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으로서의 미술품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유명 작가의 작품은 무조건 안전 자산으로 볼 수 있나?'
'컬렉팅을 위해 알아두면 좋은 미술 트렌드는 무엇이 있는가?'
아트 컬렉터이자 『아트토크 머니토크』를 집필한 이지혜 저자에게 물었다.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술에 애정을 쏟아온 저자는 미술 시장에서 얻은 정보와 지식을 SNS '#제이니의미술관'을 통해 공유하며 신입 컬렉터들의 랜선 아트테크 가이드 역할을 맡고 있다. 성공적인 아트 컬렉팅을 꿈꾸는 독자라면 미술품을 위해 대륙을 넘나드는 컬렉터 선배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볼 만하다.
『나는 미술관에서 투자를 배웠다』에 이어 두 번째 책으로 『아트토크 머니토크』를 출간하셨습니다. 이전 책과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첫 번째 책이 처음 컬렉팅을 시작하는 미술 비전공자들을 위한 친절한 지침서였다면, 이번 『아트토크 머니토크』는 세계적인 규모로 성장하는 한국 미술 시장을 다양한 각도로 아우르는 책입니다. '미술'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공간 및 시각의 미를 표현하는 예술'이라는 설명이 나옵니다. 물론 사전적인 정의인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미술품을 '영혼이 있는 황금'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미술품은 양도 차익을 통해 수익을 실현할 수 있는 자산이며 가장 궁극적인 향유의 대상이 되기도 한데, 이 표현이 미술품의 두 가지 기능을 모두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전에 비해 미술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는 주된 이유 중 하나도 역시 미술품이 가진 이러한 매력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미술 시장은 미술품을 거래하는 사람과 돈, 그리고 수요와 공급이 서로 맞부딪히며 드라마틱한 파장을 만들어 내고 있지요. 이번 신간은 바로 이러한 점에 착안해, 새롭게 부각되는 아트시티인 서울을 줌인하는 동시에, 이미 세계 미술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다양한 도시로 시선을 줌아웃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술품이 유통되는 지형도를 한눈에 파악하면서 미술 시장을 관통하는 트렌드와 인사이트를 제안하는 즐거운 안내서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불황과 호황을 오가는 미술 시장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미술 시장의 트렌드는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 편인가요?
미술품은 여타의 자산에 비해 거래의 유속이 가장 느린 축에 속합니다. 반면, 하방 경직성이 강한 대표적인 자산으로 손꼽히는 것 역시 미술품이죠. 하방 경직성이란, 경제 여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하락하지 않고 그 수준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시간에 따라 가격은 안정적으로 상승하면서 동시에 폭락에 대한 방어력까지 뛰어난 미술품은 자산의 측면에서 월등하게 유리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 코로나에 맞물려 미술 시장에 MZ세대가 대거 진입하면서 미술 시장은 이전보다 점점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어요. 특히나 2022년 한국 미술 시장은 상반기와 하반기의 온도 차가 극과 극으로 바뀌는 한 해를 보냈습니다. 2020년을 기점으로 타오르던 불꽃은 2022년 가을을 기점으로 그 열기를 다해버렸지요. 하지만 이를 시장의 상승기와 하강기로만 나누기보다는 시장 전체의 규모로 놓고 보자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렇게 보면 단순한 매출의 등락보다는 미술 시장의 부흥이 시작되기 전과 후의 변화가 더욱 도드라지게 느껴지거든요. 즉, 경제 상황 등의 변수가 존재하기는 하나, 이것이 더 이상 미술 산업 전체를 부흥기 이전으로 회귀할 만큼 영향을 주기는 어렵다는 뜻이지요.
아트 컬렉터 관점에서 미술품의 환금성은 어떻다고 보시나요?
환금성을 논하기 전에, 투자의 세 가지 요소부터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흔히 성공적인 투자에는 안정성, 수익성, 그리고 환금성이 종합적으로 따른다고 하죠. 우선, 미술품은 대표적인 안전자산입니다. 왜일까요? 미술품은 미술사와 미학이라는, 그림의 가격을 지탱하고 있는 핵심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부동산이나 금융 자산과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합니다. 미술사는 미래가 아닌 역사에 근간을 두고 그림을 평가하고, 미학은 작품의 예술성과 작가의 철학을 설명하는 근거가 됩니다. 즉, 미술 시장은 이론적 체계를 갖춘 학문과 인류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는 셈이지요. 따라서 다른 시장에 비해 훨씬 안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요. 미술품의 수익성은 프랑스의 미술 가격 데이터베이스 플랫폼인 '아트프라이스(Artprice)'의 보고서에서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만약 2008년 김창열 작가의 작품에 100달러를 투자했다면 2021년에는 1,588달러가 되었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어요. 13년간의 투자 수익률은 무려 1,488%죠.
그렇다면 미술품의 환금성은 어떨까요? 자산을 크게 금융 자산과 실물 자산으로 나누었을 때, 미술품은 부동산과 함께 실물 자산에 해당합니다. 반면 대표적인 금융 자산으로는 주식을 들 수 있죠. 각 자산의 특성에서도 알 수 있듯, 실물 자산의 환금성은 금융 자산에 비해 낮은 편입니다. 왜냐하면 실물 자산은 1:1 거래 매칭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지요. 물건을 가진 매수자와 물건이 필요한 매도자가 만나서 거래가 이뤄지는 만큼 시간도 훨씬 소요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조건에 딱 맞는 거래가 단번에 성사되기 어렵기도 하죠. 하지만 앞서 설명한 것처럼 미술품은 그만큼 수익성과 안정성이 든든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한국 미술 시장이 가지고 있는 독보적인 세제 혜택의 매력도 두루 참고한다면 여러분도 미술품이 가진 고유한 장점을 십분 발휘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유명 작가의 작품은 무조건 안전 자산으로 볼 수 있을까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트페어나 경매와 같은 실제 현장을 다니며 가장 놀라웠던 점은 미술계에서 한 획을 그은 작가일지라도 그 명성이 작품의 가격에 반드시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었어요. 미술품의 가치는 앞서 말한 미학이나 미술사 등의 학문에 근거하지만, 미술품이 미술 시장에 유통되며 컬렉터에 의해 그 가치가 재평가된다는 점은 큰 매력이었습니다.
미술 시장이 새롭게 만들어 낸 선호도는 작가의 작품성이나 예술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쿠사마 야요이' 작가의 작품 중 국내 미술 시장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은 것은 '노란 호박이 그려진 작품'입니다. 작가는 다양한 시리즈의 작품을 작업해왔고, 호박 역시 다양한 색으로 그려냈는데도 그중에서 노란색 호박의 인기는 가히 독보적이죠. 이렇듯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이 아닌 미술품은 같은 도상의 같은 크기라 하더라도 저마다의 다른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처음 컬렉팅을 시작한 분들이 단기간에 파악하기란 조금 어려운 부분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꾸준히 미술 시장을 들여다보고, 공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공적인 컬렉팅을 위해 알아두면 좋은 최신의 미술 트렌드는 무엇이 있나요?
앞서 미술 시장에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MZ 컬렉터들과 기성 컬렉터들의 가장 큰 차이를 꼽자면 작품을 선택할 때 작가의 가치관을 중요시한다는 점입니다. MZ 컬렉터는 컬렉션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작품의 결과물이나 완성도와는 별개로 작가가 가진 신념을 응원한다면 기꺼이 작품을 컬렉팅하며 그 뜻을 지원하는 것이지요. 설령 작품이 미술 시장의 선호도와는 거리가 멀더라도 말입니다. 따라서 그간 보수적이고 경직된 미술 시장에 비추어 보았을 때 현재의 미술 시장은 이전에 없던 완벽히 새로운 키워드를 갖게 되었습니다. 바로 '다양성'이지요.
MZ 컬렉터들은 스스로의 가치관에 따라 폭넓고 다채로운 작가들을 직접 탐험하고 나섰습니다. 이렇게 새롭게 발굴된 이들이 바로 여성 작가들과 '블랙 아트(Black Art)'라 불리는 흑인 작가, 그리고 성소수자 작가들입니다. 이 중에서 오늘은 여성 작가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온라인 아트 플랫폼 '아트넷 뉴스(Artnet news)'의 조사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9년까지 약 11년간 열린 미술품 경매에 1,966억달러(한화 약 256조4,843억원) 이상의 어마어마한 돈이 투입되었으나 이 중 여성 작가의 작품은 약 2%에 불과했습니다. 심지어 이 콩알만한 비중의 절반이 딱 5명의 여성 작가에게서 나왔다는 건 더욱 놀라운 사실이지요. 하지만 다행히도 최근 몇 년 사이 이 비중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미술 시장을 선도하는 고액 자산가 그룹이자 큰손 컬렉터들 사이에서 여성 작가의 작품을 사는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아트바젤과 UBS가 함께 발간한 '2022년 미술 시장 보고서(A Survey of Global Collecting in 2022)'를 보면, 이들이 2019년 구매한 여성 작가의 비율은 전체의 39%에 그쳤으나, 2022년에는 42%까지 상승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미술 시장에서 약진하고 있는 여성 작가들은 하나같이 젊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또 다른 반가운 특징으로는 한국 작가들이 종종 포함되어 있다는 점인데요. 이 작가들은 주로 해외에서 작업을 하며 해외 미술 시장에서 먼저 두각을 드러내고 있어요. 기사를 읽다가 '무슨무슨 킴'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거나, 'Sun Woo'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찾아본 작가가 한국인이었을 때 드는 반가운 기분은 설렘에 가깝습니다. 이들은 주류에 편입되고자 애쓰기보다는 자신만의 색채를 당당히 드러내며 세계관을 확장하고 있어요. 작가 '갈라 포라스 킴(Gala Porras Kim)'은 1984년 한국계 남미인입니다. 작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문화 인류학과 미술의 접점에서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있지요. 그녀의 그림은 '미술 덕후라면 반드시 가봐야 할 미술관 100곳'에 나올 만한 공간에 전시되었습니다. 작가는 2017년과 2019년, 세계 3대 비엔날레로 손꼽히는 '휘트니 비엔날레(Whitney Biennale)'에 참가했으며 작년에는 '한국 공식 이민 120주년 기념 사업'으로 조성된 한민족 혈통 작가들의 그룹전에도 함께하며 한국과의 인연 역시 꾸준히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작품을 검색하고 살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데도 갤러리와 아트페어에 직접 방문해보고 시장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왜 중요할까요?
온라인 특화형 세대인 MZ 컬렉터가 미술 시장의 새로운 패권을 쥐고 있는 오늘날에도 오프라인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합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는데요. 첫 번째는 미술 시장이 지극히 사람 중심의 인프라로 돌아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아트 딜러들이 자신의 성공 비결로 미술품보다 먼저 꼽는 것이 바로 '휴먼 비즈니스'입니다. 그 정도로 미술 시장은 인맥이 곧 금맥이 되는 곳이지요. 갤러리의 오프닝, 아트페어나 미술품 경매장 등의 현장에서 만난 미술계 관계자들 나눈 이야기들은 온라인에서는 얻기 힘든 생생함과 파워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갤러리가 어떤 작가와 전속 계약을 목전에 두고 있다', '어느 갤러리가 미술관급 전시를 준비 중이다'하는 소식들은 단순한 내용 그 이상의 의미가 있지요. 더불어 관심이 있는 작가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기회 역시 소중합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미술 시장을 아우르는 트렌드와 비전을 가늠하기 위함입니다. 특히, 아트페어는 현재 미술 시장을 아우르는 트렌드를 가장 접점에서 보여줄 뿐 아니라 미술 시장이 나아갈 방향을 컬렉터들에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정말 크다고 할 수 있어요. 오늘날의 미술품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간직한 채 점점 더 넓은 범위를 포괄하는 단어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번 책을 통해 미술을 금융과 부동산, 정치와 행정, 엔터테인먼트와 셀러브리티의 산물로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현장을 다각도에서 다루며 발견한 미술 시장의 다이나믹한 생명력을 『아트토크 머니토크』에서 확인해주세요.
마지막으로 독자분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미술을 아름다움으로만 즐기기에는 미술품이 가진 장점들이 너무나 무궁무진합니다. 철저한 외부인이었던 제가 아트 컬렉터로서 바라본 미술 시장은 크고 작은 경제의 톱니바퀴가 신기하리만치 딱딱 맞물려 돌아가는 하나의 거대한 사회였어요. 이곳에서 금광을 따라 걷는 동안 인맥을 타고 흐르는 금맥을 발견했으며, 돌과 금을 구별할 수 있는 안목 역시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에게 미술품이란 무엇인가요? 좋은 작품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머릿속에 막연하게 떠오르는 답이 무엇이었든 영혼을 위로하고 감각을 자극하는 궁극의 미술품을 찾아 나서는데에 이 책이 좋은 안내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과정에서 분명 당신만의 르네상스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이지혜 부동산 시행 및 마케팅사 대표 겸 아트 컬렉터로, 미술품과 부동산이라는 양대 시장의 교차점에 서 있다. 한국 미술 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 활기로 가득 찬 요즘, 그 우아하고 역동적인 현장에서 얻은 정보와 지식들을 SNS에 공유하며 신입 컬렉터들의 랜선 아트테크 가이드 역할을 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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