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는 커다란 힘이 있다. 부모는 양육을 할 때 감정이 가진 이 커다란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아이를 성장시킬 수도 있고, 주저앉힐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이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을 잘 표현하고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부모가 안고 있는 크나큰 숙제인 이 물음에 명쾌하게 답해주는 책이 출간되었다. 13년 차 정신과 의사로, 지금까지 1만여 명의 아이와 부모들을 상담해온 『감정에 휘둘리는 아이, 감정을 잘 다루는 아이』의 손승현 작가님을 만나보자!
내 감정도 알기 어려운데 아이의 감정까지 돌봐줘야 하는 일이 부모들에겐 정말 큰 어려움인데요. 『감정에 휘둘리는 아이, 감정을 잘 다루는 아이』에서 아이들이 매일 느끼는 감정들을 하나하나 펼쳐 보여주신 덕분에 아이 마음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떤 책인지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부모님들께 "아이의 감정에도 편식이라는 개념이 있고, 감정을 고르게 섭취한 아이가 마음이 튼튼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씀을 전해드리고자 쓰게 된 책입니다. 아이에게 좌절이나 고통을 전달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어떤 부모님들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 경험을 지나치게 막으려고 하면 오히려 아이의 성장에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어려서 다양한 환경을 접한 아이일수록 면역력도 높고 알레르기에도 잘 걸리지 않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슬픔이나, 소외감, 시기심 등의 괴로운 감정 경험도 부모가 아이 곁에서 잘 이끌고 도와주시기만 한다면 아이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어줍니다.
그래서 『감정에 휘둘리는 아이, 감정을 잘 다루는 아이』에서는 아이의 성장과 마음 건강에 꼭 필요한 여러 감정들에 대해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고자 하였습니다. 육아에서 감정이 가지는 힘, 감정 소통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들 또한 담아보았고요. 이 책을 통해 우리 아이가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성장했으면 하는 부모님,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으면 하는 부모님, 내 말은 틀린 게 없는데 왜 우리 아이는 내 말을 안 들어 줄까 하는 고민에 빠지신 부모님들께서 도움을 받으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아 정신 건강 의학과를 전공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아이들의 마음을 살펴보는 일이 선생님께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전공의 시절 수련을 받으며 정신 건강 의학과를 찾는 아이를 일찍 만날수록 해줄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고, 치료와 변화의 가능성도 커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가족과 상의하며 함께 어려움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저에게 큰 보람을 가져다주었고요. 병원에 오는 아이들이 저에게 마음을 열어주고, 저를 무해한 사람으로 여기고, 점차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래도 내 노력이 나름 의미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내가 세상의 아이들을 잘 대해주려 노력하는 만큼 세상도 내 아이들을 좀 더 너그럽게 대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더욱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감정'과 관련해서 특히 기억에 남는 어린이 내담자나 양육자가 있으신지요?
혹여나 방문하시는 분들께 누를 끼칠까 하여 구체적인 사례를 들 수는 없지만, 일단 아이들이 감정이라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걸 입 밖으로 표현하는 것은 더 어려워하고요. "유치원 이름이 뭐니?", "무슨 반 다니니?", "어디 사니?" 이런 질문들에는 답을 해도 "넌 언제 제일 행복하니?", "아빠랑 다퉜을 때 기분이 어땠어?", "무서운 생각이 들 때 누가 보고 싶니?" 이런 질문에는 답을 잘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아이가 자신의 주관이나, 생각, 감정들을 좀 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합니다.
죄책감이 많고, 이를 못 견디는 어머니들도 생각납니다. 제가 봤을 때는 누구보다 열심히 아이를 돌보시는데, 자신의 헌신은 낮게 평가하고 아이가 혹시 나쁜 감정이 들지는 않았는지만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부모의 마음이 '긍정적인 감정만 편식하는 아이'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언제나 행복하길 바라는 부모의 의도와 달리 조금의 불만족도 못 견디고 부모를 맹비난하고, 부모는 이에 휘둘려 오히려 아이의 진짜 감정은 놓치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자책감에 아이에게 늘 사과나 변명을 하면서, 아이가 속으로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챙기기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감정에 휘둘리는 아이, 감정을 잘 다루는 아이』에서 아이의 감정을 돌봐주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자기 감정부터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육아하다 보면 놓치기 쉬운 부분인데요. 어떻게 챙기면 좋을까요?
저에게 아동 정신 치료를 가르쳐주신 스승님 중 한 분이 말씀해주신 것인데요. "아이의 마음속에서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란다면 먼저 부모의 마음에서부터 그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라는 말씀이 항상 생각납니다. 불안을 잘 못 다루고 자꾸만 미리 걱정하거나, 화를 못 참아서 폭발하거나 하는 어른의 마음부터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지요. 가장 중요한 원칙은 '감정이 잘 흐를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는 '나의 감정이 마치 물과 같다'고 생각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감정을 다스린다고 해서 감정을 무조건 억누르기만 하다 터트린다면 이는 마치 큰 댐에 가둬진 물이 한 번에 터져서 홍수가 나는 상황과 비슷하겠지요.
때때로는 내 감정도 겉으로 미리미리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생각의 흐름이 자꾸만 최악의 상황으로 나를 이끈다면, 안정적인 지형으로 새로 물길을 내듯 습관적인 생각의 흐름을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물을 잘 다루려면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 것들, 그 아래 지형도 잘 알아야 하듯이 '내가 지금 이렇게 아이에게 말하고 행동하는 데 있어, 겉으로 드러나는 이유 말고 속에 숨겨진 나의 마음은 무엇일까?'를 한 번씩 생각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자신의 마음을 한 발짝 떨어져 보는 것, 마치 남의 가정의 어려움을 들어주는 제3자의 시선으로 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이라는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과 헬기를 타고 우리 동네에 흐르는 강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분명 시야가 다를 테니까요.
나도 모르게 아이를 감정적으로 대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아이에게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또 이런 상황을 경계하기 위해서 부모들이 평소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과로, 피로에 장사 없지요. 육아의 어려움은 항상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들이닥치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평상시의 여력을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물론, 이것은 이상적인 이야기일 뿐입니다. 집안일과 직장일까지 합하면 자기 전 짧은 시간이나 출퇴근에 쓰이는 시간, 잠깐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빼고는 개인 시간을 갖기란 참 어렵지요.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최대한 휴식의 효율을 높이는 것에 신경을 쓰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가 원래 좋아하던 것, 편안하게 느끼는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잊지 말고 정기적으로 자신에게 긍정적인 경험을 제공해주는 것이 좋지요. 여기에 일과 대인 관계의 우선순위를 확실히 정하고 상대적으로 순위가 낮은 것에는 에너지를 많이 쏟지 않는 것, 미리 걱정하는 것처럼 내 에너지를 낭비시키는 나쁜 습관을 바꾸는 일이 병행되면 좋습니다. 내가 그만 감정에 휩쓸리고 말았다면,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담아 짧고 간결하게 사과하고 아이의 마음을 먼저 달래주세요. 그리고 감정이 어느 정도 누그러지면 감정에 휩쓸렸던 그 순간 아이가 했던 행동, 내가 느꼈던 감정, 내 감정 표현 방식의 문제점을 구분하여 순서대로 말해주세요.
소아 정신과 의사 아빠로서 아이들 육아에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이나, 실천하는 것들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사실 저라고 특별히 뭐 다른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엄마에게 버릇없이 굴면 욱하기도 하고, 주말에 누워 있다가 아내에게 청소기로 공격당하기도 하고, '왜 이런 점까지 아빠를 닮아서 고생을 할까'라는 생각에 미안해지기도 하는 평범한 아버지입니다. 이론으로는 잘 알 수 있어도 그게 자기 자식의 일이 되면 실천하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다만, 부부 사이에 양육관을 맞춰나가는 일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고, 아이에게 "폭발하듯 화를 분출시키지 말라"고 하면서 오히려 내가 흥분하는 일이 없도록 늘 경계하죠. 또, 아내가 훈육할 때 뒤에서 참견하거나 한마디 거드는 것은 일단 안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감정을 잘 알지 못해서, 나도 부모로부터 받아보지 못해서 육아를 힘들어하는 많은 부모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세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 일은 부모의 잘못을 심판받는 일도 아니고, 멀쩡한 아이에게 환자라는 낙인을 찍는 일도 아닙니다. 아이를 키워나가는 긴 여정에서 믿을 만한 동료를 늘린다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육아를 하다 보면 힘든 순간들이 자주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원래 그렇습니다. 부모님이 아이를 덜 사랑해서도 아니고, 아이를 남들보다 잘 몰라서도 아닙니다. 이 괴로운 와중에 힘들어도 그 자리를 계속 지키시려는 여러분 모두가 아이들의 좋은 부모님이십니다. 저는 "이 중요한 걸, 이 쉬운 걸 왜 못하고 계셨어요?"라는 말을 하려 이 책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부모님들이 이 어려운 육아를 좀 더 잘 버티셨으면 하는 마음, '그래도 돌이켜보면 아이와 함께 행복할 때가 참 많았지'라고 떠올리시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손승현 울산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전공의로 있던 시절, 마음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아이는 일찍 돌봐줄수록 회복의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소아 청소년 정신 의학을 세부 전공하고, 지금까지 약 1만여 명의 아이들과 부모들을 진료실에서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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