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을 기억하며] 수학여행
아이들의 수학여행이 영원히 빼앗기지 않았으면. 놀러갔다가 안전히, 무사히 돌아올 수 있는 수학여행이 지속되기를.
글ㆍ사진 김초롱
202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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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흘렀습니다. 2022년 10.26 참사 생존자가 4월 16일을 맞아 편지를 부칩니다.


출처: 4·16재단


“저도 너무 수학여행 가보고 싶어요. 한 번도 못 가봤어요.”


포항에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북토크를 하러 갔다가 청소년 독자, 채원이를 만났을 때 일이었다. 올해 중학교 1학년. 이제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채원이는 초등학교 5, 6학년 때 수학여행을 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가지 못해 아쉬웠다고 했다. 왜 수학여행을 못 갔냐고 물으니, 법이 바뀌어 전세버스가 아닌 ‘노란 버스(어린이 통학용 버스)’로 가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해당 조건을 채우는 버스가 전국에 거의 없어서 많은 초등학교에서 수학여행을 무더기 취소 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결국 수학여행도 졸업여행도 가지 못했다고 했다.


이 기막힌 이야기를 듣고, ‘어른들 참 못됐다’고 생각했다. 그 어른들은 수학여행이 얼마나 재미있고, 소중한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자신들의 어린 시절에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을 추억일 테니. 전날의 설렘, 준비하며 이 옷 입을까, 저 옷 입을까 골라보던 기억, 때밀고 가야한다며 집에서 목욕하며 수학여행을 준비하던 그런 기억들. 그런데 수학여행 무더기 취소라니. 전국의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수학여행과 함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어린날의 시간과 추억을 빼앗긴 것일까.


이쯤 되니,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나쁜 것으로 생각할까 봐 걱정되었다. 어디 멀리 가는 것은 위험하고 나쁜 것이니 어른들이 조심하고 막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면 어쩌지. 나는 진심으로 걱정했다. 그리고 그때, 아니나 다를까 걱정한 이야기가 나왔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수학여행을 더 조심하는 분위기가 생긴 것 같아요.’라는 말을 아이들 입에서 듣고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어른들 참 못됐다고.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어른들이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지, 수학여행을 가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야. 그것만은 꼭 알려주고 싶었다.


“(중략)아이들이 커다란 배를 타고 제주도 수학여행을 떠났는데 도중에 그 배가 침몰했어. 배가 눈앞에 둥둥 떠있었어도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채 가라앉는 장면을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지켜본 사건이었어. 배가 침몰한 이유는, 원래는 그래서는 안 되지만 배에 실어야 하는 무게를 초과했기 때문이야. 자동차도 넣고, 짐도 더 많이 넣었지. 더 많이 싣기 위해 법까지 고쳐가면서 무리했어. 한국에 예전에 빨리빨리 성장하려고 꼼수도 많이 쓰고 그랬는데, 그 나쁜 습관을 아직도 고치지 못했고 세월호 때도 그랬던 거야. 그래서 애석하게도 많은 아이들이 하늘나라로 갔어. 어른들이 정말 잘못한 거야. 뭐든 빨리빨리, 많이많이 하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그렇게 된 거니까. 그 사건 이후 이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몰라서 모두 수학여행을 안 가기로 했나봐.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말이야. 그때 침몰한 배 이름이 세월호라서 우리는 그 사건을 ‘세월호 참사’라고 불러.


(중략) 네가 수학여행을 갈 수 없어서 엄마도 슬프고 미안해. 대신 엄마랑 다른데 놀러 가자. 친구들도 데리고 와. 엄마가 그 친구들 엄마들한테 말해서 다같이 데려갈게.”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181~182쪽 중)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북토크에 참여한 채원이에게, 이 부분을 읽었느냐고 물었다. 끄덕이는 채원에게 수학여행을 가는 것 자체는 절대로 나쁜 일이 아니고 놀러 가는 것도 나쁜 것이 아니라고 재차 강조해서 이야기해주었다. 수학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을 갖는 너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자신이 너무 유난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전했다. 그랬더니 너무 마음 아픈 답변이 돌아왔다.


“어른들이 그렇게 해버리면, 우리는 그냥 따를 수밖에 없으니까…”


아이들의 마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아이들의 세계에서 어른이란 얼마나 강력한 권력이고 얼마나 큰 존재이며, 넘볼 수 없는 벽일까. 그것을 느낄 때마다 서러운 마음이 드는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까. 세월호 10주기, 지난 10년간 우리는 그 큰 참사를 겪고도 아이들을 보호하려 노력했던 적이 있었는가. 무엇이 아이들을 위한 길인지 생각해 본 적은 있는가, 아이를 아이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 보기는 했느냐고 세상에 반문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서점 대표님의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얘들아, 어른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어린이로 성장해라. 어른들의 말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기보다 맞는지 아닌지 판단할 줄 아는 어린이가 되어야 해. (중략) 스스로 생각하는 어떤 방향이 있다면 그것을 엄마 아빠 또는 어른들에게 말하는 방식을 좀 연습해보는 것도 답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고,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세상과 너무 빨리 타협하지 않는 아이로 성장하길. 왜냐면 세상을 이끄는 어른들은 저마다의 이익에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의 이익에 너희들의 이익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 어른들이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너희가 하고 있는 생각이 정확하게 있다면, 그것을 쉬이 굽히지 말고. 설령 그 의견이 꺾인다고 하더라도 한 번쯤은 말해볼 줄 아는 어린이가 되기를.”


포항 북토크에 참여한 4명의 이 아이들이 지역을 건너 울산으로 다시 한번 나의 북토크에 서점 대표님의 차를 타고 오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이들이 원했다고 했다. 다시 나를 만나보고 싶다고, 다른 지역으로도 가보고 싶다고. 아마도 놀러 가고 싶어하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어른일 거라 생각하는 마음일 테다. 4명 어린이 모두 수학여행을 가보지는 못했지만, 내 책 속에 엄마가 아들에게 자신이 친구들을 데리고 수학여행처럼 놀러 가주겠다고 말한 대목대로 아이들이 한 명의 좋은 어른과 함께 신나게 놀기 위해 내게로 온다.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수학여행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만한 좋은 기억을 주고 싶다. 아이들의 과자와 줄 선물을 고르며 기도했다.


‘아이들의 수학여행이 영원히 빼앗기지 않았으면.
놀러 갔다가 안전히, 무사히 돌아올 수 있는 수학여행이 지속되기를.’


이 글을 쓰면서,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에 관한 이야기를 피로해할까 봐 노심초사해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러나 어른으로서 해내야 할 의무가 있다면, 필요한 이야기를 꿋꿋이 지켜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계속 말해야 우리는 변할 수 있으니까. 이 이야기를 지켜야 우리의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여전히 10년 전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 아프다. 그래서 지금도, 앞으로도 참사를 계속해서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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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롱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저자. 2022년 이태원 참사 생존자이자 당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