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도시에서 우리의 이동은 왜 이렇게 지옥 같을까?”
철학ㆍ교통 연구자 전현우와 노년내과 의사 정희원이 공통으로 떠올린 질문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동하며 살아간다. 출근길 지옥철 안에서 긴 이동시간을 견디고, 자동차와 대중교통 사이에서 최적의 교통수단을 고민하고, 퇴근길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며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전현우와 정희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현우는 대학 시절 3~4시간을 들여 인천과 서울을 오가며 교통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데이터를 통해 이동하는 인간의 조건을 탐색하다 보니, 기후위기 시대 ‘이동’이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알았다.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에서 벗어나 대안을 찾고자 하는 시도는 『거대도시 서울 철도』,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오송역』 등의 집필로 이어졌다.
정희원 역시 이른 시간 병원을 출퇴근하며, 긴 이동시간에 피로감을 느꼈다. 아무리 일찍 나와도 매번 마주하는 교통 정체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경험했다. ‘가속노화’를 연구하는 의사로서, 이동이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나아가 인구의 고령화와 기후위기를 늦출 방안으로, 지속가능한 교통을 고민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나이듦』,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와 곧 출간될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에 인간의 이동이 큰 비중으로 다뤄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두 작가는 채널예스 크로스 칼럼 <전현우X정희원의 거대도시에서 이동하기>를 통해, 교통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눴다. 칼럼이 끝난 후의 감상과 못다 한 이야기를 긴 대화로 풀어냈다.
'이동'이라는 시급한 문제
인문학 연구자, 노년내과 의사가 ‘이동’의 문제에 깊이 빠진 이유가 궁금합니다.
정희원: 노화를 연구하는 의학자로서, 삶의 요소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의사로서 먹는 것, 잠자는 것, 운동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하죠. 그런데 그 정도로 중요한 것이 이동이예요. 하루 중 일하는 시간과 수면 시간을 빼면, 이동시간이 큰 비중을 차지하잖아요. 이동을 어떻게 하느냐가 삶의 질을 결정하죠.
그런데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긴 이동시간을 지옥철 안에서 견디면서 살거나, 아니면 조금이라도 교통이 편한 곳에서 살기 위해서 엄청나게 비싼 집값을 감당해야 해요. 이런 현실이 굉장히 부조리하게 느껴져요. 실제로 저도 한때 왕복 4시간 장거리 출퇴근하면서 삶이 너무 황폐해지는 것을 느꼈거든요. 데이터상으로도 긴 이동시간이 신체 및 정신 건강에 큰 영향을 미쳐서, 스트레스, 나쁜 식습관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들어 내는 것을 알 수 있고요.
또 하나는 개인적인 관심사인데요. 지구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 중 하나가 교통이기 때문이에요. 인간이 먹는 방식, 움직이는 방식, 사는 방식이 맞물려 지구의 멸망을 앞당기는데, 그중에서 톤 단위의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건 아무래도 교통이죠.
교통을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이용하는지에 대해 수많은 넛지(nudge)가 존재하잖아요. 가령 사람들은 철도 교통이 불편하면, 자동차를 택할 것이고, 항공 여행의 가격이 올라가면 베블런재 효과로 비행기를 더 많이 타려고 하겠죠.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꿔놓지 않으면 교통은 지속가능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요.
전현우: 역시 긴 이동을 경험해야 교통에 관심을 갖게 되잖아요?(웃음) 하루 3~4시간을 들여 인천과 서울을 오가면서 교통을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동 시간이 하루 중 최소 2시간을 넘어가면 ‘이 부조리함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니까요.
2005년 대학 1학년 때쯤, 교통 데이터가 공개되기 시작했어요. 한 동네에서 다른 동네로 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이미 데이터베이스로 정리되어 있고, 그것을 기반으로 연구를 하고 타당성 조사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칼럼에서도 썼듯이, 이미지와 통계를 통해 높은 하늘로 날아오른 새들의 시점에서 교통을 보게 됐죠.
교통을 논의하는 방식은 크게 1) 제도화된 접근 2) 그 바깥의 접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거예요.
제도 내부에서는, 이미 정부 등이 구축한 데이터를 가지고 관료화된 절차를 거쳐 기계적인 이동시간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지 접근하죠. 한편, 그 바깥에서의 접근은 그 줄어든 이동시간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질문해요. 두 가지 관점이 서로 보완적이어야 할 텐데, 현실에서는 제도화된 접근과 그 바깥의 접근이 서로 따로 노는 측면이 있어요. 실제 제도를 운영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도 점점 늘어납니다만... 그렇게 나온 결과가 ‘진정한 해결책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관점은 언제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이런 식의 관점을 인문학이라고 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철학과를 나왔는데 왜 철도 책을 썼냐’는 질문을 받곤 해요. 그런데 철학이야말로 ‘우리의 존재 방식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졌고, 어떤 가치가 있고 과연 지속가능한가’는 질문을 던지는 일이거든요. 그 질문이 매일 반복되는 현장이 교통이에요. 그런 문제를 내버려 두고 어떻게 제대로 인문학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죠.
정희원: 정말 맞는 말이라 생각해요. 교통이 우리 삶에서 너무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그럼에도 전문가들이 관심을 잘 갖지 않죠.
전현우: 본인들도 다 출근하면서.(웃음)
정희원: 매일 같이 교통지옥을 경험하다 보면,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도대체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예비타당성 조사를 봐도, 현실과 동떨어진 진단과 가설을 내놓을 때가 많잖아요.
교통에 관한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있어요. 부천에서 분당까지 출퇴근하던 시절, 아무리 새벽에 나가도 중동IC에 차들이 꽉 막혀 있더라고요. 자동차의 열린 창문에서 운전자들이 피우는 담배 연기가 막 올라와요. 도로 옆에는 신도시가 대규모로 들어서고 있었고요.
교통 문제가 해결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낮아질 것이며, 예방할 수 있는 질환은 얼마나 많겠어요. 의료 현장과 교통 상황을 보면 마치 설국열차에서 앞쪽 칸에서는 와인을 마시고 있는데, 맨 뒤 칸의 사람들은 지옥을 경험하는 것과 비슷해요. 의사결정권을 지닌 사람들이 교통지옥을 매일 경험하지 않아서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는 걸까요?
전현우: 프랑스 혁명의 3계급처럼, 교통도 계급화된 것 같아요. 제1계급이 교통체증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제2계급은 서울로 출퇴근해야 하는 중산층, 가장 아래 제3계급은 경기나 인천에서 도시 내부를 이동하거나 이들 지역의 도시 사이를 이동하는 사람들이겠죠. 아마 지방 도시 사이를 이동하는 사람들은 여기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이고... 개발도상국으로 시야를 넓히면 문자 그대로 교통 지옥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겠군요.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실제로 1기 신도시만 놓고 봤을 때,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의 비중은 높아도 20%대예요. 꽤 많은 사람들이 지역 안에서 움직이거나, 옆 동네의 도시로 이동하죠. 이런 이동들이 하나하나 다 가시화되어야 해요.
그런데 이렇게 데이터와 이미지로 보여주면, 이런 이야기 너무 진부하고 추상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돌아올 때가 있어요. 실제 출근하는 OO씨를 개별 인터뷰해서, 이동하는 하루를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면서요.
정희원: 한 사람의 사례를 묘사해서 전체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많잖아요. 하지만 실제 정규 분포를 보면, 전체를 대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죠. 전현우 작가님의 칼럼은 그렇지 않아서 좋았어요.
전현우: 데이터로 추정하는 방식과 개인의 사례를 묘사하는 방식, 두 가지 방법이 보완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울 하나만 이야기하면 이 도시의 특징이 무엇인지 사실 파악할 수 없겠지요. 말하는 사람이 혼자 꽂혀서 떠드는 방언과 다를 게 없을지도요. 다른 많은 세계의 거대 도시들과 서울을 함께 놓고 비교해야 비로소 서울의 특징도 드러날 텐데요, 도시의 모든 특징을 한꺼번에 비교할 수는 없으니까 압축하는 방편으로 양적 데이터를 활용하는 거죠. 그럼에도 구체적인 OO씨가 등장하면 확실히 와 닿기는 하겠죠.(웃음)
첨단 기술은 멋진 미래를 약속할까
각종 뉴스에서 모빌리티는 첨단 기술이 탑재된 이동수단 산업을 빛내는데 사용됩니다. 하지만 전현우 작가님은 이것이야말로 ‘모빌리티’가 원래 갖고 있던 반성적 정신을 배반하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요. ‘모빌리티’에 대한 두 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전현우: 최근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모빌리티라는 단어를 봤어요. 20년 후 서울을 내다보고 미래상과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계획서인데요. 미래교통수단으로 자율주행과 UAM(Urban Air Mobility, 도심 항공 모빌리티)을 넣어 놨어요. 2040년이 되면, 자율주행이 상용화되고 UAM이 지상교통수단의 대안으로 서울 주요 간선에 돌아다닌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죠. 여기에 하필 ‘모빌리티’라는 말이 들어가죠.
물론 그렇게 계획을 제시해야 큰 돈을 쥔 투자자들이 서울을 멋진 도시라고 생각하고 투자를 할 것이라는 건 이해가 가요. 하지만 현재 지면 위를 오가는 수천만 통행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 있죠. 자율주행에 대한 환상을 몇 년간 잘 팔았으니까, 이젠 UAM이 해결책이라는 걸까요? UAM 포트를 서울 주요 거점마다 지으면, 기존에 이미 편하게 이동하고 있던 돈 있는 사람들만 잘 이용할 거예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15분 도시 개념을 가공해서 ‘거주지를 중심으로 도보권 내에 업무, 여가, 주거, 상업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함으로써 자족성을 갖춘 일종의 작은 서울들을 구축한다’는 계획도 들어가 있어요. 그러나 스포트라이트는 역시 자율주행, UAM 같은 화려한 것에 가 있는 거죠. 확장된 보행 공간이 가장 중요한 모빌리티라고 말하려면, 그 보행 공간을 어떻게 잘 가꿔 나갈지가 가장 중요한데 말이에요. 그야말로 시장에 맡겨도 될 것 같은, 아니 에너지를 펑펑 쓰게 만들어 기후 대응을 오히려 힘들게 만들 기술에 힘을 쏟고 있어서 아쉬움이 남죠.
정희원: 의학에서 모빌리티는 기본적으로는 신체, 인지 등 사람의 기능에 의한 이동 능력, 즉 이동성을 의미해요. 이 모빌리티의 반경이 한 사람의 전반적인 내재역량을 반영해요. 태어나서 모빌리티가 점차 증가하다가 다시 감소하는 과정이 노화의 궤적과 같죠.
한 사람의 생물학적 모빌리티가 떨어지면, 신체 노쇠가 되어 간병인이 필요해지고 요양 병원에 가게 되죠. 결국 한 사람이 얼마나 노화되는가, 전체적인 사회의 돌봄 요구는 얼마나 필요한가를 결정하는 요인이 모빌리티인 거예요.
그런데 이동성을 결정하는 함수에는 환경적 요인도 들어가요. 똑같은 노쇠 정도를 가진 사람이라도 간병인이 있거나 대중교통 접근성이 용이하면, 실질적으로 드러나는 이동 기능은 더 좋을 수 있거든요. 가령, 미국에서는 신체 노쇠가 있는 분이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면,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지체장애가 있는 사람이 돼요. 400m를 걷지 못하면 통상 이동성 장애(mobility disability)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거든요. 그 정도로 사람의 생물학적 이동성에 더해, 사회의 자원과 시스템이 우리의 이동성을 좌우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한국의 대중교통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정희원: 서울은 연령 친화적이지 않은 도시예요. 다양한 연령층의 이동성을 고려해서 지어진 도시가 아니죠. 심지어 고령층의 이용이 많은 병원조차 30~40대의 평균 신장과 근력을 가진 남성을 가정하고 만들어져 있어서, 그 외의 사람들은 접근이 어렵거든요. 유소년층이나 노인을 고려하지 않은 거예요.
이런 도시에서는 신체 노쇠가 생겼을 때, 연령친화적 도시에 비해 노화가 급격히 가속화돼요. 노쇠, 우울, 인지저하의 사이클에 빠지고, 사회적으로 쉽게 고립되죠. 아직까지 한국은 선진국 수준의 교통 접근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할 수 있어요.
앞으로 20~30년 최우선적인 과제가 거대도시의 모빌리티입니다. 우리 모두가 노년기에 이를 것이고, 현재 베이비부머 세대는 운전면허를 반납하고 스스로 계단을 내려가기 어려운 상황이 되겠죠. 그럼에도 모두가 간병인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결국 어떤 연령이건 장애가 있건 없건 접근성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데, 거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거죠.
전현우: 자연히 많은 분들이 자동차의 힘을 기대하게 될 텐데 그럼 기후위기라는 엄청난 문제가 발생하죠. 철도 중심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거대 도시 외곽에 대중교통을 공급하기 어려운 지역이 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마을이 철도 라인에만 몰려있을 수 없어서, 역까지 접근하려면 추가 교통수단이 필요하고요. 그런데 여러 대중교통을 환승하는 것 자체에 불편함을 느낄 사람들이 생길 거예요. 그건 거대도시 중심부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정희원: 저희 병원의 풍경이 떠오르네요. 병원이 지하철역에서 굉장히 떨어져 있어서, 대부분 환자분들이 자동차를 타고 오시거든요. 그래서 늘 병원 앞이 아비규환이에요. 매일 그 풍경을 보다 보면 20년 뒤 한국 사람들의 모빌리티가 너무 걱정되죠. 지금 저희 병원에 오시는 80대 어르신들은 자식이 여러 명이지만, 저희 부모님 세대는 자식이 한두 명이거나 없는 분들도 있죠. 20~30년 뒤에는 이동성이 떨어지기 쉬운 85세 이상 인구가 3~4배가 될 텐데, 사회적인 이동 서비스의 접근성이 떨어지면 수많은 사람들이 집에만 있어야 하거든요. 전국 단위면 대략 300~400만 명이 장기요양에 놓일 수 있어요.
이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도저히 떠오르는 답이 없어요. 그래서 전국민이 이동성의 저하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을 매일 해야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가속노화를 늦추는 습관을 실천해서 미래에 잘 걸어 다닐 수 있는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고, 모두가 사회적 돌봄 요구가 생길 수 있는 사람을 줄이는 데 일조해야 한다. 그것 말고는 답이 없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어요.
전현우: 대중교통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죠.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역까지 이동하는 최소한의 이동성도 필요하니까요.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어요. 건강을 챙기려고 열심히 노력해도 잘 안되는 운 나쁜 분들도 있을 것이고. 어떻게 보면 개개인에 집중하는 해결책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정희원: 아, 그렇죠. 건강 관리를 알아서 잘하라고 꼰대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웃음) 현실이 그래요.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노화가 될 확률을 줄여놓지 않으면, 사회가 지속불가능하게 변하는 거죠. 한국 사회의 변화 속도는 너무 빨라요. 일본만 해도 우리나라의 템포보다는 훨씬 느리게 사회 고령화가 이루어지면서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왔는데, 한국은 30년 내에 그 과제를 한꺼번에 해야 하는 거예요. 앞으로 현세대와 부모 세대 모두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자원을 가지고 경합해야 하는데, 그걸 지탱할 세대는 없죠.
이동의 위기, 우리에게 필요한 상상은
개인들이 스스로를 교통의 ‘소비자’로 상상할 것인지, 혼잡도로와 기후위기의 책임을 나눠 갖는 시민으로 상상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일 것 같아요. 현실에서는 스스로를 ‘소비자’로 생각하기 때문에, 혼잡통행료에 대한 반발도 있었던 것 같고요.
전현우: 개개인이 스스로를 교통 ‘소비자’로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 현재의 교통 환경을 만들고 있는 책임을 지는 ‘생산자’로 상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튼튼하지 않다.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힘을 보태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사회다’라고 강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죠.
정희원: 맞아요. 사회구성원으로서 자신의 몫을 하는 것. 슬기롭게 교통을 활용하는 것.
전현우: SNS에서 이런 논쟁도 있었어요. 서울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면 크게 과세 대상은 개인 혹은 기업일 텐데, 그중 대규모 교통 개발 시설을 운영하는 기업에 세금을 크게 부과하면, 간접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 개인 운전자들의 책임을 아예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나 싶어요. 실제로 온실가스가 나오는 건 각 차량에서 나오는 배출물이고, 그걸 통제하는 건 개인들의 판단이니까요.
정희원: 물론 병원에 방문하는 환자분들을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이분들이 자동차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정들이 있어요. 하지만 자동차 중심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개인의 책임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 동의해요. 자동차 운전자들이 ‘내돈내산’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도로의 면적을 잠식해서 교통체증을 야기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등 여러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죠. 현재로서는 개인들이 만들어 내는 사회적 효과에 비해서, 그 비용을 낮게 부담하고 있는 거고요.
전현우: 교통혼잡비용(차가 막혀서 발생한 다양한 형태의 손실을 화폐가치로 환산한 금액)이라는 수치가 있잖아요. 1994년 당시 교통혼잡비용은 10조 원이었는데, 매년 증가해서 최근에는 67조 원 이상이에요. 그런데 사실 이 금액도 교통 정체로 인한 시간 손실이나 추가로 든 기름값 정도만 계산한 거예요. 오히려 혼잡비용은 지금보다 더 높게 평가되어야 하죠.
자동차도 SUV처럼 비싸고 큰 차일수록 세금을 더 매기고 연료를 아껴서 경제적인 운전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해요. 상대적으로 대중교통은 저렴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명절 통행료를 깎아준다고 하면 좋아하고, 기록적인 무역 적자 속에서도 유류세를 감면해 기름을 쓰는 걸 보장하고 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희원: 차량 구입과 유지에 징벌적인 세금을 부여해서, 돌아다니는 차의 상당수는 아이오닉이나 프리우스 하이브리드 택시인 싱가포르가 문득 떠오르는군요. 싱가포르에서는 이런 정책으로 시민의 건강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고 이야기하지요.
칼럼 마지막 화에도 썼지만, 교통의 문제는 의료의 현실과도 비슷한 느낌이 들어요. 큰 효과가 없는 영양제는 1년에 몇천억씩 시장이 생기는데, 신체 기능과 인지 기능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은 많은 예산이 든다는 이유로 추진이 어렵거든요.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더 비싼 차를 사는 데는 1년에 수조 원씩 지출을 해도, 대중교통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약간의 세금을 부담하는 건 저항이 큰 거죠. 중앙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가 싱가포르의 교통 정책을 가능케 하는 것을 보면, 사람의 심리에 그대로 좌우되는 시장 논리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시 내부를 넘어 수도권, 지방도시를 고민하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칼럼에서 전현우 작가님은 수도권을 기준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절대다수는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셨죠. 이들뿐만 아니라, 근교 도시 이동, 지역 내 이동하는 사람들이 자동차 지배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장소가 필요할까요?
전현우: 저는 기후 위기 시대, 자동차 지배를 완화하려면 도시가 ‘깍지 모형’을 채택해야 한다고 말해왔는데요. 핵심은 도시의 모양 자체가 대중교통을 활용하기 좋은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거예요. 도심부, 그리고 도심에서 뻗어 나온 대중교통 축 주변에 시가지가 발달하도록 하고, 주변에는 토지 이용 규제를 걸어 개발을 억제하는 거죠. 그러면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도시의 손이 한쪽에, 그리고 그사이에 손가락을 뻗고 도시권 밖 녹지에 뿌리를 둔 녹지의 손이 맞잡은 것처럼 ‘깍지’ 모양을 이루게 돼요.
그런데 이 모형을 채택해도 여전히 질문이 남아요. 도시 사이에 녹지가 생기니까, 도시 간 거리가 벌어지고 못 쓰는 땅이 생겨요. 그러다 보면, 도시 사이를 우회해야 하니까 교통량이 증가하거나, 일부 낡은 도로는 폐쇄하는 경우도 있죠. 그럼 주변 소도시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겨요. 중심도시의 역할이 커져서, 중심부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산이 집중되는 문제가 생기는 거죠.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과정에서 감수해야 하는 비용이 아닐까 싶어요. 결국 그 비용을 어느 정도 통제하려면 ‘토지 공개념’을 도입해야 하거든요. 철도를 확충하면, 도로 위주로 외곽에 살던 사람들이 다시 철도를 찾아 중심부로 모여드니까, 녹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외곽은 토지 공개념이 필요한 거죠. 중심부는 지가 양등을 억제하는 한편 그 이익을 환수하여 손해를 본 사람들에게 배분해야 하니 또 토지 공개념이 필요하고. 결국 다 필요하네요.(웃음)
정희원 작가님의 ‘신도시 정상가족 형성 가설’도 흥미로웠습니다. 현재 사람들의 출퇴근 이동이 ‘왜 이렇게 지옥 같을 수밖에 없는지’ 포괄적으로 진단하셨는데요.
정희원: 신도시 정상가족 가설은 ‘사람들이 과밀화된 서울에서 벗어나, 신도시를 향하면 신도시(베드타운)의 국평 아파트에서 아이 둘을 낳고 행복하게 살 것이다.’는 가정인데요. 4인 가족 중 한 명이 돈을 벌고, 나머지 한 명은 양육과 가사를 전담하며 두 아이를 키운다는 생각이 담겨 있죠.
하지만 1990년대에 머물러 있는 정상가족의 모형은 현재의 사회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요. 사회의 구조는 점차 둘이 벌어서 둘만 살기에도 급급한 시대가 되고 있는데, 집값은 계속 오르죠. 맞벌이 부부는 자산의 상승을 견디지 못하고 직장에서 더 먼 곳으로 이주하지만, 그 결과 긴 시간을 통근에 사용하는 맞벌이 부부는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거예요. 이동시간, 식사시간을 포함하여 하루의 대부분을 일하는 시간에 쏟는데, 그 시간 동안 아이를 완전하게 돌볼 수 있는 육아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잖아요.
‘신도시 정상가족 형성 가설’은 토지 공개념의 상실과도 관련이 있어요. 시장에서 건설업자들이 자유롭게 새 택지를 개발해서 집을 팔아먹는 것을 친자본적으로 추진한 결과, 중산층은 긴 이동시간을 감당한 채로 워킹 푸어가 되고, 그 결과 출산율이 감소되어 인구가 빠르게 줄어들겠죠. 앞으로 아무도 살지 않아 텅 비어 있는 아파트가 늘어날 거예요. 그게 20년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업상 고령화 진행 속도나 인구의 증감과 이동, 장기요양과 관련된 통계를 정기적으로 확인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노쇠 정도와 돌봄 요구의 변화가 보여요. 그런데 그 시간이 점점 앞당겨지고 있어요.
칼럼에서 두 분은 ‘걷기’의 유용함을 강조하셨어요.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개인들은 걷기를 방해하는 여러 문제에 가로막힐 것 같아요. 바쁜 출근길에서 선뜻 걷기에 시간을 내기 어려울 것 같고, 걷기 어려운 지역도 있을 거고요. 결국 많은 사회적 뒷받침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전현우: 일단 걷기에 중요한 요인은 시간과 위협인 것 같아요. 시간에 쫓기거나 위협을 느끼는 경우에는 사람들이 걷기를 꺼리겠죠.
정희원: 서울에서 이동하면서, 걷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자동차보다 빠를 때가 많음을 느껴요.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면 하루 8000보~10000보를 걷는 것은 무척 쉽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전현우 작가님이 말씀하신 안전 문제에는 동의해요, 병원에서 정말 바쁠 땐, 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차도를 지나서 뛰어가는데요. 사실 며칠 전에 ‘이러다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택시 운전자분들 중에서도 고령인 분들이 많으니까, 갑자기 뛰어들었을 때 잘 안 보일 수도 있고요. 지금 수도권이 보행자 중심으로, 걷는 이들이 안녕감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전현우: 이 경우에도 개인과 사회가 같이 참여해서 보행 공간을 만들어 나간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간의 경우에는 주어진 조건이지만, 도로 환경은 계속 변하니까요. 개인 중에서도 횡단보도에서 한번 서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는 분들도 있고요.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많이 걷게 하려면, 대중교통에 대한 접근성도 개선되어야 해요.
철도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결국 지선은 버스가 들어가야 할 겁니다. 한국의 도로 면적이 제주도의 2배 정도 되는데 그 넓은 도로 위에 버스를 늘리는 것이 맞지 않냐는 생각도 해요. 3차선 이상 되는 도로면 버스 전용차로를 하나씩 넣으면 좋겠죠. 버스 차로가 승용차 교통량을 억제하기 때문에, 교통량 억제 효과도 어느 정도 있을 거고요.
정희원: 시행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사람들이 철도를 선호하는 이유가 통근 거리가 길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전현우: 물론 도시가 확장하면서 긴 시간 동안 멀리 가는 사람들도 계속 늘어납니다. 서울에서 세종시 통근도 사실 불가능한 건 아니죠. 다만 이건 그만큼 분포의 범위가 넓어진다는 뜻입니다. 여전히 단거리 통행은 많습니다. 이동 시간, 비용이 여러 이유에서 부담스러운 분들도 여전히 있을 수밖에 없지요.
숫자로 말씀드리면, 수도권에서 하루 동안 이뤄지는 통행이 6천만 회 정도인데, 이중 철도를 이용하는 건 대략 천만 회, 그리고 버스 이용객은 철도보다 인원은 조금 더 많습니다. 대략 천오백만 회. 다만 한 명당 통행거리는 시내버스가 도시철도보다 평균 절반입니다. 6km 대 12km. 다만 서울 경계 넘는 철도 통행은 20km가 넘네요.
편도 20~30km라면 서울을 거의 뚫고 지나가는 거리죠. 이 거리, 또는 그보다 긴 거리를 거쳐 이뤄지는 장거리 통근과 고속도로의 승용차를 줄이는 방향이 결국 철도에 있다는 건 이미 제 책에서 말씀드렸는데요. 덧붙여 버스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단거리 통행의 규모나 성격 때문입니다. 타 도시에서 서울로 장거리 통행을 하는 건 대부분 도심에서 일하는 비교적 고수익 직군들일 거예요. 그런데 주거지 인근에서 생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들은 단거리 통행이 많거든요. 그런 분들은 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고요. 그 분들을 위한 것인 동시에, 도로의 자동차 교통량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버스를 활용할 가치가 있어요.
마지막으로, 이동의 위기가 아직까지 먼일로만 느껴지는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희원: 개인의 모습을 모아놓은 것이 사회의 모습이 된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이 하루 24시간을 살면서, 8시간 잠과 기본 위생에 쓰고, 점심시간 한 시간 포함 9시간을 직장에서 보내요. 그러면 7시간이 남아요. 이 7시간 중 절반쯤을 이동에 쓴다고 봐야겠죠. 이동에서 소진되는 정신적 에너지와 그 결과 쌓여가는 스트레스호르몬은 사람의 노화 속도와 질병 발생에 영향을 줍니다. 이동의 스트레스는 수면의 질, 건강하지 않은 식사. 음주, 흡연 등 다른 생활 습관 요인들로도 이어집니다. 게다가 만성 스트레스는 해마 위축과 편도체의 과활성을 불러와요. 화병이 오죠. 모두가 이동의 지옥에서 고통받다 보면, 사회 구성원들의 화가 많아지는 셈입니다.
한 사회를 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콜라나 술을 강제로 먹지 못하도록 만드는 일은 어려워요. 하지만 이동에서의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기 위한 노력은 정책적 의사결정과 현명한 자원 분배를 통해 사람들의 삶에 유의미한 효과를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줄면, 삶에 선순환이 생기겠죠. 이동이 나아진 덕에 저녁이 생겨나면 운동을 할 수도, 가정을 살필 수도 있겠지요. 이런 측면에서, 거대 도시의 이동은 단순한 위기를 넘어 굳이 받지 않아도 될 불필요한 고통을 모두가 나누어 받고 있는 일종의 단체 기합(?) 같은 상황이라는 생각입니다.
조금 더 스케일을 넓혀 보면, 개인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움직이는 것, 즉 이동, 그리고 먹는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이동에서는 모두가 행복하게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상황도 아니죠. 여러 부조리가 얽혀 있다 보니 도로의 운송 분담률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를 않고, 이동 속도도 갈수록 떨어져요. 연재에서 이야기했던 것 처럼, 그 끝은 끊임없이 늘어나는 도로 면적과, 그 도로를 가득 채운 SUV, 그리고 더 빠르게 뜨거워지는 지구가 되겠죠. 올해는 지구가 기후 변화의 티핑 포인트를 지나는 순간을 우리 모두가 목도하는 상황입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이야기처럼 지구 온난화 시대(The era of global warming)는 끝났고 지구가 끓는 시대(The era of global boiling)가 시작됐습니다. 지구가 뜨거워지는 속도는 그 어떤 IPCC의 예측 궤적도 뛰어넘었고, 탄소 배출 감축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생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10년, 20년 뒤에 지구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사람들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를 아들이 물어오면 저로서는 미안하게도 할 말을 잃게 됩니다. 나라에서는 아이를 낳으라고 합니다.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한국이나 서울의 기후가 어떻게 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그때 이 땅에서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지금부터 만들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기후 변화 궤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 지에 대한 자세한 계획도 필요하고요. 기후 위기가 현실이 되었는데도, 이 문제는 그저 방안의 코끼리로 남아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이 코끼리를 대중이 모두 목도할 수 있을 때에야, 경로 의존성의 타성에 젖어 있는 정책들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전현우: 제 경우, ‘이동의 위기’라는 말은 우리가 늘, 너무나 잘 이동하고 있지만, 기후 위기 앞에서 이 모든 이동의 조건이 어느 날 붕괴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담아 제안해 보았던 말입니다. 게다가 이 붕괴의 원인이 이동에서 반드시 따라오게 되는 탄소, 에너지 비용, 아니면 도시 환경 자체의 황폐화나 걷기 어려운 도시 구조 같은 것이라는 역설 때문이고요. 비유하자면 교통사고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밟으면 밟을수록 빨리 도착하긴 하지요. 그러나 그렇게 빨리 달릴수록, 사고의 잠재적 파괴력 또한 커집니다.
이동은 브레이크와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평범한 사실에서 출발해 보시면 어떨까요? 내리막을 달리는 픽시 자전거, 아니면 제대로 된 브레이크도 없이 100km 이상 속도를 냈던 19세기의 열차... 이런 식으로 이동하는 게, 지금 우리 교통의 세계 전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복잡하다면 가속페달보다 브레이크 먼저, 이걸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김윤주
좋은 책, 좋은 사람과 만날 때 가장 즐겁습니다. diotima1016@ye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