문제를 풀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른 수학자가 다른 수학문제를 해결할 때 썼던 아이디어나 개념들이 지신의 문제를 해결할 때 유용하게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수학자에게는 다른 수학자들의 논문이나 책을 많이 읽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학자들은 문제를 푸는 것 외에도 문제를 푸는 데에 사용되었던 개념이나 정리들을 남들이 쓰기 좋게 잘 정리하는 일을 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수학자들이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자 가장 잘하는 일일 지도 모릅니다.
수학이 수천 년간 지속 발전해온 유일한 학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냥 들을 때는 얼핏 ‘정말 그런가?’ 싶어요. 다른 학문도 꾸준히 발전하지 않았나요?
곰곰이 따져 보면 그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수학만큼 오래되고 중요한 학문인 법학이나 철학 등은 사회적, 종교적 여건에 따라 변해왔고 그 지식을 축적하며 지속적으로 발전해 오지 않았습니다. 의학은 미생물의 발견, 화학의 발전, 해부학의 시작 등으로 새로운 의학이 시작되었고 그전까지는 학문분야로서의 위상 자체가 미미했습니다.
또한 천문학, 음악(음향학) 등은 피타고라스학파의 영향으로 수학의 한 분야로 여겼습니다. 우리는 현재 3000년 전의 수학, 1000년 전의 수학, 500년 전의 수학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고 수학이 오랜 세월 동안 어떤 과정을 통해 발전해 왔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 수학의 의미와 역할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학사의 흐름과 옛 수학자들의 업적과 역할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책에서 수학이 과학을 어떻게 발전시켰고 문명을 어떻게 이끌었는지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수학과 과학이 문명을 발전시킨 재미있는 사례 하나만 소개 부탁드립니다.
가장 중요하고 획기적인 발견으로 저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을 꼽겠습니다. 불과 100여 년 전까지 인류의 대부분은 야외에서 경제활동을 해왔고 따라서 천문, 기상, 달력은 누구에게나 매우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현인이 천문을 연구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수학자들이었던 갈릴레이,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등이 지동설 연구에 공헌했고 그 후에는 역사상 최고의 수학자들인 뉴턴, 라플라스, 가우스 등이 천제의 운동에 대한 법칙들을 밝혀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수학은 우주로 흐른다』에도 소개한 것처럼 지금까지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과학적 발견 1위는 ‘세균의 발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균을 발견한 덕분에 위생 개념이 생겼고,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률을 낮출 수 있었습니다.
요즘 인공지능을 비롯해 4차 산업혁명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수학 인재를 찾는 곳도 많아졌다고 해요. 특히 인공지능의 핵심역량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에 수학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은 분야도 많고 역사도 깁니다. 요즘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머신러닝이나 알파고로 유명해진 딥러닝(머신러닝 알고리즘 중 인공신경망을 기반으로 한 방법) 연구에 수학 인재들의 참여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머신러닝 연구가 주로 경험이나 실험에 의존하고 있고 수학적 이론이나 지식이 바로 적용되고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만 조만간 수학의 역할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요즘 인공지능 연구를 하는 연구소나 기업에서 수학인재들을 많이 찾고 있는 이유는 그런 인재들의 수학적 지식보다는 그들의 ‘수학적 능력’과 오랜 시간 동안 문제에 집중하는 연구 습관을 높이 사기 때문입니다. 즉, 수학적 능력과 습관을 기반으로 한 문제해결 능력을 높이 사는 것이지요. 또한 수학인재들은 인공지능 연구에서 접하는 여러 가지 현상 중에서 어떤 일정한 패턴이나 법칙 찾기, 또 그러한 현상들을 표현하는 수학적 모델링 찾기 등을 통하여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후위기, 인종갈등, 자원부족 등을 이유로 인류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수학과 과학이 문명을 계속 발전시킬 수 있을까요?
현재는 과학 발전의 부작용으로 발생한 지구온난화, 환경오염, 인구증가, 자원부족 등의 문제들이 있고, 또한 언제 인류가 소행성과의 충돌, 핵전쟁, 인공지능이나 외계인의 공격 등으로 커다란 위기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머지않은 미래에 지구나 인류가 큰 재앙을 맞이할 가능성은 매우 낮고,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과학은 지속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과학의 발전은 결국 인류가 더욱 풍요롭고 평화롭게 살게 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어떤 분들이 읽으면 좋을지, 어떤 분들에게 추천하는지 말씀해주세요.
『수학은 우주로 흐른다』는 어려운 수학, 과학 내용을 독자들에게 재미있게 설명하려고 쓴 책이 아닙니다. 수학과 과학을 역사적, 사회적, 인류학적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인문학적인 책입니다. 21가지 이야기 중 2가지 이야기에서 조금 어려운 수학, 과학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해하기 쉬운 내용입니다. 그래서 중고등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 성인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책에는 수학과 과학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그중에는 알고 있으면 좋을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들과 이해하고 있으면 좋을 수학, 과학의 철학과 방향 등이 있습니다. 저는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통해 그러한 지식을 넓히고 수학과 과학의 미래를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송용진 인하대학교 수학과 교수. 한국인 최초로 국제수학올림피아드 회장 후보에 오른 위상수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이다. 20여 년간 국제수학올림피아드 한국대표단 단장 또는 부단장을 맡으며 대한민국이 2012, 2017년 두 차례 1등을 거머쥐는 데 기여했다. 30여년 간 풀리지 않던 해러(Hare)의 추측 문제를 해결했고, 과학기술훈장 혁신장과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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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yunee
2021.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