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정멜멜 “우연의 장면들이 좋아요”
아무리 준비를 해도, 철저하게 계획을 짜도 우연히 나오는 순간들은 늘 생기게 마련이고 항상 그런 장면들이 좋아요. 그래서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한다기보다는 약간의 느슨함으로 우연을 준비하기도 해요.
글ㆍ사진 임나리
2022.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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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을 붙드는 사진이 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사진. 보이지 않는 이야기와 분위기까지 담아낸 사진. 최근에는 그 사진들 옆에서 같은 이름을 발견할 때가 많았다. 사진작가 정멜멜. 그와 함께 작업했던 이들은 굳이 묻지 않아도 감탄과 신뢰의 말을 쏟아냈다. ‘찍는 사람 정멜멜’에 대한 호감과 호기심이 커져갔다. 작가의 첫 번째 에세이 『다만 빛과 그림자가 그곳에 있었고』를 펼쳤다.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 이야기가 있었다. 사진가가 되기까지 지나온 시간들이, 사진을 찍는 순간의 마음들이 있었다. 지난 여행들의 아름다움도 있었고,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경험한 많은 일들도 있었다. ‘참 묘한 일’ 같기도 한 이야기였다. 사진으로 돈을 벌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누군가가 보는 앞에서 셔터를 누르는 자신의 모습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사진가가 됐다는 것은. ‘생선구이를 파는 술집’을 떠올리며 시작했는데 사진 스튜디오가 됐다는 이야기 역시도. 하지만 작가는 말한다. “살다 보니 전혀 예상도 못 했던 길이 내 앞에 나타났다고 생각했지만 좋아서 계속하는 일들이 나를 데려다 준 셈이었다.” 문장은 이어진다. “무언가를 지치지 않고 좋아해왔다는 것 자체도 내가 가진 큰 재능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사진으로 할 수 있는 일

“글을 쓰는 것이 내게 사진을 찍는 일만큼 익숙하고 즐거운 일은 아니었지만, 사진을 찍는 일보다 나의 윤곽선이 뚜렷하지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쓰셨어요. 글을 쓰면서 스스로에 대해 더 알게 되었거나 더 명확하게 자신을 드러내게 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일로서 사진을 찍는 건 철저하게 타인에게 집중하는, 혹은 타인을 위한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카메라 뒤에서 누군가를 바라보는 게 익숙했어요. 일이 아닌 이유로 사진을 찍을 때는 많은 말들이 함축된 이미지들에 기대거나 도망갈 수 있었어요. 때론 명확하지 않아도 그만이었고요. 그러나 시선을 제게 가져다 대는 일, 구체적인 언어를 빌려다 나를 설명하는 일은 무척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알아가는, 알아갈 수밖에 없었던 계기였다고 생각해요.

첫 장은 ‘엄마’에 관해 쓰셨습니다. 이 책의 시작을 엄마 이야기로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있나요?

일하는 마음의 근원에 대해 생각하고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늘 엄마가 있었어요. 한 살 한 살 엄마의 나이에 가까워지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들이었고요.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는데, 아무래도 쉽게 꺼낼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보니 오히려 시원하게 처음부터 지르고 가자고 생각했어요.

대학생활의 유일한 낙이 사진이었다고 하셨어요. 취직한 후에도 사진 찍을 시간이 없어서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꼈”다고요. 사진이 작가님의 숨통을 트여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자유로움 같은 걸 느끼시는 걸까요?

그 이유는 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왜 사진을 찍고 싶어 했는지, 지금도 찍고 싶어 하는지, 그토록 해방감을 느꼈는지, 찍을 수 없을 때는 그 시기가 가혹하다 느꼈는지 아직도 의문이에요. 확실하게 알았으면 덜 돌아왔을 텐데 잘 몰라서 빙빙 돌아온 것 같기도 해요. 아직 잘 몰라서 더 해나갈 수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분명한 건 사진을 찍는 순간에서 자유로움만을 느끼지는 않는데도 계속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네요.

『다만 빛과 그림자가 그곳에 있었고』는 여백이 많은 책입니다. 이유가 있나요? 사진을 찍으실 때도 여백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페이지들의 여백은 북디자인을 맡아준 ‘스튜디오 고민’에서 해주신 결정을 따랐어요. 과감하게 여백을 남긴 사진을 늘 멋지다고 생각하고 본문 디자인을 처음 봤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책에 실린 사진은 모두 여행에서 촬영하신 건가요? 여행 이야기만큼은 글보다 사진으로 보여주기를 선택하신 건데, 이유가 있나요?

처음에는 사진이 없는 책을 원했어요. 이미지를 한 장도 넣지 않겠다고 미리 말씀드렸는데, 렌즈를 통해 보고 느낀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멀리멀리 떠났을 때의 이야기를 필연적으로 하게 되었고 제가 여행기를 읽을 때만큼은 사진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어요. 시드니의 아이스버그 이야기를 할 때 그곳에서 찍은 사진이 한 장 있고 없고가 완전히 다르다고 느꼈거든요.



“비하르 주의 자무이에서 비로소 사진을 찍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는데, 그때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요. 자무이의 어떤 순간이나 모습이 영향을 미쳤나요? 

자무이는 1인당 GDP가 최저 수준인 지역으로 인도에서 가장 빈곤하며 여성의 인권이 가장 낙후된 곳이었는데요. 미리 관련 내용을 듣고 갔지만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맞는지 혼란스러울 정도였어요. 당시 저는 불필요한 물건들을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세상에 더더욱이 불필요한 이미지를 보태고 있는 것이 아닌지 회의에 젖어 있는 상태였는데 가서 생각이 바뀌었죠. 그곳에서 제가 찍는 사진들은 지역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자립할 방법을 제공해주는 캠페인의 과정을 기록하는 일이었어요. 자무이에서 사진으로 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 생각을 했어요. 제가 그동안 해왔던 일들, 생각했던 일들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의 일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죠. 일정의 마지막 날,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에 찾아가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며 준비해 간 노트를 나누어줄 때 친구들에게 받았던 악수와 환대, 카메라 앞에서 지어주던 미소가 아직도 기억이 나요. 해 질 무렵, 자무이의 사람들이 조용히 호숫가의 윤슬을 가르고 나아가 소를 씻기던 장면은 정말 아름다웠고요.


우연의 장면들이 좋아요

스튜디오 ‘텍스처 온 텍스처(texture on texture)’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어떻게 보면 ‘계획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이’ 탄생한 스튜디오 같기도 한데, (웃음) 시작부터 지금까지 순항하고 있어요. 작가님과 동료들의 유연함이 비결일 지도 모르겠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계획해 봐야 소용없다”란 말을 좋아해요. 무계획적으로 막 살아버리자란 말이 아니라 언제든지 틀어질 수 있고 무슨 변수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걸 몸으로 체험해봐서인 것 같기도 해요. 계획해봐야 소용없으니 순간순간에 충실하자는 거죠. 사실 저희는 그동안도 지금도 순항과는 거리가 멀었고 여전히 계속 우왕좌왕하는 면도 없지 않아요. 유연함이라기보다는 에휴,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한 낙천성이 제게 조금 있는 편이에요. 준비성이나 꼼꼼함 같은 건 동료들이 좀 많고요. 그렇게 서로 기대서 가는 거죠.

작가님이 ‘우연이라는 것이 찾아오고 흘러가는 일, 그런 순간들이 쌓여서 싹이 트는 일’을 긍정하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떤가요? 사진을 찍을 때도 우연의 순간, 결과를 좋아하시나요?

우연히 찍은 결과물들이 거의 다라고 볼 수 있죠. 아무리 준비를 해도, 철저하게 계획을 짜도 우연히 나오는 순간들은 늘 생기게 마련이고 항상 그런 장면들이 좋아요. 그래서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한다기보다는 약간의 느슨함으로 우연을 준비하기도 해요. 예전에 손열음 피아니스트 인터뷰 촬영을 하며 현장에서 들었던 말이 너무 공감이 되었던 적이 있어요. 연주는 양면적인 데가 있어서 내려놓아야 붙잡을 수 있는 작업이라고, 아무리 이렇게 의도를 생각했어도, 전혀 다른 식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100%를 다 준비하지 않고 나머지는 맡겨야 한다고. 연주와 촬영은 완전히 다른 분야지만 저는 그게 어렴풋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더라고요.

어린 시절부터 ‘찍는 사람’ 외삼촌이 항상 옆에 있었고, 그 분을 보며 커왔다고 하셨어요. 사진사로서 외삼촌은 “사진으로 돈 잘 벌릴 때, 그래서 성취감이 있을 때 사진이 정말 재밌었어”라고 말씀하셨는데, 작가님은 어떠세요?

저는 ‘관종’이라서 결과물로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때 좋아합니다. 찍는 것도, 고르는 것도, 보정하는 것도 다 재밌는데 제일 재밌는 건 역시 잘한다 잘한다 할 때죠. 너무 솔직했나요?

“내가 사진을 찍는 데 가장 유리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누군가의 강점이 될 만한 부분을 잘, 그리고 재빨리 찾아낸다는 점일 것이다”라고 쓰셨습니다. 사진작가로서도 엄청난 재능이지만, 자연인으로서도 그런 것 같아요. 이런 강점은 어떻게 키우신 거예요? 혹시, 타고난 걸까요? (웃음)

타고난 면이 큰 것 같아요. 원래도 칭찬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요즘은 ‘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해서 굉장히 자제하고 있지만, 예전부터 즐겼어요. 사진 찍을 때는 눈으로든 입으로든 장점에 마음껏 찬사를 보낼 수 있으니까 좋죠.

가장 좋아하는 사진으로 마가렛 버크화이트 본인이 찍혀 있는 사진을 꼽으셨습니다. 하지만 이번 책에는 작가님 본인의 사진이 없습니다. (웃음) 이유가 궁금하고요. 작가님을 대표하는 (본인이 찍힌) 사진이 한 장 남는다면,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책날개의 저자 사진이 디자인을 해친다면 없는 게 낫다는 주의라 굳이 넣지 않았어요.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말이 딱 맞아서, 남들 사진은 매일 찍어주면서 제대로 된 제 사진이 없어요. 마가렛 버크 화이트처럼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일하는 사진이 남기를 바라는데, 가끔 찍혀 있는 장비가 무겁고 찍는 자세가 바르지 않아 그다지 멋지지 않더라고요. 자세 교정을 위해 필라테스를 받고 있습니다.




*정멜멜

여행과 사진이 취미인 사진가. 자연스러운 것, 아름다운 것, 때로는 무의미한 것을 담고 있다. 스튜디오 〈텍스처 온 텍스처texture on texture〉의 소속 작가이며 프린트 매체, 단행본, 웹 매거진, 기업의 광고 작업, 인터뷰 등 다방면으로 활동 중이다. 『타인의 삶 2』, 『레투어RETOUR』에 작품을 실었다.




다만 빛과 그림자가 그곳에 있었고
다만 빛과 그림자가 그곳에 있었고
정멜멜 저
책읽는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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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