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숲」의 첫 번째 교정을 마쳤을 때, 2022년의 10월이 끝나가고 있었다. '구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천선란 작가는 생각했다. 「이끼숲」의 이야기는 「바다눈」과 「우주늪」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연작 소설 『이끼숲』이 세상과 만났다. 그 해의 가을로부터 반년이 지났다. 여전히 우리는 '슬픔이 유별나도 되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문장 앞에서 숨을 멈춘다.
사랑은 그의 꿈과 희망을 기억하는 것
작가의 말에 '교정지가 온 같은 해 늦가을, 그 계절이 오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고 쓰셨어요. 이태원 참사가 작가님께도 많은 영향을 미친 거겠죠?
그렇죠. 원래 「이끼숲」은 300매 정도의 경장편으로 나올 책이었고, 표지까지 어느 정도 나와 있는 상태에서 첫 번째 교정을 마쳤을 때가 10월쯤이었어요. 그때 이태원 참사가 있었고, 뒤숭숭해서 일을 못하고 있다가 다시 원고를 펼쳤는데, 그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다 안 담겼다는 걸 느낀 거예요. 그동안 많은 참사들이 일어났는데, 그것을 모두 담을 수 없다면 어떻게든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꼭 대규모 참사만을 담은 건 아니었고, 그 즈음 노동에 대한 권리에도 관심이 있었고, 어떤 정상의 범위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어요. 제가 갖고 있는 생각들이 책에 조금 더 담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바다눈」과 「우주늪」을 쓰게 됐죠.
처음에 「이끼숲」을 쓰실 때는 어땠나요?
사실 그때는 조금 가볍게 시작을 했어요. '언톨드 오리지널스'가 CJ ENM와 같이 영상화를 할 수 있는 경장편 시리즈거든요. 그래서 트리트먼트 단계에서부터 영상화가 용이하도록, 예를 들면 인물이 조금 많거나 사건이 화려하거나 이런 방향으로 먼저 생각을 했어요. 문득 '친구들이 이미 죽은 친구의 클론을 살리겠다고 어딘가를 탈출하는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는데요. 사실 처음에 쓸 때는 이 이야기가 어떤 사고나 재난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재미의 SF 영역에 있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태원 참사를 접한 이후에 이 글을 봤을 때, 눈에 보이는 문장들이 다른 거예요. 이 책이 8월이나 9월에 나왔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시기가 (이태원 참사와) 겹쳤고, 그러면서 '어쩌면 이 소설은 할 이야기가 더 많은가 보다, 그래서 시기가 이렇게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조금 더 책임감을 가지고 제가 만든 인물들의 삶을 다시 추가하면서 쓰게 됐어요.
이전과 달리 새롭게 느껴졌던 문장들은 무엇이었나요?
'슬픔이 유별나도 되는 곳으로 가고 싶다.'라는 문장이... 그게 조금 셌어요, 저한테도.
작가님의 소설에는 항상 '사랑'이 있는 것 같아요. 『이끼숲』도 예외가 아닙니다. 작가님에게 사랑이란 어떤 건가요?
진짜 모르겠는데... 저도 요즘 '왜 사랑을 좋아하지?'라는 고민을 많이 하는데요. 굉장히 커다란 헤아리는 마음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마음의 집합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미 여러 번 인터뷰에서 이야기했지만, 어머니가 아프신 이후에 치매가 세게 오셔서 저희를 잘 기억하지 못해요. 지금은 소통이 가능하지만 초반에는 저희 말에도 크게 반응을 하지 않으셨어요. 그때 너무 힘들었죠. 제가 스물한 살, 스물두 살 때였는데 '이 시간들이 다 뭐지?' 싶으면서 점점 지쳐가고 있었어요. 그때 어머니는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저희가 "엄마 딸 이름이 뭐야?"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하셨어요. 모르니까. 그런데 어느 날, 그때는 제가 작가의 꿈을 포기했을 때인데, 엄마한테 "엄마 딸 꿈이 뭔지 알아?" 물었는데 엄마가 처음으로 "작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작가의 꿈을 꾸기 시작했는데, 되짚어보면 그때가 '이게 사랑이구나'를 정확하게 느낀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모든 걸 다 잊어도,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도 잊어도, 그 사람이 갖고 있던 꿈과 어떤 희망은 기억하는 거잖아요.
『이끼숲』은 가상의 시공간에서 지금 이곳의 문제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SF 소설을 읽으면서 짜릿함을 느끼는 지점인 것 같아요. 쓰는 동안 작가님도 짜릿하셨나요?(웃음)
현실의 이야기를 현실에 살고 있는 내가 작품으로 만들 때는 너무 무거워요. 마음가짐도 무겁고, 조금이라도 잘못 대변하게 될까 봐 혹은 잘못된 시각을 가지고 있을까 봐 겁이 나는 거죠. 그런데 인류는 시대를 거치면서 달라지는 것 같지만 항상 똑같은 문제로 싸우잖아요. 미래에도 우리는 크게 다를 것 같지 않고, 진짜 AI의 도입이라든지 인간의 자기 선택권이 사라지는 세계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도 노동의 문제는 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더 자유롭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는 것 같고요. 「바다눈」의 마르코는 사회 초년생이고, 자기 눈에는 다 괜찮아 보이잖아요. 그런데 자꾸 무슨 문제가 생기고, 사실은 그게 너무 무서운 거죠. 그런 불안한 마음을, 저를 포함해서 제 책을 많이 읽어주시는 이십대 삼십대 독자 분들이 공감해 주시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 마음으로 쓴 것 같아요.
여지없이, 가장 사랑했던 모습을 떠올리겠구나
소설의 인물들은 당위로써 타인을 압박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옳으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아요. "너는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게 맞아"라고 말해주죠. 친구가 나와 다른 선택을 하더라도, 그에게 '지키고 싶은 것'이 있음을 이해하고 지지해줍니다.
그게 아마 제가 저한테 끊임없이 질문했던 것의 답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의 사회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문제들이 있잖아요. 기후위기, 동물권, 인권 문제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당장의 생계가 있고, 또 다른 이는 누군가의 당장의 세계보다 더 먼 미래의 인류를 위한 선택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고, 이해관계가 너무 많이 얽혀 있어요. 내가 믿고 있는 것 하나가 옳다고 해서 타인이 지금 절벽 앞에 서있는데 "빨리 너도 걸어 나와"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상황인 것 같아요. 또 누군가는 그게 죄책감처럼 느껴지잖아요.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에 비해서 남들만큼 하지 못한다는 것에 자기 환멸도 느낄 거고요. 제가 그걸 좀 많이 겪었던 것 같아요.
기후 위기나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는 있는데, 돌아보면 내 주변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그런 걸 많이 겪다가 항상 스스로에게 "너는 그게 최선이야? 지금 잘 살고 있는 거 맞아? 이렇게 외면하면 넌 나쁜 사람이야"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저한테는 너무 버거운 문제들이 있더라고요. 집도 그렇고, 나의 당장의 삶도 그렇고. 잠시 내가 다른 문제를 더 많이 고민하고 있을 때 누가 나한테 "괜찮아, 너는 지금도 충분히 관심 가지고 있어. 일단 네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차분히 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결국 그 이야기를 저 스스로한테 해줄 수 있게 됐을 때, 저도 마르코나 톨가한테 그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톨가는 사랑 앞에 용감한 인물이죠. "상대방이 가진 만 가지의 특징 중에서 단 하나의 특징이 마음에 쏙 들어오면, 사랑이 시작되는 거 같아"라는 그의 말을 비롯해서 『이끼숲』에는 사랑에 대한 명언이 정말 많습니다.(웃음) 그 중에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무엇인가요?
문장보다는 문단이 될 것 같은데요. 「이끼숲」의 처음에 소마가 '즐거운 생각을 할까 해'라고 하면서, 유오를 잃은 후에 침대에 누워서 자기가 사랑에 빠졌던 순간을 이야기하잖아요. 그 부분이 가장 생각나요. 제일 처음 쓴 문단이기도 한데요. 왜 그렇게 시작을 했냐 하면, 모든 이야기를 다 떠올린 다음에 '이제 내가 소마의 입장이 되어서 친구 유오에 대해서 말할 거야'라고 생각을 해봤어요. 그랬더니 '여지없이 내가 가장 사랑했던 모습을 떠올리겠구나' 싶더라고요. '정말로 사랑한다는 건, 결국에는 내가 가장 사랑했던 모습을 누군가한테 말해주는 거겠지. 그 사람은 말이야, 라고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장면을 처음으로 썼어요. 제가 떠올리는 사랑의 문단이라고 할까요.(웃음)
『이끼숲』이 출간됐을 때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쓰셨어요. '『이끼숲』을 쓰고 한참 허우적거렸는데, 부디 독자 여러분들도 그러기를 바라며...' 어떤 마음으로 쓰셨던 건가요?
슬펐어요. 다른 책은 깔끔하게 끝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천 개의 파랑』도 그렇고 『나인』도 그렇고, 딱 '해피엔딩' 하고 결말에 마침표를 지었다면, 「이끼숲」 자체도 그랬지만 「바다눈」과 「우주늪」을 쓰면서, 모든 이야기들이 끝맺어져 있지 않고 나도 이 인물들이 이후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끝이 났다고 생각을 했어요. 미완결성이랑은 조금 다른 느낌으로요. 그럴 때의 빠져듦이 있잖아요. 이 사람들을 놓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천선란 1993년 인천에서 태어나 안양예고 문예창작과를 졸업했고,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동식물이 주류가 되고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지구를 꿈꾼다. 작가적 상상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늘 고민했지만, 언제나 지구의 마지막을 생각했고 우주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꿈꿨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일들을 소설로 옮겨놔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시간 늘 상상하고, 늘 무언가를 쓰고 있다. |
추천기사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