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은 『운석사냥꾼』, 『피아노가 울리면』, 『독대』 등 스릴러, 미스터리, 드라마를 넘나들며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출간했던 김동하 작가의 신작이다. 작가는 이순신의 첫 출전인 옥포 해전부터 반격의 서막이라 할 수 있는 한산 대첩까지 총 여덟 번에 이르는 연승의 과정을 박진감 넘치는 소설로 풀어냈다. 당시의 해전을 눈에 보이듯 그린 생생한 묘사와 참전한 인물들에 대한 풍부한 심리 묘사를 통해, 사실적이면서 역동성이 돋보이는 역사 전쟁 소설을 완성해냈다.
또한, 해전 당시 사용된 무기와 함선들에 대한 설명부터 이순신과 그의 전우 장수들의 직함과 직위에 대한 설명까지 어렵지 않게 풀어주고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매일 시신들이 나뒹구는 참혹한 현장 속에서 인물들이 느끼는 비감한 고뇌를 풀어내는 데도 작가는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승리의 희열과 함께 안고 가야 했던 비극의 슬픔 또한 감각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한산』은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알려진 한산 대첩이 소재입니다. 그런데 한산 대첩에 이르는 과정 동안 일곱 번의 승리를 축적하고서야 가능했다는 사실은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입니다. 소설은 이순신의 첫 해전인 옥포 해전부터 일곱 번의 승리를 모두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완성된 이순신만을 보았는데, 소설을 읽다 보면 마치 첫 출전한 장수의 성장 과정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작가님의 의도였는지요?
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이순신은 수군 지휘관으로서의 경험이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순신은 36~38세의 시기에 전라 좌수영의 발포진 만호로 수군 복무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는 수군에 복무한 적이 없다가, 약 십 년 뒤인 47세가 되어서야 전라 좌수사로 임명됩니다. 그 무렵 이순신의 능력을 아끼던 류성룡이 우의정에 올랐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순신이 전라 좌수사로 임명되고 불과 일 년 만에 임진왜란이 발발했지요.
그러니 이순신으로서도 왜란이 발발하고 첫 출전을 앞둔 심경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어지러웠을 겁니다. 수많은 병서를 읽고 휘하 장수들과 전략 회의를 거듭했다고 하나 실전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했을 겁니다. 단 한 번도 같은 파도는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변화무쌍한 바다 위에서 치르는 해전 또한 그랬을 테지요. 이순신은 적과 싸우는 한편, 매번 자기 안의 의심과도 싸워야 했을 것입니다. 『한산』이 임진왜란 초기를 다루고 있는 만큼, 이순신의 이 같은 내면을 다루어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역사소설은 필연적으로 고증의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료를 분석하고 디테일을 상상하며 왜곡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애쓰게 되는데요. 그 과정이 험난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집필 당시 역사의 고증과 관련해 가장 공을 들였던 부분은 어떤 것인지요?
임진왜란 초기의 양상과 인물들, 소설의 주 배경이 되는 전라 좌수영의 공간과 해전이 벌어지는 장소들에 대한 조사는 필수였습니다. 『난중일기』와 『징비록』을 비롯해 현대에 와서 임진왜란에 대해 다룬 서적들을 읽어가며 필요한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기존의 다른 작가님들이 쓰신 이순신과 관련한 소설도 다시 읽어가며 용어들을 살펴보았고, 잘 이해가 되지 않거나 부족한 내용은 인터넷을 통해 추가로 조사하고는 했습니다.
여러 자료 가운데 『난중일기』를 우선시하고자 했는데, 이순신의 심정을 헤아리기에 가장 좋은 자료란 판단과 『한산』이 학술적인 글이 아니라 소설이란 점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출정 중에는 『난중일기』를 쓰지 않았고, 임진왜란 발발 초기에도 일기의 내용이 없어, 그 시기 전후의 일기를 보며 심정을 헤아리고자 했습니다.
이순신을 제외한 인물들의 경우에는 자료를 찾기가 더 까다로웠습니다. 간략한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상상력을 보태야 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전라 좌수영의 건물 배치는 여수 시청의 자료를 참조할 수 있었으나, 현재의 자료가 당시 상황과는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난감했습니다. 당시에는 없다가 이후에 지어진 건물들이 적지 않아,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집필 중에도 수정하고는 했습니다.
무엇보다 고심했던 부분은 전투 장면들입니다. 일부 기록들이 있다고는 하나, 당시 전투 장면을 고증만으로 재현하기는 무리가 따랐습니다. 군선의 구조를 비롯해 '초요기'와 '독전고', '나팔' 같은 도구를 상황에 따라 어떻게 사용하는지, 각종 무기의 사용 방식은 어떠했는지 고증을 그대로 생각해서는 장면이 그려지지 않는 경우들이 적지 않아 고증에 근거하되, 부족한 부분은 상상력을 발휘해야 했습니다. 특히, 보조선이나 소형선들은 같은 군선을 두고도 용어가 무척 다양한 데다 정확한 자료를 찾기 어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역사 소재의 작품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고 상상인지 독자가 알기 어려운데요, 그런 점에서 『한산』도 역사 팩션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역사 말고, 작가님이 꼭 다루고 싶었던 숨겨진 역사가 소설 속에 있는지요?
소설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무돌’이란 인물을 말하고 싶습니다. 무돌이란 인물은 정충신 장군의 어린 시절을 모델로 만든 인물입니다. 전라도 광주에 가면 ‘금남로’란 지명이 있는데 이 지명은 정충신의 군호인 ‘금남군’을 본뜬 것입니다. 정충신은 노비 신분이었던 터라 어릴 적 이름은 정충신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정충신이란 이름은 후에 백사 이항복이 지어준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본 소설에서는 무돌이란 이름을 작명했습니다.
조만간 개봉하는 영화 <한산>도 같은 소재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소설은 매체가 다른 만큼 강조해 보여줄 수 있는 부분도 다르리라 생각됩니다. 영화가 보여줄 수 없는 부분은 어떤 것이며, 그런 부분을 소설에 어떻게 담으려고 했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큰 차이라고 한다면, 영화보다 인물들의 내면을 면밀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부분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초기 상황과 배경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는 것도 있습니다. 당시 상황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소설이 더 유리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산』에는 이순신과 함께 참전한 많은 해전의 영웅들이 등장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이순신 말고는 몰랐던 훌륭한 장수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특히 독자가 눈여겨보거나 꼭 알았으면 좋을 장수들이 있는지요? 그들의 역할이나 활약상도 궁금합니다.
우선 순천 부사 권준을 눈여겨보시면 좋겠습니다. 권준은 전라 좌수영의 소속인 오관오포 중 가장 규모가 큰 순천의 부사였기에 전라 좌수영의 실질적인 이인자였으리라 추측됩니다. 평소 침착한 참모 같으면서도 당포 해전에서 왜장을 활로 쏘아 맞혔을 정도로 전투에서는 용맹했습니다.
또한, 권준은 『난중일기』에 가장 많이 나오는 인물 중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순신이 권준의 후임으로 전라도의 군관으로 부임할 당시, 권준이 짐짓 텃세를 부린 적도 있었는데, 이후 이순신의 됨됨이를 보고 당시 일을 계면쩍어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 두 사람의 관계는 계급을 떠나 서로에 대한 존경심을 바탕으로 한 것이고, 그래서 이순신 또한 다른 사람에게 말 못 할 고민을 권준에게는 털어놓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또 다른 인물로는 나대용을 말하고 싶습니다. 나대용은 흔히 거북선 건조를 총괄했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이순신의 부관으로서 매 해전에서 이순신 곁을 보좌하며 싸운 인물입니다. 그의 직책은 훈련봉사로서,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부터 전라 좌수군의 군사들을 정병으로 거듭나게 한 공 또한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산』에는 한산 대첩에 이르는 동안 일곱 번의 해전이 박진감 넘치게 전개되는데, 이 중 한산 대첩의 압도적인 승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는 해전이 있는지요? 있다면 어떤 면에서 그런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2차 출전의 첫 승전이었던 사천 해전을 꼽고 싶습니다. 고증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기는 하나 두세 척의 거북선이 첫 실전에 도입한 전투가 사천 해전이기 때문입니다. 이순신으로서는 조선 수군의 최대 전략 무기인 거북선의 실전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전투였고, 돌격선으로서의 거북선의 엄청난 위력을 실감하는 전투였기 때문입니다.
거북선의 활약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이순신이 세울 수 있는 전략이 대폭 늘어났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전의 판옥선들만으로 전투를 치를 때는 적선이 근접전을 벌이기 위해 빠르게 접근하게 되면 저지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돌격선인 거북선의 실용성이 입증되면서, 이후 전투에서는 거북선이 원거리 포격을 위한 일종의 바리케이드 역할을 해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한산 앞바다는 이순신의 바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집필 기간에 한산도에도 다녀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당시 이순신의 고뇌가 얼마나 깊고 무거웠을지 감히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한산 대첩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이 감당해야 했을 그 전쟁의 무게를 조금 설명해줄 수 있는지요?
이순신은 한산 대첩에 이르기까지 이미 일곱 번의 크고 작은 전투를 치렀습니다. 전투 자체가 주는 스트레스만 해도 엄청난데 지휘관으로서 느끼는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또한, 위기에 몰린 육전과 조정의 상황으로 인한 압박감과 초조함도 크게 와 닿았을 것입니다.
한산 대첩은 왜군으로서도 전면전을 노리고 전열을 정비해 치른 전투였고 이순신도 그런 한산대첩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한산 대첩은 조선군에게 반격의 서막이 될 수도 있는 전투였습니다. 때문에 한산 대첩 자체의 무게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지만, 당시 조선 수군은 한산을 넘어 부산진을 수복하는 목표를 세운 터라 한산에서의 전투를 최소한의 전력 손실로 승리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단순히 이기는 게 목표가 아닌 전투였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거북선에 대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겠는데요, 당시 거북선의 위력이 실제로 어느 정도였는지 궁금합니다.
거북선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하루 이틀 전에 극적으로 완성됐다고 합니다. 일종의 철갑선으로 돌격선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고 하죠. 적진의 대열을 흩트리는 것과 동시에 적의 대장선을 노려 전투 초기에 기세를 가져오는 역할을 했습니다.
거북선은 기본적으로 판옥선과 같은 골격을 사용하였는데, 선체를 이룬 목재가 단단한 소나무였습니다. 선체의 두께도 왜선의 두 배 남짓 되어 매우 튼튼했습니다. 또한, 함교가 용머리가 있는 다락 밑에 감춰져 있어 외부에서는 거북선의 함교를 찾을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거북선의 돌격장들은 적진 가운데서도 안전하게 지휘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여러 문의 포혈을 갖고 있었는데, 특히 용머리에 감춰진 포혈은 그 높이가 여타 포혈의 위치보다 높았기에 적선의 함교를 직격 할 수 있었을 것이란 분석이 많습니다.
*김동하 1982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광주대학교 및 동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12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녹」으로 당선되어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천스토리창작과정을 통해 장편소설 『운석사냥꾼』을 발표했고, 살인을 멈추기 위해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를 다룬 스릴러소설 『피아노가 울리면』, 가족의 붕괴와 재건을 소년의 시선으로 바라본 성장소설 『독대』를 차례로 출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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