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태국의 도이 사켓(Doi Saket)이라는 작은 마을의 방갈로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미국, 호주, 영국, 캐나다에서 온 다른 친구들과 함께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서 생활하는 중인데 영미권의 모든 억양으로 이루어지는 대화를 따라가느라 매일 정신이 없다. 여기가 영어 캠프인지 레지던시인지…… 첫 주에는 서로의 작업을 소개하는 자리가 있었고 동행인 김리윤 시인과 나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시를 많이 읽고 쓰는 나라라고 말했다. 런던에서 온 조나단이 물었다. 왜 그런 거야?
떠오르는 여러 가설들을 대충 떠들었지만 뭐 하나 명확하지는 않은, 이유를 위해 갖다 붙여진 이유 같은 것들이었다. 가끔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자랑스러운 동시에 어딘가 수치스러운 기분이 든다. 안녕하세요, 시를 좋아하는 나라에서 온 시인, 김선오입니다. 이런 느낌이랄까. 김리윤 시인은 자신의 직업이 시인이라고 소개하자 한 어린이가 깜짝 놀라며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살아 있는 시인이 있어?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시인이고 한국에는 살아 있는 시인이 아주 많다. 한국 현대시는 상당히 젊은 편이다. 이제 백 년이 좀 넘었으니까. 이렇게 한국 시단이 활기찬 데에는 고작 백 년 된 한국 시의 젊음이 한몫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제 강점기 때 번역가들은 일본 시풍에서 벗어난 한국어 구문에 맞는 근대 한국시의 형식을 고안하고자 무척 애를 썼다. 1913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인도 시인 타고르는 같은 동양인이라는 점, 피지배 민족의 시인이었다는 점 등에 의해 식민지 조선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이때 김억이 타고르의 시를 번역하며 ‘오’라는 감탄사를 사용한 방식이나 인칭대명사, 조사를 번역한 내용 등은 이후 만해 한용운을 비롯해 한국 근대시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니까 한국 시의 원형은, 본래부터가 번역문이었던 것이다.
나의 다음 시집은 (아마도 다음 달에) 영어 번역본과 나란히 출간될 예정인데, 시를 쓰는 시간만큼이나 번역된 시를 읽고 검토하는 과정이 매우 즐거웠다. 시인으로서 스스로의 번역 시를 읽는 일은 독자의 독자가 되는, 그러니까 시인이라는 몸 위에 두 겹의 독자가 포개지는 이상한 경험이다. 함께한 이유나(Eunice Lee) 번역가는 특히 원문을 능가하거나 원문과 매우 적확한 방식으로 이어지는 리듬의 번역에 매우 능하기에 영문 번역문을 직접 낭독하며 여러 번 놀랐다. 번역은 종종 원작을 넘어서고 또 그 자체로 하나의 원작이 된다. 시의 언어가 번역 과정에서 유실되는 일을 관습적으로 두려워하거나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느 지점은 유실되지만 다른 지점이 생성되기에 번역은 일종의 제로섬 게임과 유사하다고 안일하게 답할 수도 있겠다. 조금 더 솔직해져 보자면 유실된 부분은 한국어 판본에 여전히 남아 있으므로 사실은 생성의 측면이 훨씬 크다고, 그러니 그런 낡은 걱정은 그만 두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최근 가장 즐겁게 읽은 번역 시집은 오션 브엉의 『총상 입은 밤하늘』이었다. 이곳에 옮기지 못한 장시들은 더욱 좋다. 새로운 한국어의 발견을 상상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원문을 충실하고도 다채롭게 옮겼다고 느껴지는 이 시집을 읽어보는 일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앞서 말했다시피, 한국 시는 본래부터가 번역문이었으니까.
갈비뼈의 텅 빈
허밍에 답으로
화살촉이 하루를
바꿀 때
그건 사슴이 내는
소리에 더
가깝지. 올 것을 빤히 알면서도
계속 정원에 나 있는
구멍 속으로 걸었어. 왜냐면 잎들이
진한 초록색이었고 불은 그저
멀리 있는, 분홍색 붓질
자국일 뿐. 밝기는
중요하지 않아ㅡ네가 어디 서느냐에
따라 빛이 얼마나 널
어둡게 하는지가 관건이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네 이름은 죽은 사슴의 털가죽에
갈가리 찢긴 보름달처럼 들릴 수 있지.
네 이름은 중력에 닿았을 때
바뀌었지. 중력은 우리의 슬개골을
부러뜨리는 한이 있어도 하늘을
보여주려고 해. 왜 우리는 자꾸
그래 라고 말했을까ㅡ
저 많은 새들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누가 우리를
믿을까? 라디오 안의 내 목소리가
뼈처럼 바스라지고.
바보 같은 나. 난 사랑이 진짜고
몸은 상상이라고 믿었지.
화음 하나만으로 모든 게
가능하다고. 하지만 우리 다시
여기ㅡ이 추운 벌판에
서 있잖아. 그녀를 부르는 그.
그의 곁에 있는 그녀.
그녀의 발굽 아래에서 끊어지는
서리 내린 풀.
- 오션 브엉, 「에우리디케」 전문
김선오(시인)
199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좋아하는 것이 많지 않지만, 무한히 변주되고 갱신되는 피아노와 시만큼은 자신 있게 좋아한다 말하는 시인. 시집 『나이트 사커』와 『세트장』, 에세이 『미지를 위한 루바토』를 썼다.
봄봄봄
2024.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