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도 허전하지 않습니다』에는 플라스틱을 거절하지 못해 낭패감을 느끼거나 텀블러의 뚜껑 소리로 시위를 벌이는 제로 웨이스트와 비건의 순간들이 꾹꾹 눌러 담겨있다. 뚝딱이는 생활과 발랄한 그림으로 채워진 그림 일기를 읽다가 베이컨 없는 베이컨 토마토 말이를 먹는 장면을 만난다면 배실배실 웃음이 난다. 또, 친환경 물품을 잔뜩 구매해서 수북해진 장바구니를 바라보며 "나는 제로 웨이스트를 하려던 건데"라고 중얼거리는 장면을 만난다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러다가도 엉겁결에 받게 됐던 플라스틱을 가게에 돌려주려고 온 동네를 순회하거나 스테이크의 뒷면에 묻어있는 아픔을 발견하는 시선에선 손을 번쩍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유치원생의 뒷모습처럼 꽤나 듬직하고 기특한 자세도 마주하게 된다.
작가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환경에 관심이 많은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일상에서 보고 느낀 것을 그림과 글로 기록해서 독립 출판물로 만들어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느끼고 지구 환경에 피해를 덜 끼치고 싶어서 제로 웨이스트와 비거니즘을 실천하고 있어요. 또, 최근엔 텃밭을 가꾸고 농사를 배우며 도시에서의 자립 생활을 꿈꾸고 있습니다.
출간 소감과 함께 『비워도 허전하지 않습니다』를 독자 분들께 소개해 주세요.
평소, 독립 출판물을 만들면서 이미지 위주로 책을 만들다가 이렇게 글이 가득한 책을 받아 보니 저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책을 쓰는 동안 복잡한 마음으로 방 정리를 시작했던 그날부터 시작해, 제로 웨이스트를 접하고 기후위기와 비건으로 관심사가 확장되면서 텃밭을 가꾸고 있는 지금까지의 시간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어 뜻깊었어요. 지구를 구하는 히어로는 되지 못하더라도 세상에 조금은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욕망과 싸우며 고군분투하고, 내가 이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어서 회의감이 들기도 하지만요. 한편으론 다양한 생활 방식에 도전하며 새로운 세계를 하나씩 알아가는 기분입니다.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보람도 많이 느끼고요. 어쩌면 저와 같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지 않을까 싶어 성공 혹은 실패담을 모두 모아 『비워도 허전하지 않습니다』에 담았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실수하고 실패하겠지만, 계속 힘을 내보자고 손 내밀고 싶었어요.
연대의 손길을 발견하는 과정이 다른 사람의 일기장을 보듯 진솔하고 또 흥미롭게 담겨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제로 웨이스트를 하길 정말 잘했다'라고 생각하신 순간들을 꼽는다면 언제일까요?
제로 웨이스트는 아직도 어렵기만 해요. 조금만 정신을 놓고 있으면 집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곧장 쌓이거든요. 쓰레기 문제는 개인의 실천에만 기댈 순 없고 기업이 바뀌고 정부가 시스템을 잘 만들어야 하는, 우리 전체가 노력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쓰레기를 배출할 때마다 눈앞에 내가 잘 살지 못한 흔적이 보이는 건 여전히 괴로운 부분입니다.
그러다 얼마 전에 화장품을 만들어 쓴 지 7년이나 흘렀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동안 만들지 않은 화장품 통 쓰레기를 생각하면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더라고요. 화장품 케이스는 재활용이 안 되거든요. 그리고 텀블러를 사용한 지도 꽤 되었는데, 이전에는 늘 생수를 습관적으로 사 먹었었어요. 텀블러를 산 이후로는 플라스틱 통에 담긴 생수를 거의 사 마신 적이 없다는 걸 깨닫고 엄청 뿌듯했어요. 한 개인이 일주일간 배출하는 쓰레기의 양을 보면 '나' 하나의 영향력도 크다 생각하고 좀 더 애써보려고 합니다.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모습만큼이나 실수하고 실패하는 모습도 흥미롭고 또 많은 부분이 공감되었는데요. 제로 웨이스트 실천을 염두에 둔 독자들이 겪을 수 있는 시행착오에 대해 경험이나 조언을 말해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제로 웨이스트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처음 맞닥뜨리는 난관은 플라스틱 쓰레기일 거예요. 비닐과 플라스틱 통에 들어있지 않은 물건을 찾기가 굉장히 어렵거든요. 제로 웨이스트 가게를 방문할 수 있다면 고민이 없겠지만 가까운 곳에 가게가 항상 있는 건 아니니까요. 평상시 아무 생각 없이 사던 물건이 모두 다 쓰레기처럼 보이고, 사고 싶은 물건을 포기해야 할 때가 많을 거예요.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보다 더 오래 지구에 남아 영영 썩지 않고 다른 생명들을 괴롭힐 텐데'라는 생각을 하다보면, 물건 하나를 사면서 살까 말까 고민하느라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릴 때도 있어요.
혼자 제로 웨이스트를 시작하기 어렵거나 방법을 잘 모를 때, 또는 제로 웨이스트 생활을 잘 하다가도 나 혼자만 애쓰고 있는 것 같은 고립감이 들 때면, 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오픈 채팅방이나 관심사가 일치하는 커뮤니티를 찾아보길 추천해요. 환경 단체에서 시행하는 이벤트나 활동에 참여하는 방법도 있고요.
작가님의 행동으로 다른 사람의 변화를 이끌어 낸 적이 있으신가요? 그중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환경에 관한 문제는 혼자 생각하기보단 여럿이 함께 얘기할 때 의미가 있어요. 책에도 여러 에피소드가 나오지만, 저 때문에 회식 장소가 바뀐 적도 있고요. 저로 인해 처음으로 비건 식당을 경험하게 되거나 비건과 논비건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자리를 고민하고 만드는 것 모두가 어떤 변화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처음엔 이게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미안하기도 했는데, 한 지인이 저로 인해 일상에서 놓치고 있던 것들을 한 번씩 환기할 수 있어 좋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 이런 행동들을 하는 건 아니에요. 모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제로 웨이스트와 비건을 실행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저를 통해서 누군가 환경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좀 더 당당하게 행동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비건을 실천하며 마주하는 어려움에 관한 '웃픈 에피소드'들이 돋보이는데요. 그럼에도 작가님이 비건을 지속할 수 있게끔 다독이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여쭤보고 싶어요.
비건을 시작한 이유는 음식을 보면 고통 받는 동물들이나 여러 사건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채식을 잘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으니 우선 백 일만 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처음엔 정말 생각하지 못했던 음식에서 육류나 해산물, 유제품 성분을 발견하고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요리할 때 고기나 멸치 육수를 빼니 오히려 더 담백하고 맛있더라고요. 속도 훨씬 편해지고요. 그래서 백 일이 지난 후에도 굳이 중단할 이유가 없어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외식을 하다 어쩌다 동물성 성분이 들어간 음식을 먹게 될 때, 고기나 생선이 들어간 음식은 누린내나 비린내가 강하게 느껴져서 입맛이 완전히 바뀌었구나 싶어요. 지금의 저에게는 비건이 일상의 기본값이라 원동력이 따로 필요치는 않은 듯합니다.
『비워도 허전하지 않습니다』를 보고 제로 웨이스트에 관심을 가지고 실천의 단추를 끼워보려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얘기해주세요.
처음 제로 웨이스트를 하게 되면 행동 하나하나에 제약이 많겠지만, 집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많이 줄어들고 집이 천연 수세미, 나무 솔, 대나무 칫솔 등등 자연 소재로 만들어진 물건으로 서서히 채워지다 보면 집안 풍경이 전보다 따스해져서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 그리고 중간에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내일부터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시작해도 괜찮아요. 쓰레기를 많이 만든 날에는 죄책감을 느끼고 또 이런 날이 반복되면 심적으로 피로해질 거예요. 어느 날은 참았던 게 '빵'하고 터져 폭식하듯 사고 싶었던 물건을 마구 살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실천하지 못한 날보다는 그동안 쓰레기를 줄이면서 내가 줄인 탄소배출 양을 생각하길 바랍니다. 너무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돼요! 오늘의 나를 칭찬하며 하나씩 실천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이소 (글·그림) 일상에서 보고 느낀 것을 그림과 글로 기록하는 사람. 그날의 감정을 댄스로 표현한 『밤의 댄스』, 작은 이미지들로 이어진 『손바닥드로잉진』, 천변을 산책하며 관찰 기록한 『천변일기』 등을 펴냈으며, 최근에는 계절의 감각을 드로잉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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