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아무것도 재지 않고 내 멋대로 굴어 본 게 언제던가. 쥐꼬리만 한 사회적 지위와 체면 때문에 때로는 가성비를 따지는 약빠른 계산기 앞에 우리의 운신의 폭은 날이 갈수록 좁아져 간다. 멋지거나 있어 보이고 싶다는 욕심도 한몫한다.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운신은 어떻게 해도 큰일이 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우리의 정신과 육체를 위축되게 한다. 격렬한 감정의 파도가 밀려올 때 눈치 보지 않고 눈물 콧물 쏙 빼고 웃고 웃을 수 있는, 모두가 O라 말할 때 당당히 X를 들 수 있는, 좋아하는 사람 앞에 꾸밈 없는 마음을 내어놓을 수 있는 그런, 용기. 맞다. 우리는 나이와 함께 한 때 우리가 용기라 불렀던 것들을 조금씩 잃어간다.
그룹 데이식스가 3년 만에 완전체 명의의 앨범
앨범
그런 새출발이 ‘Welcome to the Show’로 시작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데이식스의 2막은 그동안 한 번도 멈춘 적 없던 이들의 음악이 탄탄히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걷기, 아니 뛰기 때문이다. 앨범에 수록된 일곱 곡의 노래는 하나하나 정성스레 놓인 돌다리 위를 주저 없이 직진한다. 첫 곡에 이어지는 ‘HAPPY’와 ‘The Power of Love’는 지금까지 누구보다 이 순간을 기다려온 이들이 있음을 온몸으로 외친다. 아무 이유도 근거도 없이 그저 행복하고 싶은 마음과 황홀하고 놀라운 사랑의 힘을 지고지순하게 부른 이들은 ‘널 제외한 나의 뇌 (Get The Hell Out)’을 통해 데이식스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청춘의 풋사랑을 한여름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비트와 멜로디를 뼈대로 이보다 청량할 수 없게 담아낸다.
다음 곡 ‘나만 슬픈 엔딩’까지 리듬 파트만 두고 보면 펑크(Punk)나 LA 메탈이 떠오를 정도로 두드려대고 휘몰아치던 이들이 가까스로 숨을 고르는 건 앨범 후반에 자리한 두 곡 ‘사랑하게 해주라’와 ‘그게 너의 사랑인지 몰랐어’에 들어서다. 그렇다고 앞선 직진의 기세가 꺾인 건 아니다. 데이식스의 또 다른 장기인 애틋한 세레나데를 프로듀서 데이비드 포스터식의 풍성한 팝 편곡이나 현악 연주 등으로 외양만 부드럽게 다듬었을 뿐, 그 안에 담긴 마음만은 지금까지의 어떤 곡보다 뜨겁고 곧다. 사랑할 수 있게 너의 마음에 들여만 놔 달라고, 그땐 그 모든 게 사랑인지 정말로 몰랐다는 솔직한 고백 앞에서 마음의 빗장이 또 한 번 풀린다. 우리가 운명이 아니라면 운명의 멱살이라도 잡고 필연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기개(氣槪). 이토록 찬란한 진심을 마지막으로 본 적은 또 언제였나. ‘내 전부를 다 바칠게’라는 무모한 맹세를 모른 척 믿고 싶어지는, 데이식스의 힘찬 2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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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
insun83
2024.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