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한 다큐멘터리에서 미술 작품에 감동하는 순간의 뇌를 관찰하는 실험을 소개했다. 사람은 내면을 바라볼 때와 세상을 바라볼 때 작동하는 뇌가 다른데, 작품을 보고 감동할 때 이 둘이 동시에 작동한다는 놀라운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렇듯 작품 감상은 인간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하는 또 하나의 창의적인 과정이다. 그리고 그 감상은 글쓰기를 통해 더 단단해지고 풍성해진다.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수업』은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통해 이를 구체적이고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15분 그림으로 글쓰기'가 핵심인 이 명쾌한 프로그램은 그림을 몰라도, 글쓰기 초보자라도 누구나 그림으로 글 쓰는 즐거움에 푹 빠지게 만드는 예술 교육으로, 아이들과 성인, 시니어 등 전 세대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예술을 즐기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자 창의력과 표현력을 예리하게 벼리는 예술 감성 교육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예술 교육은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예술 감성 교육은 다소 생소합니다. 예술 감성 교육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건가요?
이젠 지식 주입 시대가 아니라 감성 주입 시대라고 얘기하곤 해요. 우리가 그토록 쫓던 지식이 더 이상 우리의 성공을 담보해주지 못하고, 결국 인생은 성공이 아니라 성장이라는 걸 모두 알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교육하고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그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한다면 결과는 같겠죠. 저는 감성 교육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예체능 교육이 아닌 감각하고 감탄하는 연습이 필요한 거죠. 예를 들면 음악을 듣고 느끼고 그 느낌을 표현하는 것, 그림을 보고 이야기하며 서로의 생각에 공감하는 것, 이 간단한 감상 교육이 감성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킵니다. 예술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감성을 성장시키는 아주 유용한 매개입니다. 지금 우리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교육이 아니라 환경"이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들에게 '예술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운 좋게도 예술이 환경인 집에서 자랐는데요. 정말 가장 위대한 유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을 지니게 해줍니다. 세상의 모든 예술이 아름다운 건 아니지만 심미안을 지닌다면 언제 어디서건 아름다운 가치를 찾아낼 수 있죠. 예술을 자연스러운 환경으로 만들어 주면 생의 좋은 것들을 발견하는 데 능숙해집니다. 그림 한 점에서 의미를 발견하듯 일상 속에서도 특별한 가치를 발견해내죠. 예술 환경은 그렇게 우리의 체질을 바꿔줍니다. 보다 긍정적인 체질, 행복해지기 쉬운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이 각박한 사회에서 눈과 마음에 깃든 예술은 아이들을 건강하고 특별하게 만들어 줄 거예요.
'그림 보고 글쓰기' 과정을 통해 그림을 본인의 것으로 만드는 아이들과 어른들의 모습이 인상적인데요. 처음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 수업을 기획하게 된 계기와 어린이 대상으로 먼저 시작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늘 그림으로 글을 써왔습니다. 그림의 세계가 너무 재밌고 무궁무진한 소재였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신기해하는 거예요. 그림이 그리 재미있고 쓸 얘기가 그리 많냐면서요. 예술 에세이를 두 권이나 썼는데, 다양한 매체에 계속 예술 이야기를 쓰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덕수궁 미술관에서 한 특별전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라는 전시를 보게 됐습니다. 거기서 '와, 이거다!' 싶었죠. 미술과 문학, 그림과 글이 만나는 과정을 통해 예술을 좀 쉽고 재밌게 만들어보자. 제가 그리하듯 그림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감정과 이야기를 찾아내 표현하게 해보자.
그래서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 수업을 만들었습니다. 성인보다 어린이들이 그림 앞에서 훨씬 자유로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정답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고요. 수업을 열자마자 아주 큰 호응을 얻었고, 이후에 정말 많은 어린이들을 만나게 됐는데요.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수업이 됐다는 게 너무 기쁩니다. 예술을 통한 세계관 수업이라는 엄마들의 호응에도 너무 감사하고요.
예술 수업에서 다룰 수 있는 훌륭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중 그림으로 글을 쓰기에 좋은 작품들이 따로 있나요?
이번 책에 정말 모든 노하우를 다 써두었습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수업 비밀을 다 쏟아내 버리면 그 교육의 가치와 브랜딩이 제대로 되겠냐고요. 처음엔 정말 그런가, 이런 교육서를 쓰는 게 맞는 건가 고민했습니다. 예술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고 또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이 어렵다는 오해를 풀고 재미있고 의미 있게 누릴 수 있다면, 그리고 이 방법이 확산된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글을 쓰기에 좋은 작품들은 책에 안내해 두었습니다. 앞에 낸 책 『느리게 걷는 미술관』의 모든 그림들도 글쓰기에 너무 좋고요. 그런데 예술 애호가가 되면 모든 그림으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림은 가장 좋은 생의 자극이고 소재이니까요.
'예술을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마음가짐은 예술 앞에 쫄지 않는 담대함'이라는 말에 공감이 갔습니다. 아직도 어렵게만 느끼는 예술을 편안하게 응시할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 주세요.
예술을 대할 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식'의 저주에 걸려 있어요. 멀쩡한 분들이 나는 예술 까막눈이라며 그림 보기를 회피하고 있죠. 예술을 대함에 있어 모른다는 건 권력입니다. 모르니까 질문할 수 있고 모르니까 맘대로 느껴도 되고요. 굳이 자꾸만 나의 무식을 드러내지 마세요. 사실 전문가들도 똑같습니다. 처음 보는 그림 앞에 우리는 모두 초심자니까요. 그림이라는 낯선 세계 앞에 우리는 어쩌면 어린이의 상태와 같습니다. 저는 예술 앞에서는 열 살의 시선을 가지라고 이야기합니다. 수업해보니까 제일 자유롭고 쫄지 않는 나이가 열 살이더라고요. 꾸밈없이 직관적인 시선으로 해맑게 응시하세요. 작품이 이상하면 '영 이상하네!' 생각하고 넘어가셔도 됩니다. 예술은 추앙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취향이니까요.
책 후반부에 '그림은 ○○○이다'라는 질문에 대한 작가님만의 대답을 들려주세요.
그림은 '사람'이다. 저는 사람도 그림처럼 봅니다. 그림이 왜 어여쁜 것부터 좀 이상한 것까지 아주 다양하잖아요. 그리고 처음엔 좋다가 나중엔 싫어지기도 하고요.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어딘지 짠하기도 하고 도무지 알 수 없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그림은 그 의미와 가치가 있죠.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고 메시지도 있고 운명이 있어요. 꼭 사람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예술은 사람과 삶의 이야기죠. 들여다보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끝으로 예술을 응시하고 기록하는 시간을 통해 어른과 아이들이 얻었으면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저는 꼭 '예술이 최고입니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아요. 예술을 응시하고 기록하는 건 연습이거든요. 감각하고 감탄하는 연습, 일상 속에서 반짝거리는 의미를 발견하는 연습. 예술을 통해 삶을 더 재밌게 만들어가자고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겁니다. 예술은 우리 삶의 가장 즐거운 콘텐츠니까요!
*임지영 혼자 누리는 예술 향유자에서 함께 즐기는 예술 교육자가 됐다. 예술이 우리 삶에서 무엇이 되는지 알게 된 지금이 가장 행복하고 감사하다. 나를 위해, 모두를 위해 예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문학을, 대학원에서 문화예술학을 전공했다. 1994년 <아동문예>에 동시로 등단 후 동시와 동화 창작을 이어가는 한편, 10년간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예술 교육을 기획했다. 30년간 꾸준히 이어온 글쓰기와 예술 교육을 결합해 그림으로 글을 쓰는 프로그램을 다수 진행했고, 현장의 큰 호응을 받으며 예술 감성 교육의 장을 본격적으로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문화예술 플랫폼 (주)즐거운예감을 이끌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예술 에세이 『느리게 걷는 미술관』과 『봄 말고 그림』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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