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색으로 어린이의 단단한 마음을 그리는 작가 휘리의 새 그림책 『잊었던 용기』가 출간되었다. 긴 겨울 방학이 지난 뒤 친구와 서먹해진 주인공이 우정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애틋한 시간을 담았다. 유년을 지나는 아이들의 여린 감정을 포착하여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으로 인물의 감정 변화를 표현했다. 작은 용기로 소중한 우정을 꽃피우는 어린이의 모든 순간에 작가의 온기 어린 시선이 동행하며 뭉클한 여운을 남긴다. 새 학기를 맞아 친구 관계 고민을 안고 있을 많은 어린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다정한 이야기이다.
신작 『잊었던 용기』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화사한 봄날에 꼭 어울리는 그림책이에요. 어떻게 시작하게 된 작품인지 궁금합니다.
『잊었던 용기』는 저의 어릴 적 기억을 그린 작품입니다. 우정을 지키기 위해 처음 용기 냈던 기억을 담고 있는데요. 원고는 문학 웹진 <비유>에 발표한 짧은 에세이였어요. 권나무의 '어릴 때'라는 곡을 들으면서 떠오른 어린 시절 기억을 써서 <비유>에 싣게 되었는데, 편집자님이 그 에세이를 그림책으로 만들어 보자고 제안하셨어요. 저는 제 글이 너무 개인적인 경험이기도 하고, 아무 사건도 없이 미묘한 갈등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해서 ‘이게 과연 그림책이 될까?’ 싶었어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에게 제 글에 담긴 경험을 들려줄 때마다 모두 공감하더라고요. 서먹해진 친구와 다시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다고 말해 주기도 하고, 어른이 된 지금도 친구와의 관계가 어렵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하고요. 그림책은 어른과 아이가 함께 보는 책이니까 이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겨울부터 이듬해 가을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 풍경을 통해 주인공의 심리를 섬세하게 담은 그림이 인상적입니다. 이번 작품에서 작가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표현하고자 하신 점은 무엇인가요?
글이 많은 책이 아니기 때문에 날씨, 계절, 인물의 표정 등 시각적인 표현으로 풀어낸 부분이 많습니다. 새 학기에 피는 목련과 개나리, 새로운 학년에 적응하기 시작할 때쯤 피는 벚꽃과 그즈음 내리는 봄비……. 우리 모두 매해 반복해서 만나게 되는 요소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감각 같은 것을 통해서 독자분들이 주인공의 시간과 감정을 함께 공감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주인공이 친구와 마주치는 것은 찰나의 순간이지만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도록 연출했어요. 배경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요. 주인공에게 닥친 갈등과 고민의 시간은 대개 글 없는 그림으로 표현되어요. 두 친구는 약 한 달 동안 서먹한 시간을 보내는데, 어른의 한 달과 아이의 한 달은 참 큰 차이가 있어요. 아이가 느끼는 길고 긴 한 달, 그 시간의 길이가 잘 전달되기를 바랐어요.
작품 속에서 주인공이 쓴 편지는 숨겨져 있는데요. 더는 인사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소중한 친구에게 어떤 문장으로 편지를 시작했을까 궁금해집니다.
주인공은 친구가 자신을 싫어한다거나, 다른 불편한 감정이 있는 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 공감을 구하는 문장으로 편지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안녕, 잘 지냈니? 우리가 어쩌다 인사를 하지 않게 되었을까?”와 같은……. 하지만 책 속에서는 의도적으로 주인공이 쓴 편지글을 공개하지 않았어요. 독자분들이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책을 읽는 모두가 자신만의 문장을 써 보기를 바랐어요. 같은 마음을 각자 다른 문장으로 풀어낼 거라고 생각해요.
작품 속에서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이 있을까요? 독자분들이 눈여겨봐 주셨으면 하는 장면이나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 알려 주세요.
장면마다 인물의 위치와 방향을 세심하게 고민했어요. 책을 들여다보면 처음에는 주인공과 친구가 각각 좌우 화면에 떨어져 있는데요. 갈등이 해소된 뒤에는 두 친구가 한 장에 붙어 있게 돼요. 처음에는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던 두 친구가 나중에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되고, 이야기의 진행 방향인 오른쪽으로 함께 나아가요. 그리고 반복해서 등장하는 장면이 몇 가지 있어요. 두 친구가 긴 겨울 방학이 끝난 뒤 처음 마주치는 장면, 서로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주고받은 뒤 다시 마주치는 장면은 같은 구도로 연출했어요.
나도 모르게 눈을 피해 버린 순간 그리고 다시 기회가 왔을 때 용기를 내는 상황이 완벽하게 똑같았으면 했어요. 주인공이 편지를 보내고 나서 기다릴 때, 혼자 있던 놀이터도 나중에 다시 등장해요. 같은 풍경으로 짝지어지는 장면들을 신경 써서 보면 재미있는 요소들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같은 구도, 같은 장소이지만 완전히 다른 상황이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요. 그림은 천천히 자세히 볼수록 보이는 게 많은데요. 작은 고양이, 나무 사이의 참새, 산책하는 강아지, 공원의 사람들 등 배경 속에 등장하는 존재들도 다양해요. 천천히 보시면 더 많은 것을 발견하실 수 있을 거예요.
작업 중 기억에 남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잊었던 용기』에는 놀이터, 운동장을 배경으로 놀이 시설이 종종 등장합니다. 실제 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는 시설들을 관찰했고, 또 오랜 기억 속에 있는 시설을 섞어서 그리기도 했어요. 처음 그린 초등학교 운동장 스케치에는 ‘정글짐’이 있었어요. 그런데 스케치 검토 과정에서 편집자님이 ‘최근에는 안전사고 문제로 정글짐을 설치하지 않는 추세라서 바꾸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주시더라고요. 전혀 몰랐던 정보라서 깜짝 놀랐고 어린이가 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여러모로 신경 써야겠다고 다시 한번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에세이를 그림책 언어로 바꾸는 과정이 있었어요. 짧은 에세이였는데도, 그림책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덜어낼 부분도, 고칠 표현도 더러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이끄는 핵심 문장을 유지하면서 어떤 어투로 풀어낼지 고민했어요. 예를 들어, ‘~했어요.’ ‘~하고 말았어요.’ 같은 선택지도 있었지만 독백하는 듯한 어투를 쓰기로 선택했어요. 그러는 편이 이야기를 쓰는 저에게도, 읽는 독자에게도 몰입이 더 잘 될 것이라는 판단이었어요. 이 과정에서 편집자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앞으로 다뤄 보고 싶은 주제나 계획 중인 다음 작품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잠’에 관한 작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잠드는 시간’을 주제로 추상 작업을 했고, 독립출판물로 화집을 내기도 했어요. 잠들기 전 고요한 시간을 표현한 그림들을 잘 다듬어서 ‘잠’에 대한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표현해 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잊었던 용기』를 만드는 데 2년의 시간이 걸려 2022년 봄에 독자 여러분과 드디어 책으로나 만나게 되었습니다.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20년 초였는데요. ‘학기가 시작되면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를 오가며 아이들도 관찰하고 자료도 많이 모아야지’ 하고 두근거렸는데 팬데믹으로 인해 아이들은 등교하지 못했고, 저도 굳게 닫혀 있는 교문을 보는 날이 많았어요. 집 근처에 있는 동네 놀이터에도 아이들 발길이 뚝 끊겼고, 타지 못하도록 묶어 둔 그네를 보고는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이제 ‘일상 회복’을 이야기하며 하나씩 다시 시작하는 분위기인 것 같아요. 감염병과 함께한 2년의 세월이 꼭 긴 겨울 방학처럼 느껴집니다. 긴 시간이 지나갔고 그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을 거예요. 그래도 보고 싶었던 누군가가 있다면 용기 내서 손을 흔들어 보았으면 해요. 이 책이 용기의 시작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휘리 그림책 『허락 없는 외출』, 『곁에 있어』, 『잊었던 용기』를 쓰고 그렸습니다. 그림 에세이 『위로의 정원, 숨』을 지었고 그림을 그린 책으로 『어둠을 치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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