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으로 다가온 4차 산업혁명 시대. 머지않은 미래에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인간들을 위해 만들어진 로봇, 그중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로봇이 있다면 어떨까? 예술의 영역이 로봇들에게 금기시된 시대이지만, ‘로봇-5089’는 자신에게 ‘팬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진정한 예술을 위한 고통을 꿈꾼다. 한편, 학교 폭력으로 마음의 상처를 가진 열 살 소년 ‘지동운’은 로봇이 되어 현실의 고통을 잊고자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두 인물이 서로를 위하는 마음만으로 친구가 되고, 각자 다른 방향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 『팬이』다.
서로 다른 모습이어도, 각자 목표가 달라도 둘은 친구가 되어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다. 또 타인을 위한 마음을 갖게 되며 성장한다. 세상에 어울리지 못하는 두 ‘모난 돌’의 가슴 따뜻한 성장기를 그려낸 김영리 작가와 함께 나눈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팬이』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마치 한 편의 웹툰, 영화를 보는 듯 장면 장면이 그려지는 작품이었어요. 『팬이』라는 작품은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나요?
그 첫 출발은 ‘뮤즈’였습니다. 뮤즈는 ‘시인과 예술가들에게 영감과 재능을 불어넣는 예술의 여신’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몇 년 전, 우연히 신문 기사에서 저명한 예술가 옆에서 뮤즈로 활약한 이들의 모습을 본 후 저는 뮤즈란 무엇일까 고심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저는 제가 뮤즈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에게 뮤즈는 외롭게 분투하는 영혼을 도와주는 예술의 신이었습니다. 홀로 글을 쓰면서 외로웠고, 불투명한 미래를 의심했고, 나는 안 될 거라며 스스로가 만든 사각형 안에 갇혀 있던 적이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철저하고 처절하게 혼자 하는 일임을 알면서도 누군가 저를 도와주기를 바랐습니다.
누군가 못난 나를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누군가 나를 제발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갈망으로 시작한 꿈을 현실에서 이루고 싶어서 글로 옮겨 쓰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상황에 다른 모습이지만, 팬이, 워리, 그리고 위술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홀로 제 삶과 싸우고 있었고 또한 지독히 외로운 이들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뮤즈가 되어주면서 세상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갈 힘을 얻기를 소망했습니다. 뮤즈는 그리스 신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거창하고 화려한 여신이 아니라, 바로 우리 옆에 있는 친구가 아닐까요. 팬이가 워리를 만나고, 워리와 팬이가 다시 위술을 만나 서로를 도와주는 친구가 되어준 것처럼, 저는 우리 모두가 서로의 뮤즈가 되어주고 또 친구가 되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팬이’와 ‘워리’는 리셋을 거부하며 고통을 원하는 로봇과 고통을 잊고 싶어 리셋을 원하는 아이로,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듯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세상과 섞이지 못하는 ‘모난 돌’ 같다는 점이 닮기도 했어요. 이 두 인물을 설정하면서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이 있나요?
세상이 날린 어퍼컷에 무릎 꿇고 사람이 할퀸 상처에 아파할 때, 저에게 넌 작가니까 네가 겪은 힘든 일을 글로 풀어내라며 위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통은 고통이었습니다. 너무 힘들 때마다, 고통을 글로 치유하라는 친구의 그 조언에 때때로 참을 수 없이 화가 났습니다. 글 못 써도 좋고, 이해력 꽝이어도 좋으니까 그냥 매일 매순간 행복하게만 살고 싶었습니다. 제 마음에는 늘 두 개의 서로 다른 자아가 싸웠다가 화해했다, 얼었다가 녹았다 반복했습니다. 그로 인해 고통을 원하는 로봇과 고통을 잊고 싶어 하는 아이가 이 작품에서 서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 안의 욕망을 끌어내서 빚다 보니, 로봇 팬이와 아이 워리가 완전히 다른 것 같으면서도 또 많이 닮은 모습을 띠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고통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두 아이가 서로 우정을 쌓으며 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팬이와 워리의 우정을 쓰면서 고통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내야 하는 나쁜 것이 아니라, 어쩌면 고통 역시 나의 일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팬이와 워리처럼 저 역시 고통을 품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고 소망합니다.
팬이는 로봇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길이 있음에도 부모님의 반대나 현실의 한계 등으로 꿈을 포기하는 오늘날 청소년들의 모습을 비춘 듯했습니다. ‘팬이’처럼 꿈과 현실이 부딪혔거나, 자신의 꿈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청소년이 있다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강연을 갈 때면 저의 책을 들고 와 사인을 요청한 학생들에게 저는 늘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 연예인, 웹소설 작가, 선생님, 공무원 등등 요즘 청소년들은 저희 때보다 훨씬 더 다양한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저는 책 안쪽에 아이의 이름 아래로 그 꿈을 꼭 이루길 바란다고 길게 응원의 말을 적어주었습니다. 이 아이가 나중에 자라 오늘 이 시간을 되돌아보았을 때 자신의 꿈을 가슴에 품게 된 날이라고 행복하게 추억하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길게 늘어선 줄의 3분의 1 정도의 아이들은 꿈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꿈이 없다는 사실을 몹시 부끄러워했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말하며 네가 원하는 꿈을 꼭 찾기를 바란다고 적어주었습니다. 정말 저는 그 아이들이 자신만의 멋진 꿈을 찾기를 소망했습니다.
꿈이란 것은 장래 희망 같은 거창한 게 아니어도,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일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꿈이 없다고 말한 그 아이들이 언젠가는 자신의 꿈을 찾고 또 당당히 세상에 소리치기를 바랍니다. 안 될 거라고 지레 겁먹고 포기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현실이 녹록지 않은 건 맞지만, 그에 맞서는 나 자신 역시 가만히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꽤 단단할 테니까요. ‘나는 꿈이 있다’고 말하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뀌지 않을까요. 어쩌면 세상은 바뀌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바뀌면 이제까지 보던 평범하고 지루한 모든 것이 총천연색으로 생생하게 바뀔 테니까요. 그리고 어쩌면 나의 꿈으로 세상이 바뀔지도 모릅니다. 청소년들의 작은 꿈이 모이고 모여 세상을 더 찬란한 빛깔로 바꿀 거라 믿습니다.
10살 소년 워리, 18년 된 로봇 팬이 곁에는 행위예술가 할머니 위술이 있었지요. 두 아이와 할머니의 조합이 신선했어요. 위술의 나이를 노년으로 정하신 데 이유가 있었나요? 또, 사용한 알루미늄 포일을 뭉쳐 던지는 ‘똥’이라는 이름의 행위예술 등 위술의 예술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위술의 예술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으셨던 것은요?
오랫동안 외로움 속에서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예술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위술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고통을 켜켜이 쌓인 시간으로 표현하기 위해 위술의 나이를 노년으로 정했습니다. 행위예술로 포장했지만 사실 위술의 그 이상한 행동은 자신을 좀 보아달라는 외침이 아니었을까요.
내가 너무 힘들어서 지금 이렇게 쓰러지기 직전이니까, 날 좀 보라고. 욕이라도 좋으니, 날 좀 봐달라고. 때때로 어떤 예술은 외로움에 지친 예술가가 사람들에게 보내는 SOS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팬이가 위술에게 그러했듯, 누군가의 침묵 속에 담긴 간절한 외침을 듣게 된다면 저 역시 주저 없이 행동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수잔, 수젼에 대한 반전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학교 폭력 피해자인 자녀의 고통이 워리와 부모님의 이야기 속에 잘 녹아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학부모들에게 혹시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제가 글을 써야겠다고 처음 마음먹은 것은 열두 살 때였습니다. 그때 전 학교에 가기 싫었습니다. 저와 친했던 아이들이 제가 전학생을 왕따로 만드는 놀이에 함께하지 않겠다고 하자 갑자기 전학생에서 저로 타깃을 바꿨습니다. 그들은 제가 지나가면 욕을 하고 나쁜 소문을 퍼뜨리고 따로 학교 뒤쪽으로 저를 불러서 구석으로 몰았습니다. 그 모든 것은 은밀하게 이루어졌고 학교 선생님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도 몰랐습니다. 오직 저와 그들만이 아는 일이었죠.
그때 전 그들 모두에게 복수하기 위해 나중에 커서 꼭 제가 당한 일을 글로 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온 세상에 다 말할 거라고. 그때부터 복수하듯 매일매일 일기에 저의 감정과 다짐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기가 없이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에라도 털어놓아야 했습니다. 일기를 한참 쓰던 어느 날, 저는 일기에 쓰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같은 반 아이에게 더듬더듬 털어놓았는데, 그 친구가 교실 뒤편에서 저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제 편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때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만약 아이가 힘든 순간을 겪고 있다면, 그 아이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을 믿고 함께해줄 친구가 필요합니다. 그런 또래 친구가 지금 아이 곁에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부모님이 친구가 되어주세요. 어두운 터널을 걷고 있는 아이에게는 그 손을 꼭 잡고 함께 걸어줄 친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할 테니까요.
만약 작가님이 워리가 바라던 대로 ‘리셋’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면 어떨까요? 사람과의 관계, 취미, 일 등등 ‘리셋’하고 다시 시작해보고 싶으신 부분이 있으신지, 아니면 팬이처럼 리셋을 선택하지 않으실 건지 궁금해요.
만약 리셋 버튼을 누를 수 있다면, 저는 모든 것을 지우기보다는 스무 살 때로 돌아가서 새로운 도화지를 받아서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 저는 제 인생과는 좀 거리두기를 하며 지낸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무언가를 위해서 나를 깎고 태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 스스로에게 더 집중하고 나 자신을 더 아끼고 싶습니다. 그때보다는 조금 더 안정된 지금의 내가 건너가 스무 살의 나를 꽉 안아주고 더 사랑해주면 좋겠네요. 괜찮아질 거라고 등도 좀 두드려주고.
음, 근데 이게 리셋이 맞나 모르겠네요. 워리가 바란 건 특정한 시기로 되돌아가는 타임머신이 아니라 모든 것을 지우는 리셋이었는데 말이죠. 그렇다면, 전 리셋에 있어서는 워리보다는 팬이 입장인 것 같습니다. 늘 행복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내가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니까요.
『팬이』를 만난 청소년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저에게 그러했듯이, 팬이가 여러분에게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김영리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제10회 푸른문학상 미래의 작가상, 2016 청소년이 뽑은 청문상 등을 수상했다. 작품으로 판타지 소설 『시간을 담는 여자』와 청소년소설 『나는 랄라랜드로 간다』 『치타 소녀와 좀비 소년』, 동화 『표그가 달린다』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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