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섭 작가의 신작 장편 소설 『요란한 아침의 나라』는 미혼모 쉼터를 운영하는 시민 단체와 쉼터 땅을 노리는 부동산 투기업자 사이의 치열한 이권 다툼과 두뇌 게임을 그려낸 작품이다. 한때 시민 운동에 헌신했으나 이제는 자신의 잇속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 단체의 대표, 소외되고 약한 이들 편에 서서 변호한다면서도 자신의 명성과 이익을 갈망하는 젊은 변호사, 미혼모 시설을 관리한다지만 실상 어린 미혼모에게 성범죄를 저지르는 시인, 지역 유지들과 권력 카르텔을 만들고 사소한 트러블에 전전긍긍하는 시장. 신원섭 작가는 이 캐릭터들로 한국 사회에 감춰진 음울한 면을 표현해 낸다.
데뷔작 『짐승』 이후 3년만의 장편 소설입니다, 오랜만에 장편 소설로 돌아오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밀린 숙제를 끝낸 기분입니다. 데뷔 이후로는 단편 작업을 주로 했는데, 그 과정에서 제 기량이 많이 향상된 것을 느꼈어요. 『짐승』은 원래 3부작으로 기획했던 작품입니다. 그 두 번째 작품이 『요란한 아침의 나라』거든요. 『짐승』에서는 사회로부터 소외된 자들의 지옥도를, 『요란한 아침의 나라』는 사회 중심부에서 벌어지는 아귀다툼을 주제로 했습니다. 전작이 아싸들의 몸싸움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인싸들의 머리싸움이에요. 그래서 데뷔작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책 표지를 가득 채운 제목이 인상깊습니다. 소설의 제목, 『요란한 아침의 나라』는 어떤 의미로 지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소설 속 사건들이 꼭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요란한 아침 뉴스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란한 아침의 나라』로 제목을 지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활력을 잃어버린 사회를 뜻한다는 점에서, '급변하는 현대 사회는 요란한 아침의 나라겠구나'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이 작품은 오늘날 우리 사회를 다루고 있으니까요. 전작 『짐승』의 경우 스스로 '제목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출간 후 치명적인 문제점을 깨달았습니다. SNS에 『짐승』을 검색하면 반려동물과 보디빌더 사진만 잔뜩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최대한 검색 노출이 잘 되는 제목을 짓기 위해 고심했습니다. 『요란한 아침의 나라』는 구글에 검색해도 아무것도 안 뜨길래 '이거다!' 싶었습니다.
한국 누아르 장르에선 흔치 않게 여성 캐릭터들을 극을 끌어가는 주요 인물들로 내세웠습니다. 여성 누아르를 기획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여성 누아르를 기획한 것은 아닙니다. 애초에 '여성 누아르'라는 장르는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김시인 평론가님의 글은 마음에 들었어요. '내 작품을 이런 관점으로도 볼 수 있구나' 싶어 흥미롭고 신선했습니다. 제 단편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원래 여성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입니다. 책은 각 분야 전문가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지는 상품입니다. 저는 '이야기'라는 요소를 제공하는 사람이고요. 저의 관심사는 오직 '흥미롭고 잘 읽히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뿐입니다.
지난 작품에 이은 군상극 스릴러입니다. 군상극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푸짐한 한상차림 같은 든든한 가성비. 책 한 권으로 여러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잖아요? 게다가 같은 사건이라도 여러 사람의 눈을 통해 바라보면 더욱 흥미로워집니다. 군상극은 이야기를 끌어나가기 위해 억지로 갈등을 지어낼 필요가 없어요. 등장인물의 다양한 관점이 충돌하면서 이야기가 저절로 굴러가거든요. 구성이 치밀한 군상극은 복잡하고 정교한 기계 장치 같아요. 읽는 것도 재미있지만 쓰는 건 더욱 재밌습니다. 제 글은 나레이션에 강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군상극이라는 형식이 저의 강점을 돋보이게 해주는 것도 좋아요.
등장인물들 모두 현실 어딘가에 존재 할 것만 같은 입체적 캐릭터들인데요. 덕분에 인간 내면의 밑바닥을 엿보는 기분이 드는 동시에 인물들의 갈등에 더 깊이 몰입하게 됩니다. 이런 캐릭터들을 표현하실때 특별히 신경쓰신 부분이 있으실까요?
대사를 가장 신경 써요. 대사를 쓴 뒤에는 꼭 입으로 소리 내어 읽어봅니다. 읽기 어색하거나 발음하기 힘들면 마음에 들 때까지 고쳐 쓰고요. 거창하게 얘기하긴 했지만, 그냥 퇴고를 주구장창 하는 편입니다. 모든 게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면 서너 달 방치하고 잊어버립니다. 그러다가 줄거리가 가물가물해지면,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서 고쳐 씁니다. 저는 캐릭터에 대해 상상하며 굉장히 오랜 시간을 고민하는 편이에요. 그렇다고 따로 인물에 대한 설정집을 만든다거나 하진 않고요. 등장인물 개개인에 대해 오래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인물이 마치 연락 끊긴 고등학교 동창처럼 느껴져요. 그러면 그 인물이 할 법한 행동이나 말들을 쉽게 지어낼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를 상상하는 것처럼요.
이전 작품 『짐승』의 주요 인물이었던 이진수와 도미애가 다시 등장합니다. 두 인물처럼 차기작에서 더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을 정도로 애정이 가는 『요란한 아침의 나라』 속 인물은 누구일까요?
하나연 변호사를 가장 좋아합니다. 허점이 많지만 자기 일은 잘하고, 속물이지만 위선자는 아니고, 적당히 염치도 있는 사람 같아요. 이 정도면 좋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사람 같기도 하고요. 5년 뒤에 어떻게 되어 있을지 궁금해요. 『요란한 아침의 나라』 결말부에 잠시 등장한 아이는 도미애의 아들입니다. 『짐승』에서 이진수가 할머니 집에 쳐들어갔을 때 등장했던 그 아이예요. 아마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 나올 때쯤이면 그 아이도 성인이 되어 있을 텐데,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습니다.
다음 작품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로 돌아오실지 기대가 됩니다. 구상중이신 차기작이나 생각하고 계신 소재가 있으실까요?
이미 완성해놓은 장편 초고도 두 개나 있고, 제법 디테일하게 써놓은 시놉시스도 여럿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글을 쓸 시간이 거의 없네요. 회사 일도 바쁘고, 곧 아이도 태어나고요. 재작년부터 검도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요즘에는 검도가 글쓰기보다 재미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초단이지만 꾸준히 해서 3단까지는 따고 싶어요. 은퇴한 뒤에는 검술 액션이 잔뜩 나오는 대하 무협 소설을 쓸 거예요. 2020년에 발표했던 단편 소설 「옐레나가 온다」를 경장편으로 개작할 계획도 있습니다. 살인 누명을 쓴 몽골인 이주노동자가 등장하는 본격 하드보일드 소설이에요. 물론 『짐승』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작품도 구상 중이고요. 쓰고 싶은 이야기도, 하고 싶은 일도 정말 많아요.
*신원섭 범죄 소설 쓰는 엔지니어. 2018년 장편 스릴러 소설 『짐승』을 출간했고, 현재 영상화가 진행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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