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숲을 탐사하고 식물의 흔적을 기록하는 '초록 노동자' 허태임. 식물 분류학자인 그가 식물을 탐색하는 일상을 전합니다. |
식물 조사하다가 야생동물의 흔적을 자주 본다. 그러면 나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냅다 찍어서 한 동물학자에게 문자를 보내 묻는다.
박사님, 구룡산에서 태백산으로 넘어가는 길인데, 이거 누구 똥이죠?
오소리네요.
우와, 이 녀석 벚나무 열매를 많이도 먹네요.
맞아요. 그 친구들 요즘 잘 익은 버찌 신나게 먹고 다닐 때예요.
반대로 그는 내게 이런 문자를 보낸다.
담비 배설물에서 나온 건데, 무슨 열매의 씨앗인지 구분이 되나요?
다래네요. 담비도 저처럼 다래 좋아하나 봐요. 달아서 이름도 ‘다래’. 지금 한창 맛있을 때죠.
내가 말하는 그는 우동걸 박사다. 자신을 ‘현장과학자’라고 소개하는 우 박사는 한강 변의 삵과 너구리, 백두대간의 담비를 주제로 학위를 받고 지금은 경북 영양에 있는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서 관련 연구들을 이어가고 있다. 현장 연구로 치면 나도 웬만한 학자들 다 제칠 거라고 은근히 자부하는 편인데 우 박사는 좀 세다. 나의 경우 그곳이 어디든 뿌리내리고 사는 식물의 자리를 반복해서 찾아가면 되지만, 그의 경우 동물의 행적을 따라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관찰해야 한다. 야행성 동물을 쫓아서 잠복하느라 산에서 밤을 보내는 날도 많다고 들었다. 우 박사는 야생동물이 차에 치여 죽는 현실을 심각하게 고민하더니 2021년 가을에 『숲에서 태어나 길 위에 서다』라는 책을 냈다. 한국에서만 매년 약 200만 마리의 야생동물이 길 위에서 죽고 있다고 한다. 우 박사는 자신이 이름을 붙여서 관찰하던 야생동물을 다정하게 소개하고 그들 앞에 닥친 ‘로드킬’의 비극을 기록하고 사람과 동물이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를 책을 통해 정확하게 말한다. 가장 중요한 건 안전 운전이고, 도로 위 사체를 발견하면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110으로 신고해야 하고, 무엇보다 로드킬 문제에 대한 꾸준한 사회적 관심과 저감 조치 확대가 필요하다고.
식물과 동물이라는 차이만 있지 그와 나는 서로 비슷한 연구를 한다. 현장에서 한두 번 스치던 우 박사와 제대로 아는 사이가 된 건 바람재에서 합동조사를 하게 되면서다.
바람재는 경북 김천과 충북 영동을 잇는 고개다. 해발고도 800m가 넘는 그 고개는 훨씬 더 높은 산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편서풍이나 북서 계절풍이 통과할 때 바람이 유독 세게 분다. 그래서 예로부터 바람재 또는 풍령(風嶺)이라 불렀다. 1970년대에 바람재 동쪽 봉우리를 싹 밀고 군부대가 들어섰다가 부대는 철수하고 2000년 이후까지 폐허만이 흉물스레 남아 있었다. 깎여 나가기 전에 그 산정이 얼마나 건강했고 아름다웠는지를 알기에, 정부가 나서서 ‘생태복원’을 했다. 그로부터 거의 10년이 지난 시점에 그곳의 자연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는지를 점검하는 합동조사가 2019년에 열렸다. 식물을 조사하는 나와 동물을 조사하는 우 박사는 그래서 바람재에서 만났다. 조사는 몇 달에 걸쳐 이어졌다. 나는 바람재에 다시 정착해서 살게 된 식물 400여 종의 이름을 수첩에 빼곡하게 적었다. 그는 백두대간을 따라 활동하는 대표 표유류 11종의 흔적을 찾았다고 했다. 폐허로 방치되던 때보다 복원하고 10년이 지나자 바람재가 더 다양한 식물과 동물을 품게 된 거다.
전문가 자문이 필요하다고 어쩌다가 불려간 자리에서 우 박사를 만나기도 했다.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의 경계, 백두대간의 중심부와도 같은 이화령을 관통하는 직선 철도를 만드는 이천~문경 중부내륙철도 건설 현장에서 한 번, 경북 봉화와 울진을 연결하는 구불구불한 예전 36번 국도를 두고 직선으로 새로운 고가 도로를 만들던 현장에서 또 한 번. 그 개발 행위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는 의견을 말해야 했다. 인간한테는 더없이 편리하겠지만 그곳에 살던 동식물은 터전을 잃게 될 것이라고 그와 나는 동시에 우려를 표했다. 같이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동물들이 다닐 생태통로도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우 박사가 말했고 멸종위기 식물들의 서식지를 어쩔 수 없이 훼손하게 된다면 그들이 다른 곳에서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대체서식지’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내가 말했다. 그 생태통로와 대체서식지는 모니터링을 통해 꾸준히 점검해야 한다고 우 박사와 나는 같은 의견을 냈다.
그를 특히 자주 보게 된 건 지난해 산불 피해지에서다. 2022년 울진 일대 동해안 산불로 서울 면적의 1/3이 잿더미가 되었다. 내가 일하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산불 피해지 합동조사단을 꾸렸다. 나는 식물팀을 맡아서 응봉산을 중심으로 피해 현황을 조사했다. 응봉산은 다양한 희귀식물이 많아서 과거에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우 박사는 동물의 피해 현황을 살피면서 멸종위기종인 산양의 집단 서식지를 특히 자세히 조사했다. 응봉산 정상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며 피해 현황을 살피는 동안에 동물팀을 여러 번 만났다.
식물은 좀 어때요?
피해가 만만치 않네요. 특히 키가 작게 자라는 희귀식물 꼬리진달래 군락지가 너무 많이 탔어요. 동물들은 무사히 피난했나요? 근방 식물이 다 타서 동물들은 이제 뭐 먹어요?
나는 걱정스레 되물었다.
아직 사체가 발견되지 않으니 대피했을 거라고 믿어야죠. 조사하면서 먹이도 같이 놓고 있어요.
동식물 피해 현황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그들이 숲으로 다시 돌아올 기미가 보이는지 우리 조사단은 집요하게 모니터링했다. 숲이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까지 어떤 노력을 하면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지 몇 달에 걸쳐 고민했다. 그러다 보니 산불이 할퀴고 간 자리, 잿빛을 녹빛으로 되돌리기 위한 복원 계획을 연말에 내놓게 되었다. 그 보고회 자리에서 우 박사를 다시 만났다.
산양이 돌아왔어요. 아주 조금이지만 그래도 희망이 보여요. 다행이죠.
소식을 전하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비쳤다.
보고회가 끝나고 같이 수목원을 좀 걸었고 주차장까지 그를 배웅했다.
화물칸이 큰 왜건으로 차를 바꾸었어요. 동물들 시간 맞추다 보니 차에서 먹고 자는 게 편해서요.
야생동물의 똥과 흔적을 찾아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니느라 거북목이 되었다고 자평하는 사람. 생각하는 시간이 긴 건지 원래 말수가 적은 건지, 어딘가 모르게 어눌하다가도 동물 이야기만 시작하면 또랑또랑 빛나는 사람. 아름다운 자연을 더 아름답게 보고 소중한 생명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 아차, 그러고 보니 그분께 아직 새해 인사를 못 전했다.
우 박사님, 올해도 여전히 사랑하는 동물들과 추억 많이 만드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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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임(식물 분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