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나폴리에 3개월간 머무르게 된 INTJ 소설가는 90일 동안 나폴리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까? 격주 화요일 <정대건의 집돌이 소설가의 나폴리 체류기>가 연재됩니다. |
"미리 여러 가지 가능한 변수를 고려해서 계획을 세워야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상담 프로그램에 나온 자우림 김윤아 씨가 한 이 말에 무척이나 공감했는데, 나도 그런 성격이었다. (그런 내가 앞날이 안개 낀 듯 보이지 않는 프리랜서 일을 하려니 얼마나 스트레스였겠는가) 그리고 그런 나의 성격은 여행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아말피 해안의 절경이 펼쳐지는 포지타노 근처에 '신의 길'이라는 이름의 트래킹 코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나는 그곳을 걷는 걸 기대하고 있었다. 신혼여행 휴양지로 유명한 포지타노는 어마어마한 숙박 요금을 자랑했기에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푸로레 지역의 산골에 있는 숙소를 예약했다.(취소 불가 조건에 숙소까지는 40분 정도의 등산을 해야 했다)
푸로레에 가는 건 쉽지 않았다. 나폴리에서 소렌토로 가는 악명 높은 사철을 타고, 한 시간에 한 대 있는 시타 버스를 타야 했다. 구글맵 정보도 부정확했기에 수십 개의 글과 다양한 경로를 검색해 보고 캡처하고 시간표를 짰다. 시타 버스 이용자들의 후기를 보니 시간표는 어차피 지켜지지 않으니 무시하라고 했고, 만차로 인해 승객을 태우지 않고 그냥 가는 경우도 잦다고 했다. 이는 나에게 큰 난관이었다. 시타 버스의 변수를 고려해 낙원 같은 풍경의 푸로레 해변에서 물놀이를 한 후 일몰 전 숙소에 도착해 아말피 해안의 눈부신 석양을 만끽하겠다는 완벽한 계획을 짰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신의 길을 걸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신의 길을 걷기로 한 날짜에 비 소식이 들려왔다. 그 무렵 이탈리아의 날씨는 변화무쌍했고 나는 속이 타들어 갔다. 미리 알아보고 정한 게 독이 되기도 하는구나. 물론 나도 때로는 피곤하게 전부 알아보지 않고, 미리 다 정해놓지 않고 즉흥적인 여행을 하고 싶다. 그러나 결국 모든 건 비용의 문제였다. 가령 이탈리아의 기차표는 한 달 전에 미리 사는 것과 당일에 사는 표의 가격이 5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숙소로 향하는 날, 소렌토에서 어쩐 일인지 시타 버스는 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지로 디 이탈리아'라는 큰 사이클 경기가 진행 중이라서 오늘 5시까지 도로를 통제한다고,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미리 인터넷을 찾고 또 찾아봤지만 몰랐던 사실이었다. 거리에서 세 시간을 보내야 했고 5시 이후에는 정말 버스가 오긴 오는 것인지 불안에 떨었다. 6시가 넘어서야 겨우 시타 버스를 탈 수 있었다. 푸로레 해변에서의 물놀이 계획은 그렇게 물건너갔다. 이제 문제는 해가 지기 전에 숙소까지 등산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글맵 스트리트 뷰에서 본 완만한 포장길이 아닌 가파른 계단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금세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날은 어둑해져갔다. 이대로 조난을 당하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해가 지고 밤 9시가 넘어 땀 범벅으로 도착한 산골에는 불빛도 없고, 숙소의 리셉션에는 '귀도'라는 이름의 남자만 홀로 있었다. 다른 직원들은 다 퇴근한 모양이었다. 너무 배가 고파 맹물에 맨빵이라도 먹어야 할 판이었던 내가 불 꺼진 주방을 보며 저녁 식사가 가능하냐고 묻자, 귀도는 코스 요리가 가능하다고 예상 밖의 대답을 했다. 나는 약간 불신의 뉘앙스를 담아 "그럼 당신이 요리를 하나요?"라고 물었지만, 어떤 음식이든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이탈리아의 코스 요리는 보통 전채 요리인 안티파스티, 파스타류의 프리미, 고기류의 세컨디 순서로 진행되는데 귀도가 전채요리로 내온 브루스케타와 문어 감자 샐러드를 먹자마자 눈이 번쩍 뜨였다. 재료가 너무나 신선하고 맛이 살아있었다. 시장이 반찬이라서가 아니었다. 너무 맛있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전채 요리에 충격을 받았고, 프리미에 그의 요리 실력에 확신을 가졌고, 아직도 세컨디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 행복이 그득 차올랐다. 귀도에게 불신의 눈초리를 가졌던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제공해 준 하우스 와인까지 훌륭했다. 고생한 하루가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귀도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탈리아에서 먹어본 요리 중 당신의 요리가 최고였어요. 너무 맛있고 행복해서 천 개의 계단이 금세 잊혔어요. 당신은 숙박업을 할 게 아니라 식당을 차려야 해요!"
다음날 아침, 예보대로 비가 내렸고 산에는 온통 안개가 가득했다. 오후에는 갠다는 예보(네 개의 어플 중 두 개)를 믿고 신의 길 트래킹을 하겠다고 하자 숙소의 직원들은 "이 날씨에?" 하는 표정으로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트래킹 시작 포인트의 근처 카페에는 비바람을 피해 들어온 네 팀이 같은 표정으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누가 이 무서운 비바람과 안개가 있는 바깥으로 나갈 거야? 마치 영화 <미스트>의 마트 안 같았다.
선발대로 안개 속으로 들어갔던 독일인 노부부는 얼마 뒤 결국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아름다운 풍경이 전혀 보이지 않는 4시간의 안개 속 하이킹은 아무 의미도 없어 보였다. 큰 기대를 품고, 큰 비용을 치르고 이 멀리까지 왔을 텐데... 내 일인 양 안타까웠다. 하루 종일 이 카페에서 보낼 수는 없었다.
'어렵겠는데... 포기해야 하나.'
어떤 일이 닥쳤을 때 나는 낙관보다는 부정적인 쪽의 회로가 더 발달한 사람이었다. 난 늘 노력한 만큼의 정확한 보상을 바랐고(그 '정확한'은 자의적인 것이다), 세상은 그와 같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종종 불행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보다 기대를 많이 하기에, 실망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나쁜 상황들을 먼저 떠올리며 위장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개로 앞이 보이지 않는 신의 길 앞에서, 지난밤 예상치 못했던 지로 디 이탈리아와 천 개의 계단과 귀도의 요리는 내게 어떠한 메시지 같았다.
'가보자, 포기하지 말고.'
이 여정 끝에 보상이 있으리라는 낙관이 생겼다. 아니, 설령 날씨가 끝까지 좋지 않더라도 이대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뭔가를 얻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순간 내가 품은 낙관에 나도 놀랐다. 사람이 태도의 관성을 바꾼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최악의 하루가 예상치 못한 놀라운 행복으로 마무리되었던 어제의 경험으로 인한, 몸에 새겨진 좋은 감각 덕분이었다. 나는 앞도 보이지 않는 신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거짓말같이 먹구름과 안개가 걷히고 아말피 해안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신의 길을 완주한 후에 포지타노의 풍경을 마주하며 마신 레몬 그라니타(슬러시)는 완벽한 보상이자, 내게는 귀도의 요리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메타포였다. 귀도는 그가 대접한 요리가 누군가에게 놀라운 변화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까. 이 예상치 못한 즐거운 경험의 누적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쉽게 굴러떨어지는 나의 경사를 조금은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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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건
2020년 장편 소설 『GV 빌런 고태경』을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소설집 『아이 틴더 유』를 출간했다. 다큐멘터리 <투 올드 힙합 키드>와 극영화 <사브라>, <메이트>를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