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검사생활』은 현재 서울중앙지검에서 근무 중인 뚝검(검사 정거장)이 집필한 첫 책이다. 미리 말하자면 이 도서에는 거대한 음모와 맞서고 거악을 척결하며 어느 드라마의 주인공과 같이 열정으로 충만한 검사는 없다. 다만 따듯함으로 억울한 사람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는 인간적인 검사만이 있을 뿐이다. 그는 사건이 아니라 사연이라고 말한다. 그 안에는 저마다의 우주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누구 하나 억울함이 없으면 좋겠다고 세상 누구보다 간절하게 바라는 뚝검의 검사 생활 이야기다.
안녕하세요, 검사님.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근무 중인 정거장 검사입니다. 제 소개를 듣고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정거장, 30년 넘게 불려온 제 이름이 맞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라의 큰 인물이 되라며 클 거(巨), 장수 장(將)을 써서 지어주신 이름 덕에 이름 따라 살기도 벅찬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하―) (웃음) 저는 2013년 로스쿨을 졸업한 뒤 법무관으로 군 복무를 마쳤고, 2016년 검사로 임관했습니다. 이제야 초임검사 티를 벗고, 겨우 검사로서 자기 몫을 해내는 정도가 된 듯합니다.
『슬기로운 검사생활』은 첫 작품인데요,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처음 출판사를 찾았을 때,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순간 검사가 검사의 이야기를 썼다면 정의 실현이나 거악 척결이라는 거창한 계기를 말씀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들더군요. 하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그럴 요량으로 쓴 글이 아니었으니까요.
한때 열정 가득한 초임검사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도 흔히 말하는 번 아웃이 찾아왔습니다. 손발을 열심히 구르며 앞으로 나아 가려는데 늪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힘을 내면 낼수록, 발을 박차면 박찰수록 진창에 빠져드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어요. 지난 시간들을 더듬어 올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엉망인 서랍을 정리하면 개운해지듯 글의 힘을 빌려 흘러간 시간들을 정돈하면 지금보다 나아지리라 기대하면서요. 물론 덧없다 느껴지는 삶에서 무언가 의미를 찾아내고 싶다는 소망도 있었습니다. 이 책을 쓰기 시작한 이유가 지극히 개인적이라서 부끄럽기만 하네요.
집필하시면서 어떤 점이 어려우셨나요?
일단 체력이요.(웃음)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본업 위에 부업을 얹으니 쉽지 않았습니다. 검사가 글을 쓴답시고 본업에 소홀하면 결코 안 되기에 평소보다 꼼꼼히 사건 처리에 골몰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특히 마감을 앞두고는 300쪽 분량의 원고를 하루에도 두세 번씩 읽어가며 퇴고를 했는데, 그러다 눈에 실핏줄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를 꼽자면 ‘균형’이었습니다. 저는 독자들이 제가 겪은 실제 사건들을 마주하면서, 인간으로서 검사의 고민과 우리 인생의 여러 가지 모양들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집필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추리소설이나 형사사건 관련 예능처럼 단순한 오락물이나 흥밋거리로만 소비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따라 들었습니다.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글을 쓰면서도, 그 안에 각각의 사연들이 담고 있는 무게를 담아내는 균형을 잡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출간을 통해 이제 엄연히 작가가 되셨습니다. 검사와 작가 두 직업 사이에 느낀 공통점이 있으신가요?
아직 작가라는 호칭이 어색하기만 합니다. (웃음) 검사와 작가는 사람을 이해해야만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다는 점이 묘하게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검사로서 사건을 처리할 때면 ‘이 사람은 대체 왜 이랬을까?’ 또는 ‘내가 사건당사자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라는 질문을 자주 떠올립니다. 저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풀리지 않던 사건도 사건당사자의 시각으로 바꾸어 바라보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작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슬기로운 검사생활』은 제가 경험한 실제 사건들을 각색한 글이지만 전개를 위해 사건당사자의 시점에서 적은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그 때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라는 고민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더군요. 그 사람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으면 단 한 글자도 글을 써 내릴 수 없었습니다. 사람을 이해해야만 하는 직업, 두 직업의 공통점이 아닐까 합니다.
혹시 지금까지 있었던 사건 중에 기억에 가장 남는 사건이 있으실까요?
책에도 적었지만 ‘안인득 방화살인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도 그 사건을 떠올리면 안타까운 마음과 침통한 마음을 다스리기가 힘듭니다. 워낙 피해가 컸고, 담당검사로서 최초 발생 때부터 3심 확정 때까지 사건의 처음과 마지막을 모두 담당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사건의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말씀드리니 송구스럽네요. 여전히 그 사건은 피해자분들과 유족분들께 현재진행형일 테니 말입니다. 얼마 전 어느 유족분들께서 국가배상소송을 청구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모쪼록 그 다친 마음이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사건을 처리하며 때론 괴로워하는 모습도 자주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런데도 꿋꿋이 이 일(검사)을 해 나가시는 이유가 있나요?
꿈이었으니까요.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우연히 봤습니다. 고1부터 고3까지 장래 희망을 모두 검사라고 적었더라고요. 로스쿨을 다니면서 마음먹은 대로 성적이 나오지 않아 포기하고 싶을 때면 빈 종이에 ‘검사 정거장’을 하염없이 적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간절하게 검사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었습니다.
말씀대로,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괴로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사건당사자가 느끼는 감정들이 고스란히 옮아오기도 하고, 제 결정으로 누군가의 삶이 송두리째 달라질 수도 있다는 부담감이나 ‘나의 결정이 옳았나?’라는 자책감이 들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간절히 바라던 꿈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면 다시금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생겨납니다.
이 책을 읽어 주실 독자님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시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야기해 주세요.
이 책은 일단 이제 갓 사회에 뛰어든 사회초년생이나 번 아웃으로 인해 잠시 삶의 동력을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글입니다. 사회초년생들에게는 이 책에서 다루는 초임검사로 불리는 새내기 검사의 이야기가 ‘정신없는 사회초년생 시절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소소한 응원이 되기를, 번 아웃에 빠진 이들에게는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지난 시간들을 정돈하면서 삶의 동기를 찾아내는 과정이 심심한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저마다 힘든 사연이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그 무게를 가늠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제가 그랬듯이 독자님께서도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살펴보면 ‘나’를 떠받치고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실 겁니다. 그것이 사람일 수도, 경험일 수도, 어떤 수고로움 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이 여정 속에서 소중한 의미를 찾았듯이, 독자님께서도 분명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뚝검(검사 정거장) 2013년 로스쿨을 졸업하고, 3년간 법무관으로 군 복무를 마친 뒤 2016년 검사로 임관했다. 부산서부지청과 진주지청을 거쳐 현재 서울중앙지검에서 일하고 있다. 쉬지 않고 달리다 보니, 초록이 푸른 여름이 왔는데도 겨울만이 계속되는 것 같았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트랙을 벗어나기로 했다. 봄이 오길 기다리며 천천히 걷는 동안, 법복을 입은 시간 속에서 다양한 우주와 서사를 마주하며 잠겼던 생각과 느꼈던 마음을 책으로 엮어 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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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야기
2022.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