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기분에 맞게 적당한 제목을 가진 플레이리스트를 골라 두세 곡을 듣다 보니 갑자기 책을 읽고 싶어진다. 작가가 들려주는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고 이 이야기에 어울릴 만한 또 다른 음악을 떠올려본다. 다음에 이어서 읽을 책은 플레이리스트 영상에 달린 추천 댓글을 보며 결정한다. 음악이 있는 우리의 모든 순간에 독서가 있다. |
인간은 평균 3만 개의 청각 신경 세포를 가지고 태어난다. 덕분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거나 음악을 감상하지만 사소한 잡음이 들려올 때면 불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멀리 외출할 땐 음악을 듣기 위해 이어폰을 챙기던 번역가 정은주는 데이먼 크루코프스키의 『다른 방식으로 듣기』를 작업하고 난 후 작은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다른 방식으로 듣기(Ways of Hearing)』의 마지막 문장은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입니다. 읽는 사람을 '독자'라고 부르지 않고 있는데요.
이 책의 원작은 음악가인 저자가 진행한 동명의 팟캐스트입니다. 텔레비전 시리즈를 바탕으로 한 존 버거의 책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해요. 팟캐스트라는 소리 매체를 통해 "우리가 사는 디지털 세상에서 듣는다는 것의 본질을 6부에 걸쳐 탐구"한 것을 그대로 텍스트화한 책이죠. 그래서 '장'이나 '추천사' 대신 '에피소드', '번외' 같은 표현이 쓰였습니다.
그럼 이 책의 장르를 무엇이라 정의 내릴 수 있을까요?
저도 이런 책은 처음 봐서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팟캐스트 대본'이 가장 쉬운 설명이겠지만, 그저 말을 글로 옮겨 종이에 인쇄한 건 아닙니다. 추천사를 쓴 에밀리 톰프슨의 말대로 두 매체는 사실상 동일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별개의 경험을 선사한다고 봅니다. 책에서는 도판과 디자인이 팟캐스트의 음향에 상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둘의 관계를 고찰해 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 책을 쓰고 팟캐스트를 진행한 데이먼 크루코프스키는 어떤 인물인가요?
록 밴드 갤럭시 500의 멤버였고 데이먼 & 나오미로 활동하는 음악가입니다. 「돈」 에피소드에 저자가 음악가로 살기를 선택하고서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술회하는 부분이 있어요. 거기서 엿볼 수 있듯이 좋은 직업이나 경제적·사회적 성공과는 다른 가치를 일관되게 추구해 온 사람이에요. 파트너 나오미 양과 함께 독립 레이블, 실험 문학 출판사를 설립하기도 했고요. 자신들이 좇는 가치를 실천하며 살아온 점이 멋있죠. 트위터에서는 그런 면모가 좀 더 잘 드러나는데, 자기 생각이 확고하고 사회 이슈에 관심이 많고 할 말을 거침없이 한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저자는 시간, 공간, 사랑, 돈, 권력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듣기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가장 흥미롭게 느껴졌던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하나만 꼽기 어렵지만 「돈」 에피소드가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이 에피소드에서 다루는 냅스터(최초로 널리 쓰인 개인 간 음원 공유 서비스)의 등장은 저의 음악 소비와 향유 방식에도 일대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거든요. 음악은 비물질적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데, 음악(비물질)과 기술(물질)을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신호'와 '소음'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무척 신선했습니다.
한편으로 음악의 비물질성과 자유로움을 현재 상황과 엮어서 좀 더 깊이 파고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어요. 오늘날 음악가가 처한 현실이 「권력」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음악 스트리밍 기업들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냅스터를 지지했던 음악가들이 왜 지금은 음악가의 권리를 부르짖고 스포티파이를 규탄하는지, 냅스터 때문에 돌이킬 수 없을 듯이 무너졌던 업계가 밴드캠프 같은 플랫폼을 통해 어떻게 대안을 찾고 있는지 등에 대한 저자의 통찰을 더 보고 싶습니다.
저자가 제안하는 주요 메시지는 '소음에 귀를 기울이라'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무엇을 들을지 스스로 선택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디지털 미디어가 차단하는 소리, 스트리밍 서비스가 들려주지 않는 음악도 있다는 걸 알고 선택하라는 것이죠. 소음의 정치학에 관한 논의도 담겨 있지만, 이 책의 주된 목표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소리에 주의를 환기하는 것 정도가 아닐까 해요. 「권력」 에피소드에서 서점 운영자 일레인 캐천버거가 인터넷 바깥에는 훨씬 더 풍요로운 세상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과 상통하는 메시지죠.
이 책을 작업하고 나서 실제로 음악을 듣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체감하시나요?
실험 음악과 시끄러운 음악 등 주변으로 밀려난 음악을 평소 즐겨 들어서 이 책이 특별히 영향을 미친 건 없습니다. 다만 이동 중에 음악을 잘 안 듣게 됐어요. 「공간」 에피소드에 작곡가 존 케이지는 늘 창문을 열어두었다는 일화가 나와요. 들을 것이 넘쳐 나는데 닫을 이유가 없었던 거죠. 이 대목을 종종 떠올립니다. 마감 후 KTX로 부산에 가면서 이어폰 챙기는 걸 깜빡했습니다. 그렇게 멀리까지 가면서요. 이전 같았으면 큰일 났다 싶었겠지만 잠깐 '아차' 했을 뿐 아무렇지도 않더라고요.
출판사 마티의 뉴스레터 <마티의 각주*>에서 이 책의 번역 작업이 "힘들지 않고 재미있기만 했다"고 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흥미로운 일화와 초대 손님의 이야기, 과거 자료 등이 풍부하게 담겨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었어요. 익숙한 인물과 음악이 나올 때는 특히 즐겁게 작업했죠. 번역의 면에서는 제가 잡지 작업을 많이 하기도 했고 인터뷰 번역을 원래 좋아해요. 말맛을 살리는 데 신경을 써야 하는 점에서 재미를 느끼는데, 이 책에는 글로 정제되거나 편집된 인터뷰보다 더 생생한 구어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요. 게다가 실제로 어떻게 말했는지 귀로 듣고 확인하면서 작업할 수 있어서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책에도 나오듯이 '음악적인 소리'인 목소리는 단어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으니까요. 책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팟캐스트도 들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정은주 번역가. 2007년부터 번역가로 일하면서 『GRAPHIC』 외 여러 잡지와 전시 도록, 『젊고 아픈 여자들』, 『예술가의 공부』, 『푸투라는 쓰지 마세요』, 『백과전서 도판집』, 『예술가의 항해술』 등의 책을 번역했다. 현재 프리랜서로 번역과 편집을 한다. 갤럭시 500와 데이먼 & 나오미의 오랜 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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