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한국인에게 영어는 평생을 배워도 좀처럼 자신감이 붙지 않는 콤플렉스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한국인의 영어 콤플렉스마저 정복될지 모른다. 단, 기술을 활용하는 자만이 그러한 해방을 누릴 수 있다. 『나의 영어 해방 일지』는 자신이 쓴 책의 번역자를 섭외하다 어려움에 부딪친 저자가 우연히 알게 된 딥엘(DeepL)과 챗GPT, 두 개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활용해 직접 책 한 권을 번역하며 쌓인 노하우를 정리한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운 것들의 노트’다. 퇴근 후 매일 밤, 10개월을 바쳐 완성한 번역본은 프로 번역가들 눈에도 썩 괜찮아 보이는 수준이다. 그 사이 인공지능과 저자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안녕하세요, 작가님! 올해 6월 외국인을 위한 한국 안내서 『K를 팝니다』를 출간한 뒤 11월에는 그 책을 직접 번역하는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를 정리해 『나의 영어 해방 일지』로 펴냈습니다. 정말 바쁜 한 해를 보냈을 것 같아요. 출간 이후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연일 이어지는 인터뷰와 사인회와 북토크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 말하면 참 좋겠는데, 일상은 변화가 전혀 없습니다. 회사원이니 매일 출근해서 일하고, 틈날 때마다 『K를 팝니다』 해외 수출을 위해 외국 에이전트들에게 연락하고 있지만 아직 계약하자는 곳은 없고요. (지금까지 약 120번 거절당했는데, 이러다 조앤 롤링의 ‘200번 거절’ 기록을 깰지도 모르겠네요.) 최근엔 제가 강양구 기자와 함께 진행하는 책 팟캐스트 <YG와 JYP의 책걸상> 내년 시즌 제작비 마련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성공리에 마쳤고요, 2025년 1월에는 『나의 영어 해방 일지』 관련해서 북토크와 워크숍 등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번역자를 섭외하지 못해 직접 번역에 나섰다는 내용이 서문에 있습니다. 아무리 섭외의 어려움이 있어도 선뜻 그런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번역을 직접 해 보자고 결심할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인공지능과 함께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 내용을 책으로 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선뜻’ 그런 선택을 한 건 아니었어요. 책에는 ‘후배 K’로 등장하는 강양구 기자의 아이디어를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그게 되겠냐?”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죠. 신문물 체험 차원에서 서문만 번역해 본 다음엔 “어라? 잘하면 될 수도 있겠는데?” 싶었습니다. 제가 작업한 샘플 원고를 미국인 지인에게 보여 주고 피드백을 받은 다음에는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생겼죠. 하지만 그 과정에 대한 책까지 쓸 생각은 못했어요. 1년 가까이 두 개의 인공지능과 씨름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혼자만 알고 있기는 아까워서 몇 차례 강의와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그 워크숍에 (저의 초청으로) 참여했던 민음사의 박혜진 부장이 “오늘 강의하신 내용으로 책 한 권 써 보시라”고 제안해 주셔서 여기까지 왔네요.
이번 도서는 실용서인 동시에 유쾌한 에세이로 읽힌다는 것이 큰 매력입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집필 과정에서 특별히 신경쓴 부분이 있다면요?
저는 글을 쓸 때나 강연을 할 때면 언제나 ‘웃겨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걸로 밥벌이할 만큼의 능력은 없지만, 책 팟캐스트에서 ‘유머’를 담당할 정도는 됩니다.) 여러 장르의 글을 써 봤지만 소위 ‘실용서’라고 분류될 만한 책을 쓰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요, ‘실용서라고 해서 웃기면 안 된다는 법은 없지 않나. 실용서가 웃기기까지 하면 더 좋은 거 아닌가. 읽는 즐거움이 있으면 끝까지 읽는 독자가 더 많아지겠지.’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딥엘과 챗GPT와 좌충우돌했던 과정 자체에 웃음 포인트가 많이 존재했으니, 억지로 웃긴 이야기를 만들어 낼 필요도 없었고요. 물론 가끔씩이라도 영어로 된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지만, 그럴 일이 전혀 없는(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분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평생 읽어 본 실용서 중에 제일 웃김’이라는 어느 독자의 피드백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AI를 통한 번역 작업 중 가장 웃겼던, 기발한 오번역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군만두가 군대 만두(military dumpling)가 된 순간, ‘절반이 넘는다’는 의미로 사용한 ‘태반(太半)’이라는 단어가 산모와 아기를 연결하는 ‘placenta’가 된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어이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제가 딥엘과 챗GPT를 ‘인간적’이라고 느끼기 시작한 순간이었죠.
AI 번역 기술과 한국문학의 미래에 대해 언급한 부분도 인상적입니다. AI 번역이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미칠 긍정적 영향을 어떻게 보시나요?
과거에 비해 훨씬 낮은 비용과 적은 노력으로 한국의 문학 작품을 해외의 출판 관계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하죠. 드라마 한 편에 영어 자막을 넣는 비용이 책 한 권을 영어로 번역하는 것만큼 많이 들었다면, K-드라마 열풍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작품 자체를 번역하는 것 외에, 그 작품에 대한 해설, 의미, 국내 반응, 관련 보도 등 국내의 작가나 출판사가 외국에 어필하고 싶은 자료들도 쉽게 영어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몇몇 성공적인 사례가 나타나면, 분명히 국내 작가들 중에 집필할 때부터 번역-수출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는 분들이 생길 겁니다. 비문학 분야에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AI 번역 도구를 처음 사용하는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끝없이 의심해야 합니다. 우리 눈에 그럴듯해 보이는 영어도 원어민의 눈에는 유치하고 어색할 수 있으니까요. 또한 인공지능이 하는 말도 무조건 믿으면 안 됩니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를 거듭 질문하는 ‘현빈 정신’이 꼭 필요합니다.
책 리뷰 팟캐스트, 의료 도서 번역, 여행 에세이 작가, AI 활용법 실용 에세이 집필까지, 책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관심사와 실행력이 느껴집니다. 당연히 다음 계획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떤 책을 준비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사실 올해 쓰기로 약속한 책은 따로 있었는데, 『나의 영어 해방 일지』를 쓰느라 약속을 못 지켰습니다. 제철소 김태형 대표님께 죄송합니다. 제철소? 그렇습니다. 저의 다음 책은 ‘아무튼’ 시리즈 중의 하나입니다. 지금 열심히 쓰고 있으니 2025년에는 『아무튼, 맛집』이 나올 겁니다. 그리고, 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개념의료』가 출간된 지 10년이 넘어, 『개념의료2』는 도대체 언제 쓸 거냐는 압박을 많이 받고 있는데요, 2025년 중에 집필을 시작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