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직 의사』는 저자가 신장내과 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 다시 블로거 '닥터 키드니'가 되기까지의 변화를 담은 책이다. 그리고 환자로서, 엄마로서의 삶도 살아야 했던 어느 보통 의사의 이야기이다. 그 누구보다 환자의 아픔과 엄마의 고단함을 알기에 쓸 수 있었던 공감의 기록이다. 『봉직 의사』는 '을'의 이야기다. 자신의 병원이 아닌 월급을 받는 의사로서의 고단한 입장을 주저 없이 단정하게 토로한다. 봉사의 순수한 마음을 놓지 못하는 천상 의사지만, '봉직의'의 벽을 뚫고 나가보려 한다.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환자가 되었다는 고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환자가 된 경험이 작가님에게는 어떤 의미였나요?
삶의 이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병을 진단받았을 당시에는 속상하고 억울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의사가 되고 환자가 된 지 10년이 넘어서야 깨달았습니다. 의사가 된 것도 '나'로 인해서였고 환자가 된 것도 모두 '나' 때문이었다고요. 과거에는 환자가 되어 속상하다고만 생각했다면 지금은 아닙니다. 모든 것에 명암이 있듯 환자가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환자가 된 것은 분명한 어둠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누구보다 환자의 마음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환자들이 흔히 하는 "바쁘다" 핑계는 저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미 다 해봤던 변명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남들보다 건강하지 않다는 생각에 건강한 삶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삶의 모든 것에는 명암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의사로서 터닝 포인트가 있었다면 어떤 경험이었나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저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의사를 꿈꿔왔습니다. 진료실에서만 갇혀 있던 제가 글을 쓰며 좀 더 많은 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진료실 안에서만 도움이 줄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제 책이 세상으로 나온 지금이 바로 의사로서의 가장 큰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글쓰기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아무것도 몰라서 콩팥이 완전히 망가진 환자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사는 게 바빠서 간단한 혈액, 소변 검사 한번 받지 못했습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누군가는 아무것도 몰라서 환자가 됩니다. 그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내 글을 보고 도움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처음엔 타인을 위한 글쓰기였지만 언젠가부터 저를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모범 의사였지만 불량 환자였던 제 얘기를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건강한 줄 알고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고, 약을 잘 먹지 않았던 그때 그 시절의 저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약 잘 먹으세요"라는 뻔한 잔소리 보다 '제가 약을 제대로 먹지 않아서 그렇게 고생을 했답니다'라고 고백하면 누군가 약 하나는 잘 먹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길 바랐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역할로서의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작가님께서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삶의 태도나 가치관은 어떤 것일까요?
저는 병원에서는 의사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 아내, 딸, 며느리가 됩니다. 그 어느 것도 제게 소중하지 않은 역할은 없습니다. 그저 저는 제가 맡은 역할을 성실히 해낼 뿐입니다. 어디 저 뿐인가요. 40대의 젊은 환자는 병원으로 오면 환자가 되지만, 집에서는 초등학생 아들은 둔 아빠가 되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 각자가 맡은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 하기 때문에 세상이 혼란스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제가 가지고 있는 삶의 태도와 가치관입니다. 지금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도 제가 책을 쓴 작가이니 책과 관련된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가장 마음에 남는 환자와의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
작별 인사를 하지 못했던 환자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신장 내과 전문의로 일주일에 세 번, 혈액 투석을 받아야 살 수 있는 환자를 봅니다. 그 때문에 환자를 오랫동안 만납니다. 환자들에게 마지막 순간이 오면 미리 감지하고 요양 병원이나 다른 병원으로의 전원을 고려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나머지 치료 편안하게 받으시라고 작별 인사를 전합니다. 하지만 몇몇 분들은 어느 날 갑자기 오시지 않습니다.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받습니다. 그럴 때마다 인생의 유한함과 우리의 마지막 인사는 어땠는지 되짚습니다. 나의 환자들에게 안부 인사를 전하며 무사히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낼 환자들에게 조금 더 다정한 인사를 전하려고 노력합니다.
봉직 의사를 읽다 보면 '버티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작가님이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들은 어떤 것이었나요?
저의 환자들입니다. 의사가 된 이후로 저는 매일 버티는 환자들을 보아왔습니다. 아픔을 참고 버티는 환자들을 보며 저도 버티는 삶을 배웁니다. 오늘도 굵은 바늘이 피부를 관통하는 고통에 환자의 얼굴에는 인상이 잔뜩입니다. 일주일에 세 번씩 벌어지는 일입니다. 자주 받는 일이라고 해서 익숙해지는 고통은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가장 힘든 상황일 텐데도 의료진에게 여유있는 농담을 던지고 미소를 건넵니다. 저에게 고맙다고 말합니다. 환자들로부터 버티는 삶과 고통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여유를 배웁니다. 그들은 삶을 살아내는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저도 그들처럼 버티고 싶습니다. 살아지는 삶이 아니라 살아내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끝으로 독자들이 『봉직 의사』를 읽고 가져갔으면 하는 단어를 한 가지 정한다면 어떤 것일까요? 그 단어를 선택하신 이유는요?
'삶의 뒷모습'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타인의 뒷모습은 보지 못합니다. 지구에서는 항상 달의 앞 모습만 볼 수 있는 것처럼, 평생 서로의 한쪽 면만을 바라본 채 살아가지요. 그래서 자신의 시선에서 타인을 재단하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모든 삶에는 뒷모습이 존재합니다. 저는 삶의 이면에 대해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의사는 병원에서는 완벽을 추구하지만 가운을 벗으면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환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원에서만 환자일 뿐 사회와 가정으로 돌아가면 각자의 지위와 자리가 있습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삶의 뒷모습을 보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길 바랍니다. 이해와 공감을 통해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닥터 키드니 내과 전문의, 워킹맘이다. 매달 25일을 기다리는 봉직 의사다. 병원으로 출근하면 의사, 집으로 퇴근하면 엄마가 된다. 메디컬 드라마를 보고 의사를 꿈꿨다. TV 속 주인공들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꿈에 그리던 의사가 되었지만, 동시에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가 되었다. 진료실에서 벗어나 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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