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적 색채가 짙은 장편 소설 『화성의 시간』
우리나라에서 한 해 실종되는 사람이 10만여 명. 거대한 점묘화를 떠올리게 하는 실종자들 중에서 한 점을 파고들어가, 그 사람의 숨겨진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2.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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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실종되는 사람 연간 약 10여 만 명. 우리 주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이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첫 장편소설 『오즈의 의류수거함』으로 제3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세종도서, 문학나눔, 안산의책 등에 선정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유영민 작가가 이번에는 ‘사라진 사람’을 소재로 장편소설 『화성의 시간』을 발표했다.



『오즈의 의류수거함』『헬로 바바리맨』에 이어 세 번째 장편소설을 내셨어요. 이번에 집필하신 『화성의 시간』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화성의 시간』은 추리적 색채가 짙은 작품입니다. 실종자의 행방을 쫓는 여정이 중심 플롯이지요. 소설의 주인공인 성환은 민간조사원입니다. 의뢰를 받아 오래 전 사라진 여자를 찾게 됩니다. 처음에 성환은 그녀에게 걸려 있는 거액의 보험금으로 말미암아 그 수혜자인 남편에게 살해 의심을 품게 되지요. 실종된 지 5년이 지나면 사망처리가 되어 보험금 수령이 가능한 법 조항을 악용한 범죄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사건을 파고들면서 뜻밖의 사실들과 마주하게 되고, 여자를 꼭 찾아야 되는지 회의감을 느끼게까지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실종되는 사람이 1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사실을 접하고서 큰 충격을 받았죠. 저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을까, 저마다 어떤 사연을 품고 있을까 의문도 갖게 되었고요. 거대한 점묘화를 떠올리게 하는 실종자들 중에서 한 점을 파고들어가, 그 사람의 숨겨진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오즈의 의류수거함』으로 독자들과 만난 이후, 주로 십대를 대상으로 하는 작품을 써 오셨는데요. 『화성의 시간』은 보다 넓은 연령대의 독자층을 염두에 두고 쓰신 것 같아요. 이 작품을 집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청소년 소설로 등단을 했지만, 작품을 구상할 때 특정 장르나 독자 연령층을 염두에 두지는 않습니다. 소재에 맞는 톤의 글을 쓰려고 하지요. 자연스레 이번 소설은 성인을 대상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어떤 작품이든 그 시작은 작고 사소한 호기심인 것 같아요. 『오즈의 의류수거함』은 집 앞에 설치된 의류수거함을 보고 ‘저건 뭐지?’ ‘부유한 동네와 가난한 동네에서 나오는 옷이 다르지 않을까?’ ‘과연 옷만 들어 있을까?’ 같은 궁금증을 품었지요. 

『화성의 시간』 역시 비슷합니다. 오래 전 우연히 읽은 짤막한 신문 기사가 모티브를 제공해 주었는데, 보험금을 목적으로 남편이 아내를 감금한 내용이지요. ‘남편은 어떤 사람일까?’ ‘그들에게 뭔가 감춰진 사정이 있지는 않을까?’ ‘아내는 갇혀 지내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같은 의문이 이어지다가 집필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님께서 만들어 낸 『화성의 시간』의 인물 중 가장 애정을 가진, 혹은 연민을 가진 인물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글쎄요…… 친딸을 잃은 성환, 부모의 사랑에서 소외된 두진, 고독과 그리움의 세월을 견뎌야 했던 미옥 등 인물마다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어요. 그렇기에 작가로서 모두에게 연민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명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아무래도 성환을 꼽고 싶네요. 그의 내면에는 상실의 경험이 가져다 준 따뜻한 부성이 자리잡고 있지요. 미옥을 향한 성환의 시선에는 잔잔하면서도 진솔한 애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부모가 되지 못한 제가 그런 인물을 형상화하는 작업이 쉽지는 않았네요.

공간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있으신 것 같아요. 『화성의 시간』 속 구축해 놓은 각각의 공간이 각자 다른 세계관 속에서 운용되는 세상인 듯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공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이 있다면 어디일까요? 혹은 아쉬운 생각이 드는 공간이 있다면 어디일까요?

소설에 등장하는 공간은 등장인물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인의 내면과 성격을 반영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 때문에 최대한 디테일하게 표현되어야 좋고요. 작가로서 버릇이나 습관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일상생활 중에 공간(구둣방, 세탁소, 구멍가게, 시계방 같은)을 유심히 관찰합니다. 손님에게 오픈된 장소라고 하더라도, 주인만의 내밀하고 사적인 곳이 있기 마련이죠. 특히 작업 공간이 더욱 그러한데, 손때 묻은 도구들과 휴대용 라디오, 돋보기안경, 계산기 등을 보며 주인에 대해 혼자 상상하곤 합니다.

『화성의 시간』에 대해 얘기를 하자면, 디오라마가 있는 공간은 그대로 오두진의 황폐한 정신 세계를 상징하지요. 창에 두꺼운 방범 창살이 있는 미옥의 방은 그녀의 고립된 처지를 강화시켜 보여 주고요. 그에 반에 민간조사원 사무실은 다소 특색이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드네요. 노년을 바라보는 성환의 고적한 심사를 드러내는 장치가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화성의 시간』을 읽으며, 작가님께서 음악, 미술 등의 예술 분야에도 조예가 깊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작품을 쓰기 위해 주로 다른 예술 분야를 통해서도 영감을 받는 편인가요?

과분한 칭찬을 해 주셔서 부끄럽네요. 솔직히 예술 분야에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다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지요. 흥미를 당기는 전시회나 공연이 열리면 꼭 찾아가고요(현재는 코로나 때문에 자중하고 있지만). 평소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기도 하죠. 그렇게 얻은 잡다한 지식이 글을 쓸 때 많은 도움이 되곤 합니다.

『화성의 시간』에는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민간조사원, 홍보대행사 대표, 보험조사원, 대학교수, 밀리터리 매장을 운영하는 사람 등 여러 직업군의 사람들이 등장하여 사건의 전말을 보여 주는데요. 이러한 직업인들의 특징을 소설 속에서 그려내기 위해 하신 특별한 노력이 있나요?

소설의 주인공이 민간조사원인만큼 현직에 계시는 분을 만나 보았습니다. 중년 남성이었는데, 정년퇴직한 뒤에 시작했다고 밝혔지요. 민간조사원이 되기 위해 대학교의 평생교육원에서 범죄수사학, 심리학, 소송법 등을 배우며 자격증을 땄고요. 대화를 나눠 보니 몇 가지 사실에 놀라게 되었습니다. 첫째, 활동 영역이 아주 넓더라고요. 교통사고, 기획부동산 사기, 실종자 찾기, 의료사고 등 사회문제 전반을 아울렀습니다. 두 번째는 수임료가 짐작보다 굉장히 높았습니다. 게다가 일에 따라 별도로 인센티브까지 붙고요. 그런데 자신에게 남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진행비가 많이 든다고 합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느냐고 묻자, 사이비 종교단체에 빠진 아이를 찾아내어 부모에게 인도한 일을 꺼냈습니다. 해결까지 5개월 정도 걸렸는데, 종교단체 측에서 위협을 가해 아찔했던 순간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사건조사 노하우에 대해서는 부지런함을 꼽았습니다. 아무래도 수사권이 없다 보니 애로사항이 있을 수밖에 없어, 그 해결책으로 발품을 팔며 최대한 많은 참고인을 만난다고 설명하더라고요. 여기서 중요한 게 사람을 대하는 요령인데, 식사나 술을 대접하며 환심을 산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분은 민간조사원이라는 직업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영역 안에서 일을 하고, 그게 흥신소나 심부름센터 같은 음성적인 쪽과 명확히 구분되는 지점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도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비슷한 인식에 머물러 있어 아쉽다는 심정을 드러냈습니다. 헤어질 무렵에는 제게 소설에 민간조사원의 이미지를 잘 그려 주길 부탁하기도 했죠.

작가님께도, 무언가를 위해 견뎌야 했던 『화성의 시간』이 있으셨나요? 있다면 그 시간을 메웠던 강렬한 감정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사실, 그런 시간은 누구나 겪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을 채우는 감정은 저마다 다르겠지요. 절망이나 분노일 수도 있고, 공허와 증오일 수도 있을 겁니다. 어쩌면 깊은 회한일 수도 있겠죠. 얼마 전 텔레비전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노량진 학원가의 젊은이들을 보았는데, 언제 합격할지 모를 시험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 모두 화성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 시간을 지배하는 건 암담함과 불안이 아닐까요. 

저는 대학 시절(문예창작과)의 휴학 기간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제 자신이 동기들보다 수준이 한참 떨어진다고 느껴, 독하게 마음먹고 자취방에 틀어박혀 1년 동안 습작에 매달렸지요. 당시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았는데, 외로움을 견디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우울증까지 찾아왔죠. 한 가지 고백하자면, 소설의 문미옥 모습에는 그때의 제 기억이 투영되어 있는 것 같아요.




*유영민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첫 장편소설 『오즈의 의류수거함』으로 제3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로 『헬로 바바리맨』이 있고, 참여한 소설집으로 『십대의 온도』, 『마구 눌러 새로고침』 등이 있다.



화성의 시간
화성의 시간
유영민 저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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