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립’이라는 주제로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여전히 본가와 기숙사를 매주 오가고, 여러 방면의 돌봄을 받고 있는 내게 ‘자립’이라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없는데요, 하고 대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인생에서 두 가지 순간을 ‘자립’의 순간이라고 소개했다. 하나는 타고 있던 수동 휠체어에 전동 키트를 달아 처음으로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된 고등학생 때, 그리고 또 하나는 호주 기숙사에서 빨래해 보았을 때다. ‘스스로 설 줄 알게 되었다’기 보다는, ‘살아감’의 한 층위를 통과한 느낌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혼자서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게 해준 보조기기가, 그리고 증기 냄새가 나는 바삭한 수건이 내게 그 순간을 선사했다.
그중에서도 ‘빨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부끄럽지만 빨래를 모으는 것부터, 세탁을 하고 그것을 개어 정리하는 일까지를 혼자 한 것은 호주에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홀로 호주행을 결정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걱정한 것은 ‘빨래는 어떻게 하지?’였다. ‘휠체어로 하는 여행’을 이야기할 때는 어림없이 ‘어려움’이라는 단어가 따라붙고, 휠체어가 갈 수 없는 식당이나 여행지, 혹은 지역으로 이동할 수 없는 대중교통 등 커다란 이야기들이 등장하지만, 내게는 샤워, 빨래, 요리, 캐리어 끌기 등이 먼저였다. 내가 나를 잘 돌볼 수 있을지가 가장 무서웠다. 호주로 혼자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이나, 그 안에서 버스든 기차든 무언가를 이용해 이동하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다.
바삭한 빨래를 만지며 어른이 되다
사소한, 그러나 가장 중대한 걱정을 안고 당도한 디킨 대학교의 기숙사는 여러 개의 주택이 하나의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1층의 가장 안쪽 방에 머물게 되었다. 짐을 풀기도 전에 가장 먼저 화장실을 둘러보았다. 1층에는 공용 화장실 두 개가 있었는데, 휠체어 마크가 있는 샤워실 겸 화장실이 눈에 띄었다. 사람이 네 명은 넘게 누워도 될 듯한 커다란 공간의 한쪽 벽면에는 샤워커튼이 쳐져 있고, 커튼을 젖혀보니 앉을 수 있는 고정형 의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방의 벽에는 잡을 수 있는 봉이 벽에 달려 있었다. 늦은 시간이었기에 화장실을 둘러본 뒤 바로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조금 차가운 침대에 누우면서, 처음 든 감정은 ‘안심’이었다. 적어도 잘 씻고, 잘 쌀 수 있겠다는 안심. 내 여행은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다음날은 식당을 확인했다. 학생들이 요리할 수 있도록 마련된 주방에는 두 개의 싱크대와 두 개의 가스레인지, 두 개의 전자레인지가 좌우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쪽의 싱크대, 가스레인지에는 하부장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차이를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이후 자연스레 하부장이 없는 곳으로 휠체어를 몰아 빈 공간에 몸을 쏙 밀어 넣은 뒤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내가 지금 앉아서 설거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돌아오는 주말에는 빨래에 도전했다. 세탁기와 건조기는 가로로 배치되어 있었다. 앉은 채로 빨래를 넣고, 세제를 던져 넣었다. 빨래를 꺼낼 때는 일어서야 했지만, 모두 내 손이 닿는 범위 안에 있어서 작은 양말까지 모두 꺼낼 수 있었다. 축축한 빨래를 하나씩 건져내서 옆 건조기 위에 올리고, 다시 휠체어에 앉아 드럼 건조기 안으로 옷가지를 밀어 넣었다. 한 시간쯤 방에서 기다리다가, 세탁실에서 흘러나오는 발랄한 멜로디를 듣고 더운 기운이 남아있는 동그란 문을 확 열어젖혔다. 마르다 못해 바삭해진 옷들은 따뜻했고, 수증기 특유의 냄새가 났다. 마트에서 산 장바구니에 세탁한 옷들을 담아 따끈한 덩어리를 무릎에 올리고 방으로 돌아왔다. 인생에서 첫 번째 빨래였다. 24살에 이런 말을 하는 건 부끄럽지만, 어른이 된 것 같았다.
하부장이 없는 싱크대와 손이 닿는 건조기가 만들어낸 자립
이후로 기숙사에 머무는 동안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근처 마트로 향해 장을 보고, 냉장고에 음식을 차곡차곡 넣고, 재료를 다듬어 간단한 요리를 해 먹는 것이었다.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음식을 내게 만들어주는 일은 마치 나를 소중히 다루는 것 같았다. 건조기의 문을 열고 따뜻한 옷가지를 꺼내 한 아름 안는 것도 기분 좋았다. 모두 내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따끈한 빨래를 개키면서, 종종 한국의 내 방을 떠올렸다. 나는 한국에서도 기숙사에 산다. 건물의 장애 접근성 보장 정도가 나쁜 편은 아니라, 커다란 화장실이 있는 방에서 휠체어를 타고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주방이나 세탁실은 휠체어를 타고는 이용할 수 없다. 싱크대 앞은 너무 좁고, 앉아서 무언가를 하기에는 턱없이 높다. 건조기는 세탁기 위에 배치되어 있어 앉아서는 문을 여는 것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배달 음식을 시켜 먹거나, 레토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잦았다. 빨래는 모아뒀다가, 학교에서의 활동을 도와주시는 분께 부탁하곤 했다. 물론 장애인의 활동을 지원하는 서비스는 중요하고, 더 확대되어야 할 일이지만, 내가 나를 살리는 ‘살림’의 기회가 내게는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음식을 직접 해 먹는 일, 따스한 수건을 매만지고 서랍에 넣어두는 일을 할 때마다,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나를 살게 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곳이 달라졌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자립에 대한 인터뷰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자립’이라고 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무거워져요. 내가 다 해내야 할 것만 같고, ‘스스로’ 무언가를 성취해야만 하는 것 같고요. 그런데 전 하부장이 없는 부엌과 손이 닿는 건조기에서 자립을 발견했어요. 내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나는 자립할 수도 있고 없는 사람이 된 거죠. 어쩌면 많은 사람은 ‘자립’할 환경이 필요한 건지도 몰라요.”
김지우(구르님)
휠체어가 굴러서 ‘구르님’. 김지우보다 익숙해진 이름으로 유튜브,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한다. ‘구르는’ 삶에 대해 할 말이 많아서 영상을 만들고 글을 쓴다. 쓴 책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 『오늘도 구르는 중』, 『우리의 목소리를 공부하라』(공저)가 있다. 장애의 과거와 미래보다, 살아가고 있는 '현재'를 이야기하고 싶다. 최근에는 홀로 여행하는 즐거움을 깨달았다. 계획을 세우는 데 소질이 없는 탓에 다음에는 어디로 구를지 알 수 없지만, 멀리 굴러갈 의지와 바퀴만은 탄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