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의 주인공 건수는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끝나던 날, 학교에 가지 않고 아빠가 살고 있는 병원에 간다. 아빠가 보고 싶어서가 아닌, 그와 같은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듣는 약이 하나도 없는 병…. 낙심한 건수는 마치 방학숙제를 하듯 하루하루 자신과 같은 병으로 죽어간 작가들의 책을 읽으며 병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3년 만에 다시 만난 아빠와 함께 지낸 지 보름쯤 되던 날, 새엄마가 찾아와 죽은 아빠를 데려가면서 건수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그런 그의 앞에 하루는 상복을 차려입은 여자, 강희가 나타난다. 알고 보니 그녀도 자신처럼 이곳에서 부모 중 한 사람을 잃었고, 또 자신처럼 듣는 약이 하나도 없다는 말에 건수는 강희가 자꾸만 궁금해진다. 삶에 대해 아무런 기대도 가지지 않던 소년과, 그의 앞에 나타난 소녀. 그들의 끝을 알 수 없는 긴 방학의 너머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 둘 다 살아남는 방법은 없을까?
작가님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서울 노원에서 한국식 나이로 아홉 살인 고양이 ‘연필’이와 사이좋게 살면서 1년에 360일에서 365일 가량 소설을 쓰고 있는 최설입니다. 주거래 은행은 신한은행이지만 응원하는 프로농구팀은 우리은행이고, 선수 중에선 박혜진 선수를 가장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박혜진 선수는 드라마를 쓸 수 있으니까요.
'2022 한경신춘문예'에 당선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방학』은 어떤 내용의 소설인가요?
남쪽 지방의 한 국립병원에 한 소년이 살고 있고, 듣는 약이 하나도 없어요. 그러다 신약의 탄생으로 하나가 생겼는데, 가격은 한 알당 6만 원이고 복용 기간은 2년이에요. 그래서 가난한 습작생을 엄마로 둔 소년은 별일이 없는 한 죽기로 되어 있었는데, 어느 날 별일이 생겨요. 신약 임상시험에 참여해 약을 공짜로 먹을 수 있는 행운이 찾아온 거죠. 근데 소년은 정체를 잘 모르겠는 자신의 마음 때문에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한 소녀를 그냥 저대로 둔 채로 혼자만 살고 싶지가 않아요. 그래서 방법을 찾고, 어떻게 하나를 찾아내고, 발각되는 순간 끝없는 방학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를 그 일을 결행하고, 그러다 시련에 빠지는 내용이에요. ‘추천의 말’을 써주신 김형중 평론가님의 말을 빌리자면, ‘살 것인가, 사랑할 것인가?’와 같은 시련에.
자전적 이야기가 녹아든 장편소설이라 들었어요. 쓰시며 만감이 교차하셨을 것 같은데, 어떤 마음으로 소설을 집필하셨나요?
이건 ‘작가의 말’로도 말했는데, 사실 이 소설은 2009년에 ‘소년의 일생’이라는 제목으로 썼다가 ‘대 실패’ 폴더에 넣어둔 것을 어떤 이유와 또 다른 이유 때문에 작년에 새롭게 손 본 거예요. 2009년 당시 저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에서 살고 있었는데, 소설 속 주인공 소년처럼 듣는 약이 하나도 없어 내일 당장 죽어도 별로 이상할 게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완성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썼었고, 그러한 조급함도 조급함이었겠지만 무엇보다 소설 쓰는 실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이른바 ‘거리두기’는커녕 내 피부나 마음에 달라붙어 있는 것들을 그대로 옮겨 쓰기에 급급했어요. 그랬으니 당시엔 ‘만감이 교차’했어도 꽤나 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거기서 만나 13년째 베프로 지내고 있는 수관이와 죽음의 문턱에 더 가까이 접근한 건 자기라고 우기면서 놀 만큼 ‘본의 아니게’ 거리가 생긴 터라, 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아니, 오히려 당시 나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죽어가게 했던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독자들을 몰입시키는 데 필요한 장치, 즉 살아 있는 디테일을 확보하기 위한 재료라는 생각에 당시의 나에겐 좀 많이 미안하지만, ‘많이 아파줘서 고맙다’는 마음으로 쓸 수 있었어요.
죽음을 앞둔 건수 앞에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소녀 강희가 나타났어요. 건수에게 행복과 시련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강희라는 인물로 어떤 걸 표현하고 싶으셨나요?
질문에 답이 들어가 있네요. 강희라는 친구에게는 참 많이 미안하지만, 애당초 그 친구는 건수에게 ‘행복과 시련을 동시에 가져다주기’ 위해 등장시킨 인물이에요. 아니, 등장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말이겠네요. 사실 저는 어떤 메시지나 교훈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소설을 쓰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럴 만큼 바르지도, 똑똑하지도 못하고요. 저는 누가 뭐래도 소설과 가장 가까이 있어야 하는 말은 ‘이야기’이고, 이야기가 가장 가까이 두어야 하는 말은 ‘재미’라고 생각하는 평범한 소설가로서, ‘이야기를 재밌게’ 하기 위해서라면 때로는 주인공을 ‘최선을 다해’ 괴롭힐 수밖에 없어요.
『방학』의 경우엔 이 역시 질문에 들어가 있듯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강희를 건수 앞에 데려다 놓는 것이었고요. 다만 비록 내 손끝에서 태어났지만 나의 간섭과 통제로부터 벗어나 있는 주체적인 존재로서 독자와 마주하길 원하는 강희의 입장도 생각해줘야 했어요. 바꿔 말하면 강희가 작가의 눈치 따윈 보지 않고 ‘살아서’ 움직이도록 도와줄, 아니 놓아줄 필요는 있었어요. 그래서 강희가 나로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선택을 했을 때, 그런 강희가 좀 너무하다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친구의 선택이 나의 상투성에서 비롯된 내 본래의 계획보다 이 이야기를 좀 더 재밌게 만들어 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건수에게는 참 많이 미안하지만, 그 친구가 하는 대로 옮겨 쓸 수밖에 없었어요. 그게 다예요.
소설 속 주인공 건수처럼 삶과 사랑 중 택해야 한다면, 어떤 것을 택하실 건가요?
세상 쉬우면서도 세상 잔인한 질문이네요.(옅은 웃음) 당연히, 삶을 택하겠죠. 만약 내가 건수와 같은 병에 걸린다면, 아니지, 나 같은 경우는 ‘재발한다면’이 맞겠네요. 아무튼 그렇게 된다면 그 병의 특성상 내가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속도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대신 칼에 찔리거나 대신 차에 치이거나 해서 죽음으로 직행하는 사람들의 속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느릴 테고, 그 말은 곧 생각할 시간이 많이 주어져 버린다는 뜻일 테니까요. 내가 하는 한, 우리 어른들이란 대개 생각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자신보다 소중하다고 여겨왔던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자신의 뒤편으로 옮겨두기 마련이니까요.
소설 집필 후 요즘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여자의 집 2’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면서 보내고 있어요. 작년 신춘문예 마감 날 『방학』을 부치고 그길로 우체국 바로 옆에 있는 커피빈에서 쓰기 시작한 단편인데요, 넉 달이 다 돼 가는데 아직 반밖에 못 썼어요. 『방학』을 신춘문예에 응모했을 당시의 원형 그대로 세상에 내보내는 게 저보다 운이 조금 부족했던 분들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걸림돌이 될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두는 것은 소중한 시간을 써가며 내 글을 읽어주실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기 때문에 『방학』 속 모난 부분을 다듬는 데 ‘여자의 집 2’에 쓸 에너지를 거의 다 써버렸거든요.
노민정 편집자님이 탁월한 예민함으로 발견해주신 허점을 역시나 그분의 뛰어난 두뇌에 힘입어 무사히 메우는 것으로 『방학』에서 손을 완전히 뗀 뒤로는 그간 고생한 내가 좀 기특해 보여서 평소의 반만 쓰면서, 그러니까 하루에 2시간 반 정도만 쓰면서 수관이랑 맛있는 걸 먹으러 다녀요.
얼마 전엔 삼천포에 살던 시절, 서태지 9집 컴백 콘서트를 보러 서울 왔다가 진정한 평양냉면이 뭔지 가르쳐주겠다는 수관이를 따라 들어간 우래옥에서 한 번 맛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5권짜리 보르헤스전집보다 비싼 그 1인분 가격에 옆에서 먹는 걸 구경만 해야 했던, 그래서 그런 나를 다독이기 위해 ‘오늘의 방문목적은 어디까지나 진정한 평양냉면이 뭔지 배우는 거니까 대신 저건 내가 당선되면 쏠게’라는 약속 정도는 하게 만들었던 생등심을 8년 만에 쏠 수 있었어요. 물론 1인분씩만 먹었지만.
독자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다음엔 더 잘 쓸게요.
*최설 1977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통영, 하동, 삼천포에서 자랐다. 2022년 한경신춘문예에 『방학』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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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리
2022.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