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북한 말과 글이 쏟아지고 쌓인다. 빠르게 잊히고 대체된다. 어제의 뉴스가 오늘 뒤집히는 시절, 책을 넘어선 책이 필요하고 책이 아닌 책도 필요하다. AI와 인간이 협업하는 이상한 책의 시대에 읽는 것도 읽히는 것에도 전략은 필요하다. |
편집자 출신 어느 유튜버는 출판계 동향을 제대로 빠르게 알 수 있는 곳으로 <퍼블리랜서>의 뉴스레터를 추천했다. 당장 검색을 해보니 수많은 업계 종사자가 모여 있는 카페가 딸려 왔다. '출판계 레터'라는 이름의 무료 뉴스레터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퍼블리랜서> 페이스북 계정에는 지금 가장 핫한 출판계 이슈들이 속속 올라와 있다. 디지털의 파고가 어느 때보다 높은 요즘,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사는 출판계의 진짜 고민은 무엇일까? 출판계 사정에 밝은 김세나 퍼블리랜서 대표가 7개의 키워드로 정리한 이슈에 답했다.
팬데믹 이후의 연결
1인 출판사나 프리랜서들은 고립된 경우가 많아요. 근로자는 회사에서 다양한 정보와 지식, 노하우 등을 습득하고 동료들과 고민을 나눌 기회가 조금이나마 있지만, 대부분의 출판 프리랜서들은 어려움이 있어도 혼자 끙끙 앓죠.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면서 상황이 더 심각해졌어요. 동료들과 관계를 맺고 정서적으로 '꽁냥꽁냥' 연결되는 과정에서 배려심과 소속감도 생기는데 말이죠. 공동체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출판 생태계도 건강해지지 않을까요. 우리는 다양한 출판 커뮤니티를 원해요.
출판 프리랜서, 퍼블리랜서
책 세계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고민을 나누는 출판 커뮤니티입니다. '퍼블리랜서'라는 말은 출판 프리랜서를 뜻하지만, 회사에 소속된 이들도 잠재적인 프리랜서이니 넓은 의미로 출판인 모두를 의미하고요. 기본적으로 네이버 카페(바로가기)를 통해 출판사와 편집자, 번역가, 마케터, 디자이너 등 프리랜서가 이어지는 거점이 되고자 하고, 온·오프라인에서 만나 다양한 고민을 나누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서는 'publilancer'로 계정을 운영 중이죠. 뉴스레터에선 출판인들이 관심 있는 이슈를 정리해서 보내주고 책 소개, 채용 정보 등 쓸모 있는 정보를 빠르게 업데이트하고 있답니다.
초거대 AI 시대와 출판
얼마 전 일본의 40대 주부가 AI 번역기 파파고를 활용한 작품으로 번역 신인상을 받아 논란이 되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챗GPT가 작성한 원고로 AI가 번역, 교정·교열과 디자인까지 담당한 책이 출간되기도 했고요. 초거대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 것인데, 일자리의 위협으로만 보지는 않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면, AI를 활용하여 업무 효율성을 높일 방법을 익혀야 하지 않을까요? 출판계 사람들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업의 본질에 관해 고민하고 있어요.
핵심만 읽는, 책 요약 서비스
숏폼 콘텐츠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시간을 들여 자기만의 관점을 만들어가며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꺼립니다. 이런 변화 속에 사람들의 독서 욕구를 쉽게 충족시켜 주는 책 요약 서비스도 점차 몸집을 키우리라 예상하는데요. 이미 외국에서는 '블링키스트(Blinkist)' 같은 책 요약 서비스가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학술, 논픽션 중심이지만 점차 분야도 확장될 것 같고요. 하지만 요약의 질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또 요약본에만 익숙해진 독자들의 문해력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걱정되기도 해요.
세계로 뻗어 가는 K-출판
2022년에 손원평, 박상영, 정보라 등 국내 작가들 작품이 권위 있는 해외 문학상에서 후보로 선정되거나 수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야말로 K-문학의 저력을 보여준 한 해였죠. 한국 문학 번역 종 수도 계속 늘고 있고, 이제 막 '한국 문학의 세계화'가 시작되었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출판인들은 '세계 문학으로서 한국 문학'이 되길 바라고 있어요. 그러려면 양질의 번역이 우선되어야 할 테고, 번역가들이 자기 역량을 충분히 펼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해 줬으면 좋겠어요.
신입을 뽑지 않는데 3년 차 편집자는 어디에?
출판사가 원하는 편집자는 주로 3~5년 차입니다. 연봉 대비 가성비(?)가 좋으니까요. 출판사에서는 신입을 뽑아서 가르쳐봤자 1~2년 지나면 이직하거나 처우가 더 나은 업계로 떠나버린다고 하소연해요. 5인 미만의 작은 출판사에서는 직원을 가르쳐가며 일을 시킨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죠. 신입을 뽑더라도 사수 없이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고요. 하지만 신입이 없는데 3년 차, 5년 차 경력자가 생겨날 수 없잖아요. 중대형 출판사들이라도 사회적 책임 경영 차원에서 신입을 많이 채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
몇 년 전 온라인에서 출판계 연봉에 관한 익명의 설문이 돌았던 적이 있어요. 출판 근로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지 알 수 있었죠. 박봉에 '워라밸'은 없고 독자들은 점차 사라져가니 처우가 좀 더 나은 업계로 떠나버리는 이들도 많아요. 하지만 날것의 원고가 편집, 디자인 과정을 거쳐 물성으로 만들어지는 순간, 혹은 슬쩍 시도해 본 마케팅 덕에 온라인 서점 판매 지수가 쭉쭉 올라가는 순간을 경험해 본 이들은, 그 쫀득한 맛을 잊지 못해 마음을 다잡고 외칩니다.
"다시 한번 가보자고~!"
판권에 찍힌 자기 이름 하나에, 독자들의 응원 댓글 하나에 미소 짓는 귀여운 사람들이, 바로 우리 출판인들이에요.
*김세나 퍼블리랜서 대표. 편집자로서 책을 만들고, 출판 커뮤니티 운영자로서 출판하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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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낙경
프리랜스 에디터. 결혼과 함께 귀농 했다가 다시 서울로 상경해 빡세게 적응 중이다. 지은 책으로 <서른, 우리가 앉았던 의자들>, <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