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김지은 아동청소년 문학평론가, 한미화 출판평론가, 이상희 시인, 최현미 기자가 ‘이토록 다정한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
유령은 어디에나 살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 유령이 살고 있어요!』라는 이 그림책의 제목이 선뜻 놀랍지 않은 이유입니다. 일상의 농담 중에도 유령은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열어 놓았던 문이 인적 없이 스르르 닫힐 때 우리는 유령이, 또는 귀신이 그랬을 거라고 말하곤 해요. 문이 닫힐 만한 과학적 이유가 있었겠지만, 유령 핑계를 댑니다. 때마침 그때 바람이 불었을 수도 있고 선뜻 눈치채기 어렵지만 기울기의 차이라든가, 문에 어떤 힘이 작용하는 건물의 구조가 있어서 문이 닫혔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예기치 못한 일에 “깜짝이야!”를 외치던 사람들은 유령이 그랬다고 말하며 호들갑을 떠는 쪽을 선호합니다. “장난이야!”하면서 순간적으로 놀란 기분을 툭툭 털어버리는 거죠. 이럴 때 보면 우리가 유령을 두려워하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해요.
책을 받아들면 가장 먼저 두 개의 둥근 구멍이 보여요. 하나에는 종탑 위의 유령이 있고 문에 뚫린 두 번째 구멍에는 파랗게 질린 표정의 어린이가 서 있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화자는 누구일까요? “안녕, 잘 찾아왔네.”라는 첫 문장은 누가 한 말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아마 이 어린이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책장을 넘기고 독자는 그 유령의 집에 들어섭니다. 중앙 복도가 나옵니다. 흑백 사진은 휑한 공간의 느낌을 그림보다 생생하게 전달할 뿐 아니라 장소가 지닌 역사성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미지 하단을 보면 그림책에서는 보기 드문, 작은 글자의 주석이 달려 있습니다. “1760년에 지어진 이 멋진 저택에서 가장 눈에 띄는 훌륭한 장소이지요.”라고 되어 있어요. 호레이스 월폴 고딕의 『오트란토 성』이 출간된 1764년과 가까운 시기입니다. 최초의 고딕 소설로 불리는 이 무시무시한 소설은 난데없이 출현한 검은 투구가 영주의 어린 아들을 깔아뭉개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어린이의 희생이 이야기의 출발인 거죠. 우리가 고딕풍의 이 집에 혼자 살면서 말을 걸어오는 주인공 어린이를 예사롭게 지나칠 수 없는 이유입니다.
300년이 넘은 귀신의 집은 작가 올리버 제퍼스의 상상력 속에서 다정하고 흥미진진한 새 옷을 입습니다. 그는 이 한 권의 책을 위해서 45권의 참고 문헌을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공포 소설 중의 하나인 셜리 잭슨의 소설 『힐 하우스의 유령』(1959)이 주요 도서로 참조된 것 같습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리, 복도를 떠도는 유령, 벽에 적힌 낙서 같은 아이디어들은 너무 무섭지 않은 방식으로 이 그림책에 옮겨졌습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이 그림책을 다룬 서평에서 “이 책은 『힐 하우스의 유령』에서 위협적인 요소를 걷어내고 어린이를 위한 유쾌한 숨은그림찾기로 바꾸어 놓았다.”고 말합니다.
올리버 제퍼스는 이 책을 만들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유령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령이 나타나는 것’으로 만드는 일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반투명의 종이는 절묘하게 유령의 모습을 감추고 또 드러냅니다. 독자는 주인공 어린이와 함께 이 깜찍한 소동에 동참하여 속았다가 알아차리기를 반복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집에 유령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유령이 세 종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 집 자체입니다. 전체 구조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삐걱거리는 고택은 그 자체로 유령의 성격을 지닙니다. 두 번째는 하얀 천을 뒤집어쓴 유령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전혀 유령으로 보이지 않는 평범하고 어린 유령입니다. 저는 이 어린 유령이 책 속에 있고 우리를 장면마다 바라보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 추측합니다.
책속의 유령들은 귀엽고 엉뚱하고 제멋대로입니다. 가끔 혼자 남겨진 주인공 어린이를 보살피는 것 같은 따뜻함도 보여줍니다. 올리버 제퍼스는 오래된 집에 관한 책이나 건축 관련 자료, 부동산업체가 집을 팔기 위해서 내놓은 광고 속의 사진 등을 훑어보면서 콜라주에 쓸 장면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리모델링한 것으로 보이는 욕실의 인테리어나 한밤중 거실에 놓인 피아노의 연식, 원목에 조각한 서재의 책꽂이 등이 장면을 넘길 때마다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아! 유령!”이라고 외치면서 숨은 유령의 존재를 알아차립니다.
여름은 길고 무더위는 견디기 어려우며 우리에게는 더 많은 서늘하고 우아한 유령이 필요합니다. 윌리엄 볼컴이 1970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모하면서 작곡한 음악 ‘우아한 유령(Graceful Ghost)’과 함께 이 그림책을 감상하시기를 권합니다. 여러 연주가 있지만 제가 추천하는 것은 양인모와 홍사헌의 연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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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아동청소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