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인연』은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를 쓴 요양보호사 겸 일본문학번역가, 에세이스트 이은주의 3번째 작품으로 젊은 시절 일본 유학을 떠나 문학을 공부하며 일본 사람들과의 인연을 맺고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동경인연』은 작가님의 젊은 시절 일본 유학기라고 알고 있습니다. 유학 동안의 학업이나 학문에 대한 이야기나 일본 사회와 풍경에 대한 내용보다 사람, 그리고 삶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동경인연』이라는 제목에 어떤 의미를 담았으며,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동경인연』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나는지 말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어떻게 마음이 따뜻해지는지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더욱 고립된 채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한잔의 차로도 축제를 만들 수 있다는 걸 경험한다면 우리는 다른 언어를 써도 친구가 될 수 있거든요.
전작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와 『오래 울었으니까 힘들 거야』에 이어 세 번째 에세이 『동경인연』을 내셨습니다. 『나.신.요.』를 보면서 직업인 ‘요양보호사’로서의 어려움과 보람을 다룬 이야기로만 보이지 않았는데, 이 세 편의 에세이를 묶어서 생각해 보니, 작가 이은주의 인생 이야기로 여겨집니다. 작가님은 독자들이 세 편의 에세이를 어떤 맥락으로 읽어주길 바라나요?
『나.신.요.』와 『오래.울.』과 『동경인연』은 어떤 맥락에서 보면 돌봄의 변주곡과 같습니다. 순서는 바뀌었지만, 자신을 돌보고, 가족을 돌보고, 나아가서는 타인을 돌보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며 도스토옙스키가 18세 때 형 미하일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했듯이 저 또한 ‘인간 신비’를 탐험하기 위해 인생 전부를 바친다 해도 시간을 낭비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젊은 날은 문학과 일본유학으로 대변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 영향이 지금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고 여겨지는데요. 유학은 언제 얼마나 다녀온 건가요? 구체적으로 어떤 공부를 했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작가님에게 ‘문학’과 ‘일본유학’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그리고 문학과 일본유학 외에 기억나는 청춘의 키워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연애나 존재론적 고민? 역시 가족이었나요?
일본유학을 떠나지 않았어도 저는 어떤 형식으로라도 글을 쓰고 있었을 겁니다. 끊임없이 미래에 대해 방황하고 있었어요.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확신할 수 없었지요. 그런 와중에도 제 마음을 빼앗는 건 책이었습니다. 그때 읽은 책들은 정말 아름답고 슬픈 책, 재미있는 책, 고통스럽지만 뭔가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열쇠가 될 것 같은 책들뿐이었지요. 도스토옙스키의 『가난한 사람들』, 『죄와 벌』, 『악령』, 『미성년』,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그랬습니다. 한국소설보다는 시집을 더 많이 읽었던 것 같은데 그것은 엄마의 영향이기도 했습니다. 세계명시집, 김소월 시집과 김남조 대표시집을 동네 책방에서 사주면서 딸의 문학적 재능을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연애나 존재론적 고민에 대해서 답해볼까 합니다.
도스토옙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그토록 많은 선물과 편지를 주고받던 바르바라가 가난 때문에 돈 많은 남자와 결혼에 이릅니다. 너무나 현실적인 바르바라를 통해 사랑이란 무엇일까? 고민하였으며 사랑한다면 굶어 죽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 하는 게 사랑이 아니냐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바르바라를 향한 마음을 편지에 써 내려간 마카르 역시 바르바라에 투영된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연민한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는 또 어떻습니까? 그는 전당포 노파를 죽인 후 그녀의 돈으로 가난한 사람 여럿을 먹이는 게 더 낫지 않겠냐는 생각을 합니다. 나폴레옹을 예로 들며 사람을 죽이고도 영웅이 되는 비범한 인물을 자신과 동일시합니다.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은 죽여도 살인이 아니라는 소설 속 화자의 아주 강렬한 사상에서 한동안 벗어나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악령』은 제가 번역한 시미즈 선생님의 『도스또예프스끼가 말하지 않은 것들』에서 인용할까 합니다.
『악령』을 읽고 니꼴라이 스타브로긴의 허무의 세례를 받은 나는 마침내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판단 기준을 상실하고 있었다. 보다 좋은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보다 좋은 대학을 위해 투쟁하던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활동가로서의 첫걸음을 내딛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연합적군사건이 일어났다. (중략) 일본의 대부분의 혁명 운동가는 『악령』 같은 책은 읽지 않고 갑자기 이상을 향해 돌진했다. 그들은 인간 내면에 잠재한 이기심이나 질투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무지했고 무방비 상태였다. 이 지상 세계에서 절대 실현이 불가능한 유토피아를 계획하던 자들은 그 프로세스에 따라 여러 수준의 음모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파멸해 갔다. 마침내 혁명은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_(288쪽).
지하생활자의 『영리한 인간은 진정 아무것도 될 수 없다』라는 말을 듣고 스비드리가일로프와 함께 고개를 끄덕일 것이라는 점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_(289쪽).
도스토옙스키를 읽으면서 그때의 제가 고민하고 알고 싶어 했던 무언가가 손에 잡힐 듯했던 순간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인간의 선이라든가 악이란 대체 어디에서 오는지. 궁극적으로 선함은 능력이고 재능인 건지, 타고 태어나는 것인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인지 저는 알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도스토옙스키가 말한 ‘인간 신비’가 아닐까요?
가족에 대해서도 저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것이 더 많고 한 개인을 입체적으로 알아야 안다고 할 수 있는데 가정 안에서의 개인은 단편적이며 공동생활을 위해 포기하는 것이 많아서 안다고 해도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가족을 이해하기 위해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신비한 존재로서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할 수 없어도, 이해할 수 없어도 부정할 수 없고, 그 존재 그대로를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계와 나’를 인식하는데 가족은 첫 번째 들어가는 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부 ‘나의 연애소설’에서 얼핏 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뭐랄까 조금 모호하게 그려지고 있는데, ‘인연’이라는 주제의 선명성을 위해 그렇게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님의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습니다. 말씀하기 어렵다면, 연애관이라도 알고 싶습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사랑이 어떻게 왔다가 어떻게 가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어렴풋하게 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일본인이어서가 아닙니다. 그가 다섯 살 연하였기 때문도 아닙니다. 어렴풋한 연애 에피소드를 한 가지 소개하면 장소는 찻집이었고 그와 저는 조금 지쳐 있었습니다. 6년 만에 귀국한 서울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저와 여자친구의 나라에 유학을 왔다 한국회사에서 일하며 겪는 스트레스로 불안한 그가 차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저는 주머니에서 몽당연필을 꺼내서 냅킨에 감정의 온도계를 그렸습니다.
“내가 슬프다 라고 말하면 이 온도는 80도에서 100도인데 너는 받아들이길 50도 이하로 받아들여.”
저는 한국인의 한을 말하고 있었을까요? 현재 처한 가족의 문제, 가난에 처한 상태, 직장에 대한 고민을 포함하고 있었을까요? 그때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너는 천재니 바보니? 언어학자 소쉬르도 그런 비슷한 말을 했어.”
물론 제가 기대했던 답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조금씩 지구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해서 언젠가는 다시 만나지 않을까 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만화를 너무 많이 본 탓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되어 미래의 그를 만나보고 싶기는 합니다.
추천사를 쓴 시미즈 마사시 선생님과는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는군요.『동경인연』에 나온 인물 중,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어떤 마음으로 또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요? 처음 인연을 맺었을 때를 돌이켜 볼 때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 어떤 생각이 드나요?
저는 30년 동안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을 써왔습니다. 제가 보낸 카드만 모아도 작은 미니북이 완성될 것입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첫 작품인 『가난한 사람들』도 서간문이었는데 서간문은 매력적인 데가 있습니다.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 소통을 전제로 한다는 점입니다. 매년 여러 친구들에게 같은 내용의 카드를 쓰다 보면 지루해서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고 앞에 썼던 내용을 생략하고 두 번째 문단부터 시작하기도 하고 그날 읽었던 책을 인용하기도 하고, 고통 속에 날것으로 표현했던 것을 완곡하게 표현하기도 하면서 연말을 보내고는 했는데 그런 성장을 시미즈 선생님은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지켜봐 주신 분입니다. 소중한 분이지요.
『동경인연』에 나온 인물 중,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역시 마리 아줌마와 두 딸들이에요. 오늘도 인터뷰에 쓸 옛날 사진을 써도 좋은지 의사를 묻기 위해 안과 나나와 마리 아줌마 각각의 라인으로 허락을 구하는 메시지를 보냈지요. 이노우에 선생님과는 역시 연하장으로 안부를 묻고 가끔 안부 전화를 하는 정도입니다.
"나에게는, 돌아가야 할 곳이 있고, 돌봐야 할 가족이 있어서 나는 반드시 돌아갈 것이라는 의지의 상징이 바로 덧문이었다면, 덧문을 닫지 않은 오치아이의 방은, 돌아가야 할 곳이 있고, 돌봐야 할 가족이 있는 우체국 아줌마에게는 어쩌면 ‘누구의 엄마도 아니고, 누구의 아내도 아니고, 또한 누구의 딸도 아닌 온전한 자신만의 방’으로서의 상징이 아니었을까?
오치아이의 불 켜진 방이 이상과 마리 아줌마의 인연의 시작이라고 말할 때 나에게는 아줌마의 미래의 불 켜진 방이 보이는 듯 했다."
젊은 날에 명확하게 보이던 것이 나이를 들면서 많은 것들의 변화를 목격하면서 모호해지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나가는 말에서, 『동경인연』을 끝내지 못할 것 같다고 했고, 또 지나는 세월 동안 지키려 했던 것이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무엇을 소중히 지키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 함의가 궁금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있을 텐데, 『동경인연』은 여전히 진행형인가요?
요즘 저는 50대 중반의 몸, 변화하는 몸, 금방 피로를 느끼는 몸이 되어서 무척 힘이 듭니다. 몸이 아프면 타인은커녕 자신조차 돌볼 수 없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삶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신의라든가 연민이라든가 용서를 더는 할 수 없을 때가 오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소중한 가족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사회생활을 했는데 가족과 함께한 저녁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선배와의 신의를 지키려 했는데 빚을 진 채 선배는 사라져버렸습니다. 그와 동시에 선배와의 추억도 사라졌고,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자신의 아이들을 저에게 맡기고 언니는 돈을 벌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함석헌의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를 읽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저는 길을 잃었습니다. 저에게서 ‘그런 사람’이 되어주길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선배에 의해 길을 잃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한발 더 나아가서 ‘그런 사람’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선과 악에 대한 단편적인 태도처럼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것으로까지 생각이 확장되었습니다. 물론 제 안에서 알을 품은 『동경인연』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여전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있으며 사랑하고 또 사랑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고 믿습니다.
『동경인연』으로 또다시 독자들을 만나야 하는 때가 되었네요. 출간 이후 일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그리고 이은주 에세이 3부작이라고 했는데, 『동경인연』 이후 집필 계획도 궁금합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자전적 소설 『귤』을 얼마 전에 500원을 주고 e북으로 다운받아 읽었는데요. 읽고 싶은 단편 하나 때문에 별로 읽을 것 같지 않은 여러 단편과 함께 묶인 단편집 대신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귤』 한편을 다시 읽으니 좋았습니다. 가로 24칸, 세로 25줄로 한쪽에 600자씩 11쪽으로 구성되어있는 e북을 보면서 미래의 저도 자신의 장르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 방위로 활약하는 50대 이슬아를 꿈꾸며 요양보호사이기도 하고, 번역가이기도 하고, 작가이기도 한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 시절 그곳 그 인연은 그저 추억의 한 자락으로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완성해주는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이 된다."
"어린왕자의 별에서는 의자를 옮기기만 하면 해지는 노을을 볼 수가 있다지만, 내가 사는 오치아이 별은 창문만 열면 노을이 지는 그런 공간이다. 아는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방에 서서 천장에 달린 전등 줄을 잡아당긴다. 덧문을 닫으면 완벽한 어둠 속에 잠들 수 있지만, 나는 그 방을 떠날 때까지 한 번도 덧문을 닫지 못했다. 한겨울 추위로 이를 덕덕 갈아도.
덧문을 닫지 않으면 나의 방은 별이 되지만, 덧문을 닫는 순간 나의 방은 상자로 변하고, 나의 잠은, 나의 꿈은, 나의 무의식은 영영 우주를 가로질러 지구별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에게는 돌아가야 할 곳이 있고, 돌봐야 할 가족이 있어서 나는 반드시 돌아갈 것이라는 의지의 상징이 바로 덧문이었다."
*이은주 에세이스트, 일본문학번역가, 요양보호사. 번역가가 되기 위해 20대부터 꿈을 키웠으며, 일본대학 예술학부 문예학과를 졸업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세계로의 초대』를 번역하면서 꿈을 이루었고, 이후로도 문학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4년 동안 학습지 교사를 하면서 번역한 『도스또예프스끼가 말하지 않은 것들』이 ‘열린책들’에서 나왔을 때는 일본대학 입학 때 했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기분이 들었다. 번역가에서 에세이스트로의 변화를 꿈꾸며 세 편의 에세이를 집필했다. 요양보호사를 하면서 겪은 경험을 이야기한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헤르츠나인, 2019), 그리고 주의산만증ADHD인 조카손자 정명이와 세상의 모든 약하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하는 『오래 울었으니까 힘들 거야』(헤르츠나인, 2021)에 이어 20대 유학시절에 만난 인연과 문학을 향한 분투를 담은 『동경인연』을 출간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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