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여성의 날] 들리지 않던 목소리 - 홍한별 번역가
그 목소리가 들리게 하려고 애쓴다. 어쩌면 현실의 나는 차마 내지 못했던 분노와 저항의 목소리가, 어쩌면 너무 약한 존재들의 목소리라 들리지 않았던 슬픔과 고통의 목소리가.
글ㆍ사진 홍한별(번역가)
202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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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여성의 날 특집 기획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세상’ 

욕망을 숨기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여성들은 선입견을 벗어나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소설, 영화, 과학, 번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형성을 부수고 다채로운 욕망을 보여주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나는 전사가 되어 싸우다 죽기 위해 말을 타고 창을 들고 전장에 뛰어든다.

나는 나를 배신하고 내 자식을 죽인 친구에게 칼을 꽂으며 저주의 말을 부르짖는다.

나는 어린 자식이 적군의 손에 죽임을 당하게 하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죽이겠다고 울부짖는다.

나는 나를 속이고 딸을 빼앗아간 남편에게 복수하려고 날마다 칼을 간다.

나는 미친 예언자가 되어 세상에 임박한 죽음을 알리려고 입에 거품을 문다.


얼마 전 트로이아 전쟁을 다시 쓴 소설을 번역할 때였다.(『천 척의 배』, 나탈리 헤인스, 홍한별 역, 돌고래) 호메로스가 쓴 남성적인 서사시에서 주변 인물로 등장했던 여자들의 관점에서 전쟁이란 어떤 것인지 들려주는 소설이다. 작가는 지금껏 제대로 된 목소리가 없었던 여자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한다. 그동안 듣지 못했던 여자들의 분노의 언어, 명예의 언어, 저주의 언어, 욕망의 언어, 저항의 언어가 현대 작가의 상상 속에서 형태를 이루고, 비로소 ‘들린다.’


번역하는 일은 내가 아닌 누군가의 신발을 신는 일과 비슷하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그 사람의 자리에 서서, 만약 그 사람이 한국어로 말한다면 무어라고 말할지 상상한다. 절반은 짐이 차지하고 절반은 내 책상과 책이 차지한 우리 집 작은 방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이 화면에서 저 화면으로 글을 옮기는 나는 노바디nobody이다.1) 번역이라는 일은 정의상 눈에 뜨이지 않을수록 좋은 것이라 내가 하는 일도 대개는 의식과 인정의 영역에서 벗어난다. 사실 나는 말을 탈 줄도 모르고(평생 소원이긴 하지만), 감히 자식을 잃는 슬픔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그 목소리가 들리게 하려고 애쓴다. 어쩌면 현실의 나는 차마 내지 못했던 분노와 저항의 목소리가, 어쩌면 너무 약한 존재들의 목소리라 들리지 않았던 슬픔과 고통의 목소리가. 번역을 통해 낯선 곳에 있는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가 한국 독자들 귀에도 ‘들린다.’


“저도 번역을 한 적이 있어요.”


작년에 부산에 있는 책방 밭개에서 북토크를 한 일이 있는데, 한 독자분이 이런 말로 입을 열었다. 이어서 들려준 이야기는 2022년 부산 비엔날레 기간에 부산 현대미술관에 전시되었던 무니라 알 솔의 작품에 엮인 것이었다. 레바논 출신 예술가 무니라 알 솔이 아랍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억압과 폭력에 관해 이야기하는 여자들의 목소리를 묶어 잡지를 만들었다. 레바논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이 잡지의 유통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도서관 뒷방을 빌리거나 호텔 방 같은 곳을 예약해서 사전 약속을 통해서만 잡지를 열람할 수 있었다. 이 잡지를 책방 한탸의 페미니스트 워크샵 회원들이 한국어로 번역해서, 비엔날레 전시장에 설치된 천막(무니라 알 솔의 설치 작품) 안에서 잡지를 읽을 수 있게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지금은 책방 밭개도, 책방 한탸도 문을 닫고 없다. 그렇지만 한때 이 두 책방을 작은 천막으로 삼아 이곳에 모여 독서하고 대화하고 공감했던 페미니스트들이, 지금까지 들을 수 없었던 다른 여성들의 목소리를 번역해서 경계를 넘어 들릴 수 있게 했던 일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왜 그렇게 뿌듯함을 느꼈을까. 내가 하는 일의 존재 가치를 다른 번역가의 작업 덕에 확인받는 기분이었다. 그분들의 수고 덕에 나도 그 잡지를 읽을 수 있었다. 여러 아랍 국가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여성들이 아랍의 봄 이후 어떤 정치적 경험을 했는지 들려주는 내용이었다. 거기에 무니라 알 솔의 이런 말이 있었다. “저주는 비어있는 단어들의 그림자와 닮아있습니다.”2) 비어있는 단어들을 채우기 위해 여자들은 함께 이야기하고, 번역하고, 듣고, 읽는다.


1)  오딧세우스는 자신을 사로잡은 퀴클롭스에게 자기 정체를 알려 주고 싶지 않아 자기는 ‘Outis(nobody)’라고 말한다. 퀴클롭스가 그것을 진짜 이름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오딧세우스는 퀴클롭스한테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리베카 솔닛은 “Nobody Knows”라는 제목의 에세이에서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권력형 성폭력을 저질렀던 포식자들의 정체가 폭로되는 최근의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nobody knows(아무도 모른다)”라는 말을 “nobody(아무도 아닌 존재)는 안다”라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로 바꾸어 쓴다.(『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리베카 솔닛, 노지양 옮김, 창비) nobody는 종종 무존재로 착각되는 존재이다. 번역가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2)  『NOA』 제4호, 8쪽.




*필자 | 홍한별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글을 읽고 쓰고 옮기면서 살려고 한다. 한때 번역으로 생활비를 벌면서 학위 과정을 밟는다는 무리한 설계를 하기도 했으나 첫째를 가지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그래도 세 살 터울로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면서 번역 일은 중단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던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아이들이 다 커서 하루에 여덟 시간 방해받지 않고 일할 수 있다. 그 시간에는 주로 번역을 하고, 가끔 글을 쓰고, 대학원에서 학생들에게 번역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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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한별(번역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글을 읽고 쓰고 옮기면서 살려고 한다. 한때 번역으로 생활비를 벌면서 학위 과정을 밟는다는 무리한 설계를 하기도 했으나 첫째를 가지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그래도 세 살 터울로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면서 번역 일은 중단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던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아이들이 다 커서 하루에 여덟 시간 방해받지 않고 일할 수 있다. 그 시간에는 주로 번역을 하고, 가끔 글을 쓰고, 대학원에서 학생들에게 번역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