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손잡기』의 권누리 시인이 좋아하는 '소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세계를 지키기 위해 힘껏 달리는 '소녀'들을 만나보세요. |
나는 지난해 8월,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이 '공간'이 '나의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을 때, 아니, 어쩌면 그렇게 되기도 전부터, 나는 싹싹한 마음을 담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초대할 준비를 시작했다. 기꺼이 고백할 수 있다. 지난여름부터 올봄까지 나의 가장 큰 기쁨은 집들이였다. 타인을 나의 (물리적) '공간'에 초대하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쉽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어렵고 고된 일이다. 그건 친밀도나 신뢰의 여부와는 별개의 문제다. 그러니 내가 어떤 타인을 무작정 사랑해버리게 되는 건, 그 사람의 -비물리적이며 비물질적인- '세계'에 초대 받았을 때에 더 가깝다. 나는 어떤 소녀들이 '만든', '이세계'를 보았고, 알고 있다. 놀랍도록 빛나고 어둡고 끔찍하고 이상하고 귀여운 세계를 말이다.
'반짝'거리는 것을 보면 '금방 또 사랑에 빠져'1)버리는 사람들이 아이돌 그룹 '레드벨벳'의 두 번째 정규 앨범인
'소녀들의 세계'가 반드시 빛으로 환하고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귀엽고 부드러운 인형, 소품들로 가득할 것이라는 믿음은 '피카부'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단단하고 거대한 보석에 반사되는 빛줄기가 산란하는 형태로 산산조각난다. '피카부'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소녀들'은 천진해서 무섭다. 동시에 우습고 사랑스럽다. 비슷한 옷을 입고 같은 동작을 하는 소녀들은 무표정하고 조금은 심드렁해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표정함을 유지'하는 자신의 '태도'가 '게임'인 듯 즐거워 보인다. '술래'로 정해진 타인을 음산하고 고요한 세계로 불러들이는 것 역시 소녀들의 '놀이'로 보인다. 이 세계는 색채와 빛의 여부와 무관하게, -위장된- 다정함과 무심함, 방관과 위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듯하다.
즐거움('놀이')을 위해 '술래'를 만드는 '소녀들'은 최근에도 '짜잔'하고 등장했다. '오마이걸'의 앨범
오마이걸 'Drip' 속 '화자'를 명확하게 '(비청소년)성인 여성'으로 규정하지 않으며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는, 가사 속 화자가 '호기심'을 바탕으로 '너'의 계획을 '엉망'으로 만드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는 기꺼운 천연덕스러움과 능청스러움을 보이기 때문이다. 'Drip'의 '소녀'는 막다른 길에 다다르자 "그럼 이제 술래는 네가"하라며 청자에게 '술래'의 역할을 넘겨준다. 이렇게 '놀이'는 새롭게 시작된다. '흔적들'이 '덫'인 줄 알면서도 기꺼이 '초대된 소녀들'은 다시 자신의 세계 속으로 청자를 '초대'한다. 세계가 겹쳐지고, 흡수되고, 일그러지며 새로운 '소녀들의 이세계'는 만들어진다.
새로운 것을 알기를 원하고, 도전을 좋아하고, 모르는 것을 알아내고 싶어 하는 마음인 '호기심'은 '소녀'가 잃어버린 퍼즐 조각처럼 '미지의 세계'에 존재한다. 그렇기에 '호기심'은 소녀들의 세계로 향하는 길을 알 수 있는 지도이자, 무겁고 아름다운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이자, 소녀들이 '덫'처럼 놓아둔 '초대장'이기도 하다. 분홍색과 보라색, 푸르거나 흰 것, 밝고 경쾌하고, 애교 있어서 사랑스러운 모습만이 '소녀'라고 생각한다면, 유감이다. '소녀'는 단색으로 표현할 수 없으며, 성격의 단면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고, 일면만으로 '평가'받을 수 없다.
소녀의 선택은 '현실'과 '꿈', 모든 물질적-비물질적 '공간'과 '세계'에서 동시에 발생한다. 소녀는 세계에 '초대'되었지만, '이세계'로 다시 (비)소녀들을 초대한다. 어쩌면 그 세계는 이상하고, 낯설고, 뻔뻔할 정도로 슬프고, 칙칙하거나 흐릴 수도 있다. 선명한 빛이 너무 '빛처럼' 느껴질 정도로 어두울 수도 있다. 그러나 소녀들은 슬픔을 슬픔으로 두고, 공포를 공포로 느끼면서도 놀이거리가 가득한 세계의 초대장을 장난스럽게 던져버린다. 그러니 이 귀엽고 무시무시한 초대장을 받아 든 '우리'는 이 '이세계'의 '술래'가 이미 정해져 있음3)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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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누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