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에 담긴 나만의 은밀한 이야기
이 모든 컵에는 나만의 이야기가 있다. 어떤 그릇에든 사용한 사람들의 사연이 담겨 있고, 깨지지 않는 한 그 이야기는 천년 만년 이어진다.
글ㆍ사진 곽아람(작가, 기자)
20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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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빅 카스텐 <파란 부엌>(1912)

그릇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 우리 집 찬장에는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정식집을 차리고도 남을 만큼”의 그릇이 들어 있다. 자주 쓰는 그릇도 있고 드물게 쓰는 그릇도 있으며, 아예 쓰지 않은 그릇도 있다. 값비싼 그릇도 있고 중저가도 있으며, 행사 기념품으로 공짜로 받은 것도 있다. 여기서 ‘그릇’이라 함은 떨어뜨렸을 때 깨지는 식기(食器)를 일컫는다. 냄비류와 목기(木器), 커트러리는 제외한다.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음식에 큰 돈 쓰는 걸 아까워하지만, 그릇 욕심은 있다. 쓰지도 않는 그릇을 왜 계속 사들이는 거냐고 잔소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모르는 소리! 그릇의 용도는 사용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 완상(玩賞)하고 쓰다듬으며 기형(器形)과 문양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그릇은 그 의무를 족히 다한다. 

왜 이렇게 그릇에 빠지게 된 걸까? 과 후배의 말에서 힌트를 찾았다. “제가 학부 때 동양미술사 관련 과목은 다 성적이 나빴는데, 도자사 과목만은 A 였거든요. 아무래도 그릇을 좋아해서 그런 거 같아요.” 음, 나도 그, 그래서일까? 하지만 그릇을 좋아해서 도자사 과목을 들었다는 후배와는 역으로, 나는 도자사 과목을 들은 영향으로 그릇을 좋아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장 에티엔 리오타르 <찻잔 세트>(1783)

분명한 것은 스무 살 즈음의 나는 그릇에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도메스틱(domestic)’하다 여겨지는 모든 것을 배격하던 시절이었다. 교육받은 현대 여성이 그런 걸 좋아한다는 것을 가부장적 세계관에 굴복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도자기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얽혀 있겠어!”라고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며 도자사를 전공하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이해하지 못했다. 자취생의 식탁에는 늘 상경할 때 엄마가 사다준 코렐 그릇과 반찬 담긴 파이렉스 혹은 타파통만 올랐고, 매일 쓰는 주홍색 물컵은 낙성대 원당시장 마트에서 산 3000원짜리……. 일상에서 쓰는 그릇이 단조로우니, 그릇에 대한 나의 상상에도 한계가 있었다.

‘동양 및 한국 도자사’ 수업 시간에 배운 몇몇 내용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도자기의 밑바닥에 많은 정보가 매장되어 있으므로, 진품과 가짜를 구별할 때엔 그릇을 뒤집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 도자기를 구울 때 그릇과 가마가 들러붙지 않도록 가마 바닥과 도자기 사이에 내화토(耐火土) 혹은 내화석(耐火石)이라 불리는 모래나 돌을 끼워넣는데, 이것이 시대에 따라 다르므로 연대 판단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는 이야기 등. 이런 이야기들을 들은 영향으로 나는 지금도 그릇을 고를 때 뒤집어서 밑바닥부터 살펴보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게 그릇의 진위(眞僞)를 판단할 만한 감식안이 있는 건 물론 아니다.

중국의 각 시대와 지역에 따른 요(窯), 그러니까 가마터이자 도자기 생산지의 특성에 대해 배우는 것이 수업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각 시대에 어떤 요에서 어떤 빛깔의 자기가 생산되었는지가 특히 중요했다. 당대(唐代)에는 755년 안녹산의 난 이후 새로운 귀족 계급이 탄생하면서 자기에 대한 요구가 많아졌다. 그래서 자기 산업이 팽창하는데, 절강성 일대 월주요에서는 왕실에서만 사용했던 비색(秘色) 자기가 등장하고, 하북성 형요(邢窯)에서는 눈처럼 흰 백자가 생산되었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당의 쇠망과 함께 끝났다고 했다.  

송(宋)에 이르러 중국 도자의 황금기가 펼쳐졌다. “청자는 옥(玉)과 같이, 백자는 종이와 같이” 만든다는 것이 이 시대의 모토였다. 북송대의 청자로는 하남성 여요(汝窯)가 유명한데, 비색이라 불리는 그린(green)이 아니라 블루(blue) 빛깔을 띤 여요 청자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비싼 청자로 여겨진다고 했다.   

도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강서성 경덕진(景德鎭)을 빼놓을 수 없다. 태토가 풍부하고 수운(水運)이 편리해 15~16세기 이후에 중국 도자기 대부분을 생산했던 이곳은, 북송대엔 푸른빛이 그림자처럼 어른거린다 해서 영청(影靑)이라고도 불리는 하늘색 도는 청백자(靑白磁)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송대 백자는 크게 상아색과 부드러운 질감이 특색인 북쪽의 정요와 차갑고 이지적인 청백색이 특색인 남쪽의 경덕진이라는 두 흐름으로 나누어진다.


줄리안 올덴 위어 <정물>(1902-1905)

제 손으로 그릇 한 번 골라본 적 없으면서, 대학 4학년의 나는 이러한 내용들을 외우고 또 외웠다. 주입식 교육의 힘이란 놀랍게도 끈질긴 것이다. 우리집 찬장 깊숙한 곳에는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이도의 얇고 푸른 그릇이 몇 개 쌓여 있는데, 그 그릇들을 처음 보았을 때 도자사 수업을 들은 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자동적으로 ‘여요’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내가 실생활에서 즐겨 쓰는 그릇은 토전(土田) 김익영 선생이 창업한 우일요 백자다. 흰 바탕에 가지런한 주름이 있는 누비 라인 접시와 밥공기, 나비와 국화가 그려진 밥그릇과 국그릇, 포도가 그려진 과반과 오리 머리가 달린 귀여운 종지 등을 아낀다. 단아하면서도 튼튼해 쓰임새가 좋은 이 백자들은 몇 년 전 우일요가 폐업해 더 이상 구하기 힘들므로 중고 시장에 나오는 즉시 팔릴 만큼 인기가 높다. 우일요 백자를 좋아하면서도 나는 ‘고대(古代) 반상기’라 불리는 중국 청동기 시대 제기(祭器)를 연상시키는 그릇만은 집에 들이지 않는다. 도자사 수업을 들은 영향으로, 그런 형태의 그릇은 망자(亡者)를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신미경 <트랜스레이션>(2006-2013)

얼마 전 저녁식사 자리에서 잔의 형태가 술의 맛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어떤 분이 “와인잔의 구연부는 얇디 얇아서 입에 대는 순간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는 편이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술은 휘발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잔 역시 그 속성과 맞아 떨어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나는 찻잔 이야기를 했다. 차는 온기를 머금어야 하므로 찻잔의 구연부는 적당히 도톰한 편이 좋은 것 같다고. “입에 닿는 건 좋은 걸 써야 한다.”면서 구연부에 푸른 문양이 박힌 로얄코펜하겐의 프린세스블루 라인 머그를 내게 선물해 주신 분이 있었다. 그 머그가 내 인생 최초의 ‘코페니’였는데, 그걸 주신 분은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 잔을 선물받았을 때만 해도, 그릇 사치는 돈 아까운 일이라 생각했다. 이제는 식기는 최대한 좋은 걸 쓰려고 한다. 그건 스스로를 대접하는 마음 같은 것. 

나는 아침마다 기벽이 두텁고 입구가 넓어 듬직한 유리컵에 우유를 따라 마신다. 빨간 모자를 쓰고 빨간 목도리를 두른 작은 눈사람이 점점이 그려진 이 컵은 친구가 미국에서 사다준 것이다. 표면에 ‘News’의 사전적 정의가 적혀 있는 분홍색 머그를 물잔으로 사용하는데, 나의 직업적 정체성을 대변한다 생각하며 애틀랜타의 CNN 본사 기념품샵에서 사 왔다. 

차를 마실 때 특히 자주 사용하는 건 하늘색 바탕에 푸른 초롱꽃과 민들레 솜털이 그려져 있고 종(鍾)을 뒤집어놓은 듯한 형태가 우아한 로열앨버트 100주년 머그다. 10여 년 전에 영국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런던 히드로공항의 해로즈에서 사온 것인데, 이때 처음으로 나도 이제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했으니 좋은 그릇을 한 번 사 보자는 생각을 했었다. 

이 모든 컵에는 나만의 이야기가 있다. 어떤 그릇에든 사용한 사람들의 사연이 담겨 있고, 깨지지 않는 한 그 이야기는 천년 만년 이어진다. 로얄코펜하겐과 로모노소프, 웨지우드와 빌레로이 앤드 보흐, 포트메리온 그릇이 찬장 가득 쌓여 있지만, 나는 개수대에 항상 놓고 쓰는 20년 넘은 나의 코렐을 버릴 생각이 없다. 오랜 세월을 함께하면서 흰 바탕에 푸른색으로 잔잔한 열매가 그려진 그 그릇과 나만의 역사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은밀한 이야기. 

화려하고 섬세한 그릇과 마찬가지로 잘 깨지지 않는 만만한 그릇 역시 참으로 귀한 존재. 사람 사귐도 그렇지 않나, 나는 생각해 본다. 다루기 조심스럽고 까다로워서 쉽게 다가서기 힘든 사람들의 묘한 매력에 이끌려 항상 곁에 있는 튼튼하고 듬직한 사람들의 중요함을 종종 잊어버리지만, 결국 오래 남아 곁을 지켜주는 건 그런 사람들이 아닌가, 하고. 

오래전 수업을 들으며 생각했다. 따스한 상아색 정요 백자와 서늘하게 푸른 그림자를 드리우는 송대 경덕진 백자 중 나는 어디에 가까운 사람인가? 그 시절엔 경덕진 백자처럼 도도하고 차가운 미인이고 싶었다. 세상이라는 곳에 꽤나 적의를 품고 철벽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내게 범접할 수 없었으면 했다. 

청춘이란 그렇게 서슬 푸른 것이다. 지금은 부드럽고 푸근한 정요 백자 같은 사람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모난 성미에 정 맞아 보기도 하고 싸늘한 성정 때문에 미움 받기도 해보아서, 이제는 그만 동글고 눅진하게 살고 싶은, 40대란 뭐, 그런 시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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