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같은 일이 일어났다. 올해 나이 일흔넷 어르신께서 시집을 냈다. 천안에 사시는 조남예 여사가 그 주인공이다. 한글을 배운 지 불과 6년, 젊은 시절부터 갈무리해 둔 인생 속 시상들을 표현했다. 못 배운 슬픔의 너머, 사랑받은 사람이 예뻐진다는 인생의 통찰, 엄마로서의 가족에 대한 사랑이 골고루 버무려져 읽다 보면 입가엔 미소가 눈가엔 눈물이 고이게 만드는 시집 『자꾸자꾸 사람이 예뻐져』가 출간되었다.
김승일 시인은 이 시집을 만든 이유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살고 있는 각자의 아름다운 시인을 발견하는 데 있었다고 말한다. 시는 어려워 특별한 사람들만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한 권의 시집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그리고 그 시집에 담긴 감동적인 의미를 재발견해가는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한다.
조남예 시인의 책을 기획한 김승일 시인을 서면으로 만났다.
기적적인 만남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인의 꿈을 품은 어르신과 모두의 마음속에 시인이 살고 있다고 믿는 시인과의 만남이라니요. 김승일 시인님은 조남예 여사님과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작년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길목이었어요.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가제)'라는 다큐멘터리가 기획되면서 시집이 태동했어요. 젊은 날 품었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노년을 맞은 이들이 멘토링을 받아 청운의 꿈을 이룬다는 사연을 담은 다큐멘터리에 출판사 북크루와 제가 참여하게 된 것이지요. 시집 『자꾸자꾸 사람이 예뻐져』는 멘토와 멘티가 함께 만든 시집이에요. 시인의 꿈을 가진 노년의 멘티를 수소문한 끝에 조남예 여사님을 극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시는 시와 가까워지려는 속성이 있나 봐요. 시가 시를 서로 간절히 찾아 헤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소문의 순간들이었지요. 천안의 평생 교육원에서 6년간 초·중등 과정을 마친 조남예 여사님은 이전에 내신 요리책 『요리는 감이여』에 가장 자신 있는 요리법을 쓰듯 여사님의 인생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시로 풀어내고 싶어 하셨어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시인이 살고 있다는 저의 말에 용기를 내어 시인의 꿈에 다시 한 번 도전을 하신 것이지요.
6개월 동안 다큐 촬영과 시집 출간 작업을 함께 병행했다고 들었습니다. 기존의 시 창작 수업보다 살펴야 할 것들이 많아서 이번 수업이 과정이 무척 어려우셨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는 어떠셨나요?
쉽지 않은 여정이었으나 매번 새롭게 배우는 점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시인을 품고 산다고 생각했기에, 여사님의 마음속에도 고유한 시인이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그 시인을 만나러 가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었지요. 그러나 여사님이 한글을 익힌 지 6년밖에 안 되었다는 점이 저를 긴장시켰어요. 평소에 수강생 분들을 가르칠 때와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지요. 여사님의 입말과 글말을 일치시켜 나아가야한다는 어려움이 매 촬영, 매 수업마다 있었어요.
그러나 신기하게도 여사님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그 누구보다 시적인 데가 있었거든요. 서울에서 자신을 만나러 온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순수한 그 마음조차 시적이었지요. 그 순간 저는 안심이 되었어요. 아, 내가 이렇게 시적인 순간들을 잘 포착하기만 하면 되겠구나. 그것을 여사님께 어떻게 알려드릴 수 있을까, 그것을 어떻게 함께 시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 진심으로 고민하는 과정에서 한 편 한 편의 시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자꾸자꾸 사람이 예뻐져'란 시집 제목이 인상적인데요. 74년의 인생이 담긴 시 45편을 한데 묶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시집 제목을 짓기란 참 어렵잖아요. 이 제목,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인가요?
이번 시집은 여사님의 인생을 세밀하게 채록하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제가 여사님의 말씀 하나하나를 가까이에서 기록하려고 노력했지요. 통화를 할 때도 매번 녹음을 했어요. 그 녹음 파일을 들으면서 잠들 때도 있었지요. 6개월 동안 여사님과 한 몸이 되어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여사님과 통화를 하다가 "아이를 낳으면 자꾸자꾸 사람이 예뻐져"란 말을 포착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요. 그 순간 저는 시집의 제목을 이것으로 정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거기에 74년을 살아오신 여사님의 마음이 온전히 들어가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 마음이 담긴 언어들이 한 권의 시집을 꿰뚫고 지나가는 고유한 주제가 되리라 믿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사님과 함께 시집을 만들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화가 있을까요?
한 번은 촬영보다 집중적인 수업만을 하기 위해 천안으로 내려갔던 것이 있었어요. 정말 말 그대로 시 밀착 과외를 하러 갔었던 것이지요. 저와 다큐멘터리 PD님, 둘이서만 내려갔었는데요. 그날 솔직히 제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어요. 그 당시 다른 스케줄도 많아서 힘에 부쳤던 날이었어요. 그래도 어찌해요. 여사님의 시를 하나하나 다시 곡진하게 꺼내는 데 힘을 쏟아야했지요. 그런 저의 마음과 몸 상태를 어찌 아셨는지 여사님은 저희가 내려갈 때부터 맛있는 밥을 해놓겠다고 전화로 말씀하셨어요. 저는 그러지 마시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도 여사님은 따뜻한 밥 한 끼 꼭 대접해야 한다고 식사 준비를 하셨던 것이지요.
내려가 보니 맛있는 냉이 된장국과 수육, 그리고 각종 제철 반찬들이 준비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그날 말이에요, 여사님의 그 마음 따뜻한 밥이 아니었다면 저는 촬영을 잘 마치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 밥을 맛있게 먹고 정말로 힘을 내서 밀착 과외를 잘 마무리 했거든요. 전심전력으로 5개월을 달려오다 보니 제가 많이 지쳐있었던 것 같아요. 저의 고단함을 누구보다 잘 아셨던 여사님은 그의 마음으로, 따뜻한 밥으로, 기운을 북돋아주셨던 것입니다. 타인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여사님의 그 마음결 속에 여사님의 시들을 세상으로 나오게 한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요. 『자꾸자꾸 사람이 예뻐져』란 시집은 그런 마음을 동력 삼아 이 세상으로 걸어 나온 것 같아요.
이번 시집에서 김승일 시인님이 가장 좋아하는 시는 무엇인가요?
「엄마 반찬이 생각 안 나」 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시가 탄생한 것은 충남 논산에 있는 강경장에 실제로 가서 종일 촬영을 했기 때문이에요. 그날도 여사님과 몇 시간을 손 붙잡고, 팔짱끼고 다녔어요. 여사님의 어린 시절이 녹아 있는 강경장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였지요. 저는 강경장을 돌면서 여사님에게서 시도 끌어내야 했고, 대화도 해야 했고, 촬영에 협조도 해야 했어요. 그 어느 때보다 힘이 들었어요. 그래도 여사님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시의 본질에 대해서 더 깊이 느끼고 생각할 수 있었어요. 언어 이전에 사람에게 가닿는 시란 무엇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여사님의 시를 친밀하게 받아 적기 위해서 긴장을 늦추지 않았어요.
촬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는 에너지를 많이 써서인지 무척 배가 고팠어요. 그래서 그 다음 촬영을 자연스럽게 식사하는 것으로 정했지요. 강경장은 이백 년 전통의 유명한 젓갈 시장이기도 했기에, 젓갈 백반집으로 갔어요. 여사님과 겸상을 하고 식사를 하는데, 문득 질문이 하고 싶어졌어요. "여사님 이렇게 반찬이 많은데, 혹시 어머니가 해주시던 반찬 생각이 나시나요?" 그런데 잠깐의 침묵 이후에, 여사님은 엄마 반찬이 생각 안 난다고 하시는 거예요. 저는 그 순간 또 하나의 시가 덜컥 하고 제게로 쏟아지는 소리를 들었어요. 시집에 들어가 있는 시들이 그렇게 우연처럼 운명처럼 제게로 왔습니다. 여사님의 시는 울컥하면서 제게로 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야 할까요. 여사님의 말씀에 저도 그만, 젓갈 반찬 앞에서 먹먹해지고 말았습니다.
밴댕이젓 아가미젓 가리비젓
갈치속젓 토하젓 어리굴젓
오징어젓 황석어젓 낙지젓
명란젓 꼴뚜기젓 창난젓
이렇게나 많은데
엄마 반찬은 생각이 안 나
엄마 생각도 잘 안 나
엄마가 날 이모 집에 놓고 갔어
오빠들만 데리고
그건 잊히지가 않는가봐
할머니가 됐는데도
_『자꾸자꾸 사람이 예뻐져』, 「엄마 반찬이 생각 안 나」
시집 출간 기념회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현장에서 바라본 모습이 어떠했나요?
무수한 출간 기념회에 참석해봤지만 그날의 자리가 가장 강렬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여사님의 시집 출간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시집이 인쇄되어 나오는 날 진심으로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시집을 많이 쓰다듬었어요.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마음이 거기 담겨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 마음을 여사님도 아셨기에 무척 기뻐하셨고 감격스러워 하셨어요. 정말로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세상에 하나뿐인 출간 기념회였다고 생각해요.
출간 당시 예스24 시 부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시집에 대한 독자분들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그리고 앞으로 이 시집을 만날 미래의 독자분들께도 한마디 해주세요.
시집이 그렇게까지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낼 줄은 몰랐습니다. 쉽지만 감동적인 시집에 독자분들이 목말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많은 독자분들이 사주시고, 읽어주시고, 사람들에게 전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SNS와 블로그에도 정말 많은 리뷰가 올라왔어요. 다큐멘터리와 시집 모두 많은 분들의 도움과 사랑, 그리고 기다림과 헤아림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 시집을 함께 읽어주시고 함께 재창조 해주신 독자분들에게도 똑같은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 함께 읽어주실 미래의 독자분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먼저 보냅니다.
*조남예 1948년생, 고향은 충청남도 부어, 2남 1녀와 손주 8명을 두었다. 2019년 초등학력인정과정 졸업장을 받았고, 현재 충남교육청 중학학력인정과정학생이다. 김승일 시인을 만나 시를 쓰기 시작한 이후로 '사람을 자꾸자꾸 예쁘게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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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