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엄마는 1950년에 태어났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장장 72년 간 그녀가 사용했던 물건만 늘어놓아도 대한민국의 역사가 그려질 판이다. 그 중에서 21가지 물건을 골랐다. 『엄마와 물건』은 엄마랑 가까이 붙어 있던 놈들로, 엄마의 재미있는 경험들이 담겨 있는 놈들로 말이다. 전쟁둥이 엄마의 이야기, 저자가 혼자 듣기 아까워 글로 쓰고 열심히 다듬은 엄마와 물건들의 이야기를 엮어보았다. 이태리타월, 우산, 고무장갑, 전기밥솥, 손톱깎이 등은 도대체 언제부터 사용했을까? 처음에도 지금과 같은 형태였을까? 없을 때는 어떻게 했을까? 엄마와 함께한 이 물건들은 엄마의 삶,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1950년에 태어난 전쟁둥이 엄마와 함께 책을 쓰셨습니다. 저자님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글 쓰는 일을 하고요, 2019년에 책이 두 권 나온 이후부터 글쓰기 강의도 자주 다니고 있습니다. 엄마는 노인일자리사업으로 일주일에 2~3일 거리 청소를 하세요. 혼자 사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73세 할머니예요. 저는 이분의 둘째 딸이고요.
글쓴이가 엄마의 이야기를 담아낸 것이 인상적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책을 쓰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9년 전 엄마네 집 근처로 이사 오면서 같이 시장에도 가고 종종 산책을 했어요. 엄마나 저나 말이 좀 많은 편인데요. 가끔 엄마가 이해 안 가는 말이나 행동을 할 때가 있는 거예요. 예를 들면 가로수 가지치기를 해서 거리에 쌓아둔 걸 볼 때마다 "아깝다"면서 엄청 아쉬워하시고, 우리 집에 고무장갑을 열 개씩 사다 놓고 가시기도 하고요. 제가 원치 않아도 말이에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자꾸 반복되니 왜 그럴까 궁금해졌어요. 그러니까 처음엔 약간 짜증이 나서 물어봤던 거죠. 버려진 나무랑 고무장갑에 집착하는 이유가 뭐냐고요. 그러면서 처음으로 자세히 듣게 된 거예요. 엄마 마음에 맺혀 있는 장면과 사연들을요. 일단 너무 재밌었어요. 그 이야기 속의 엄마는 제가 알던 엄마와 꽤 달랐고요.
40년을 만나도 모르는 게 있다는 게 놀라웠고, 엄마들이 묵묵히 수행해 온 노동의 양과 종류가 어마어마하다는 걸 알고는 충격을 받았죠. 왜 난 그동안 엄마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을까, 미안해지더라고요. 잘 모르니 그 삶에 의미나 가치를 부여해 본 적도 없었을 테고요. '어머니의 한 많은 삶', '어머니는 위대하다' 어쩌고 하면서 퉁치고 넘어갈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고, 엄마의 목소리 그대로 현대사에 또렷이 새겨 넣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어요. 엄마는 농업 중심의 환경에서 나고 자라 청년 시기에 산업화 시기를 고스란히 겪은 세대잖아요. 그래서 엄마의 청년 시절에 새로 생긴 물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죠.
책에서 다룰 물건 21가지는 어떻게 결정하셨나요?
그냥 눈에 보이는 건 다 소재가 되었어요. 모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없으면 아주 불편한 물건들이잖아요. "저거 없을 땐 어떻게 살았어?"로 질문을 시작해보고 이야기가 줄줄 나오면 글이 되는 식이죠. 단, 집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너무 범위가 넓어지니 집안의 물건으로 한정했어요.
『엄마와 물건』은 그 당시 물건을 어떻게 썼는지에 대한 '엄마'의 설명이 무척이나 재미있고, 그 물건에 관한 옛날 신문 기사도 볼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 원고를 어떻게 쓰셨는지,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물건이 정해지면 가장 먼저 신문에서 자료를 검색했어요. 옛 기사 수백 개를 읽어야 하니 하루나 이틀이 꼬박 걸려요. 흥미로운 기사들은 따로 저장 해놓고 내용을 숙지한 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요. 엄마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대로 자판으로 기록을 하죠. 질문하고 답을 들으면서 동시에 신문 기사 내용과 엄마의 기억과 경험이 얼마나 같고 다른지도 살펴야 해요. 인터뷰가 끝나면 글을 쓰기 시작해요. 그러다 궁금한 게 생기면 또 추가 인터뷰를 하고요. 서너 시간 통화는 기본이었어요. 얼마 전, 책이 나온다고 말씀 드리니 "나를 들들 볶은 책이 드디어 나오는구나!"라고 하시더라고요.
어머니가 목격한 21가지 물건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이 엄마들의 물건사가 가지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요?
손톱깎이나 고무장갑, 모기약처럼 꼭 필요해서 생긴 경우도 있고, 김치 냉장고나 양변기처럼 생활 양식이 바뀌어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된 물건도 있는데, 이게 불과 50년 안팎의 기간에 생긴 변화란 말이에요. 그 이전에도 분명 뭔가로 그 역할을 대체 했을 텐데, 그건 누가, 어떻게 했을지 궁금해하지 않고 살고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차나 전철이 없을 땐 어떻게 다녔고, 인터넷이 없을 땐 어떻게 소식을 주고 받았는지 우리는 거의 다 알아요. 레트로가 인기 끌면서 관련 동영상도 많고요. 그런데 생활사 영역, 그중에서도 여성들이 거의 전담하다시피 한 분야는 너무 모르는 게 많더라고요. 가사노동을 노동으로 여기지 않은 탓인 거 같았어요.
여성이 집안일 하는 걸 두고 "집에서 논다"고 표현해왔잖아요. 청소, 빨래, 장보기, 식사 준비, 설거지, 출산, 양육, 돌봄, 위생, 간호, 간병, 건강, 교육, 그 외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역할을 여성들에게 강제로 떠맡겨 놓고는 보상도 전혀 해주지 않았죠. '식구들 밥 차려주는 일'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조차 없어요. 여성들의 노동을 세분화해 이해하는 게 아니라 '엄마들의 일'로 뭉뚱그려 놓았죠. 그래서 눈에 또렷이 보이는 물건을 주인공처럼 내세운 다음, 그 물건에 따라붙는 노동을 이야기해야겠다, 물건사이면서 노동사이기도 한 글을 써보자,고 생각했던 거죠. 물건이 생겼다고 해서 노동량이 크게 줄어든 것도 아니에요. 관리해야 할 영역도 같이 늘어났으니까요. 그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머니의 구술을 받았으나 책에는 넣지 못한 물건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비닐봉지랑 운동화, 파마약, 선풍기, 상수도, 세탁세제, 아이스크림, 믹서기, 행주... 꽤 많아요. 각각 다 의미가 있는데, 초고를 너무 딱딱하게 썼거나 수정할 게 많거나 집안일로 묶기 어려운 건 뺐어요. 은행이 없을 땐 어떻게 돈을 모았는지, 라면은 언제 처음 먹어봤는지도 궁금한데 그건 언젠가 기회가 있을 때 써보고 싶어요.
『엄마와 물건』에 소개된 물건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물건은 무엇입니까?
하나하나 애틋하지만 딱 떠오르는 건 우산과 다리미에요. 비닐우산이 생기니 그다음부터 비료포대 뒤집어쓰는 게 부끄러워졌다는 엄마의 말도 의미가 있었고, 책을 젖지 않게 하려던 어린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뭉클했어요. 그리고 다리미는 별 내용이 없을 것 같아서 안 하려다가 그냥 툭 던져보았는데, 의외로 옛날 의복에 대한 이야길 들을 수 있어 좋았어요. 인터뷰 도중 중고등학교 때 엄마가 주말마다 힘들게 교복 다리던 장면도 떠올랐고요. 학교에서 저처럼 칼주름 잡힌 교복 입고 다니는 친구는 드물었거든요. 그때 우리 집이 꽤 가난했었는데, 그 주름이 가난을 감춰주기도 했다는 걸 새삼 깨닫기도 했고요. 왜 그렇게 잊고 살아왔을까요. 엄마들, 여성들의 노동에 지금부터라도 조명을 비추고 좋은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요.
*심혜진 글 쓰고 글쓰기 강의도 한다. 반려묘 미미와 코코의 집사다. 책 사는 것이 낙이고 연어회를 좋아하지만 자주 사 먹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좋은 글을 쓰는 것이 저의 바람이다. *이입분 1950년생이지. 충남 부여군 충화면에서 태어났다. 인천에는 1990년에 와서 지금껏 살고 있다. 집에 있을 땐 월간지 <좋은 생각>을 읽고 좋은 글귀가 있으면 필사한다. 저녁엔 뉴스를 보고 <가요무대>랑 <전국노래자랑>, <뭉쳐야 찬다>는 아주 빼놓지 않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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