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 우리 모두가 열광했던 드라마가 있었다. 직장인의 애환과 반복되는 현대인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었던 한 이야기. 바로, 동명의 웹툰을 바탕으로 제작된 tvN의 특별 기획 드라마 <미생>이다. 이 드라마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미생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주인공 간의 로맨스나 신파 같은 흔한 소재를 쓰지 않고도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원작이 있었다지만 이를 드라마로 재창조하는 과정은 복잡하고도 방대한 작업이었다. 드라마 방영 이후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미생 세트 : 정윤정 대본집』을 세상에 내어놓는 정윤정 작가에게 그때의 뒷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드라마 방영 이후 8년이 더 지난 지금, <미생>이 글로 재탄생하게 되었네요. 지금 시점에서 작품집을 출간해야겠다고 마음먹으신 이유가 있을까요?
대본집 출간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드라마가 워낙 휘발성이 강한 콘텐츠잖아요. 대본도 같이 사라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작품이 끝나면 여러모로 감정이 벅차거든요. 어쨌든 빨리 떠나보내고 마음의 평화를 찾고 싶은 생각이 커요. 그러니 대본집 출간을 위해 다시 파일을 열어 들여다봐야 하는 일이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에요. 물론 드라마 작가분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요. 순전히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작년 어느 날 김원석 감독님이 전화가 왔어요. 미생 대본을 책으로 출간하는 게 어떻겠냐고요. 세계사 출판사에서 <나의 아저씨>를 시작으로 인생 드라마 대본 작품집 시리즈를 기획·진행 중인데, 올해 두 번째 프로젝트로 『미생 세트 : 정윤정 대본집』을 출간하고 싶어 한다고요. 제가 아무래도 또 엇나갈 거 같으니까 감독님이 열심히 설명하셨어요.
프로젝트의 의미, 출판사가 얼마나 훌륭한 곳인지, 출판사 분들이 얼마나 이 프로젝트를 진정성 있게 진행시켜왔는지 등등. '네네'하며 그냥 얘기를 한참 듣고 있다가 문득 감독님한테 미안해졌어요. 나는 대본의 존재를 잊고 있었는데 감독님은 아니었어요. 시작은 그랬는데 결론적으로 감독님하고 출판사에 감사하게 되었지요. 인생 드라마 작품집 시리즈에 올리는 영광도 얻게 됐고요.
한 인터뷰에서 <미생>의 정서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향해 느끼는 공감과 연민이라고 말씀해 주신 것을 보았습니다. 작가님께서 <미생>이라는 작품을 통해 이러한 정서를 표현하고자 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꼭 미생만 그런 건 아니에요. 지금까지의 제 작품들은 그것을 향해 갔고 앞으로도 그렇겠죠. 코미디든 스릴러든 휴먼이든 로맨스든 장르만 다를 뿐이지,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감과 연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거예요. 주제 의식 같은 거창한 것도 아니에요. 타인은 지옥이라고 한 철학자가 있었고 타인은 지옥이 아니라고 한 시인이 있었죠. 둘 다 맞는 말이겠죠. 이왕이면 지옥이 되지 않는 편이 좋잖아요. 타인은 지옥이라는 냉소가 더 큰 공감을 얻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되지 않길 원하는 게 사람들의 진짜 마음이니까요.
공감과 연민이야말로 사람이 제대로 살아가는 최소한의 기본 태도라는 생각이 들어요. 대관절 작가가 그런 걸 쓰지 않으면 무엇을 쓸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는 것도 있고요. 그런데 공감이든 연민이든 타인에 대한 감정을 가지려면 관심을 가져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공감과 연민 이전에 관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죠. 물론, 작가가 그걸 담아내려고 했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작가의 생각에 동의하거나 이입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미생이 공감과 연민의 정서를 입고 있는 드라마였다고? 난 전혀 모르겠는데?'하시면 그것도 맞는 생각이에요. 미생은 시청자들이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바라보고 해석하고 이입하는 드라마였어요. 힘없는 약자의 서러움에 공감하든, 직장 생활의 어려움에 공감하든, 어느 조직의 막내 자리에서 공감하든 워킹우먼의 입장이든 매일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오는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입장이든 다 이입하는 포인트가 달랐을 거란 말이죠. 그렇게 다양하게 보아주시는 게 감사했어요.
원작을 드라마로 재창조하는 힘든 작업을 결국 해내신 끝에 드라마 <미생>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되었는데요. 작업 과정에서 가장 쉽지 않았던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작품집 안 「작가의 말」에 자세하게 썼는데,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원작이 대서사 구조의 이야기가 아니라서 70분짜리 스무 개를 끌고 가기가 참 많이 어려웠어요. 기존 드라마의 작법대로 한다면 답이 없어서 참 많이 고민했어요. 인물이 극 안에서 목표를 갖고 있는 게 아니라서, 장그래가 이 극 안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어요. 살아 있다는 것은 인물이 움직인다는 것이에요. 장그래에게 드라마틱한 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서 플레이가 고민스러웠어요.
또 어려웠던 것은 원작 에피가 정해 놓은 결말이 있는데, 드라마 속 인물들은 캐릭터들이 갖는 요소가 디테일해지고 확장되었기 때문에 그 결말로 가려면 캐릭터가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캐릭터를 지키면서 결말로 가기 위해 중간에 설정과 이야기와 개연성들을 짜 넣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작가의 말에 자세한 설명과 예를 넣어놨으니 보시면 이해가 좀 더 쉬우실 거예요.
그렇다면 창작자로서 작가님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온다고 느끼시나요?
열심히 일할 때요. 더 좋은 대답을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글은 '마감의 힘'이라는 게 만고불변의 진리예요. 우리는 종종 엉덩이의 힘으로 쓴다고도 해요. 게으르게 일하면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나의 원고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압박을 생각하면 책임감으로 창의력이 생기고, 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들면 즐겁게 일하게 되고,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해마다 새 다이어리를 받으면 첫 장에 이렇게 써 놓아요.
'써야 쓴다'
압박감과 책임감과 가학적인 노동의 에너지로 '크리에이티브'가 생긴다는 점이 좀 이상하죠?
직장 생활을 1년 가까이 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작가님의 직장 생활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행복하지 않았지요.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하는 질문을 하루 종일 하고 있었으니까요. 결국 9개월 다니고 퇴사했어요. 제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회사 생활이었습니다.
<미생>이라는 작품이 현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길 바라시나요?
타인에게 메시지를 줄 만큼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서요. '미안해요', '감사해요'나 할 줄 아는 사람이지 '바랍니다'는 언감생심, 감히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에요. 지금까지 그래오셨듯이, 각자가 느끼는 대로 내면에서 메시지를 만드시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드라마를 만든 이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한 일이죠.
방영된 지 8년이 넘은 지금, 계속되는 사랑에 힘입어 『미생 세트 : 정윤정 대본집』이 나오게 됐습니다. 여전히 드라마 <미생>을 추억하는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그 시절 시청자를 독자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장그래와 영업 3팀을 응원하며 같이 울고 웃었던 8년 전의 그 이야기들을 다시 들려 드립니다. 그때 만난 장그래와 지금 다시 만나는 장그래가 어떻게 다가오는지, 여전한지, 아니면 달라졌는지 느껴 보시면 좋겠습니다.
*정윤정 왜 드라마 작가가 되었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무엇을 쓰고 싶은지, 여전히 답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 편씩 쓸 때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진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MBC 드라마넷 미니시리즈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 시즌 1, 2 / 시즌 3(크리에이터)>, EBS 드라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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