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의 소설가 장은진이 그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사랑
계절감을 진하게 녹여낸, 각각의 계절을 대표하는 소설을 쓰고 싶은 바람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습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4.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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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짜인 구성과 차분한 이야기의 요철”(한강 소설가), “이상한 슬픔, 이상한 따뜻함, 이상한 고독”(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이미지를 유려하게 전개하며 문학동네작가상,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장은진 작가의 네 번째 소설집 『가벼운 점심』이 출간되었다.


“자학적 고립을 감수하면서도 출구 밖 타인들을 향한 소통의 욕구”(「키친 실험실」)를 실천하고, “밖을 갈구하지만 안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하며”(「빈집을 두드리다」), “전시하지도 과시하지도 않는 자기만의 고독”(「당신의 외진 곳」)을 개척했다고 평가받은 작가에게 독자는 ‘끝내 믿음직한 시선’이란 수식을 더한 바 있다. 어떠한 과잉이나 점철 없이 세상 안팎을 두루 넘나드는 고유의 작풍은 수록 작품순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만나볼 수 있는 『가벼운 점심』에 이르러 비로소 만개한다.



소설집 『당신의 외진 곳』 이후 4년 만에 네 번째 소설집을 출간하셨어요. 출간 소감 부탁드립니다.

세 번째 소설집 『당신의 외진 곳』을 출간하던 해에 발표한 단편들이 이번 소설집 『가벼운 점심』에 실려 있습니다. 그만큼 책의 출간 일정이란 예측할 수 없는 것인데도,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에 소설집을 내고 싶다는 바람을 딱 맞게 이뤄서 마음이 새싹처럼 파릇파릇해졌습니다. 『가벼운 점심』은 봄에 낸 첫 소설집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사계의 소설가’라는 수식처럼, 작가님의 소설에선 ‘계절’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가벼운 점심』은 사계절이 모두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 특징이 더욱 도드라지는 듯합니다. 계절에 천착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사람들은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을 한 후, 시간이 지나 그 일을 떠올릴 때 당시 입고 있던 옷이나 날씨, 계절 등도 같이 생각하잖아요. 봄에 벚꽃이 필 때면 ‘벚꽃 엔딩’이란 노래가 떠오르고 눈이 내리면 영화 ‘러브레터’가 떠오르듯 소설에도 그 계절이 되면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계절감을 진하게 녹여낸, 각각의 계절을 대표하는 소설을 쓰고 싶은 바람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습니다. 장편소설 『날짜 없음』 같은 경우 배경이 겨울이라서 눈이 오면 생각난다고 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또 줄곧 사랑과 연애에 관해서도 써오셨고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사랑의 형태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가벼운 점심』의 여섯 작품 중 한 장면을 꼽아주셔도 좋겠고요.

「가벼운 점심」 속 아버지와 아들이 패스트푸드점 테이블에 앉아 나누는 대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화를 통해 아들이 10년 만에 만난 아버지를 천천히 이해해 가는 과정은 소설의 핵심이기도 하고요.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랑은 이룰 수 없잖아요. 사랑은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수록작 중 가장 긴 분량인 「하품」의 제목을 의아해하는 독자들이 많아요. 소설 어디에서도 ‘하품’이란 단어는 등장하지 않고요. 제목에 숨은 뜻이 있을까요?

의도적으로 제목 ‘하품’의 단어를 작품에 쓰지 않았습니다. 독자분들이 읽고 제목의 의미가 뭘까 생각해 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권태에 빠진 중산층 부부의 일상을 담고 있어서 ‘하품’이라고 붙였는데, 이런 반응이 있을 것 같아 제목을 ‘아내의 책상’으로 바꿀까도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바꾸지 않기를 잘 한 것 같습니다.


표제작 「가벼운 점심」을 빼고는 모든 소설에 고양이가 등장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혹시 고양이를 키우시나요?

키우던 반려견을 16년 전에 떠나보내고 그 슬픔이 워낙 커서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대신 녀석은 동물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살게 만들더라고요. 고양이를 기르지는 않지만 길고양이 사료를 항상 챙겨주고, 유기견에게 새 주인을 찾아준 적도 있고, 로드킬당한 동물을 거둬서 땅에 묻어준 경험도 여러 차례입니다. 동물은 약자이기에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고 그들 또한 사회 구성원이자 우리 곁에 머무는 생명체이므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에 필요하다면 되도록 자주 등장시키려고 합니다.


독자들이 『가벼운 점심』을 읽으며 눈여겨봐줬으면 좋을 장면이나 이야기가 있을까요?

개인적인 경험을 소설화하는 걸 좋아하지 않고, 가능한 하지 않는 편이지만 살면서 겪었던 아주 단편적인 장면이나 기억이 소설의 소재가 될 때가 간혹 있습니다. 「피아노, 피아노」에서 주인공이 경비실 앞에 버려진 피아노를 발견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실제로 제가 재활용쓰레기를 버리러 갔다 경비실 앞에 버려져 있는 피아노를 본 적이 있습니다. 스냅 사진처럼 단출한 장면이었는데도 굉장히 인상 깊이 남아서 언젠가 꼭 저 장면이 나오는 단편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의 계획도 들려주세요.

다음에 출간할 장편소설을 다듬는 중이지만, 계획의 1순위는 늘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소설, 더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장은진

1976년 광주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지리학과를 졸업하였다. 200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동굴 속의 두 여자」가, 2004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에 「키친 실험실」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2007년 등단한 동생 김희진씨와는 ‘쌍둥이 자매 소설가’이다. 소설집 『키친 실험실』, 『빈집을 두드리다』, 『당신의 외진 곳』, 장편소설 『앨리스의 생활방식』,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날짜 없음』, 『날씨와 사랑』 등이 있다. 2009년 문학동네작가상, 2019년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첫 소설집 「키친실험실」에서부터 고립과 소통이란 주제에 대해 골몰해 온 그녀는 스스로를 '은둔형 작가'라고 칭한다. 첫 장편소설 『앨리스의 생활방식』에서도 10년간 집안에 틀어박힌 은둔형 외톨이를 등장시킨 것을 보면 예사로 넘길 말은 아닌 듯 하다. 하지만 『앨리스의 생활방식』의 미덕은 고립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뒤집는 데 있다. 손쉽게 자신의 닫힌 방문에서 빠져나와 밖으로 나갈 것을 역설하지 않고, 철저한 고립이 오히려 진정한 자신을 찾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이 여타의 ‘외톨이 이야기’와 차별되며 문제적일 수 있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작가는 “삶의 방식이 밖에서 보기에 올바르지 않고 평범하지 않다고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누군가를 이해하고 이해받는 게 살아가는 힘이 아닐까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은 이제 문 안에 갇히는 대신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09년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인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에서 그녀는 길 밖으로 떠도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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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