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죽으려면 의미 있게 살아야 합니다
죽기 전까지 우리는 ‘아직’이므로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목적이 무엇인지, 어떤 삶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삶이 의미를 잃지 않게 늘 죽음을 떠올리며 어떤 삶을 완성할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글 : 출판사 제공 사진 : 출판사 제공
2025.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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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명의’, ‘죽음을 준비시키는 의사’ 서울대 의대 윤영호 교수가 『나는 품위 있게 죽고 싶다』에 이어 예스24 오리지널 신간 『삶이 의미를 잃기 전에』로 돌아왔다. ‘후회 없는 삶’과 ‘품위 있는 죽음’을 이어줄 ‘인생의 의미’를 성찰한다. 물질적 성공과 속도 경쟁에 매몰된 현대인들에게 삶의 방향성을 재정비하고 더 깊은 각성을 촉진하도록 돕는 속 깊은 조언이 담겨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간의 삶은 결국 죽음으로 완결되기에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스스로 존재를 의미 있게 가꿔나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35년 넘게 ‘좋은 삶(웰빙)’과 ‘좋은 죽음(웰다잉)’의 융합을 연구해온 윤영호 교수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죽음 이야기하는 의사로 유명하신데이번 책에서는  의미에 초점을 맞추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상 같은 맥락입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입니다. 죽을 때 비로소 삶이 완성되니까요. 우리는 결국 죽음을 향해 나아가기에, 죽음으로부터 삶을 들여다보면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길 수 있습니다. 여행을 준비하며 목적지에서 느낄 행복을 미리 느끼듯, 죽음을 떠올릴 때 현재의 삶에 더 충실할 수 있습니다. 죽기 전까지 우리는 ‘아직’이므로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목적이 무엇인지, 어떤 삶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삶이 의미를 잃지 않게 늘 죽음을 떠올리며 어떤 삶을 완성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좋은 (웰빙) 좋은 죽음(웰다잉) 없이 완성될  없다는 말씀은 어떤 뜻일까요?

아무리 행복하고 성공한 삶을 살았더라도 죽음이 고통스럽고 비참하다면 결코 ‘좋은 삶’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는 동안의 행복(정점)만큼 마지막 순간의 행복(종점)도 중요합니다. 어차피 죽으니 아무렇게나 사는 게 아니라, 어차피 죽는 단 한 번뿐인 삶이니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죽음을 통해 실존적 존재로서 삶을 완성하고 자기만의 전설로 승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후회 없이 살다가 품위 있게 죽을 권리가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어떻게 살고 무엇을 남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웰빙(well-being) 대부분 알고 있지만 웰다잉(well-dying) 아직 많은 사람에게 낯선  같습니다현실적으로 쉽게 설명한다면 웰다잉이란 무엇일까요?

익숙하고 편안한 장소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임종을 맞이했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죽음은 상당수가 병원에서 차가운 조명과 기계음에 둘러싸인 채 이뤄집니다. 물론 치료가 가능한 상황이라면 당연히 병원에 있어야겠지만, 치료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진 상황이라면 환자가 스스로 삶을 의미 깊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TV 드라마 「서른, 아홉」 속 인물들처럼 좋은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소중한 이들을 초대해 생전 장례식을 치르면서 삶을 아름답게 정리한다면, 웰다잉입니다. 무의미한 연명의료 대신 호스피스에 들어가 고통을 최소화하며 남은 삶을 사는 것도 웰다잉이죠. 선진국을 중심으로 속속 시행되고 있는 의사 조력 자살과 적극적 안락사를 포함한 의사 조력 사망도 웰다잉 범주에 속합니다. 요컨대 웰다잉은 법적·의료적 테두리 안에서 각자가 정한 품위 있는 죽음으로 삶을 완성하는 모든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은 오랫동안 웰다잉을 위한 이라 불린 연명의료결정법 법제화에 앞장서셨고 결국 입법과 시행까지 이끌어내셨는데여전히 많이 아쉬워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어떤 문제라도 있는 것이지요?

현대 의학으로도 더는 치료할 수 없는 말기 환자의 임종 기간만 연장하는 의료 행위가 연명의료입니다. 연명의료결정법의 정식 명칭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입니다. 말 그대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스스로 결정하거나 가족의 동의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도록 하는 법이죠. 호스피스 분야는 2017년 8월 4일, 연명의료 분야는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20년 노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층의 85.6%가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반대할 만큼 폭넓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습니다. 하지만 19세 이상의 성인이라면 누구나 작성할 수 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등록률은 2022년 12월 기준 2.4%에 불과하고, 실제로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는 비율은 2023년 기준 20.1%에 그치고 있습니다. 사회적 인식과 달리 실제로는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른 ‘웰다잉’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입니다. 한계가 있는 거죠.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말씀으로 들리는데보완할 방법은 없을까요?

현재까지는 보건복지부 지정을 받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에서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꽤 번거로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정기적으로 국가건강검진을 받고 있잖아요. 이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의사가 있는지를 묻고, 원하는 경우 곧바로 작성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면 등록률이 한층 높아질 것입니다. 중증 질환 진단을 받은 환자들에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권유함으로써 환자가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수도 있겠죠. 이보다는 더 늦지만 말기 진단을 받은 환자에게 담당 의사가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권함으로써 그제라도 웰다잉에 대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를 의사와 상담해서 작성할 때 건강보험을 인정해 국가가 일정 부분 의료 수가를 지급한다면, 연명의료결정법이 더욱 활발히 시행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웰다잉을 위한 최소한의 보루이니 이 정도는 이뤄져야 합니다.

 

 적극적인 웰다잉 방안으로 조력존엄사법 제정에도 힘쓰고 계신데지난 21 국회에서 처음 발의했다가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되고이번 22대에서도 발의했으나 여전히 계류 중이라고 들었습니다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한다는 반발 때문에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습니다어떻게 보시는지요.

가장 최근 조사로 지난 2월 23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시행한 ‘죽음에 대한 인식’ 등에 관한 대국민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1.9%가 말기 환자가 됐을 때 연명의료를 중단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고, 82%는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 찬성했습니다. 다만 정치적 이해관계와 종교계 등의 반발이 거세서 답보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자살’과 관련지어 윤리적 문제와 연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환자의 감당 못 할 극심한 고통을 떠올리면, 합리적 의사결정 절차를 통해 담당 의사의 조력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 존엄사는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에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죽고 싶은 사람 언제든지 죽을 수 있게 하는 법이 아닙니다. 감내하기 힘든 고통을 겪고 있는 말기 환자로 제한해 자발성과 진정성을 철저히 검증해서 조력 존엄사 여부를 결정하는 ‘조력존엄사위원회’ 같은 기구를 만들어 엄중히 시행한다면, 생명 경시나 사회적 타살과 관련한 오해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조력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이를 공론화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입니다.

 

다시 이번 책으로 돌아와서교수님은 줄곧 죽음을 삶의 끝이 아닌 완성이라고 강조해오셨는데죽음은 삶을 변화시키는  어떤 역할을   있을까요마지막 질문입니다.

오랫동안 ‘죽음’에 관해 연구하고 관련 활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죽음과 대한 생각과 이야기를 계속 나누게 됐습니다. 우리 삶은 결국 죽음으로 완결되기에 죽음을 빼놓고는 성립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면 굳이 삶을 중시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요. 카프카의 말처럼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죠.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떠올리면 삶의 소중함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고, 죽기 전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다 명확하게 설정할 수 있습니다. 병 들어 고통스럽게 죽음을 기다리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사는 동안 건강해지려고 애쓰는 것 또한 모두 죽음이 있는 덕분이고요.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도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내게 가장 중요한 도구”라고 말했고, 실제로 아이폰 등 혁신 제품을 내놓으면서 세상에 이바지했죠. 죽음을 떠올릴수록 삶은 더욱 또렷해집니다. 삶을 사랑하는 만큼 죽음을 성찰함으로써 인생을 더 가치 있게 다듬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조금씩 죽음을 경험합니다. 우리 세포는 죽고 생기기를 반복하며,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닙니다.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우리는 매 순간 조금씩 죽습니다. 삶의 순간순간 조금씩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우리 자신을 의식하면 현재의 삶을 더 충실하게, 더 소중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죽음을 고찰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통해 삶의 중요성과 올바른 방향성을 깨달을 수 있는 만큼 앞으로도 끊임없이 죽음에 대한 더 다채롭고 건설적인 개인적·사회적 담론이 이뤄지기를 희망합니다. 저도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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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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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호

서울대학교병원 암통합케어센터 교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건강사회정책실장, 연구부학장, 서울대학교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을 역임했으며, 삶의 질 연구 및 완화의료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이자 가정의학 전문의다. 한국건강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1989년 말기 암 환자 자원봉사를 시작으로 암 환자와 가족의 건강과 삶의 질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왔으며, 그 헌신적인 모습이 EBS 「명의」를 통해 소개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의사의 사명은 ‘병’을 치료하는 것만이 아니라 병을 가진 ‘사람’을 치료하는 것에 있다”는 신념으로, 특히 인간의 총체적 행복과 건강에 집중하고 있다. 암 환자들의 곁에서 생존에 관한 사투를 함께하면서도, 치료 후 일상으로 돌아가는 암 경험자들의 건강과 삶 전반의 질을 함께 향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적용하고자 애쓰고 있다. 임종을 앞둔 환자와 가족을 돕고자 국립암센터에 ‘삶의질향상연구과’를 신설했으며,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설립위원으로 활약했다.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법제화에 앞장선 공로로 2016년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화이자의학상과 보건복지부 장관상도 수상했다. 나아가 국내 최초로 건강에 ‘코칭’ 개념을 적용함으로써 병원에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건강 코칭(health coaching)’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했다. 이 같은 노력은 사회 전체로 확대돼 기업의 ‘건강 경영(health management)’과 ‘건강 가치 창출(creating health value)’ 연구로 이어졌다. 이를 현실로 구현하고자 2019년 ‘덕인원(德人願)’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1992년부터 지금까지 웰다잉, 말기 환자, 호스피스·완화의료 등에 관한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50편, 국내 학술지에 15편 발표했다. 저술과 강연도 연구 활동의 중요한 축이다. 학교와 병원을 오가는 바쁜 나날에도 『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입니다』『암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습관이 건강을 만든다』 등 다수의 저작과 의학 칼럼 연재, 강연 활동을 통해 대중의 곁을 지키는 의사가 되기 위해 힘쓰고 있다.